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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116화 (1,115/1,307)

# 1116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요행히 무너지는 곳을 피했다 하더라도 안전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 기관을 건드리면 그 순간부터 통로의 천장 부분에서 자욱한 독무가 쏟아진다. 불과 두 호흡 만에 사람의 목숨을 앗을 수 있는 절독이다.

마지막은 통로 전체의 붕괴이다. 죽은 시신을 가져다 구울이나 좀비를 만든다는 것을 알기에 시신조차 거둬갈 수 없도록 수십만 톤의 바위가 쏟아져 내리도록 만들었다.

세 개의 안전 통로는 겉보기엔 전혀 안전하지 않은 것처럼 조성되어 있다. 금방이라도 부러지거나 부서질 듯한 썩은 갱목[Mine timber]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곳은 여러 개의 개구부가 있다.

이를 통해 공기가 순환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온도 유지는 어렵다. 바람이 지나는 통로에 위치해 있어서 겨울이 되면 바깥보다도 더 춥다. 하여 3월 초인데도 한겨울의 복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항온마법진을 드리지요. 그럼 좀 나아질 겁니다.”

“항온마법진이요?”

“네, 내부 온도가 확연히 올라갈 겁니다.”

“아! 감사한 일이군요. 우리 화티카 백성들을 대표하여 사의를 표합니다.”

대화를 하는 사이에 긴 식탁이 있는 곳에 당도하였다.

시종 복장을 걸친 사내들이 준비된 음식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있다. 슬쩍 바라보니 시든 푸성귀를 넣은 스튜와 사슴 고기 스테이크이다.

“산중이라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하여 이런 것밖에 없습니다. 시원치 않다 타박 마시고 들어주십시오.”

“그러지요.”

현수와 요슈프가 마주 앉자 수아드와 말라크 또한 착석한다. 따라온 이들은 빈자리가 많음에도 곁의 테이블에 앉는다. 보아하니 요슈프가 이곳을 이끄는 지도자인 듯하다.

“배고프실 텐데 먼저 드시지요.”

“그러지요.”

사양하고, 다시 권하고, 마지못해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식은 뒤가 된다.

계속해서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흐음! 항온마법진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군. 에어 커튼 같은 걸 설치하면 좋은데 그럼 연기를 뽑아낼 수 없겠지? 아이들도 있는 모양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스테이크를 썬 뒤 입에 넣으려는데 누린내가 몹시 심하다.

이곳 사람들의 체면을 생각하면 그냥 씹어 삼켜야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냄새만으로도 욕지기가 오른 때문이다.

“아공간 오픈!”

아공간에서 후춧가루를 꺼내 뿌렸다.

“이걸 뿌리면 고기에서 나는 냄새가 좀 누그러들 겁니다.”

“아! 그런가요?”

현수가 하는 양을 지켜보던 요슈프는 그대로 따라서 후춧가루를 뿌린다. 하지만 수아드와 말라크는 말없이 고기를 썰 뿐이다.

현수는 오늘 처음 본 외지인이다. 로렌카 제국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지만 100% 신뢰할 수 없다.

간악하기 이를 데 없는 흑마법사들은 온갖 술수를 부려 기존 왕국민들을 죽였고, 착취하고 있으며, 고혈을 빨고, 부려먹는 중이다.

현수가 로렌카 제국에서 파견한 간세라면 방금 준 것이 독일 수도 있다. 지도부가 모두 중독되어 버리면 만일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속수무책이다.

그렇기에 별다른 표정 없이 식사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다.

내심은 엄청 긴장하고 있다. 요슈프가 신호를 보내면 그 즉시 밖으로 나가려 다리를 식탁 바깥쪽으로 빼놓고 있다.

식당이라 할 수 이곳은 무기를 든 사내들이 에워싸고 있는 중이다. 여차하면 달려들어 현수를 도륙할 생각이다.

현수가 적이 보낸 첩자일 경우 바깥으로 나가면 이곳의 위치 및 내부 상황을 알려주게 된다.

당연히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므로 나가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이다.

“호오! 이걸 뿌리니 냄새가 확실히 잡히는군요.”

요슈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스테이크를 씹는다. 그러면서 슬쩍 수아드에게 후춧가루가 든 통을 건넨다.

당신도 경험해 보라는 의도이다. 잠시 후 후추는 말라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건네졌다.

쩝, 쩝, 쩝쩝, 쩌쩌쩝―!

우물우물! 와구와구! 후루룩! 후륵! 후루루룩!

스테이크 씹는 소리와 스튜 떠먹는 소리로 잠깐 동안 소란스러웠다. 모처럼 식욕이 돋는 듯하다. 하긴 심한 누린내가 싹 잡혔으니 음식이 훨씬 더 맛있다 느껴질 것이다.

고요히 식사를 마친 현수는 항온마법진을 꺼내 벽에 부착시켰다. 잠시 후 모두들 걸치고 있던 외투를 벗는다.

실내 기온은 25℃로 맞춰놨으니 덥다는 느낌이 들어서일 것이다.

요슈프는 몹시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마법진을 살펴본다.

현수는 아공간의 생수를 꺼내 뜨겁게 데웠다. 그리곤 커피를 한 잔씩 만들어주었다. 한국에서 발명된 커피믹스인지라 향도 향이지만 달달한 맛이 일품이다.

예상대로 모두들 눈을 크게 뜬다. 태어나서 이런 맛은 처음 본 때문이다.

“이건 뭔가요?”

“커피라는 것으로 우리 왕국의 특산품입니다.”

“아! 그런가요? 맛이 아주 좋습니다.”

“네, 그건 그렇고, 로렌카 제국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요슈프는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시선을 맞춘다.

“로렌카 제국은 반드시 멸망되어야 할 악의 무리입니다. 국왕 전하라 하시니 군사가 많을 겁니다. 그들을 이끌고 오셔서 놈들을 소탕하시면…….”

잠시 요슈프는 열변을 토했다. 그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수가 이실리프 왕국군을 데리고 와서 로렌카 제국군과 전쟁을 벌이는 동안 반 로렌카 전선은 일제히 항거한다.

대륙 각지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니 제국군은 한곳으로 병력을 집중시키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하여 로렌카 제국군을 패퇴시키면 이곳에 이실리프 제국을 건설하라고 한다.

이에 현수가 늑대 쫓으려다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꼴이 될 수도 있다고 했더니 흑마법사만 아니면 된다고 한다.

그간 얼마나 당했는지 능히 짐작이 가는 반응이다.

이 과정에서 로렌카 제국의 본질을 확실하게 깨우칠 수 있었다. 여태껏 모르고 있던 각종 정보를 습득한 것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황제를 비롯한 모든 귀족이 흑마법사라는 것과 9서클 마스터가 100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뭣 모르고 맥마흔까지 갔다면 당했을 수도 있기에 현수는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곳은 수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라 검문검색이 느슨하지만 맥마흔으로 가까이 갈수록 점점 감시의 눈초리가 심해질 것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여러 개의 나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로렌카 제국 하나뿐이기에 신분을 위장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게다가 거수자를 신고하는 자에겐 분에 넘치는 포상을 하므로 반 로렌카 전선의 일원이 아니라면 헤어지는 즉시 신고할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휴우, 파티마의 기억을 삭제한 건 정말 잘한 일이군.’

현수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자유 영지 헤르마로 향하는 일단의 무리가 있다.

약 120명으로 구성된 이들을 황궁에선 ‘거수자 색출 긴급 조사단’이라 칭하는데 단장은 황제가 직접 지목하여 파견한 황궁 마법연구단장 줄마 공작이다.

이들은 1차적으로 6서클 마법사 라쉬드가 관장하고 있는 포탈 마법진에 대해 조사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헤르마의 모든 여관 및 상점에 대한 수색과 조사이다. 물론 ‘뿔난 양의 엉덩이’도 명단에 끼어 있다.

최근 외출자가 출현한 여관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파티마는 오늘 밤에 줄마 공작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현수에 의해 지워진 기억 전부가 복원될 것이다. 10서클 마법사인 현수가 직접 구현시킨 메모리 일리머네이션 마법이지만 9서클 마스터쯤 되면 능히 원상 복구가 가능하다.

줄마 공작은 현수에 대한 모든 자료를 수집하게 된다.

신장, 몸무게, 체형, 얼굴형, 피부 색깔, 눈동자의 빛깔, 억양, 말투, 의복 등등 현수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이다.

뿐만이 아니다. 9서클 마법사인 멀린에게 좋게 이야기해 달라던 이즈라 케볼트가 머무는 누라하에도 공작 일행이 들이닥치는 중이다.

훔친 밀 포대에 핀 꽃 한 송이라는 괴이한 이름의 여관도 당연히 방문한다. 이 여관의 주인 겸 여급인 자하라는 하늘 같은 공작 앞에서 벌벌 떨면서 현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이처럼 헤르마로부터 수도에 이르는 직선 코스에 있는 거의 모든 영지에 공작들이 파견되었다.

이번에 나타난 거수자는 무려 10서클 마법사이다.

마인트 대륙의 수천 년 역사 가운데 인간은 물론이고 드래곤조차 10서클에 올랐다는 기록이 없다.

황궁에선 거수자가 인간일 것이라는 건 아예 예상에 넣고 있지 않다.

드래곤 하트를 두 개나 차지했으며 600살이 넘도록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황제조차 10서클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지금껏 숨죽이고 있던 드래곤의 출현으로 짐작하는 중이다.

약 330년 전에 마인트 대륙의 모든 드래곤은 도살당했다.

골드, 실버, 블랙, 레드, 그린, 화이트 등 모든 일족이 화를 입은 것이다.

이 중엔 헤츨링도 포함되어 있다.

드래곤은 다른 개체에 대해 대체적으로 초연하다. 하지만 다른 개체뿐만 아니라 다른 일족이라 할지라도 헤츨링이 화를 입으면 그 즉시 무자비하게 보복을 가한다.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율법이다.

330년쯤 전에 죽은 헤츨링은 모두 26개체이다. 드래곤의 후대를 이을 재목들이었다.

이들은 모조리 도살되었고, 뼈는 무기가 되었으며, 살은 황제를 비롯한 흑마법사들의 식량이 되었다.

비늘을 뽑아 갑옷을 만들었고, 발톱 또한 병장기의 일부가 되었다. 피는 젊음을 추구하는 황후와 공주들의 목욕물이 되었고, 힘줄은 발리스타의 시위가 되었다.

뽑힌 눈알 또한 요리가 되어 사라졌다. 모든 헤츨링이 이렇게 당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따라서 무지막지한 반격이 시작될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기에 최고위 행정관이 급거 나선 것이다.

“기왕에 오신 것이니 한번 둘러나 보시지요.”

요슈프는 자신들이 준비해 놓은 걸 보여주고 싶었다. 얼마나 조직적으로 반격을 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이실리프 왕국군이 마인트 대륙에 상륙할 것이라 생각한 때문이다.

“그러지요.”

현수는 요새화되어 있는 동굴 내부를 돌아보았다. 각종 병장기가 아주 잘 손질되어 있다.

“총출동하게 되면 몇 명이나 가죠?”

“이곳에 거주하는 인원은 총 21,000명쯤 됩니다. 이 중 절반 정도 되는 10,000명이 나갑니다.”

“절반이나 간다면 여자들도 포함되는 겁니까?”

아이와 노인도 있을 것이기에 한 말이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건 아닙니다. 전투 보조 역할이죠. 정예는 7,000명 정도 됩니다.”

보아하니 15살부터 50대 중반의 사내를 모두 정예로 생각하는 듯싶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 로렌카 전선의 수효는 얼마나 됩니까?”

“저도 확실히 아는 건 아니지만 대략 200여 개 정도 됩니다. 대륙 각지에 흩어져 있지요.”

“연락은 어떤 방법으로 취합니까?”

“직접 찾아갈 때도 있지만 주로 인근 영지에 심어둔 인원을 이용합니다. 저희는…….”

잠시 설명이 이어졌다. 들어보니 반 로렌카 전선끼리의 연락은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유사시 꼬리 자르기를 하기 위한 조치이다.

이런 연락 방법이 있기에 때로는 연합 작전을 벌이기도 한다. 잡혀든 인원에 대한 구출 작전을 시도할 때, 혹은 학정과 수탈이 심한 영지에 대한 징계를 가할 때 등이다.

반 로렌카 전선은 대규모 집단전을 통한 영토 회복은 아예 계산에 넣지 않고 있었다. 땅을 차지해 봐야 로렌카 제국군의 반격이 뻔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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