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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114화 (1,113/1,307)

# 1114

여전히 땅바닥에 주저앉은 상태이다.

이들 셋만 멍한 것이 아니다. 모든 마법사와 2,500명의 창병, 그리고 3,000명의 궁수 모두 벙찐 얼굴이다.

자신들의 안배는 미꾸라지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천라지망이었다. 그 모든 것으로부터 유유히 빠져나간 정체 모를 거수자가 대체 누군가 싶은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를 내어 물어볼 수는 없었다.

자신들의 영주인 케즈만 공작을 바라보니 입을 딱 벌린 채 멍한 시선으로 멀어져 가는 거수자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금방 이성을 되찾은 공작은 통신용 수정구로 수도 맥마흔에 연락했다.

황궁 연락담당관은 케즈만 공작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곧바로 어전에 전달했다. 마침 일곱 명의 공작이 세금 문제로 회의를 하는 중이었다.

다시 송수신이 이어졌고, 케즈만 공작은 자신이 보고 느낀 그대로를 전달했다.

“10서클이라고? 정말인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은 이는 제국의 총리라 할 수 있는 무크타크 공작이다.

“그렇습니다. 제가 준비한 안티 매직 필드가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허어!”

공작들 모두 놀란 표정을 짓는다. 케즈만 공작은 신중한 성품이며 과장을 모르는 사람이다. 하여 9서클 마스터인 공작위에 올라 있지만 중앙에서의 입김은 약한 편이다.

정치를 하려면 속내를 감출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늘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케즈만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그자가 이동하는 속도로 미루어 짐작컨대 수일 내로 맥마흔에 당도할 듯합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지 않으면 큰 소란이 빚어질 겁니다.”

“알겠네. 잠시 후 다시 연락하지. 불편하겠지만 대기하고 있으시게.”

“네, 공작님.”

무크타크 공작은 케즈만 공작보다 60년 먼저 공작위에 올랐다. 그렇기에 같은 공작이지만 무크타크는 반쯤 하대하고 케즈만은 깍듯하게 공대하는 것이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통신용 수정구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케즈만은 즉시 마나를 불어넣었다.

“케즈만 공작입니다.”

“날세. 무크타크.”

“네, 공작님.”

“황제의 뜻에 따라 모든 공작에 대한 소집령이 떨어졌네. 즉시 수도로 텔레포트하게.”

“네, 알겠습니다. 수행원은 어떻게 합니까?”

“8서클 두 명, 7서클 여섯 명이네.”

“네, 명을 받듭니다. 즉시 수도로 향하겠습니다.”

“그러게.”

통신은 짧았다. 모든 공작에게 황제의 명령을 하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신을 마친 케즈만 공작은 대기하고 있던 휘하 마법사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8서클 두 명, 7서클 여섯 명이다. 해당자는 준비하라. 우리는 세 시간 후 출발한다.”

“네, 영주님.”

명령이 떨어지자 인원은 즉시 해산했다. 그리곤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로렌카 제국이 건국된 이후 모든 공작이 집결한 것은 딱 네 번뿐이다.

건국 초, 황제의 300세 생신을 축하하는 동안 무려 한 달에 걸쳐 승작식이 진행되었다. 이때 모든 공작이 수도에 집결했다.

이후 매 100년마다 수도에 집결하여 황제의 탄신을 기념했다.

400세, 500세, 그리로 600세 생신을 축하했다.

따라서 건국 황제인 로렌카는 세수 629세에 이르러 있다.

두 번의 깨달음을 얻어 700년의 수명을 얻었으니 앞으로도 70년은 더 황제 자리를 지킬 것이다.

어쨌거나 모든 공작에 대한 집결령이 떨어졌다. 제국 전체에 비상령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현수는 모르지만 수도로 집결한 9서클 마법사의 숫자만 160명 정도 된다. 81명의 공작 이외에도 현업에서 물러난 은퇴 마법사들이 포함된 숫자이다.

8서클 마법사의 수효는 무려 630명이다.

158명의 후작과 각각의 공작령에 몸담고 있는 8서클 마법사들이 포함된 숫자이다.

7서클은 이보다 훨씬 많은 1,080명이나 된다.

372명의 백작과 공작 및 후작령에 속해 있는 마법사들이 포함된 숫자이다.

아르센 대륙에선 이실리프 마탑을 제외하면 일곱 개의 마탑이 있는데 주로 7서클 유저가 마탑주이다. 이 중 한 곳은 6서클 유저에 불과함에도 마탑주인 곳도 있다.

이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로렌카 제국엔 2,000∼3,000개의 마탑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비교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어쨌거나 10서클 마법사의 침입은 결코 만만히 볼 상황이 아니다. 어떤 공격 마법이 있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에 알려진 10서클 마법은 리절렉션뿐이다. 죽은 자를 되살리는 부활 마법이다.

9서클 마법인 미티어 스트라이크도 무지막지한 궁극 마법이다. 수도에서 구현되면 그야말로 쑥대밭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강력한 마법이 있다면 어떻겠는가!

그렇기에 이렇듯 무지막지한 전력을 수도로 집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제국에선 일종의 위기로 판단한 것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현수의 오토바이는 맥마흔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부우우우웅! 촤라라라라라락―!

인적 없는 오솔길을 달리는 오토바이는 흙과 자갈을 뒤로 분사시키는 듯한 모습이다.

멀찌감치 나타난 몬스터가 몇이 있었으나 갈 길 바쁜 현수의 앞을 가로막지는 않았다.

현수는 누가, 언제 앞을 막아설지 모르기에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전방을 주시하며 달렸다. 그러다 몬스터가 감지되면 즉시 드래곤 피어 마법으로 전환시켰다.

강력한 존재감을 느낀 몬스터들은 그 즉시 도주하기에 바빴기 때문에 현수를 방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끝에 당도한 곳은 절벽의 끝이다.

“끄응! 이게 뭐야? 길을 잘못 든 거야?”

도끼로 찍어낸 듯한 절벽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 500m는 되어 보인다. 오토바이로는 갈 수 없다.

현수는 아공간에 오토바이를 넣었다. 그리곤 플라이 마법으로 내려가려다 멈췄다. 마음이 급해 천하의 절경을 놓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와우! 대단하구나!”

절벽 아래엔 진초록 수림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사이로 각양각색의 호수가 있는데 하늘에 걸린 뭉게구름이 반사되어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리 높지 앉은 구릉지대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사막으로 에워싸여 있다.

사막 저쪽엔 험준한 산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지구로 치면 히말라야 산맥, 또는 천산산맥 정도의 높이이다.

그런데 어느 한 곳으로부터 꼬물꼬물 연기가 피어오른다. 불을 다루는 몬스터는 없으니 인가가 있다는 뜻이다. 규모가 작지 않은 호수 근처의 야트막한 산 뒤쪽이다.

‘흐음, 오늘은 저기에서 잘까?’

현수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마을에서 자는 것도 좋지만 이곳의 풍광이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가봤자 냄새나는 침구와 방, 그리고 수많은 벌레만 있을 뿐이다.

“그래! 여기가 더 좋겠다.”

현수는 절벽 가에 컨테이너를 꺼내놓고 스테이크와 새우, 그리고 맥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사위가 어슴푸레하다. 캠핑용 의자를 꺼내놓고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니 왠지 가슴이 먹먹하다.

하여 하모니카를 꺼내 미발표 곡들을 연주해 보았다.

그룹 다이안에게 준 지현에게와 첫 만남, 그리고 윌리엄 그로모프에게 준 In the Moonlight도 명곡이지만 미발표 곡 중에도 서정적인 선율의 곡이 많았다.

처음엔 애잔한 곡부터 연주했다.

그러다 점차 템포가 빨라지더니 나중엔 댄스곡이라 할 만큼 경쾌한 선율이 고요한 대기에 수를 놓았다.

그렇게 한 두어 시간쯤 지나고 나니 왠지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현수는 원하기만 하면 세상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능력과 돈이 있다. 그럼에도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마법을 마음껏 쓸 수 없음도 있지만 사회적인 제약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는 것들 때문이다.

연희와 이리냐가 숨겨진 여인이 되어 있어야 하는 것 등이 그러하다. 하여 내색하진 않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곧 태어날 아기들에게도 미안한 기분이다.

“그래,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겠지.”

지구에서 진행되고 있을 자치령 개발과 아르센 대륙의 이실리프 자치령과 왕국 건설을 떠올리고 중얼거린 말이다.

침대에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대기가 오염되지 않았기에 더욱 반짝이는 듯하다.

“총총하네.”

밤은 깊었고, 현수는 이내 고른 숨을 내쉬며 모처럼 숙면을 취했다.

* * *

짹, 짹, 짹―!

“아함!”

모처럼의 숙면이었기에 기분 좋게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려던 현수는 움직임을 멈췄다.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뭐지? 와이드 센스!”

고오오오오―!

마나가 뿜어지며 주변의 상황을 보고한다. 주변에 약 200여 개체가 은신한 채 숨을 죽이고 있다.

좋은 뜻으로 온 것 같지는 않다. 아침부터 드잡이를 하긴 싫었지만 어쩌겠는가!

“으음!”

나직한 침음을 낸 현수는 바깥으로 나와 컨테이너를 아공간에 담았다. 이 순간 은신해 있는 무리의 움찔거림이 느껴진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뉘신지는 모르지만 다 알고 있으니 나오시오.”

“……!”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다만 상대가 상당히 긴장하고 있음만 느껴질 뿐이다.

“셋을 셀 때까지 안 나오면 내게 용무가 없는 것으로 여기고 가겠소. 하나, 두울, 세에……!”

ㅅ 받침까지 발음하려는 순간 인영 하나가 불쑥 일어난다. 이를 시작으로 은신해 있던 나머지 대부분도 일어선다.

가죽으로 만든 의복을 걸쳤는데 복식이 독특했다. 마치 이누이트족의 그것 같다는 느낌이다.

모두 형형한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나는 요슈프라 합니다. 그쪽 이름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시선을 돌려보니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바라보고 있다. 보아하니 이곳에 온 자들의 대표쯤 되는 듯싶다.

그런데 진실만을 말해달라는 눈빛이다. 왠지 그렇게 느껴진다.

“반갑습니다, 요슈프. 나는… 하인스라고 합니다.”

굳이 신분을 감출 이유가 없기에 한 말이다.

“하, 하인스요?”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발음이 시원치 않다.

이곳 사람들에겐 하인스라는 이름이 생경하다는 것을 안다. 파티마로부터 들어본 바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하인스 멀린 킴 드 셰울이지요.”

“…그럼 로렌카 사람이 아니십니까?”

이곳 사람들의 이름과 달리 길기에 한 말이다.

“그러합니다. 나는 아르센 대륙에서 왔습니다.”

“아르센이라니요? 거기가 어딥니까?”

“이곳에서 아주 먼 곳에 있는 대륙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그곳의 존재에 대해 잘 모르더군요. 그쪽에서도 여길 모르긴 마찬가지지만요.”

현수의 말에 사내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외지인치고 현수의 발음과 억양이 너무도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걸고넘어지진 않았다. 더 중요한 게 있기 때문이다.

“근데 마법사이십니까?”

현수는 모르는 일이지만 이곳에선 아공간 마법을 쓰려면 최소 7서클은 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마법을 썼으니 물어본 말이다.

“…그렇습니다.”

“그럼 7서클 이상이시군요.”

“그도 그렇죠.”

“혹시 나이가 어찌 되는지요?”

7서클에 이르면 1차적으로 바디체인지를 겪으면서 젊음을 되찾는다는 말을 들었기에 물은 말이다.

“서른입니다.”

“네? 서른이라고요? 백서른이나 이백서른이 아니고요?”

몹시 놀랍다는 표정이다.

“그렇습니다. 그냥 서른이 맞습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감탄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그 시간은 매우 짧았다.

“아까 아르… 아르… 뭐라고 했죠?”

“아르센 대륙입니다.”

“아! 맞다, 아르센 대륙! 거기서 오셨다고 했는데, 혹시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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