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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117화 (1,116/1,307)

# 1117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복잡한 동굴 내부를 돌아보았다. 인상적인 것은 곳곳에 단체로 수련이나 훈련을 할 수 있을 너른 광장이 있다는 것이다.

제법 단단한 암반을 깎아 만들었는데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충분히 짐작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 사람들은 안짱다리가 많다.

인체에 꼭 필요한 필수 비타민 가운데 비타민 D가 있다. 소나 돼지의 간, 정어리, 다랑어, 고등어, 달걀노른자 등에 많이 들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햇볕을 받아 합성된다.

피부 세포에 있는 7―디히드로 콜레스테롤이 햇빛 중의 자외선을 받아 형성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하루 종일 동굴 속에 있는 경우가 많아 충분한 햇볕을 쬐지 못했다.

그 결과 어린 시절에 비타민 D 결핍증인 구루병을 많이 앓았다. 이것은 주로 4개월∼2세 사이의 아기들에게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머리, 가슴, 팔다리뼈의 변형과 성장장애를 일으키는 질병이다.

그 결과 성인 가운데에도 안짱다리가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비타민 D가 부족하면 구루병뿐만 아니라 유방암, 대장암, 전립선암, 골절, 고혈압, 근육 통증, 인슐린 저항성 및 당뇨병, 우울증, 골다공증과 골연화증이 걸리기 쉽다.

총제적인 신체에 문제가 발생된다는 뜻이다.

‘흐음! 햇볕이 필요하단 말인데…….’

요슈프의 안내를 받는 동안 동굴 입구 등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방법이 있을 듯하다.

“여기서 잠깐만요.”

대충 입구라 여기는 곳에 당도한 현수는 아공간 속의 거울을 꺼냈다. 반사 각도만 잘 맞추면 햇볕을 내부까지 끌어들일 수 있을 듯해서이다.

요슈프를 비롯한 사람들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거울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각도를 조절하자 동굴 깊숙한 광장까지 햇볕이 공급된다. 최종적으로 둥근 거울을 꺼내 각도를 조절하자 바깥과 다름없이 환해진다.

적어도 낮엔 횃불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요슈프 등은 현수가 확실히 마인트 대륙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인정했다. 이런 건 들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흑마법사들은 이처럼 남의 어려움을 헤아려 주는 존재가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엔 온갖 수탈을 자행하고 죽으면 시신까지 거둬간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베푼다는 건 거의 없는 족속이니 현수가 로렌카 제국의 마법사가 아니라는 건 거의 확실하다.

“이건 실례의 질문입니다만, 전하께선 몇 서클이신지요?”

“음, 아르센 대륙에선 10서클이라 합니다. 여기선 어떨지 모르지만…….”

“네, 그렇군요. 네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던 요슈프를 비롯한 수행원들의 눈이 대번에 화등잔만 해진다.

마법사의 제국 로렌카에서도 가장 높은 자의 화후가 9서클 마스터이다. 제국의 황제 역시 300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도 10서클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불과 서른의 나이에 그걸 뛰어넘었다고 하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저어… 아까 세수가 서른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말투가 극공대로 바뀌었지만 현수는 개의치 않았다.

“서른 살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요슈프는 아무리 천재라 할지라도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화후이기에 부디 설명을 부탁한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외부 시간으론 그렇습니다. 우리 이실리프 마탑은 시간을 멈추게 하는 결계를 치고 그 안에서 수련합니다. 나는 결계 안에서 수백 년에 걸친 수련을 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모두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저희가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실제론 저희보다 훨씬 연장자이신데…….”

요슈프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현수가 괘념치 말라는 뜻으로 손을 내저은 때문이다.

9장 맥마흔을 향해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로렌카 제국에 관한 정보가 더 필요합니다.”

“아! 물론입니다.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요슈프가 손짓하자 대기하고 있던 인원 모두 바깥으로 물러간다. 현수가 적이 아님을 이제야 인정한 것이다.

현수는 요슈프의 입을 통해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동굴 전체를 둘러보면서 얻은 정보이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현수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베풀기로 마음을 먹었다. 330년 전에 나라를 잃었지만 아직도 독립을 꿈꾸는 이들이라 돕고 싶은 마음이 인 때문이다.

하여 항온마법진을 충분히 만들어 주었다.

율인전자 최지원 사장에게 주문한 물건들을 아직 받지 못했기에 정교한 온도 조절은 불가능하다.

다만 여름엔 서늘하여 살 만하다고 하니 켜고 끄는 기능만 있는 마법진을 만들어 주었다.

마법진이 가동되자 다소 서늘하던 실내 기온이 확연하게 올라간다. 25℃로 세팅해 놓았으니 살 만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약간 이상하다.

아르센 대륙은 이제 막 봄이 되려 하지만 이곳 마인트 대륙은 아직 여름이다. 지구의 북반부와 남반부의 계절이 반대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은 서늘함이 절로 느껴질 정도로 춥다.

동굴 바깥이 그렇고, 내부는 훨씬 더 춥다. 싸늘한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가 떨어진 때문일 것이다.

문득 경상남도에 있는 ‘밀양 얼음골’이 떠올랐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곳은 더위가 심할수록 바위 틈새에 얼음이 더 많이 얼고, 겨울에는 반팔을 입을 정도로 더운 김이 나 ‘밀양의 신비’로 불린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지 물어보려다 말았다. 과학적인 설명을 하지 못할 것이 뻔한 때문이다.

현수는 괴이함을 느꼈지만 굳이 규명하려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어쨌거나 항온마법진이 가동되자 실내 기온이 올랐고, 사람들은 입고 있던 가죽옷을 벗었다. 앞으로는 거추장스럽고 무거운 의복을 걸치지 않아도 된다면서 다들 즐거워했다.

이러는 사이에 시간이 흘렀다.

저녁때가 되자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현수는 잘 차려진 식탁을 보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메인은 말린 고기를 희멀건 국물에 불린 음식이고, 채소랑 곡물로 만든 것은 양이 확연히 적었다.

어찌 그냥 지나치겠는가!

아공간에 있는 밀가루 등을 꺼내 주었다.

백두그룹 계열사를 털 때 라면공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곳엔 완제품인 라면뿐만 아니라 밀가루도 많았다.

아울러 스프의 원료가 되는 돼지뼈와 소뼈 또한 많았다. 이 밖에 양파와 파, 마늘, 고춧가루 등도 상당량 있었다.

현수가 꺼내놓은 것은 20㎏짜리 밀가루 5,000포대이다.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금방 소비될 양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이 밖에 양파와 소뼈와 돼지뼈, 파와 마늘, 그리고 양파와 후추 분말도 듬뿍 꺼내놓았다. 상할 우려가 있기에 이것들을 보존할 곳엔 보존마법진이 부착되었다.

요슈프와 수아드는 대놓고 고맙다며 환히 웃었다.

신선한 채소를 본 지 너무도 오래된 때문이고, 최상급 밀가루는 얻기조차 힘든 귀물인 때문이다.

만남을 축하하는 의미로 술을 곁들였다. 적어도 40도는 됨직한 독주였지만 잘들 마신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방편으로 매일 밤마다 한 잔씩 들이켠다고 한다.

현수는 알코올 중독의 폐해와 술로 인한 간 기능이 저하되었을 때 발병될 수 있는 각종 질병을 알기에 앞으로는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충고해 줬다.

어찌 되었든 화기애애한 식사 시간을 보낸 후 침실을 배정받았다. 돌을 깎아 조성한 방은 10평 정도 되는 크기이다.

창문은 없고, 드나들 출입구만 있는데 거칠게 짜진 천이 드리워져 문 역할을 하는 방이다.

안에 들어가 보니 지푸라기를 깔고 천을 덧씌운 침대가 있다. 마직 이불은 너무도 투박하고 거칠었다. 이곳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한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어쨌거나 냄새나고, 푹신하지도 않은 잠자리이다.

먼저 워싱과 클린 마법으로 깨끗이 한 후 이베이퍼레이션 마법으로 건조시켰다.

그래도 냄새가 나기에 페브리즈를 사용했다. 그리곤 아공간 속의 이부자리 한 채를 꺼내 세팅했다.

이곳에 머문 기념으로 주고 갈 요량이다.

밤이 깊어지자 여기저기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다들 독한 술 몇 잔씩을 마시고 잠든 탓이다. 현수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없었기에 팔을 베고 누웠다. 그런데 걱정이 태산이다.

9서클 마스터가 100명이 넘을 것이라는 요슈프의 말이 마음에 걸려서이다.

30명과의 심상 대결에서도 번번이 열세였는데 100명이 넘는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벽이다.

‘하긴…….’

마법의 조종이며 중간계의 조율자, 그리고 위대한 존재라 일컬어지던 드래곤들이 사냥당했다.

드래곤 하트는 뽑혔고, 피와 살은 영양분으로 전락했다.

덕분에 흑마법사들의 전력이 가일층 강해졌으니 더욱 당해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문득 라수스 협곡의 드래고니안들을 떠올렸다.

현수가 방문한 곳 중 가장 강력한 무력을 가진 집단이다. 어쩌면 카이엔 제국이나 라이셔 제국보다도 강할 수 있다.

그런데 마법사의 전력은 이곳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니 데려와 봐야 큰 힘을 못 쓴다.

최고가 7서클인 때문이다.

31명의 소드 마스터도 마찬가지이다.

마법사는 거리를 떼고 대결에 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드 마스터는 7서클 마법사 정도의 무력이다.

9서클 마스터들이 즐비하니 그들 역시 데리고 와봐야 소용없다.

“끄응!”

현수는 나직한 침음을 내고 생각을 바꿔봤다.

라이세뮤리안과 대결하기 위해 동원한 화기들을 떠올린 것이다. 체이탁 대물 저격총을 사용하면 몇몇은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9서클 마법사들도 어쩔 수 없는 원거리 저격인 때문이다.

상대가 방심할 땐 저격이 가능하지만 조심하기 시작하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인비저빌러티 마법이나 앱솔루프 배리어 마법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모여 있다면 한 발 한 발 발사하는 체이탁보다는 K―6 중기관총이 더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라이세뮤리안을 공격하기 위해 개조해 놓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유효 사거리 1,830m, 최대 사거리 6,765m였으나 총알마다 마법진을 새겨 넣어 유효 사거리 3,683m, 최대 사거리 12,865m로 늘려놓았다.

분당 450∼600발이 발사되고, 총알이 날아가는 속도는 930㎧ 정도이다.

환산하면 3,348㎞/h이니 아무리 기감이 좋은 마법사라 할지라도 쉽게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걸로도 안 된다면 러시아의 자랑인 공격헬기 KA―52 Alligator Hokum B에 장착되는 AT―16 미사일을 사용할 수도 있다.

사거리는 6∼9㎞이고, 속력은 2,000∼2,175㎞/h이니 마법사들이 모여 있다면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과학기술이 발달된 지구에서 개발된 병기라는 것과 마나와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로렌카 제국의 흑마법사들은 상당한 타격을 입고 나서야 누군가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AT―16을 발사시킬 런처가 없다는 것이다. 구해야지 하는 마음만 품고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은 결과이다.

모스크바의 밤을 지배하는 알렉세이 이바노비치에게 부탁해야 하나, 아니면 노보로시스크의 지르코프를 찾아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 역할을 하는 천이 살그머니 들린다.

누군가 싶어 바라보니 말라크가 쟁반을 들고 서 있다. 쟁반에는 술과 안주인 듯한 것이 놓여 있다.

“누구? 아, 말라크 양이 이 시간에 여긴 웬일로……?”

“출출하실까 싶어 주안상을 봐왔어요.”

“출출해요?”

“네, 저녁 식사를 조금밖에 안 하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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