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2
가장 잘 쓰는 마법은 에어 캐논과 라이트닝 샤워이다.
에어 캐논으로 상대로 하여금 당황케 한 후 벼락을 한 다발 선사하여 잡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 안티 매직필드를 쓰기도 한다는 것이 메모의 내용이었다. 이를 숙지하고 대결에 임했기에 실수 없이 승리를 취한 것이다.
내일은 누가 상대가 될지 결정되지 않았다. 아침에 넷이 모여 제비뽑기를 하기로 한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지 모를 상대를 대상으로 한 작전을 짜야 한다. 물론 7서클 이내의 마법이어야 한다.
“끄응! 이 짓도 쉬운 게 아니군.”
나직이 투덜거린 현수는 이실리프 마법서를 꺼내놓고 연구를 시작했다. 아주 기발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이다.
* * *
“네 분, 이제 제비뽑기를 하여 누구와 대결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전에 어떤 순서로 뽑을 건지 정해주십시오.”
대결 진행자의 말에 네 명의 공작 후보는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상대에 따라 승패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케리 브랜들린 후작님, 연장자이시니 한 말씀 하시죠.”
“…그냥 사회자가 눈을 감고 하나씩 뽑아서 주는 게 좋을 것 같네.”
“찬성합니다.”
“저도 찬성합니다.”
넷 중 셋이 찬성의 뜻을 밝힌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해 주었다.
“자, 그럼 제가 제비를 뽑아서 나눠드리겠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저도 어떤 게 어떤 건지 모릅니다.”
말을 마친 진행자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추호의 조작도 없음을 확인시켜 주기 위함이다.
그리곤 제비를 뽑아 각자에게 나눠 주었다.
“자, 그럼 이제 펼쳐보십시오.”
진행자의 말에 따라 제비를 펼쳐본 후보자들은 의미 있는 눈빛을 보낸다. 안도의 빛을 띠는 눈빛도 있고, 체념의 눈빛도 있으며, 해볼 만하다는 눈빛도 있다.
“다 보셨으면 제게 보여주시겠습니까?”
진행자의 말에 따라 각자가 받은 제비를 펼쳐서 보여주었다. 현수는 케리 브래들린 후작과 짝지어졌다.
나머지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빛낸다. 하나는 안도의 빛을 띠고 있고 다른 하나는 해볼 만하다는 눈빛이다.
“이제 상대가 정해졌습니다. 이의 없으시죠?”
“나는 포기하겠네.”
“네?”
느닷없는 발언에 진행자의 눈이 커진다. 한 번만 더 이기면 공작이 되어 넓은 영지를 갖게 된다. 그런데 9부 능선을 넘었음에도 포기한다는 발언을 하니 놀란 것이다.
“나는 어제 너무 기력을 소모해서 도저히 대결에 임할 상황이 아니네. 따라서 최종 대결을 기권하네.”
“케리 브랜들린 후작님, 진심이십니까?”
“그렇다네. 너무 지쳐서 대결에 임할 수 없네. 핫산 브리프 후작, 감축하네. 진심으로 탄복하는 자네이기에 흔쾌한 마음으로 기권을 결정할 수 있었네.”
“……!”
현수는 뭐라 대꾸하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을 하기엔 조금 이상한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부디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마나가 모두 소진되면 몸살이 심하다고 합니다.”
“알고 있네. 어린 시절에 겪어보았지. 그래서 기권하는 것이네. 지금 내 몸은 마나 몸살을 앓기 일보 직전일세. 충분히 쉬면 낫겠지. 아무튼 감축하네.”
“네, 후의에 감사드립니다.”
현수는 짐짓 공손히 예를 갖췄다.
같은 순간, 서로 대결하게 된 두 명의 후작은 자신들의 상대로 현수가 뽑히지 않은 것에 대해 안도하고 있다.
대하기 너무도 껄끄러운 것이다.
블링크와 아공간 마법만으로 9서클 마스터를 농락했다.
오늘은 또 어떤 수법을 준비했는지 몰라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평생의 치욕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핫산 브리프가 대결 상대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자리에 왔다.
“자, 이제 상대가 결정되었습니다. 제가 먼저 대결장에 올라 대진표를 공표한 뒤 호명토록 하겠습니다. 그때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진행자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명의 후작이 나갔다. 잠시 환호성이 울려 퍼지더니 격렬한 격돌음이 들려온다.
약 한 시간 후 치열하던 공방전이 끝났다. 그리고 승자 발표가 이루어졌다. 이때 또 한 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잠시 장내를 정리할 시간이 지나자 대결 진행자가 나선다.
“자, 이제 영주 선발대회 공작위 도전자들의 최종 대결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최종전은 케리 브랜들린 후작님과 핫산 브리프 후작님의 대결입니다.”
“와와와와와! 와와와와!”
관중석이 또 들끓는다. 기적의 사나이, 불가능을 가능케 한 사나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진행자는 잠시 관중들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다.
“자, 곧 있을 경기에 앞서 두 분 후작님 중 누가 승리할 것인지에 대한 내기 돈을 걸 시간입니다.”
“와글와글! 와글와글! 와글와글!”
진행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엄청 시끄러워진다.
“난 핫산 브리프 후작님의 승리에 100골드!”
“나는 케리 브랜들린 후작님에게 50골드!”
“난 핫산 300골드!”
“무슨 소리! 니들 감히 9서클 마스터를 동네북으로 생각하는 거야? 나는 케리 500골드!”
“나도 케리 1,000골드!”
여기저기에서 누구에게 돈을 얼마나 걸 건지로 몹시 소란스러웠다. 이때였다.
“모두 조용―!”
느닷없는 진행자의 고함에 다들 시선을 돌린다.
“오늘의 최종 대결은 케리 브랜들린 후작님께서 기권하셨습니다. 따라서 규칙에 따라 핫산 브리프 님께서 새로운 공작님이 되십니다.”
“뭐라고? 누가 어쨌다고? 야, 어제 30만 골드나 잃었어. 그저껜 20만 골드를 잃었고. 그래서 오늘은 핫산 브리프 님에게 60만 골드를 걸려고 하는데 뭐라고? 누가 기권을 해?”
“맞아, 기권이 어디 있어? 무조건 붙어야지. 나도 핫산 브리프 님에게 20만 골드나 걸었다.”
“나도 그래! 핫산 님에게 15,000골드 걸려고 고리대금업자로부터 돈까지 빌려왔어. 하루 이자가 얼만지 알아?”
“그래, 네가 고리대금업자를 알아? 얼마나 후안무치한지 이름이 샤일록(Shylock)이야. 부끄러움 따위는 꽉 걸어 잠갔다는 뜻이지.”
관중석이 소란스러워진다. 이에 진행자는 잠시 묵묵부답으로 서 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약간 조용해진다. 때는 이때다 싶었는지 다시 말을 꺼낸다.
“이것으로 제12회 영주 선발대회를 마칩니다. 잠시 후, 신임 공작께서 미녀들을 고르겠습니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대결장을 뒤흔든다. 절세미녀들을 누가 차지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9장 아아! 다프네
“자, 그럼 미녀들, 입장해 주십시오.”
진행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164명의 미녀가 저마다의 고운 자태를 뽐내며 입장한다.
미녀들은 미리 준비된 곳에 나란히 도열하였다. 얼굴과 몸매를 같이 확인할 수 있도록 지그재그로 배치되어 있다.
“먼저 공작위가 결정된 두 분부터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핫산 브리프 님, 그리고 라인리히 후마네 님 나오십시오.”
진행자의 호명에 따라 승자 대기석에 있던 현수와 라인리히 후마네 공작 예정자가 걸어 나왔다.
“와아아아! 와아아아아!”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하여 새로 공작이 될 둘을 위해 함성을 지른다. 물론 핫산 브리프를 바라보는 이가 더 많다.
로렌카 제국 역사상 최초로 7서클 유저가 공작위 결정전을 통과했다. 핫산은 남작위부터 시작하여 자작위, 백작위, 그리고 후작위까지 통과한 후 공작위에 도전했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렇기에 모처럼 한마음으로 이처럼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 것이다.
중세의 한반도에도 이런 기막힌 기록을 세운 인물이 있다.
조선시대의 관리 등용문인 과거는 현대의 사법고시에 비견될 만큼 어려운 시험이었다. 그런데 이 시험에 아홉 번 응시하여 아홉 번 모두 장원급제한 인물이 있다.
28명의 조선의 왕 중 가장 무능했다는 평가를 받는 14대 임금 선조 때의 한 문신(文臣)이다.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율곡 이이가 그 장본인이다. 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란 칭호를 받았다. 조선의 역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재현해 내지 못한 일이다.
핫산 브리프가 이루어낸 기적은 가히 율곡 이이의 그것과 같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와아아! 핫산! 핫산! 핫산!”
모두가 열렬히 환호한다.
귀빈석의 황태자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다. 핫산 브리프가 공작위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영도력이 증명된 때문이다.
귀빈석 한편에 앉은 드마인 백작과 싸미라 역시 상기된 표정이다. 한 사람은 공작을 사위로 맞이했고, 다른 하나는 이제 남편이 공작위에 오르게 되었다.
곧 거대한 영지를 받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떵떵거리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상기된 표정이 아닐 수 있겠는가!
그러는 한편 멍한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보는 눈길도 있다. 라트보라 남작이다. 설마 현수가 공작위까지 차지할 것이라곤 상상치도 못했다.
남작위가 결정되었을 때엔 자작위에 도전하지 말기를 바랐고, 자작위가 결정된 뒤엔 백작위 도전을 포기하길 바랐다.
백작위까지 얻게 되자 은근 후작위가 탐났지만 너무도 위험했다.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다간 목숨을 잃을 수 있기에 내심은 후작위 도전을 포기하길 바랐다.
그런데 그마저 이루어냈다. 당연히 가슴이 벅차오른다. 마치 본인이 후작위에 곧 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곧 공작위 도전을 포기했으면 했다.
그러면서도 0.1%의 가능성을 믿었기에 옛 상사인 에단 듀크 공작의 습성을 서찰로 보냈다.
오늘이 마지막 대결이었다. 이기면 공작이고 지면 사망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상대가 기권하였다.
어제 치러진 대결의 후유증 때문에 운신조차 어렵다니 그럴 만하다.
어쨌거나 반 로렌카 전선의 소개로 온 핫산 브리프가 로렌카 제국의 공작위에 오르게 되었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하여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곧 미녀 선택이 시작됩니다. 핫산 브리프 공작님, 그리고 라인리히 후마네 공작님, 나오셔서 누가 먼저 선택하실 건지 제비를 뽑아주십시오.”
진행자는 어서 나오라는 눈빛이다. 이때 라인리히 후마네 공작 예정자가 입을 연다.
“핫산 브리프 공작 예정자가 먼저 뽑도록 양보하겠네.”
“네? 아, 그렇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핫산 브리프 공작 예정자님 먼저 미녀를 선택하여 주십시오. 규칙에 따라 네 명까지 가능합니다.”
현수는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이제 곧 공작이니 아무에게나 고개를 숙여선 안 되기 때문이다.
천천히 미녀들이 도열해 있는 앞으로 다가갔다.
‘후와! 세상은 넓고 미녀들은 널렸다더니 정말이네.’
정말 모두가 아름답다.
얼굴과 몸매 모두 빼어난데 하나같이 생글거리고 있다. 자신을 뽑아 공작부인으로 만들어달라는 뜻이다.
현수는 신중히 고르는 모습을 보이려 일부러 1번부터 차례로 용모 및 몸매, 눈빛 등을 살피는 척했다.
순서에 따라 끝까지 모두 살피곤 진행자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선택하셨습니까?”
“그러하네.”
“좋습니다. 번호를 말씀해 주십시오.”
“161번, 162번, 163번, 그리고 164번을 택하겠네.”
현수의 말이 끝나자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와아아아! 최고 미녀들은 모두 뽑았다! 와아아아!”
“그러게. 다들 끝장나는 미녀야.”
“제기랄! 디따 부럽네!”
“그러게. 저런 미녀들을 넷이나…….”
“넷이 아니야. 첫째부인인 드마인 백작가의 미녀 싸미라 있잖아. 그녀까지 합치면 다섯이야.”
“우와! 공작, 진짜 할 만하네. 나 10년 후엔 공작위에 도전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