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9
그 무게를 1만분의 1로 줄여주는 최대 경량화 마법이 구현되었어도 200㎏이나 나간다.
인간의 힘으로는 움직이기 힘든 무게이다.
참고로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 역도 여자 75㎏ 이상급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지나의 주로로 선수는 인상에서 146㎏, 용상에서 187㎏을 들어 올렸다.
현수가 거들었음에도 힐만 공작은 이마에 핏줄이 돋을 정도로 힘을 주었다. 현수가 힘을 덜 주어서 그러하다.
“이 문, 엄청나게 두껍군요.”
열고 보니 석문의 두께가 무려 2m이다. 엄청난 무게가 충분히 이해된다.
“휴우! 안으로 더 가세. 라이트!”
어두컴컴한 통로에 빛이 퍼져 나간다. 양쪽 벽 모두 석문과 같은 돌로 만들어져 있다.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도 석문과 같은 두께일세.”
“……!”
대체 무엇이 있기에 이처럼 무지막지한 통로를 만들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렇게 약 20m를 걸었다.
또 다른 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문의 앞부분 중앙에는 높이 40㎝짜리 돌이 놓여 있다.
가로세로 각각 1.2m 정도 되는 사이즈인데 두툼한 방석이 깔려 있다.
“다 왔네.”
힐만 공작이 멈춰 선 곳엔 세 번째 문이 있다.
온갖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슬며시 살펴보니 봉인마법진인 듯싶다. 하지만 아는 척하진 않았다.
8서클 이상만 알아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안에 뭔가가 있는데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막아놓았다는 뜻이다.
특이한 건 바닥에서 천장까지 무수히 많은 작은 구멍이 송송 뚫려 있다는 것이다.
직경은 손가락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인데 금속으로 만든 대롱이 문에 박혀 만들어진 구멍이다.
금속 대롱은 운동화 끈을 끼우는 구멍 같은데 이쪽에서는 제거가 가능하지만 저쪽에선 뺄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하루를 머물게. 마나심법을 운용하면 이득이 있을 것이라면서 황태자님께서 특별히 허락하셨네.”
“네.”
“당부하건대 절대로 저 문은 건드리지 말게.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도 열려 하지 말고. 열기도 쉽지 않겠지만.”
“…알았습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힐만 공작은 문 앞으로 다가가 뭔가를 조작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비네. 문은 내일 오후에 열리네.”
힐만 공작은 두 번째 석문을 닫았다. 열리는 것은 힘을 주어 밀어야 하지만 닫는 것은 안 그런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석문은 안에서 열 수 없도록 제작되어 있다. 손으로 잡고 힘을 쓸 수 있는 부위가 없다. 문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면 벽이라 생각할 정도로 매끈하다.
돌과 돌이 맞닿아 있는 곳엔 약 1㎜ 정도밖에 안 되는 흔적이 있어 한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뭐야? 이 안에 대체 뭐가 있기에 봉인마법진에 9서클 마스터 정도 되어야 간신히 열 수 있는 석문, 그리고 두툼한 철문으로 막아놓은 거지?”
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대롱으로부터 엄청난 마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으잉? 이건……!”
뿜어져 나오는 마나가 이상하다. 현수는 이질적인 느낌에 얼른 문 앞으로 다가갔다.
“어둠의 마나? 이건 마계의 것인데. 이게 왜……?”
이미 경험한 바 있는 것으로 평범한 것이 아니다.
세계수 아래에 묻어놓은 마종에서 흘러나오던 것과 같은 성질의 마나이다.
하여 얼른 호신강기를 내뿜어 이를 차단시켰다. 백마법사라 할 수 있는 현수에겐 결코 유익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체내로 받아들인 뒤 정제시키면 된다. 그런데 그럴 이유가 없다.
본신에 저장된 마나의 양과 켈레모라니의 비늘에 담긴 마나의 양도 엄청나게 많다. 여기에 욕심을 부려 어둠의 마나까지 받아들일 경우 어떤 반응이 생길지 알 수 없다.
자칫 신체의 균형이 깨져 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에 체내로 스며들려는 마나를 차단시켰다.
현재 좌대를 기준으로 고효율 마나집적진과 중력장조절진이 구현되고 있는 상태이다. 힐만 공작이 석실을 벗어나면서 그렇게 되도록 조작한 결과이다.
중력은 벌써 두 배로 강해져 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천천히 올라가서 최고 열 배까지 강해진다.
마나집적진에 의해 모여든 마나는 강해진 중력의 영향을 받아 마나심법을 운용하는 마법사의 체내로 스며든다.
그 속도와 양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마치 액체 마나 속에 담긴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이다.
‘끄응! 이러니 9서클 마법사들이 널린 것이군.’
깨달음을 얻어도 고서클 마법사가 되려면 그에 합당한 마나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깨달음을 얻는 것에도 많은 심력과 시간이 소모되지만 마나 링을 두껍고 탄탄하게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마나를 쑤셔 박으면 짧은 시간 안에 마나 링이 굵어지고 탄탄해진다.
물론 고도로 집중하고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마나 폭주로 인해 미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
“대체 안에 뭐를 봉인해 놓은 거지? 마물인가? 그런데 이렇게 구멍이 있으면 나올 수도 있을 텐데.”
문 앞으로 다가가 대롱을 살펴보았다. 무언가 문양이 그려져 있다. 안력을 높여 살펴보니 또 다른 봉인마법진이다.
그래서 손가락 굵기임에도 마나가 나오는 굵기는 바늘 정도인 것이다. 이 정도면 신체를 변형시킬 수 있는 마물이라 할지라도 나올 수 없을 것이다.
“흐음! 마물이 몇 있다고 이러진 않을 거고, 설마 안쪽에 마계로 통하는 통로라도 있는 건가?”
현수는 이맛살을 좁혔다. 마계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마뜩치 않은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문의 오른쪽에 쇠로 만든 손잡이가 있다.
그리고 문의 아래쪽엔 턱이 있다. 당겨서 여는 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흐음! 이 문도 최대 경량화 마법을 걸고 힘주어 밀어야 열리는 건가 보네.’
아무래도 힐만 공작과 함께 힘주어 밀던 석문과 같은 원리인 듯싶다.
“열어볼까? 아냐. 그러지 말자. 자칫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결과일 수도 있어.”
현수는 좌대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서 결계를 쳤다. 그리고 타임 딜레이 마법을 구현시켰다.
내일 있을 2차 대결까지 약 36시간 정도 시간이 있다. 그 안에 10서클 마법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결계 내부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약 270일이다. 이 정도면 하나쯤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현수는 연구를 계속했다. 하지만 10서클 마법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뭔가를 생각해 내고 보면 그런 마법이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끄응! 이건 접근 방법부터 달라야 해. 아주 참신한 생각을 해야 새로운 마법을 창안할 수 있어.”
자세를 바꾼 현수는 현대 무기를 마법으로 바꾸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집속탄의 개념이다.
모자폭탄, 확산탄, 클러스터탄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발사된 직후 적절한 높이에 도달하면 자체적으로 몸체가 분해되면서 내부에 들어 있는 수많은 자탄이 지상의 목표물에 떨어져 타격을 주는 폭탄이다.
집속탄 한 발에는 자탄 약 40∼650여 개가 탑재된다. 축구장 한 개에서 서른 개 넓이까지 박살 낼 수 있다.
미국이 개발한 CBU―105에는 스키트 탄두 네 개가 포함된 BLU―108 자탄이 열 발이나 들어가므로 최대 40대의 전차까지 한 방에 파괴할 수 있다.
광역 마법으로 딱이다.
현수는 이 마법에 클러스터 밤(Cluster Bomb)이란 이름을 붙이고 연구에 몰두했다.
하지만 한참을 고심하던 끝에 포기했다. 9서클 마법인 미티어 스트라이크가 딱 이런 종류의 광역 마법이기 때문이다.
“제기랄! 그럼 뭐로 하지?”
다음으로 생각해 본 것은 유도탄이다.
이것 역시 연구 초기에 포기했다. 매직 미사일이 이것과 같은 개념에서 출발한 마법이기 때문이다.
“쩝!”
또 투덜거리곤 노트북을 켰다. 현대 무기 체계에서 착안을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특별히 얻을 게 없다.
투명 망토를 만들 수 있는 메타 머티리얼 기술은 인비저빌러티 마법만 못했고,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이다.
스텔스 기술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
이곳엔 레이더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개념으로 와이드 센스 마법이 있는데 대결에선 별로 유용하지 않다.
전투기, 잠수함, 헬리콥터 등도 떠올렸지만 이곳에서 쓰기엔 적합하지 않다.
결계 안의 현수는 고심하고 또 고심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마법을 창안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군. 쩝! 이럴 줄 알았으면 바깥의 서가나 둘러볼걸.’
현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르르르르르―!
육중한 석문이 열리고 있다. 이제 자작위를 얻기 위한 마지막 대결을 하러 나가야 할 시간인 듯싶다.
“성과가 있었나?”
“네, 배려해 주신 덕분에요.”
힐만 공작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마나를 느끼려는 듯 일부러 문 앞으로 간다.
“이제 나가면 곧바로 대결인가요?”
“그건 아닐세. 나갈 필요 없네.”
“네? 그게 무슨……?”
대결을 해서 이겨야 자작이 된다.
패하거나 기권하면 국물도 없다. 정해진 시각에 대결장에 나타나지 않으면 바로 기권이다.
그러면 다프네를 찾기가 쉽지 않다.
황궁에 직접 잠입하여 구출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황궁은 마법사의 제국답게 마법진으로 도배되어 있다. 게다가 9서클 마스터가 우글거리고 있다.
신임 공작으로 임명된 자는 작위식을 마쳐도 당분간 황궁에 머문다. 제국의 간성이 되었으니 기존 공작들과 안면을 터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황제가 하사한 미녀들을 품어야 한다.
공작이 될 정도면 우수한 두뇌와 별 탈 없는 신체를 가졌다는 뜻이다.
국가를 위해 훌륭한 후손을 보는 것이 충성의 한 방법이다. 그렇기에 공작이 된 날부터 하루에 하나씩 품는다.
이 기간 동안 황궁엔 수많은 공작과 후작들이 머문다.
그런데 첫날밤을 치르기 전에 빼오지 못하면 다프네는 평생의 상처를 입게 된다.
따라서 반드시 대결에 임해 공작이 되어야 한다. 황궁에 침투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공작이 되려면 반드시 자작, 백작, 후작위를 따야 한다. 그런데 자작 결정전에 임할 필요 없다는 듯 말하니 의아한 것이다.
“자네의 2차 대결 상대가 기권했네. 1차에서 너무 심한 부상을 입어 운신이 어려울 정도라고 하네.”
“그럼…….”
“그래, 부전승이지. 감축하네. 자넨 이제 자작이네.”
“아!”
기분 좋은 일이다. 다음 상대에게 실력을 가늠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 상대를 방심케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황태자께서 백작위 도전자 명단에 자네의 이름을 끼워 넣으셨네. 다음 대결은 내일 오후에 있을 것이네. 그러니 하루 더 이곳에서 머물게.”
“감사합니다.”
번거로운 일을 쉽게 해결해 주니 좋다.
“어떻게 하겠는가? 하루 더 이곳에 있을 건가, 아님 서고로 가겠는가?”
“…서고가 좋겠습니다.”
“그래, 좋아. 너무 과한 마나는 오히려 해롭지. 가세.”
힐만 공작은 모든 출입구를 단단히 잠근 후 현수를 서고로 안내했다. 2,000여 권의 마법서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서고에선 고서 특유의 냄새가 풍긴다.
“서클 별로 정리해 두었으니 편하게 보게. 다 본 것은 제자리에 정리해 놓고. 내일 보세.”
“네, 감사합니다.”
힐만 공작이 나가자 현수는 서가로 가서 9서클 마법서부터 꺼내 보았다. 아르센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어둠의 마나를 운용하는 특별한 방법이 추가된 것이 거의 전부이다.
“흐음! 이 정도면 아주 고대엔 아르센과 이곳이 교류를 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야 이처럼 비슷할 수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