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121화 (1,120/1,307)

# 1121

고문과 마법을 병행하였기에 아무리 인내심 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보를 내놓지 않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성 바깥까지는 조사하지 않았다. 이들은 소탕 작전이나 출동 일시 등을 알 방법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라트보라 남작은 모든 조사를 무사히 넘겼다. 늘 사려 깊고 신중하게 운신한 덕분이다.

술에 취하면 실수할 수 있음을 알기에 술집을 운영하면서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 아닌지라 상당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라트보라 남작은 현수가 건넨 서찰을 모두 읽은 후 불에 태웠다. 헤럴드가 써준 그것에는 현수를 적극적으로 도우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형님이 도우라니 기꺼이 돕겠습니다.”

“어라, 헤럴드 님과 형제지간이었습니까?”

“제 사촌형님이지요. 형님과 형수님은 잘 계시죠?”

“네, 잘 지내고 계십니다.”

라트보라 남작은 고개를 끄덕인다. 워낙 강건한 체질인지라 별 탈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영주 선발대회에 참가하려 합니다. 그러려면 적절한 신분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적당한 사람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말을 하면서 현수의 이모저모를 살핀다. 예리한 시선으로 신장, 체중, 체형, 피부 빛깔, 습관 등을 파악하는 중이다.

“영주 선발대회에 참가하려면 최하가 5서클 마스터라는 걸 알고 계시지요?”

현수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좁쌀만 한 마나로는 어림도 없음을 우회적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압니다. 지금은 마나를 억제하고 있습니다.”

“그, 그래요?”

라트보라 남작은 현수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5서클 마스터인 자신의 이목을 속일 정도면 본인보다 화후가 높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신분은 만들어낼 수 있겠습니까?”

“몇 서클이나 되십니까? 영주 선발대회에 참가하는 건 자유지만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간신히 6서클 정도면 말리고 싶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작위인 남작이 되려면 5서클 마스터 이상이라는 제한을 넘겨야 한다.

문제는 영주 자리를 욕심내는 자가 많다는 것이다. 하여 자작이 될 자격을 갖추고도 남작에 지원하는 자가 많았다.

이런 상황은 한국의 입시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다 하더라도 늘 합격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11장 드디어 잠입

실제로 2014학년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시전형에서 자연계 유일의 수능 만점자가 불합격한 일이 있었다.

점수로만 따지면 전국 수석인데 떨어진 것이다.

2015학년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연세대 의대 정시전형 1차 합격자 발표에서 수능 만점자가 세 명이나 탈락했다.

나름 하향 지원을 했음에도 이런 것이다.

틀림없이 합격할 것이라 여기고 있던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입시철만 되면 하향 안정 지원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재수나 삼수를 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따라서 5서클 마스터의 화후로 남작위에 도전했다간 목숨만 잃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가급적 상대를 상하게 하지 말라는 경고의 말을 듣고 대결에 임하지만 지면 끝이기 때문이다.

“5서클 마법사들과 대결할 만합니다.”

현수는 굳이 본인의 화후를 밝히지 않았다.

라트보라 남작이 헤럴드의 사촌동생이라는 것까지는 알지만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라트보라 남작 역시 사촌형의 소개장을 들고 온 현수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사촌형이 소탕 작전에 당했다면 로렌카 제국 마법사들의 술수에 넘어가 이런 소개장을 써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5서클 마스터인가요, 아님 6서클이신가요? 근데 그 정도로는 남작위를 얻지 못합니다. 제가 작위를 얻은 건 정말 운이 좋아서였습니다.”

라트보라 남작의 말은 사실이다.

30년 전의 영주 선발대회는 블러드 워(Blood war)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치열했다. 그때 약 300명의 마법사가 목숨을 잃었고, 1,200명 정도는 중경상을 입었다.

당시의 라트보라 남작은 5서클 마스터 수준이었는데 제비뽑기를 정말 잘해서 부전승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

2차에서도 부전승이라 쓰인 제비를 뽑아 한 번도 대결하지 않고 3차까지 올라갔다.

정말 천운이라 할 수 있다.

3차에서 만난 상대는 1차와 2차를 거치는 동안 마나를 많이 소진한데다 부상까지 당한 상태였다. 하여 6서클 유저인 상대를 이겼다. 안 그랬다면 100% 패배할 대결이었다.

5서클과 6서클 사이엔 확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4차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되었다. 그 결과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릴 수 있어서 작위를 얻은 것이다.

대회에 참가할 때만 해도 화후가 낮아 남작위를 얻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럼에도 참가한 것은 기회를 놓치면 30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여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참가나 해보자 하여 나섰다가 운 좋게 귀족이 된 것이다.

“그거야 해보면 알게 되겠지요. 아무튼 신분이 필요합니다. 가능할까요?”

“이틀이나 사흘쯤 여기서 기다리셔야 합니다.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참, 그동안에 어디 나가시면 안 됩니다. 요즘 거수자가 출현해서 검문검색이 아주 심합니다.”

“거수자요?”

현수는 본인을 지칭함을 모르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10서클 마법사가 수도로 잠입할 수도 있다는 첩보가 있어 다들 신경이 곤두서 있거든요.”

“그래요?”

“네, 자유 영지 헤르마로부터 이쪽으로 곧장 오는 중이라 합니다. 뭔지 알 수 없는 탈것을 타고 오는데 엄청 빠르다고 해요. 그래서 길목마다 매복한 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수자가 본인이라는 걸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근데 10서클이란 걸 어떻게 알았지? 아! 그때…….’

헬 파이어를 시전하던 두 마법사와 라이트닝 퍼니쉬먼트를 구현시키던 마법사를 떠올린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셋의 합공을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반격까지 했으니 10서클이라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쩝, 그때 반격하지 말 걸 그랬나?’

괜히 그랬다는 기분이 든다. 상대방에게 큰 해를 끼치지도 못하고 신분만 드러냈기 때문이다.

“머무시는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뭐든 필요하신 게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혹시 이곳에 수련할 만한 장소가 있을까요?”

“지하에 수련장이 있습니다. 거길 이용하십시오.”

“고맙군요.”

현수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자 라트보라 남작은 개의치 말라는 듯 웃음을 지어 보인다.

“여자가 필요하더라도 당분간은 참아주십시오. 그리고 이쪽으로 오십시오.”

라트보라 남작이 서가를 한쪽으로 밀자 감춰둔 통로가 드러난다. 딱 한 사람이 드나들 만한 폭이다.

“라이트!”

허공에 뜬 광구가 빛을 뿌리자 통로의 모습이 드러난다. 두어 발짝부터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현수는 말없이 남작의 뒤를 따랐다.

아래에 당도하니 정사각형의 방이 있다. 남작은 왼쪽 벽을 밀었다.

누군가 이곳까지 오더라도 앞이나 오른쪽 벽을 밀었다면 천장으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쇠창살에 꿰였을 것이다.

이를 피했다 하더라도 발밑에서 솟구치는 창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안전을 위한 안배치고는 참으로 치밀하다.

끼이익―!

“이런, 요즘 수련을 게을리해서 녹이 슨 모양입니다.”

“많이 바쁘셨나 봅니다.”

“네, 영주 선발대회 때문에 행정 업무가 갑자기 많아져서 그렇습니다. 자, 안으로 드시지요.”

안에 들어선 라트보라 남작은 횃불에 불을 붙였다.

지하 공간의 크기는 가로세로 각각 30m 정도이고, 높이는 8m 정도 된다. 중앙엔 앉아서 명상을 할 수 있는 단이 설치되어 있다.

출입구는 방금 들어온 곳뿐인 듯 사방이 벽이다.

“그런데 식사는 어떻게 할까요?”

“없어도 됩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라트보라 남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 선발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침식을 않고 수련을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럼 저는 이만……. 손님께 맞는 신분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려서요. 괜찮지요?”

“물론입니다.”

현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홀로 남게 된 현수는 면밀히 주변을 살폈다. 이곳이 함정일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별도의 출입구가 교묘히 감춰져 있다. 그곳 또한 기관이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라이트!”

라트보라 남작이 만들어낸 것보다 훨씬 크고 밝은 광구가 생성되자 대낮처럼 환해진다.

현수는 수련장 외곽에 마법진을 그렸다.

마나중력장이란 마법진인데 마법을 구현시킬 때 뿜어지는 마나를 억제시키는 것이다. 내부에서 마법을 쓰더라도 외부에서 알아차릴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앱솔루트 배리어! 타임 딜레이!”

결계를 치고 들어간 현수는 곧바로 10서클 마법을 만들어내기 위한 참오에 들어갔다. 외부 시간으로 이틀쯤 여유가 있으니 꼬박 1년 동안은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수가 새로운 마법을 창안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을 때 졸린 조랑말의 발굽엔 일단의 무리가 난입하고 있다.

꽝! 꽝! 콰쾅! 콰콰쾅!

“부숴! 어서 부수란 말이야!”

낡디낡은 널빤지들이 부서지면서 자욱한 먼지를 피워 올린다. 근육질 장한이 휘두른 전투 망치에 의해 카운터 뒤쪽 문짝이 부서진다.

이 순간이다.

슈슉! 슈슈슈슉―!

“커억!”

“아앗! 모두 피해! 쉴드! 쉴드!”

피핑, 피피핑! 태태태탱―!

문짝이 부서짐과 동시에 통로 안쪽으로부터 수십여 발의 쇠뇌가 쏘아져 온다.

선두에서 망치를 휘두르던 장한은 이마 한복판에 박힌 쇠뇌를 움켜쥔 채 바닥에 쓰러져 바르르 떨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길지 못했다. 이마를 뚫고 들어간 쇠뇌에 의해 목숨을 잃은 때문이다.

뒤에서 소리치던 마법사들은 쉴드로 몸을 가린 채 사방으로 산개했다.

슈슈슈슉! 슈슈슈슈―!

약간의 시차를 두고 또 한 번 쇠뇌들이 날아왔다. 방심한 적의 의표를 찌르는 안배이다.

“으읏! 이런 간악한! 쉴드! 쉴드!”

티팅! 티티티티팅―!

깜짝 놀란 마법사들은 다시 한 번 쉴드 마법으로 몸을 보호했다. 그리곤 잠시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쇠뇌가 또 쏘아져 올까 싶은 것이다. 약 5분이 지나도록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중 하나가 앞장선다.

“라이트!”

마법사 하나가 광구를 띄운 채 통로로 접어들자 뒤쪽의 누군가가 소리친다.

“이봐, 조심해!”

“걱정 마! 신경 쓰고 있으니!”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통로를 따라 들어간 마법사는 이내 막다른 곳에 도착했다.

양쪽 벽과 앞에 문이 있는데 똑같은 크기이다.

“왜 멈춰?”

“문이 있는데 어디로 들어가지?”

“와이스 센스 마법을 써봐.”

“그랬는데 알 수가 없어. 어떤 문을 열지?”

와이드 센스 마법은 감각을 극도로 예민하게 하여 움직이는 물체, 또는 체온을 가진 동물들을 감지해 내는 것이다.

통로엔 움직이는 것도 없고 동물이나 몬스터도 없으니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일단 쉴드를 치고 앞에 걸 열어봐.”

“알았어. 쉴드!”

삐이꺽―!

파팍! 파파파파팍! 티팅! 타타타타탕―!

문이 열림과 동시에 굵은 쇠침이 무수히 쏟아진다.

“휴우∼!”

“쉴드! 다시 쉴드!”

“앗! 맞다! 쉴드!”

선두의 예상대로 기관이 작동되었지만 위험을 피했다 생각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지적에 화들짝 놀라 다시 쉴드를 구현시키던 바로 그 순간, 발밑에서 굵은 창이 솟구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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