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113화 (1,112/1,307)

# 1113

“놈이 어디로 갔다고?”

“공작님의 영지 쪽으로 향했습니다. 엄청 빠르다는 것, 최소 8서클 이상이라는 것, 그리고 보우 마스터라는 걸 감안해서 포위망을 구축하셔야 할 겁니다.”

“흠! 그거 흥미롭구먼. 정보 고맙네. 놈을 생포하면 자네에게 주지. 벽만 넘으면 자네도 자격이 있으니 말일세.”

“…그래주시면 저야 고맙지요.”

루펜자 후작은 사양하지 않았다.

케즈만 공작은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는 최고위층이다. 로렌카 제국엔 공왕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케즈만 공작에게 자식이 있으면 그 자식에게 공을 넘길 수 있겠지만 평생 마법 연구에 몰두하느라 여인을 가까이한 적이 없다.

제국의 황제까지 나서서 여러 번 결혼을 종용했지만 그때마다 고사했다.

케즈만 공작은 명실공히 제국 제일의 천재이다. 그런 그가 죽기 전에 반드시 10서클이 되어 제국의 마법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명분을 세웠기에 말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거수자를 생포해도 별다른 혜택이 없으니 그 공을 넘겨주겠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흥미로운 일을 접하게 되어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케즈만 공작이 현수를 생포하여 그 공을 루펜자 후작에게 넘기면 공작으로 승작할 확률이 매우 높다.

지금껏 8서클 이상인데다 보우 마스터이기도 한 거수자는 잡힌 적이 없기 때문이다.

후작에서 공작으로 승작되면 그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케즈만 공작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견고해진다.

그렇기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꼭 놈을 생포하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놈의 속력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내일 아침쯤 공작님의 영지로 접어들 듯합니다. 이를 감안하십시오.”

“그러지. 통신은 이만하세. 미꾸라지를 잡아야 하니 말일세. 내일 다시 연락하세.”

“네, 공작님. 부디 놈을 꼭 생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지.”

통신을 마친 케즈만 공작은 휘하 마법사들을 모두 불러 방금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거수자가 8서클 마법사라는 말에 다들 놀라는 눈치다.

즉시 팀이 꾸려졌다.

8서클 2명, 7서클 9명, 6서클 41명, 5서클 166명이다. 이 밖에 궁병 3,000명, 창병 2,500명도 있다.

루펜자 후작의 영지에서 케즈만 공작의 영지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대부분 산지이다.

평탄한 길은 두 곳뿐인데 갈림길에 나무를 베어 막아버렸다. 윈드 커터로 베어진 나무는 길 한복판에 심어졌다.

뿌리가 없으니 시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치밀하게도 보존 마법을 걸었다. 그 정도면 적어도 열흘간은 생생한 나무처럼 보일 것이다.

주변 지형지물까지 살펴가며 세심히 막아놓았기에 초행인 현수로선 알 수 없다.

따라서 현수는 준비된 통로로 접근하게 된다.

케즈만 공작은 거수자가 8서클 이상의 마법사라는 것을 감안해 함정을 팠다.

루펜자 후작의 영지와 케즈만 공작의 영지 사이엔 제법 큰 개울이 흐르고 있다.

그 위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 이쪽엔 나무를 베어 위장했다. 커다란 바위들을 곁들인데다 보존 마법이 걸려 있어 원래 그런 것처럼 보인다.

이것들 사이에 위장복을 걸친 창병들이 대기하고 있다. 지구에서 쓰는 얼룩무늬 비슷한 옷을 걸친 것이다.

이들의 배후엔 궁수들이 배치되어 있다.

신호가 떨어지면 별도의 명이 있을 때까지 준비된 창을 던지고 끝없이 화살세례를 퍼붓도록 되어 있다.

이들의 공격을 모두 피하고 나면 반드시 발을 들여놓을 자리엔 현수를 사로잡을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9서클 마스터인 케즈만 공작이 신호를 보내는 즉시 발현될 마법이다.

이 마법이 지속해서 유지되도록 여덟 방위에 5서클 마법사들을 배치했다. 이들은 땅을 파고 그 안에 들어가 있다.

위에는 뚜껑을 덮어놓았는데 웬만해선 식별하기 힘들 정도로 위장된 상태이다.

이들의 임무는 공작이 지급한 특급 마나석의 마나가 제대로 마법진에 공급되도록 하는 역할이다.

어차피 5서클 마법사는 8서클 이상에겐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뒤쪽에 위치한 경사지에도 상당히 많은 구덩이가 파여 있다. 각각의 구덩이엔 마법사들이 은신해 있는데 신호가 떨어지면 일제히 마법을 난사하도록 지시된 상태이다.

케즈만 공작과 두 명의 8서클 마법사는 현수가 다가올 도로 전면에 있을 예정이다.

거수자가 모든 난관을 돌파할 경우 헬 파이어와 라이트닝 퍼니쉬먼트로 공격하기로 했다.

8서클 이상인 마법사가 수도로 접근하고 있다. 보나마나 좋지 않은 뜻을 품고 있을 것이다.

수도에 거수자가 잠입할 경우 색출이 곤란하다. 인구가 많을 뿐만 아니라 은신할 만한 곳이 너무 많은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생포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이다.

이런 상황인 줄 모르는 현수는 오토바이를 몰고 있다.

부우우우웅―! 촤라라라라라락―!

흙먼지가 자욱하게 튀어 오른다.

부아아아앙―!

아무도 없는 시골길을 달린 오토바이는 제법 물살이 센 개울가에 당도했다.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전면을 살펴보니 제법 많은 인원이 은신해 있다.

현수는 피식 웃었다. 어떤 작전인지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준비를 했다면 깨주지.”

부아아앙―! 우드드드드!

오토바이 바퀴와 마찰을 일으킨 목재들이 차례대로 솟아올랐다가 내려앉는다.

현수는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토바이를 멈췄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나 수많은 인원이 은신해 있음을 알기에 너희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짐작한다는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럼 가볼까?”

부아아아앙―!

“투창하라! 투창하라!”

“발사! 발사!”

휙, 휘휙, 휘휘휙, 휘휙, 휘휘휙!

쎄에엑! 슈아악! 쌔엥! 휘이익! 쎄엑!

창과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진다.

끼이익―!

달리던 오토바이를 멈추자 관성을 이기기 힘들다는 듯 휘청하더니 120°쯤 회전하곤 멈춘다.

이 순간 약 3,000개의 화살과 2,500여 개의 창이 사방에서 쇄도해 온다. 가만히 있으면 고슴도치가 될 판이다.

전면에 있던 케즈만 공작은 배리어, 또는 쉴드 마법이 구현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그런데 현수의 입에선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온다.

“아공간 오픈! 멀티 스터리지!”

시커먼 공간이 열리는가 싶더니 쇄도하던 창과 화살들을 빨아들인다.

이 순간, 뒤쪽의 누군가가 소리친다.

“투창하라! 발사하라!”

휙, 휘휙, 휘휘휙, 휘휙, 휘휘휙!

쎄에엑! 슈아악! 쌔엥! 휘이익! 쎄엑!

또다시 약 3,000개의 화살과 2,500여 개의 창이 사방에서 쇄도한다. 하나 열려 있는 아공간 안으로 속절없이 빨려들 뿐이다.

현수는 헬멧의 바이저를 슬쩍 올려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런 공격으론 어림도 없으니 까불지 말라는 눈빛이다.

상대도 의미를 알았는지 더 이상의 발사와 투창은 없었다.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에 창과 화살을 소모시키고 싶지 않음일 것이다.

아공간을 닫은 현수는 바이저를 내리곤 스트롤을 당겼다.

부우우웅―!

오토바이가 특정 지점을 지날 때 공작의 손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졌다.

7장 내 앞을 막지 마!

“준비이∼! 마법진 구동!”

찌잉! 찡! 찌이잉―!

여덟 방위에 은신해 있던 5서클 마법사들이 특급 마나석에 마나를 불어넣자 그 즉시 마법진이 가동된다.

현수는 순간적으로 체내의 마나가 요동침을 느꼈으나 곧바로 안정되자 사방을 쓸어보았다.

이 순간이다.

파팍! 파파파파파파파팍!

“체인 라이트닝! 파이어 애로우! 윈드 커터! 아이스 볼트!”

사방에서 온갖 공격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난사이다. 모든 마법사가 계속해서 공격 마법을 구현하고 있다.

“에구, 아까운 마나!”

엄청난 양의 마나가 소모되면서 생성된 마법 공격은 현수를 꿰뚫고야 말겠다는 듯 엄청난 속도로 쇄도해 온다.

“앱솔부트 배리어!”

티팅! 티티티티팅! 티티티팅!

수많은 마법이 배리어와 충돌하면서 소멸되었다.

이 순간 전면의 케즈만 공작과 두 휘하의 마법사는 눈을 크게 뜨고 있다.

“헉! 아, 안티 매직 필드가……!”

“고, 공작님! 저 마법이 소용없다면 상대는……?”

“서, 설마 10서클?”

“공격하라.”

“네! 헬 파이어! 헬 파이어!”

“라이트닝 퍼니쉬먼트!”

고오오오―! 콰와아아앙!

번쩍번쩍! 번쩍번쩍―!

콰르릉! 콰콰콰콰콰콰콰콰쾅―!

“어쭈! 이런 빌어먹을! 앱솔루트 배리어!”

현수는 전능의 팔찌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또 한 겹의 앱솔루트 배리어가 쳐진다.

8서클 마법사들이 구현시킨 헬 파이어는 외부 배리어와 격돌하는 순간 힘을 잃고 물러났다.

반면 9서클 궁극 마법인 라이트닝 퍼니쉬먼트는 첫 번째 배리어를 뚫고 두 번째 것까지 도달한다.

“체인 라이트닝!”

번쩍번쩍!

콰앙! 콰아아앙!

현수의 손에서 구현된 마법이 케즈만 공작과 두 8서클 마법사에게 쇄도하자 둘은 즉시 룬어를 영창한다.

“앱솔루드 배리어! 앱솔루트 배리어! 앱솔루트 배리어!”

9서클 마스터인 케즈만 공작이 구현시킨 안티 매직 필드 범위 안에서 마법을 쓴다는 것은 상대가 9서클 마스터 이상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같은 마법이라도 위력이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그렇기에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최선을 다해 체인 라이트닝에 대항한 것이다.

“헬 파이어! 헬 파이어! 헬 파이어!”

셋은 순차적으로 8서클 마법을 퍼부었다.

가장 먼저 도달한 것은 케즈만 공작이 시전한 것이다. 이는 외곽 배리어에 닿는 순간 위력을 잃었다.

곧이어 두 개의 헬 파이어가 현수에게 닥쳐왔다. 하나 외곽의 배리어조차 어쩌지 못하고 소멸되었다.

같은 앱솔루트 배리어라도 서클의 차이에 따라 마나 밀도가 다른 때문이다.

현수는 다짜고짜 최상위 마법을 구현시킨 둘을 노려보았다. 이건 뭐, 죽으라는 뜻이다. 웬만하면 그냥 가려고 했는데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헬 파이어!”

고오오오오―!

쿠와와아아아앙―!

“크윽! 케엑! 커헉!”

케즈만 공작을 비롯한 두 8서클 마법사는 앱솔루트 배리어로 현수의 공격에 대처했지만 부지불식간에 닥쳐오는 강력한 타격에 내장이 흔들린 듯 피를 토하며 물러선다.

현수는 싸늘한 시선으로 셋을 바라보았다.

셋 다 앞섶이 선혈로 젖어 있다.

시선을 들어보니 전의를 상실한 듯 멍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상상도 못한 결과에 넋이 나가 버린 모양이다.

“세상에! 맙소사!”

“크으으! 어떻게 이런 일이……!”

“이건… 말도 안 돼! 거수자가 어떻게 10서클을…….”

셋이 멍한 표정으로 뭐라 한마디씩 중얼거릴 때 현수는 스트롤을 당기고 있다.

부우웅! 부우우우우웅―!

현수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지만 오토바이는 잡고 있던 고무줄을 놓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튀어가고 있다.

“으헥!”

“헉!”

“으읏!”

셋은 쏜살처럼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피하기 위해 재빨리 흩어졌다. 케즈만 공작과 8서클 마법사들은 방심하고 있다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피하려다 발이 꼬이는 바람에 자빠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신형은 유유히 멀어져 가고 있다.

부아아아아앙―!

“끄으응! 어떻게 이런 일이!”

“으으, 말도 안 돼! 10서클이라니……!”

“아무도 그 경지엔 못 올랐는데….… 심지어 폐하께서도 아직도 9서클 마스터인데… 어, 어떻데 10서클이 된 거지?”

케즈만 공작을 비롯한 둘은 멍한 시선으로 멀어져 가는 현수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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