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3
“차라리 마법으로 차르봄바를 만들어?”
그런데 8서클 마법 중 뉴클리어 블래스트(Nuclear Blast)라는 것이 있다.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는 것으로 직경 200m를 끝장낼 위력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실리프 마법서엔 헬 파이어와 비슷한 위력이라 되어 있다.
“끄응! 전방위 공격 마법으론 부적합해.”
9서클 마스터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인 경우를 감안해 보면 뉴클레어 블래스트는 부족함이 많은 마법이다.
한쪽은 공격할 수 있지만 다른 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방어 마법도 앱솔루트 배리어만으론 부족해.”
적으로부터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받을 경우 세 겹의 배리어만으로 막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마법을 구현시킬 때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쿨 타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참, 헤르시온이 있었지. 아공간 오픈!”
12장 영주 선발대회
지난번 빌모아 일족을 만났을 때 현수는 상당량의 주류를 공급해 준 바 있다. 금괴 제련 작업을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많이 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다.
그때 소주, 양주, 와인, 막걸리 등을 꺼내 주었다.
이 밖에 매취순, 백세주, 설중매, 산사춘, 복분자주, 인삼주 등도 같이 주었다. 맥주뿐만 아니라 다양한 술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은 술을 본 나이즐 빌모아는 기분이 몹시 좋다며 껄껄대며 웃었다.
그리곤 현수의 손을 잡아끌었다.
웬일인가 싶어 따라가 보니 나이즐 빌모아의 개인 대장간이다. 당도하자마자 전용 창고를 열고는 무언가를 꺼내 건네준다. 다소 붉은빛이 감도는 금속 허리띠이다.
현수는 이것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어라! 이건… 헤르시온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전신을 감싸는 마법 갑옷 헤르시온이지요.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자, 착용해 보시지요.”
이실리프 왕국의 신민이 되기를 맹세했기에 나이즐 빌모아는 계속 현수에게 존대를 했다.
현수는 그러지 말라고 하려다 말았다. 국왕이 되기로 마음먹었으니 이제 이런 것에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즐 빌모아는 헤르시온을 현수의 허리에 채우곤 세심히 사이즈 조절을 했다. 살이 찌거나 마를 수도 있음을 감안하여 이런 기능을 추가시킨 것이다.
어쨌거나 헤르시온은 평상시엔 허리띠 역할을 하도록 제작되었다. 아르센 대륙뿐만 아니라 지구에서도 양복의 허리띠로 사용 가능할 정도로 좁고 얇다.
마나를 불어넣으면 전신을 감싸는 갑옷으로 변모함을 알기에 그러려니 하는데 나이즐 빌모아가 저지한다.
“잠깐만요. 이건 각인 작업이 필요한 겁니다. 손 좀 내밀어보시지요, 전하.”
현수가 말없이 손을 내밀자 버클 가운데에 댄다. 그 순간 살짝 따끔한 느낌이 든다.
현수는 허리띠가 잠시 진동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이즐 빌모아는 피를 통한 각인 작업이 진행되어 그런 것이라며 기다리라 하였다.
그렇게 약 3분의 시간이 흘렀다.
“자, 이제 아머 온(Armer On)이라 외쳐 보십시오.”
“아머 온!”
촤르륵! 촤르르륵―!
말 떨어지기 무섭게 허리춤으로부터 위아래로 얇은 금속막이 쏘아져 간다.
대함미사일이나 순항미사일 중에는 수면을 스치듯 날아가는 씨 스키밍(Sea skimming) 기술이 적용된 것이 있다.
초저공비행을 하여 레이더 탐지가 어렵게 하는 것이다.
지금 헤르시온이 그러하다.
현수의 몸을 100% 파악했는지 몸으로부터 약 5㎜ 정도 이격 거리를 두고 전신을 감싼다.
숨 쉴 구멍과 소리를 들을 구멍 이외엔 모든 곳이 막혀 있어 용암 속에서도 얼마간은 버틸 기물이다.
눈 부분은 바이저가 달려 있는데 닫으면 밀봉된다고 한다.
이것의 제작 도면은 아주 오래전 빌모아 일족의 조상을 방문한 드래곤이 준 것이다.
나이즐 빌모아는 일부 수정된 설계도대로 만들었다.
현수가 빌모아 일족의 귀빈이기에 족장의 권한으로 병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금기를 깨고 제작한 것이다.
원래의 제작 도면엔 경량화 마법과 스트랭스, 그리고 헤이스트와 바디 리프레쉬, 이 밖에 보존마법진을 그려놓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마법들이 제대로 구현되기 위한 상급 마나석을 박을 구멍도 따로 있었다.
현수는 이 설계도를 처음 접했을 때 몇 가지 마법진을 추가했다.
첫째는 항온마법진이다.
갑옷이 착용된 동안 추위와 더위, 또는 과도한 행동으로 인한 체온을 조절하기 위함이다.
둘째는 마나집적진이다.
마나석이 담고 있는 마나가 모두 소진되면 헤르시온은 조금 단단한 갑옷 수준으로 전락한다.
만일 마나집적진으로 끊임없이 마나를 채워준다면 언제까지고 사용할 수 있는 무적 갑옷이 될 것이다.
셋째는 인비저빌러티 마법진이다.
헤르시온을 걸친 보이지 않는 적을 만난다면 누구든 지리멸렬하게 될 것이다.
넷째는 반탄마법진이다.
상대의 공격을 두 배의 강도로 튕겨주는 마법진이 새겨진다면 방어할 필요가 없어진다.
헤르시온을 착용한 현수는 매우 흡족했다. 명색이 갑옷이다. 그리고 분명 금속으로 제작되었다. 그런데 마치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것처럼 가볍고 행동의 제약도 없다.
하여 고맙다고 몇 번이고 치사를 했다.
나이즐 빌모아는 흡족해하는 현수를 보고 더 좋아했다.
“그런데 족장님.”
“네, 전하.”
“마법진을 추가했으면 합니다.”
“또요?”
“기왕에 만드는 것이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뭐, 그러십시오. 좋습니다. 뭘 더 그려 넣으실 겁니까?”
현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본인의 의견을 냈다.
“우선은 앱솔루트 배리어 마법진을 추가하죠. 헤르시온 외부에 강력한 방어 마법이 구현되도록 하는 거죠.”
“앱솔루트 배리어요?”
“네, 방금 떠오른 생각인데 헤르시온 바깥쪽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배리어가 생성되도록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헤르시온 자체가 보호되는 거니까요.”
“좋은 생각입니다. 또 있습니까?”
“플라이 마법진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마법진의 도면을 주시면 그려 넣도록 하죠.”
현수는 앱솔루트 배리어와 플라이 마법진의 도해를 그려주었다. 현수가 직접 헤르시온에 마법진을 그려 넣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접혔다 펴졌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별일 아니지만 그런 사소한 것까지 알고 싶지는 않아 나이즐 빌모아에게 일임한 것이다.
머릿속으로 헤르시온을 떠올리고 아공간에 손을 넣던 현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법진을 그려달라고 나이즐 빌모아에게 맡겼는데 그걸 깜박 잊은 것이다.
“끄응! 그게 있으면 괜찮을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아르센에 다녀올까?”
나이즐 빌모아는 바세른 산맥의 이실리프 자치령에 있거나 이실리프 왕궁에 있을 것이다.
좌표를 알고 있으니 갔다 오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에 영주 선발대회가 끝나 버리면 다프네의 신세를 망칠 수 있다.
아울러 텔레포트 마법을 썼을 경우 골치 아픈 일이 빚어질 수 있다. 비상이 걸려 있는 지금 마나유동 현상이 일어나면 9서클 마스터들이 집결할 것이다.
나 여기 있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곳에 온 목적은 팔려온 다프네를 구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로렌카 제국의 전력과 맞붙으면 아르센 대륙까지 전화(戰火)가 옮겨갈 수 있다.
문제는 이곳은 아르센을 아는데 아르센에선 이곳의 존재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의 전력은 아르센 대륙 전체의 전력을 다 합친 것보다도 더 강력하다. 전쟁이 벌어지면 아르센은 피의 살육장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전혀 원하지 않는 일이다.
“끄응! 그냥 다른 마법이나 만들어야겠군.”
현수는 헤르시온을 포기했다. 그리곤 곧바로 마법 창안 작업에 들어갔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이틀이 흘렀다. 물론 결계 외부 시간이다.
쿵, 쿵―!
“들어오세요.”
“식사를 하나도 안 하셨군요.”
라트보라 남작은 자신이 챙긴 빵과 물이 그대로 있음을 확인한 모양이다.
“속이 비어야 머리가 맑아지니까요.”
“네, 그건 그렇지요.”
배가 부르면 졸린 법이다.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자, 여기 신분패입니다. 핫산 브리프가 이름입니다. 브리프 왕국 출신 핫산이라는 뜻입니다.”
“……!”
현수는 말없이 신분패를 받았다.
“이건 핫산 브리프에 관한 정보국 자료입니다. 읽고 숙지하신 후 폐기하십시오.”
라트보라 남작이 준 서류는 제법 두툼했다.
“……!”
현수는 이번에도 대꾸하지 않고 서류를 받아 들었다.
“핫산 브리프는 작년에 실종되었습니다. 자유 영지 헤르마에서 배를 타고 이동하던 중 파도에 휩쓸렸지요. 그 밖의 자세한 내용은 서류를 참조하십시오.”
“애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이틀 전 이곳으로 올 때 꼬리가 붙었습니다. 그들이 기관을 건드려 통로가 모두 무너졌지요.”
라트보라 남작은 태연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속은 몹시 쓰리다.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놓은 비밀통로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정든 거처까지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특수첩보대의 능력이 좋습니다. 그러니 이곳을 떠나주십시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별말씀을……. 헤럴드 형님의 부탁이니 당연히 들어드려야지요. 무운을 빕니다.”
“구경하실 겁니까?”
“구경하러 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해합니다.”
“알겠습니다. 다시 뵈면 제가 술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네, 30년 동안 끊었던 술이니 아주 많이 마실 겁니다.”
현수와 라트보라 남작은 시선을 교환했다. 서로 간에 대한 신뢰가 조금은 더 깊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수도와 영주 선발대회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을 터이니 잠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현수는 기꺼운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 결코 손해 보게 할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 * *
“다음은 오늘의 23번째 대결입니다. 핫산 브리프와 랜돌 프아킨입니다. 두 분은 대결장으로 나와 주십시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현수는 대결장으로 내려갔다. 이곳은 마치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원형의 경기장이다.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들어찬 관중의 수효는 약 10만 명일 것이라고 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관중 모두 마법사라는 것이다.
30년에 한 번 영주 선발대회가 개최되면 마인트 대륙의 수많은 마법사가 수도로 집결한다.
새로운 마법을 식견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도에 도착한 마법사들 모두가 대회를 관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도착하는 인원이 많아지면서 수용 인원을 훨씬 넘기기 때문이다.
올해는 약 11만 명이 집결하여 약 1만여 명의 마법사가 대결장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어쨌거나 10만 명이 넘는 마법사가 보고 있다.
“와와와와와와! 와와와와와!”
현수가 먼저 경기장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방금 전 대결에서 트윈 싸이클론 마법과 기가 라이트닝 마법이 작렬했다.
트윈 싸이클론(Twin Cyclone)은 두 개의 회오리바람을 스크루처럼 생성시켜 대상을 공격하는 것이다
기가 라이트닝(Giga Lightning)은 라이트닝 볼트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수만 볼트의 전기를 뿜어내는 것이다.
이 대결에서의 승자는 트윈 사이틀론을 구현시킨 6서클 마법사이다. 같은 6서클 마법사를 갈가리 찢어서 죽였다.
대결이 끝난 후 진행자들이 나와 바닥의 선혈을 닦아내고 잘린 팔을 치웠지만 아직도 피비린내가 난다.
관중들은 강렬한 인상을 준 승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었다. 질질 끌려 나간 패자의 사체는 조만간 구울로 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