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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137화 (1,136/1,307)

# 1137

슬쩍 이를 바라본 백작의 입가에 조소가 어린다. 그리곤 관중석을 쭉 한번 둘러본다.

‘짜식들, 내가 강한 건 아는구먼’ 하는 표정이다.

반면 현수는 무표정이다. 누가 보면 잔뜩 긴장한 것을 억지로 감추려는 표정일 것이다.

“자, 집계가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곧 대결이 시작될 것이니 관중께서는 모두 착석해 주십시오.”

진행자의 말에 따라 모두가 자리에 앉는다.

지금껏 내기 돈을 거느라 소란스럽던 분위기는 이내 고요함으로 바뀐다.

“두 분, 이제 곧 시작합니다.”

진행자는 현수와 무스타 하로겐 백작에게 일일이 시선을 주어 주위를 환기시킨다. 그리곤 곧이어 깃발 든 사내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휘리리리릭―!

검은 깃발이 휘둘러지자 고요하던 관중석이 시끄러워진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

하지만 현수와 무스타 하로겐 백작은 미동도 않은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일종의 탐색이다.

‘흥! 하찮은 7서클짜리가 감히……. 오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지.’

이런 마음을 품은 무스타 하로겐 백작은 싸늘한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인다.

다음 순간, 현수는 네 명의 무스타 하로겐에게 둘러싸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화들짝 놀라며 사방을 둘러보니 모두 싸늘한 조소를 베어 문 채 입술을 달싹이고 있다.

“으읏!”

현수가 당황한 듯 두리번거린다. 이 순간이다.

“매스 프로미넌스 블레이드!”

사방 허공에 시뻘건 화염으로 이루어진 칼날이 생성된다. 그리곤 곧장 현수를 향해 쏘아져 간다.

전후좌우는 물론이고 상하까지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닿기만 하면 무쇠라도 한 줌 쇳물로 녹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열기를 내포한 것이다.

당황한 현수가 배리어로 전신을 감싸려 할 때다.

갑작스레 프로미넌스 블레이드가 분열을 시작한다. 하나의 칼날이 여섯 개로 분리된 채 사방을 에워싼 것이다.

처음에 생성된 블레이드의 숫자는 한 방위당 9개씩 36개였다. 그런데 이게 216개로 불어남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현수를 덮치려는 것이다.

이 순간 관중석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아아! 아아아! 끝이야!”

“으아! 안 돼! 저건 배리어로는 못 막는 거야!”

“맞아! 프로미넌스 블레이드는 9서클 궁극 마법이야! 블레이드 하나하나가 소드 마스터의 오러가 실린 검이나 마찬가지라고!”

“배리어가 아니라 앱솔루트 배리어여야 간신히 막는데.”

“크윽! 끝인가? 핫산 브리프 백작에게 100골드나 걸었는데. 으으! 어제에 이어 또 날리는 거야?”

“지금 돈이 문제야? 우리의 호프 핫산 브리프 백작이 죽게 생겼는데?”

“그러게. 우리의 희망이었는데. 아아, 역시 9서클은 넘을 수 없는 벽인가?”

관중 모두가 일어서서 대결장을 주시한다. 황태자와 힐만 공작도 마찬가지이다.

특별 초청된 싸미라의 봉목은 더없이 크게 떠져 있다. 첫날밤도 치르지 못했건만 과부가 될 상황이다.

“아악! 안 돼요!”

싸미라의 날카로운 비명이 입술을 비집고 나올 때 무스타 하로겐 백작의 입술이 다시 한 번 달싹인다.

“퓨리 오브 더 헤븐(Fury of the heaven)!”

번쩍, 번쩍, 번쩍!

콰앙! 콰아아앙! 콰르르르릉―!

현수가 서 있던 곳으로 엄청난 양의 벼락이 퍼부어진다.

가히 빛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수없이 많은 불빛이 명멸한다.

먼저 쇄도한 화염의 칼날들은 명멸하는 불빛 때문에 보이지도 않는다. 이쯤 되면 완벽한 말살이 일어난다.

화염의 칼날에 현수의 전신은 잘 익은 고깃덩어리가 되어 사방에 널린다. 이것의 위로 엄청난 양의 벼락이 떨어졌으니 다음은 완전하게 불타 버린 재가 된다.

“아아아!”

“안 돼!”

“으허어! 강해! 너무 강해!”

“역시 9서클인가? 엄청나군!”

모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돈은 절대 강자인 무스타 하로겐 백작에게 걸었지만 내심으론 핫산을 응원한 것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황태자가 털썩 주저앉는다.

그토록 주의를 주었건만 시작하자마자 고스란히 당했다 생각한 것이다.

황태자는 9서클 마스터이기에 본질을 꿰뚫고 있다.

무스타 하로겐 백작의 신형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사람의 신체가 어찌 넷으로 늘어나겠는가!

당연히 나머지 셋은 환상이다.

프로미넌스 블레이드 역시 하나뿐이다. 그것이 216개로 보였지만 215개는 허상이다.

마지막으로 퓨리 오브 더 헤븐으로 만들어진 벼락의 숫자는 대략 100개이다. 그럼에도 관중들의 눈에는 거의 10만 개로 보였을 것이다.

앱솔루트 배리어 마법만 잘 활용했다면 모두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스타 하로겐 백작의 신형이 늘어나자 당황한 것이 패착이다. 그 결과는 이제 곧 드러날 것이다.

무스타 하로겐 백작의 맞은편엔 한 줌 재가 흩어져 있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이때였다. 관중석의 누군가가 고함을 지른다.

“아앗! 저, 저길 봐!”

쿠웅―!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스타 하로겐 백작의 동체가 그대로 엎어졌다. 그리곤 미동도 없다.

“뭐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때 방금 쓰러진 무스타 하로겐 백작이 있던 자리에 영상 하나가 드러난다.

“아앗! 핫산 브리프 백작님이시다!”

“어! 정말?”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세상에! 그럼 또 이긴 거야?”

“우와아!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으하하하! 320골드 벌었다! 핫산 브리프 백작님 만세! 만세! 만세!”

아까 10골드를 잃게 생겼다며 울상을 짓던 사내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뭐지? 이봐, 공작! 뭐가 어떻게 된 건가?”

“글쎄요. 저도 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힐만 공작은 얼른 대결장으로 내려간다. 그리곤 쓰러진 무스타 하로겐 공작의 심장박동과 호흡을 확인한다.

“……!”

힐만 공작이 황태자를 바라보며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곤 고개를 젓는다. 이 순간이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핫산! 핫산! 핫산! 핫산!”

관중석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황태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고, 곁에 있던 싸미라는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핫산! 핫산! 핫산! 핫산! 우와아아아아!”

어느 때보다도 큰 함성이다. 하긴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적적으로 승리를 취했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1982년,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이 서울에서 열렸다. 운명의 숙적 한국 VS 일본의 경기였다.

그런데 한국은 8회 초까지 0 대 2의 퍼펙트게임으로 끌려갔다. 참으로 수치스런 스코어였다.

운명의 8회 말이 되자 심기일전한 한국 야구대표팀은 필승의 의지를 다지며 타석에 들어섰다.

먼저 심재원이 안타로 출루한 후 김정수가 중견수의 키를 넘는 2루타를 쳤다. 1점차 추격을 시작한 것이다.

2 대 1 상황이 되자 감독은 희생번트를 지시하여 무사 3루로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 들어선 김재박은 어이없는 볼이 들어오지만 유명한 개구리 번트를 했다. 하여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와 동점이 되었고, 김재박은 1루로 출루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김재박의 이 번트는 감독의 사인을 잘못 읽은 결과라 했다.

아무튼 다음 타석에 들어선 이해창은 중전 안타를 쳤다.

이제 1, 3루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다음 타석에 들어선 한대화는 역전 3점 홈런을 때려 버렸다.

당시 이 경기를 관람하던 시청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홍수환이 적지에서 4전 5기 끝에 카라스키야를 K.O로 이기고 챔피언 벨트를 따냈을 때, 2002년 월드컵 대 이탈리아 전에서 안정환이 골든골을 터뜨렸을 때와 같은 엄청난 환호성이었다.

지금 그런 환호성이 맥마흔의 영주 선발대회 대결장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관중들은 자기가 대결에서 이긴 듯 서로를 안고 발을 동동 구른다.

목숨을 잃은 무스타 하로겐 백작이 들것에 실려 나가지만 아무도 시선을 주지 않는다.

“뭐지?”

황태자는 현수의 승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러하다.

대결이 시작되려 할 때 아주 짧은 순간 무스타 하로겐 백작의 시선이 관중석의 내기 돈 보드에 머물렀다.

핫산에겐 800만, 자신에겐 2억 5,600만 골드가 걸려 배당률이 1 대 32라는 걸 확인한 순간이다.

이때부터 현수의 마법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미리 준비했던 마법진을 내려놓았다.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일이다. 바짓가랑이 속에 감춰둔 것이기 때문이다.

마법진의 마법이 구현되던 순간 현수는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마법으로 사라졌다.

무스타 하로겐 백작이 다시 시선을 주었을 때 그곳엔 현혹마법진이 만들어진 허상만이 있었다.

곧이어 깃발이 내려졌고, 무스타 하로겐 백작의 무자비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승리를 확신한 무스타 하로겐 백작은 아주 잠시 방심했다.

이때 귓전에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렁스 버스터!”

퍼엉! 퍼억―!

“크헉! 끄으윽!”

이때 무스타 하로겐 백작의 눈에 수없이 명멸하는 번개 속에 있던 핫산의 신형이 스르르 사라지는 게 보였다.

그런데 호흡이 불가능하다. 3서클 에어로 밤 마법을 이용하여 두 개의 허파 모두를 터뜨려 버린 때문이다.

호흡을 못한다 하여 즉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스르르 쓰러져 버린 것은 체내에서 폭발한 허파가 다른 장기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기 때문이다.

펄떡이던 심장이 멈춘 것이다.

“와아아아! 와아아아아아!”

관중석의 환호성을 멈출 줄을 모른다. 이 대결에서 2억 5,600만 골드가 날아갔다.

1 대 32의 배당률이니 아마 관중의 97% 정도가 많은 돈을 잃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환호를 보내는 이유는 7서클 유저가 9서클 마스터급을 꺾었다는 것 때문이다.

약자에게 보다 많은 시선이 가는 것은 지구나 이곳이나 다를 바 없는 정서인 듯하다.

“힐만 공작, 왜 그러나? 돈을 잃었어?”

“…네, 30만 골드를 날렸습니다.”

힐만 공작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다.

“하긴 그게 보편적인 시각이지. 7서클이 어떻게 9서클 마스터급과의 대결에서 이긴다고 생각하겠나.”

“그렇기는 합니다. 그래서 돈은 날렸지만 많이 불쾌하진 않습니다.”

힐만 공작은 현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과연 황태자의 관심을 받을 만한 사내이다.

현수는 대결장 한복판에 서서 손을 들어 환호성에 화답하고 있다. 이를 다른 분위기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다른 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아홉 사람이다. 8서클 마스터도 있고 9서클 유저도 있다.

9서클 마스터도 둘이나 있다. 서클 수를 늘린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작위 도전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 내일 핫산과 만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가장 서클 수가 낮은 자를 모두가 꺼리는 것이다.

황태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이겨도 찜찜하다. 물론 패할 수도 있다.

무스타 하로겐 백작 같은 강자가 맥없이 목숨을 잃었다. 내일 본인이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끄응! 9서클임에도 7서클을 두려워해야 하다니.”

“그러게. 너무 불공평합니다. 저런 7서클이 어떻게 있을 수 있지요?”

“제 말이……. 어떻게 무스타 하로겐 백작의 뒤로 간 건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끄응!”

승리자들은 이겼음에도 큰 걱정이 있다는 표정이다.

잠시 후, 내일 대결을 위한 제비뽑기가 실시되었다.

현수는 두 번째 경기에 당첨되었다. 그리고 상대는 8서클 마스터인 비교적 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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