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8
그렇기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잘 보여서 나쁠 것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늘 대결에서 이기면 곧장 내 연공실로 보내게. 아울러 2차는 마지막 대결이 되도록 하고.”
“네, 명을 받드옵니다, 전하!”
황태자는 세간의 이목을 끌어들여 자신의 계획을 보다 빠르게 성사시켜 준 핫산이 승리하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슬쩍 조작을 지시한 것이다.
‘기왕이면 후작위까지 올라가는 게 좋은데.’
7서클 유저 정도 되는 핫산이 8서클 마스터여야 신청 가능한 후작위 결정전에서 승리를 하고 공작위 도전까지 하면 모든 이목은 영주 선발대회로 집중될 것이다.
그리고 상으로 하사할 미녀들을 후작위 결정전이 시작되기 직전에 다시 한 번 선보이게 할 생각이다.
그때 영주 선발대회를 매 10년에 한 번 개최하는 것으로 법령을 수정할 것임을 천명하면 온통 수컷인 마법사들은 오로지 마법 연구에 몰두할 것이다.
자신이 다스릴 로렌카 제국은 더욱 반듯한 반석 위에 올라서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황제 자리에 얼마나 오래 올라가 있을까? 300년? 400년? 500년까지는 가능하겠군.’
9서클 마스터의 수명이 대략 700살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황태자의 첫아들은 현재 140세이다.
열여섯 살의 나이에 황태자비와 혼례를 올렸고, 곧바로 임신하여 출산한 아들이다.
내년에 황제가 되고 500년간 로렌카 제국을 다스리면 황태손으로 임명된 아들은 640세에 제국을 물려받게 된다.
참으로 길고 긴 세월을 2인자로 살아야 한다. 그건 그 녀석 사정이다. 오래 기다린다 하여 권력을 나눠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두 분, 대결 준비되셨습니까?”
“그렇다네.”
“나도 그러하네.”
“좋습니다. 그럼 대회 규칙에 따라 깃발을 내리면 시작하십시오. 가급적 상대의 목숨은 빼앗지 말아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말을 마친 대결 진행자는 뒤로 물러선다. 그러는 동안 관중석에선 내기 돈이 오간다.
남작위보다 훨씬 규모가 큰돈이 움직인다.
남작에 도전하는 자들은 알려진 바가 적지만 자작위부터는 남작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한 영지의 영주로서 30년 이상을 살아왔으니 어느 정도 실력을 갖췄는지 알려져 있다.
“자넨 누구에게 걸었나?”
“나? 나는 브라만 남작님에게 걸었네. 핫산은 유저이지만 남작님은 마스터급이시지.”
“그치? 나도 그렇다네. 그래도 핫산이 이겼으면 좋겠어.”
“왜?”
“그냥. 유저가 마스터를 멋지게 이기는 걸 보고 싶거든.”
이런 종류의 대화가 관중석에서 오갔다. 그렇게 약 10분이 지나자 진행자의 신호를 받은 자가 깃발을 휘두른다.
기다렸다는 듯 브라만 남작의 공격이 시작된다.
“썬터 스톰!”
번쩍! 콰쾅! 번쩍! 콰콰콰쾅―!
수십 줄기의 벼락이 현수에게 쏟아진다.
“배리어! 어스퀘이크! 윈드 애로우!”
현수의 머리 위로 투명한 막이 생긴다. 그와 동시에 브라만 남작이 딛고 있던 땅이 쩍 갈라진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듯 비틀거릴 때 10여 개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애로우가 쏘아져 갔다.
“우와아! 핫산 좀 봐! 트리플 캐스팅이었어!”
“그러게. 메모리 마법으로 준비를 단단히 했나 봐.”
관중들은 빠른 마법 전개에 감탄하면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하나라도 더 많은 걸 봐두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둘은 목숨을 걸고 대결에 임하고 있지만 관중들에겐 좋은 학습인 셈이다.
“블링크! 플레어! 기가 라이트닝!”
브라만 남작은 몸을 피함과 동시에 7서클과 6서클 마법을 연달아 시전했다.
“우와! 브라만 남작님도 트리플 캐스팅이다!”
“바보야, 남작님은 7서클 마스터급이시거든. 그럼 그 정도는 당연한 거야.”
“참, 그렇지. 남작 결정전만 봐서 조금 헷갈리네.”
관중들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둘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아르센 대륙과 달리 이곳의 마법사들은 체력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지구로 치면 매일 벤치프레스를 하고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를 한다. 하여 옷을 벗겨놓으면 다들 근육질이다.
그래서 그런지 둘은 수시로 자리를 바꿔가며 상대에게 공격을 퍼붓고 있다.
현수는 브라만 남작의 공격을 유효적절하게 막는 한편 수시로 반격을 시도한다.
관전하는 이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쥘 정도로 아슬아슬한 대결이 되도록 조절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잘해내는 중이다.
“우와아! 방금 핫산의 움직임을 봤어? 전광석화 같았어. 안 그래?”
“맞아. 엄청나게 빠르군. 근데 브라만 남작님도 만만치 않게 빨라. 저거, 저거 봐. 엄청 빠르잖아.”
현수와 브라만 남작은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공수를 교대로 하고 있다. 현수는 4서클 이하의 마법을 쓰지만 브라만 남작은 간간이 7서클 마법까지 섞어서 쓴다.
과연 마스터급이라 불릴 만한 실력이다.
황태자는 제법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흐음! 제법 하는군.”
“네, 전하.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근데 조금 불안해. 안 그런가?”
누구를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기에 힐만 공작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연다.
“아무래도 화후에서 조금 밀리니까요.”
힐만 공작 역시 둘의 대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황태자가 관심을 갖고 있으니 무엇을 묻든 곧바로 대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대결은 이어졌다.
약 10분쯤 지났을 때 브라만 남작의 공격을 배리어로 막은 현수는 윈드 필드에 이은 윈드 커터를 시전했다.
같은 성질을 가진 마법이기에 이번에도 윈드 커터를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슈아앙! 쌔에엥―!
“크흐윽!”
배리어로 바람을 밀어내던 남작은 발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고개를 숙였다. 시뻘건 선혈이 보인다.
회전하는 바람의 톱날이 발목을 심하게 베어버린 결과이다. 그토록 낮게 회전 톱을 형성시켰을 것이라 예상치 못해 당한 것이다.
현수는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선다. 그리곤 더 해보겠느냐는 표정을 짓는다.
발은 몸을 지탱해 준다. 그런데 심하게 다쳤다.
움직일 때마다 통증을 느끼면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다. 이는 치명적인 결과를 빚어낼 수 있다.
그렇기에 더 해보겠느냐는 표정으로 바라본 것이다.
목숨을 걸고 다시 대결을 하든지 아니면 순순히 포기를 하라는 의미이다.
“크으으! 졌네.”
브라만 남작이 고개를 떨군다.
30년 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자작위를 얻고자 했으나 실패한 것이 아쉬울 것이다.
“브라만 남작님께서 패배를 자인하셨습니다. 따라서 제1대결은 핫산 브리프 마법사님이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와아아아아! 핫산! 핫산! 핫산!”
관중석이 들썩인다. 약자가 강자를 꺾은 것이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다.
“흐음! 제법이군. 상대의 허를 찌른 수법이야. 발목을 노리다니, 운이 좋았어.”
“네, 그처럼 낮게 윈드 커터를 보내면 쉽지 않죠. 심장이나 머리가 아니니 상대적으로 경계심이 적은 곳이니까요.”
“그보다는 윈드 필드에 윈드 커터를 섞은 게 주효했어.”
황태자의 말에 힐만 공작은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같은 성질이라 브라만 남작이 식별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황태자와 힐만 공작은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핫산에게 시선을 주었다.
“바로 내 연공실로 보내도록 하게.”
“네, 전하. 준비시켰습니다. 그런데 내친김에 제가 몇 수 지도해도 될는지요?”
“…그럼 더 좋겠지. 자, 이만 가세.”
“네, 전하.”
황태자가 퇴장하자 관객들은 또 한 번 기립하여 예를 갖춘다.
“어서 오십시오. 승리하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현수가 승자 대기실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행정관이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다.
제1대결의 승자인지라 현재 이 대기실엔 둘밖에 없다.
“고맙네.”
“힐만 공작님께서 핫산 마법사님을 모셔오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공작께서?”
“네, 황태자 전하의 전용 연공실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하라는 특명입니다. 가시지요.”
“…그러세.”
황태자와 힐만 공작은 로렌카 제국의 핵심이나 다름없다.
그런 그들이 불러들였다니 기꺼이 가야 한다. 보다 고급 정보를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관의 뒤를 따라간 현수는 황태자 전용 연공실로 안내되었다. 가기 전에 내일 있을 2차 선발대회의 순서를 정하는 제비를 뽑았다. 마지막 대결이다.
행정관은 승자 대기실 벽에 붙어 있는 대진표에 핫산 브리프의 이름을 기록했다. 누가 상대가 될지는 승자들이 모두 모이면 결정될 것이다.
“흐음! 이곳인가?”
황태자 전용 연공실은 부채꼴인데 여러 개의 방으로 구획되어 있다. 하나는 마법을 직접 구현해 보는 방이다.
바닥엔 마나집적진과 중력장조절진이 그려져 있다.
“나쁘진 않군.”
이실리프 마법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비교해 보았을 때 많이 빠지지 않는 수준이다. 이실리프가 단위 체적당 100의 마나를 모은다면 이것은 92 정도 결집시킨다.
그런데 중력장조절진은 이실리프의 그것보다 오히려 뛰어난 면이 있다.
로렌카 제국은 흑마법사의 나라이다.
그렇다 하여 모두가 흑마법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쉴드나 윈드 커터 같은 것은 아르센의 그것과 거의 같다.
반면 공격 마법은 다른 점이 많다. 사람이나 동물에게 직접 적용시켜 가며 만든 것이 그러하다.
일본 히로히토 일왕은 칙령으로 1932년에 흑룡강성에 ‘관동군 방역관’이란 이름의 부대를 창설했다.
악명 높은 731부대의 정식 명칭이다.
이 부대에선 매일 2∼5명이 산 채로 해부되었다. 그렇게 하여 9년간 약 6,500명이 죽어 나갔다.
이 밖에 총살, 참수, 칼로 찌르기, 추락, 굶기기, 독가스 사용, 세균 투하, 동상, 고의적 성병 감염, 짐승과 인간의 혈액 교환 등을 실험했다.
같은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참혹한 짓을 자행한 것이다.
흑마법사들도 이러하다. 자신들의 연구 목적을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을 무수히 희생시킨다.
따라서 ‘흑마법사의 나라=일본’이나 마찬가지이다.
2장 파란을 일으키다
현수는 1서클부터 9서클까지의 마법서가 빼곡히 들어 있는 서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마법서들을 뒤적였다.
아르센 대륙의 마법과 무엇이 다른지를 대조하려는 의도이다. 보는 동안 여러 번 눈살을 찌푸렸다.
731부대를 절로 생각나게 하는 마법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흘렀을 때 문이 열리고 힐만 공작이 들어선다.
“여어∼! 행운의 사나이!”
“어서 오십시오.”
현수는 문을 열고 등장한 힐만 공작을 유심히 살폈다. 조만간 맞붙어야 할지도 모를 대상이기 때문이다.
“황태자님께서 자네에게 특별히 공개하라는 것이 있어서 왔네. 자, 나를 따르게.”
“……?”
뭔지 모르지만 아주 대단한 것을 보여주려는 듯하여 말없이 뒤를 따랐다.
철컥! 철컥! 철컥―!
세 개의 자물쇠가 달린 육중한 철문이 열린다.
끼이이이이―!
자주 사용치 않아서 그런지 녹이 슨 모양이다. 거친 경첩 음을 내며 열리는 철문의 두께는 약 30㎝ 정도이다.
힐만 공작은 마법의 힘을 빌려 육중한 문을 열었다.
다시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또 다른 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석문이다.
“맥시멈 라이트웨이트(Maximum Lightweight)!”
힐만 공작이 구현시킨 건 9서클 마법이다. 100㎏의 무게를 1g으로 줄여주는 최대 경량화 마법이다.
“끄으응! 안 되겠네. 자네도 같이 밀게.”
“…그러지요. 으으읍!”
그르르르르르―!
석문의 무게는 약 2,000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