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0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마법서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흑마법사의 마법서답게 온갖 괴이한 마법이 다 기록되어 있다.
구울, 좀비, 데스 나이트를 제작하는 방법부터 시작하여 키메라를 제작하는 방법까지 망라되어 있다.
물론 리치나 아크리치가 되는 방법도 있다.
“흐음! 이건 좀 볼 만하군.”
현수의 시선을 끈 것은 키메라 제작에 관한 마법서이다.
키메라란 이종(異種) 생물의 신체 부위를 접합시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중 현수가 주의 깊게 살핀 것은 다른 생체조직을 접합시켰을 때 거부반응을 억제하는 방법이다.
병원에서 간이나 신장 등을 이식했을 때 조직 간 거부반응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백혈구 항원 때문이다.
쉽게 말해 우리 몸을 보호하는 면역 시스템이 이식된 장기를 적으로 간주하면 거부반응이 일어난다.
거부반응의 원인이 면역의 문제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면역억제제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부작용이 적은 ‘사이클로스포린’이 탄생되었다.
이것이 개발될 당시 간장 이식 성공률은 불과 18%였다. 100명이 간 이식을 하면 82명이 죽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 덕분에 성공률이 단번에 68%로 올랐다. 당시로선 기적과 같은 일이다.
현재는 사이클로스포린과 다른 면역억제제를 함께 쓰는 ‘칵테일요법’으로 그 확률을 더욱 높였다.
그래도 여전히 실패할 확률은 있다.
그런데 키메라 제작 비법이 기록된 마법서엔 성공 확률이 99%라 되어 있다.
혈액형이 다르더라도 심장, 신장, 간 등의 이식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 팔과 다리도 다른 사람의 것을 붙여도 된다.
사전에 마법서에 기록된 조치만 취하면 된다. 현수는 이를 머릿속 깊이 넣어두었다.
이실리프 의료원에 전수해 줄 특급기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음 페이지를 보니 온갖 그림이 그려져 있다.
현수가 본 적 있는 멘티코어의 날개를 단 샤벨 타이거, 와이번의 날개를 단 오우거 등이 그중 일부이다.
이것들을 성공시키기 위해 수많은 흑마법사가 수백 년간에 걸친 연구를 했다.
그러는 동안 약 185,000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한 페이지를 더 넘겨보았다. 이번엔 인간이다.
날개를 단 인간, 오크의 팔을 단 인간, 손과 발이 바뀐 인간, 한 몸에 머리를 두 개 붙인 인간, 상체는 남자, 하체는 여자인 인간, 하체가 물고기인 인간 등등이다.
그림이지만 끔찍했다.
이것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확인한 기술이라고 쓰여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약 30만 명의 목숨이 쓰였다고 되어 있다.
“끄으응!”
현수는 마법서를 불태우려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새롭게 30만 명이 희생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여간 흑마법사들이란…….”
세상에서 제거해야 할 존재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한 현수는 만일 대결이 벌어질 경우 결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을 생각을 품었다.
문제는 그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10만 명은 분명히 넘는다. 관중석에 앉아 있던 인원만 해도 그 정도 된다. 대결장에 들어오지 못했거나 아예 수도에 오지 않은 자들까지 합치면 얼마나 많겠는가!
1서클 마법사까지 다 합치면 100만 명이 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인원을 어찌 다 죽이겠는가!
희대의 살인마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 현수는 턱을 괴고 상념에 잠겼다.
처치 곤란한 암 덩어리가 커도 너무나 큰 때문이다.
“끄으응!”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묘수는 없다.
‘차츰 생각해 보자. 일단은 마법서를 보는 게 중요하니까.’
이것저것을 뽑아 읽는 동안 시간이 흘렀다.
2,000권이나 되지만 현수가 결계 안에 머문 시간은 약 1년이다. 하여 상당히 많은 마법서를 섭렵할 수 있었다.
“흐음! 어디 보자.”
현수는 정중앙에 꽂혀 있는 마법서를 뽑아 들었다. 그리곤 하나의 마법진을 그려 넣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이곳의 마법서 전부를 자신의 아공간으로 집어넣을 귀환마법진을 그려 넣은 것이다.
* * *
“성과가 있었는가? 이제 곧 대결이네.”
“네, 알겠습니다.”
힐만 공작의 뒤를 따라 대결장으로 직행했다.
“와와와와와와와!”
“와아아! 지독하게 운이 좋은 핫산이다.”
부전승과 기권 덕분에 몇 번 싸워보지도 않고 자작위를 차지한 핫산은 맥마흔의 뜨거운 감자였다.
모든 술집에서 핫산의 이름이 거론되었고, 지독하게 운이 좋은 사나이, 황태자의 비호를 받는 마법사라고 불린다.
“자, 백작위 1차 선발 마지막 경기가 곧 거행되겠습니다. 핫산 브리프 자작님과 브라헬 루시켄 자작님께서는 대결장으로 입장해 주십시오.”
“와와와와! 핫산! 핫산! 핫산!”
“브라헬! 브라헬! 브라헬! 브라헬!”
관중석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에 귀가 먹먹할 정도이다.
서로 자신들이 응원하는 마법사의 이름을 호명하며 고함을 지른다. 마치 월드컵 경기장 같다.
현수는 행정관의 뒤를 따라 통로로 들어갔다. 잠시 후 따가운 햇살이 느껴진다.
“와와와와와! 핫산! 핫산! 핫산!”
“오늘도 이겨라! 거금을 걸었다!”
“나도! 나도 너한테 걸었다! 꼭 이겨라!”
“와와와와와와! 와와와와와와와!”
현수가 등장하자 관중석이 들썩인다. 시선을 들어 귀빈석을 보니 예상처럼 황태자와 힐만 공작이 보인다.
황태자의 좌우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배석해 있다. 황태자비들인 모양이다.
현수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취했다. 지금은 잘 보여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두 분은 이쪽으로 오십시오.”
작위가 높은 사람들을 선발하는 대회라 그런지 진행자도 바뀌어 있다.
“두 분, 대결 규칙은 잘 아시죠?”
“그렇다네.”
“그럼!”
둘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행자는 당부의 말을 한다.
“가급적 목숨을 앗지 않는 범위에서 대결해 주십시오.”
“그러지.”
“나도 그러겠네.”
현수와 브라헬 루시켄 자작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행자는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또 잠시 시간을 지체시킨다.
작위가 올라가면 참가자가 적다. 당연히 대결 수가 줄어들지만 내기 돈의 액수는 올라간다.
하여 잘하면 한 번에 일확천금하여 팔자가 필 수도 있고 알거지가 되어 거리를 유랑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전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현수는 브라헬 루시켄 자작과 거리를 벌렸다. 시작과 동시에 공격을 가해 속전속결로 끝낼 생각이다.
잠시 후, 진행자의 수신호에 따라 깃발을 내린다.
“파이어 애로우! 매직 미사일! 매스 라이트닝 볼트!”
쒜에엑! 슈아앙! 번쩍! 콰콰쾅! 휘익! 쐐엑! 번쩍! 콰콰콰쾅! 고오오! 번쩍! 콰콰쾅!
대결이 시작되자마자 현수가 구현시킨 파이어 애로우와 매직 미사일이 사방을 비산한다. 그보다 늦게 구현시켰지만 훨씬 속도가 빠른 천둥과 벼락도 난무한다.
“으읏! 쉴드! 쉴드! 배리어! 배리어! 앱솔루트 배리어!”
느닷없는 공격에 황급히 방어 마법을 구현시킨 브라헬 루시켄 자작은 얼른 물러섰다.
썬더 스톰으로 정신없게 한 후 헬 파이어를 구현시켜 단숨에 승패를 가르려 했는데 어이없이 선공을 당한 것이다.
티팅! 티티티팅! 쿠와앙! 피피핑!
수백 개의 파이어 애로우와 매직 미사일, 그리고 번개가 방어막에 부딪쳐 산화한다.
방어막 안의 브라헬 루시켄 자작은 이를 갈았다.
고작 1서클 마법인 파이어 애로우와 2서클 매직 미사일, 그리고 3서클 매스 라이트닝에 밀린 게 어이없어서이다.
하여 배리어가 해제됨과 동시에 마음먹고 있던 공격을 하려 메모리한 것들을 상기했다.
룬어 영창을 미리 준비해 두었으니 입만 열만 곧바로 무지막지한 마법이 쏟아져 나갈 것이다.
현수가 가한 모든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자작은 그 즉시 배리어를 해제시켰다.
“매직 캔슬! 썬더 스……!”
자작이 여기까지 외쳤을 때 현수가 먼저 소리쳤다.
“워터 샤워! 체인 라이트닝!”
“배리어! 배리어!”
쏴아아아! 번쩍! 번쩍! 콰지직!
2서클 워터 샤워는 게으른 마법사들이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기 위해 고안한 생활 마법이다.
때로는 짓궂은 장난용으로도 쓴다. 예쁜 아가씨가 지나갈 때 물벼락을 내리면 몸매가 확 드러나기 때문이다.
현수는 자작을 대상으로 워터 샤워를 구현시켰다. 그 순간 약 10리터의 물이 비가 되어 쏟아져 내린다.
이에 놀란 자작은 썬더 스톰 대신 배리어 마법을 거푸 구현시킨다. 엉겁결에 한 것이다.
다음 순간 자작이 딛고 있는 땅 바로 곁에 체인 라이트닝이 구현되었다.
파직! 파지직! 파지지직!
“파이어 애로우! 매직 미사일!”
“캐액―!”
젖은 땅 위를 몇 번이나 튕긴 번개가 자작의 발목으로 향한다. 이 순간 자작은 눈앞까지 쇄도한 파이어 애로우와 매직 미사일이 배리어에 부딪치는 것을 보고 있다.
갑작스런 느낌에 얼른 발을 든다. 하지만 나머지 한 발은 여전히 땅에 닿아 있다.
이 순간 현수의 입술이 다시 달싹인다.
“라이트닝! 매스 라이트닝!
번쩍! 번쩍! 콰콰! 파지직! 콰콰쾅! 파지직!
“캐애액―!”
자작은 전신을 휘감는 벼락을 느끼고 그대로 기절했다.
쿵―!
“와아아아아! 핫산! 핫산! 핫산!”
“세상에 맙소사! 8서클 마법사를 상대하는 데 겨우 3서클 이내의 마법만 썼어.”
“맞아. 파이어 애로우는 1서클, 라이트닝과 매직 미사일은 2서클, 그리고 체인 라이트닝은 3서클이야.”
“우와아! 이건 말도 안 돼! 그치? 그치?”
“그러게, 7서클이 8서클을 이겼어.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난 이럴 수 있을 거라고 전혀 상상도 못했어.”
“그거 알아? 브라헬 루시켄 자작은 공격을 한 번도 못해보고 졌어.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관중석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서클 수가 적은 자가 정정당당하게 대결하여 승리를 쟁취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알려져 있기를 7서클은 결코 8서클을 제압할 수 없다. 7서클 열 명이 동시에 덤벼야 호각지세를 유지한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오늘 세상의 진리가 깨졌다.
이쯤 되면 파란(波瀾)이다.
파란의 사전적 의미는 예기치 못한 사건을 의미한다.
이 밖에 문장의 기복이나 변화, 또는 두드러지게 뛰어난 부분을 뜻하기도 한다.
“와아아아아아! 핫산! 핫산! 핫산!”
일제히 핫산을 연호한다.
현수는 손을 들어 관중들의 환호에 응답했다.
그러면서 귀빈석의 황태자를 향해 고개를 숙여주었다. 당신의 배려 덕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다.
“대단하군. 그리고 기발해. 안 그런가, 공작?”
“그렇습니다. 어제 하루 동안 마나를 많이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파이어 애로우가 한꺼번에 30개나 만들어지더군요.”
“오늘도 연공실에 넣게. 그리고 핫산의 2차 대결은 또 마지막이 되게 하고.”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힐만 공작은 몹시 기꺼워하는 황태자를 보고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상관이 기분 좋아야 아랫사람도 좋기 때문이다.
“정비(正妃)가 볼 때는 어떠했소?”
황태자의 시선을 받은 여인이 배시시 미소를 짓는다.
공작가의 공녀였는데 간택을 받아 황태자비가 된 여인이다. 혼인하기 전 제국의 귀족가에선 ‘로렌카의 꽃’이라 불리던 절세미녀이다.
“핫산이라는 자의 계략이 좋았어요. 저서클 마법이라도 섞으니 상당한 효과를 내는군요.”
“차비(次妃)는 어떠하오?”
황태자의 둘째부인인 여인 또한 공작가의 공녀 출신이다.
웃으면 반달처럼 휘어지는 미소가 아름다워 ‘맥마흔의 웃는 꽃’이란 별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