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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134화 (1,133/1,307)

# 1134

둘째, 흑마법이 아르센 대륙에 전파되지 않도록 확약을 받아야 한다. 이실리프 마탑주는 명실공히 백마법을 대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편, 황태자는 핫산 브리프가 서클 수를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한 타이밍에 싸미라를 아내로 주었다.

그리고 차기 대회에 관한 말을 했다. 모든 마법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만한 발언이다.

본인이 의도한 이상의 결과가 빚어진 듯하다. 하여 심히 흡족하다는 표정으로 싸미라를 바라본다.

“싸미라, 너는 이제 핫산 브리프 백작 예정자의 아내이다. 가서 그의 곁에 서라.”

“네, 전하.”

공손히 머리를 숙인 싸미라는 사뿐사뿐 걸어 현수의 곁으로 다가온다. 그리곤 이 보 앞에 멈춰 서서 아주 공손히 예를 갖춘다.

“드마인 백작가의 여식 싸미라가 부군께 예를 올립니다.”

“……!”

현수는 아무런 말 없이 공손히 허리까지 숙이는 싸미라를 바라보았다. 황태자나 힐만 공작이 보았을 때엔 너무도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못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하긴 싸미라가 아름답기는 아름답다. 오죽하면 황태자가 눈독을 들였겠는가!

부군을 맞이하는 예를 갖춘 싸미라는 조신한 움직임으로 현수의 곁에 선다. 그리곤 황태자를 마주 보고 선다.

“싸미라, 맥마흔의 요정이라 불리는 너에게 특별한 선물을 내리겠다. ‘정복자의 길’에 위치한 저택 하나와 10만 골드이다. 지참금으로 그만하면 되겠는가?”

신혼집과 막대한 생활비를 주겠다는 뜻이다. 참고로 10만 골드는 1,000억 원이다.

“감사하옵니다, 전하. 전하의 은혜가 하해와 같사옵니다. 부디 만수무강하시옵소서.”

“하하! 하하하! 그래그래, 오늘 내가 아주 흡족하구나. 하나 이곳에만 머물 수는 없다. 힐만 공작, 이만 가지.”

“네, 전하.”

힐만 공작의 안내를 받아 퇴장하는 동안 관중석에선 ‘황태자 전하 만세!’라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당연히 황태자의 입가엔 웃음기가 배어 있다.

현수는 멀어져 가는 황태자를 바라보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부군께선 수도에 머물 집이 없다 들었사옵니다.”

“그걸 어찌 아십니까?”

“전하께오서 부군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사옵니다. 하여 알게 된 것이지요.”

현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제국의 정보력은 아르센 대륙의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 아마 지금쯤 진짜 핫산 브리프에 대해 조사하고 있을 것이다.

라트보라 남작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래도 남의 신분을 위장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랬습니까?”

현수는 싸미라를 대하는 것이 어색하다.

오늘 처음 만나서가 아니다. 황태자가 맺어준 아내이기 때문이다. 로렌카 제국에선 내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네, 머무실 곳이 없을 터이니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오늘은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

현수는 대답 대신 빤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싸미라는 혹시라도 거절할까 싶어 얼른 말을 잇는다.

“웬만한 여관보다는 머무시기 편할 것입니다. 아울러 대결을 준비하실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연공실을 기꺼이 비워주실 겁니다.”

싸미라는 행여 이 사내의 심기를 거스를까 두렵다는 듯 매우 조심스런 표정과 어투이다.

황태자가 지목해 준 배우자이다. 아까 전격적인 발표를 하기 직전 황태자는 싸미라에게 의향을 물었다.

‘너를 핫산 브리프의 아내로 주려 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금 말하라. 네 뜻에 따라주마.’

이 말을 들었을 때 싸미라는 핫산 브리프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기적을 일으키는 사내이다. 그리고 황태자의 관심을 받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신장은 184㎝, 체중은 76㎏ 정도 되는 호리호리한 체형의 사내이다. 흑발이고 피부색은 약간 노랗다.

짙은 눈썹과 균형을 이룬 얼굴을 보니 호감이 간다. 왠지 마음에 들었다. 하여 황태자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황태자님의 뜻에 따라 저 사내의 아낙이 되겠사옵니다.’

이렇듯 싸미라는 자의로 현수를 선택했다. 평생을 함께할 사내이므로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현수는 잘 모르지만 마인트 대륙은 거의 조선시대나 다름없다. 남존여비(男尊女卑)와 여필종부(女必從夫)가 원칙인 곳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귀한 존재이며 아내는 반드시 남편의 뜻을 따라야 하는 곳이다.

게다가 일부다처제도 당연시 여긴다.

칠거지악(七去之惡) 같은 것은 없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남자들이 살기에 딱 좋은 곳이다.

“내키지 않으시면 아니 가셔도 되옵니다.”

“……!”

현수는 대답 대신 싸미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싸미라는 현수와 시선이 마주치자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다.

“집이 이곳에서 멉니까?”

“네? 아, 아니옵니다. 마차를 타고 가시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사옵니다.”

“그렇다면 한번 가봅시다.”

“하면 제가 안내하지요.”

현수는 싸미라의 뒤를 따랐다. 황태자의 연공실로 가봤자 더 볼 책도 없다. 게다가 어둠의 마나가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그곳엔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여관으로 가도 되지만 지금 수도의 모든 숙박업소는 만원일 것이다. 밤이 되면 고주망태들이 널릴 것이고, 시끄럽기 이를 데 없을 것이 뻔하다.

요즘 수도는 매일매일 탄식과 함성이 버무려지고 있다.

내기에서 돈을 딴 사람과 잃은 사람, 영지 결정전에서 승리한 쪽과 패배한 쪽의 희비가 교차하는 것이다.

기분이 좋아도 술, 나빠도 술인 게 술꾼들의 습성이다. 따라서 고주망태가 널리는 게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냄새는 또 어떤가!

시궁창 냄새, 연기 냄새, 음식 썩는 냄새, 대소변 냄새로 뒤죽박죽이다. 게다가 안 씻은 사내의 머리, 사타구니, 겨드랑이, 그리고 발 냄새와 여자들의 청결하지 못한 냄새가 섞여 있을 것이 뻔하다.

이곳 사람들에겐 별게 아니지만 지구인인 현수는 가끔 구역질이 나는 걸 억지로 참는다.

그럴 바엔 귀족가의 연공실에 머무는 것이 낫다 싶어 싸미라의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드마인 백작가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기도 한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품은 이유는 싸미라의 공손한 태도 때문이다.

귀족가의 여식이건만 시건방지거나 도도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대신 스스로를 낮추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구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기 드물다.

어느 싸가지 없는 모녀는 백화점 주차장에서 지하 4층으로 내려가라는 주차 알바생의 안내를 무시했고, 주차 직원들을 무릎 꿇린 뒤 뺨을 때렸다.

여성복 매장을 찾은 어느 돈 많은 목사는 자신이 잘못을 범해놓고도 애꿎은 직원으로 하여금 한 시간 넘게 무릎 꿇려놓기도 했다. 그 결과 그 직원은 10년 넘게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그만뒀다.

돈 좀 있다고 갑질을 한 이런 인간들은 시간 날 때마다 아공간에 담아 징벌도에 데려다 놓을 생각이다.

싸가지 없는 건 이들뿐만이 아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성실히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병사들을 집단 구타하는 사건이 있었다.

군 규정상 군인은 민간인을 위협하거나 때릴 수 없는 것을 악용한 어느 고등학생들이 벌인 일이다.

집단 구타의 결과 심각한 부상을 당한 군인들은 병원에 실려 갔고, 부상이 심상찮다는 보고가 사단장에게 올라갔다.

그런데 가해 학생들의 부모는 군인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등의 헛된 항의를 했다.

이에 군에서 강경하게 대응하자 말도 안 되는 합의금으로 사건을 마무리 짓자는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주민 중 일부는 ‘군바리가 좀 맞았다고 어린애들 인생 망치려고 하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현수는 폭행 행위의 당사자인 고등학생 전원과 그들의 부모, 그리고 일부 몰지각한 주민들까지 처벌할 계획이다.

죽을 때까지 비명이 멈추지 않을 징벌도에 데려다 놓으려는 것이다.

이 밖에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인간들도 마찬가지이다.

돈 좀 있다고, 권력을 가졌다고 죄를 짓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자들은 모조리 징벌도 행이다.

만취해 아버지 나이의 아파트 경비원을 폭행하여 뇌수술까지 받게 한 놈이 있다.

아파트 입구의 차량차단기를 흔들기에 이를 제지하자 멱살을 잡아 넘어뜨린 후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다. 경비원이 폭행을 피하려 하자 쫓아다니며 폭력을 행사했다.

그 결과 전치 12주의 부상을 당했고 뇌수술까지 받았지만 인지기능 장애 등이 있어 간병인이 필요한 상태가 되었다.

그럼에도 법원에선 고작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그리고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 돈 좀 있다고 합의금을 주고 무마한 것으로 사료된다.

이런 놈들은 차라리 법에 따라 엄정히 처벌을 받은 자들이 부럽다는 말을 할 정도로 진한 고통을 받아야 마땅하다.

매일매일 반쯤 죽을 정도로 두들겨 패는 것이 정답이다. 하여 시간 날 때마다 이런 연놈들을 찾아낼 생각이다.

현재는 바쁜 일이 많고 중요한 일도 많아서 놔두고 있을 뿐 언젠가는 반드시 처벌할 생각이다.

이들은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다. 사회에 전혀 보탬이 안 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하여 죽을 때까지 고통에 시달리는 형벌을 받게 할 생각이다.

어쨌거나 싸미라는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미인이고 귀족가의 여식임에도 보기 드물게 현숙하고 예의 바르다.

게다가 공손하며 겸손하기까지 하다.

이런 여인은 그만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 현수는 이런 이유로 싸미라를 따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다른 의미로 바라보았다. 황태자가 지목해 준 여인을 데리고 그녀의 집으로 간다 함은 혼인을 승인한다는 뜻인 것이다.

어쨌거나 대결장 밖엔 싸미라가 타고 온 이두마차가 있다. 곁에는 마흔쯤 되어 보이는 마른 사내가 서 있다.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토른, 인사드려요. 제 부군이신 핫산 브리프 백작이세요.”

“아! 드마인 백작가의 미천한 종 토른이 감히 아가씨의 부군을 뵙습니다.”

토른은 무릎까지 꿇고 고개를 조아린다. 이게 이곳 예법인 모양이인지라 말리지 않았다.

핫산 브리프라는 이름은 이미 맥마흔 전역을 휩쓸었다. 그렇기에 조만간 귀족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반갑군. 나는 핫산 브리프라 하네. 싸미라와 더불어 드마인 백작가로 가려는데 준비되어 있나?”

“무, 물론입니다. 언제든 타시기만 하면 곧바로 출발하겠습니다요.”

“그런가? 그럼, 싸미라가 먼저 타시지요.”

싸미라는 마차에 오르는 대신 현수를 바라본다.

“부군, 저는 이미 부군의 아낙이옵니다. 부군께서 아낙에게 존대하는 것은 예법에 없는 일이옵니다. 하오니 앞으로는 제게 하대하여 주시옵소서.”

“…그럽시… 그래, 알았어. 먼저 타.”

“네, 부군.”

싸미라는 조신한 몸짓으로 마차에 올라탄다. 잠시 후 이두마차는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며 달리기 시작한다.

수많은 사람이 집결해 있는 수도지만 인도와 차도를 구분해 놓은 듯하다. 아르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하긴 마법사의 제국이니…….’

머리 좋은 놈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살기 좋을까를 연구했으니 인도와 차도를 구분한 듯싶다.

“좋은 머리로 냄새나 좀 없애지.”

현수가 나직이 투덜거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싸미라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5장 처갓집에 가다!

“네? 방금 뭐라 말씀하셨는지요?”

“아무것도 아냐. 마차가 좀 튀고, 흔들리는 거 같아서.”

“어머! 죄송해요. 좋은 마차는 좀 비싸서…….”

뭔가 이상하다. 백작이라면 상당한 재력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비싸다고 한다. 하여 싸미라에게 시선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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