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3
“미친! 겨우 3서클 유저인데 10년 후에 9서클 마스터들이나 도전하는 공작위를 차지하겠다고?”
“그러게. 분수를 알아야지.”
“바보! 핫산 브리프 님이 9서클 마스터냐?”
“끄응! 할 말이 없네. 그럼 나도 10년 후 공작위에 도전한다. 혹시 아냐? 나도 핫산 브리프 님처럼 될지.”
“에구! 죽지나 마라, 이 정신병자들아.”
관중석에서는 부럽다는 탄성 속에서 이런 대화가 오간다.
현수가 선택한 161번은 뉴질랜드 출신 수퍼모델 스텔라 맥스웰(Stella Maxwell)과 비슷한 분위기의 은발 미녀이다.
아르센 대륙 테이란 왕국 후작의 딸이라 한다.
162번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모델 캔디스 스와네포엘(Candice Swanepoel)과 흡사한데 별빛이라는 뜻의 스타르라이트라는 이름을 가진 아르센 출신 미녀이다.
163번은 헝가리의 여신이라 불리는 바바라 팔빈(Barbara Palvin)처럼 생긴 아르센 대륙 도델 왕국의 공주 아만다 프러페 반 도델이다.
마지막 164번은 설명이 필요 없는 다프네이다.
이들 넷은 정말 발군의 미모를 자랑하고 있다.
현수가 다프네의 앞에 섰을 때 다프네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무도 자신을 선택해 주지 않기를 바라는 때문이다.
어쨌든 현수는 본래의 목적을 이제 거의 다 이루었다. 다프네만 돌려받으면 곧장 헤르마로 텔레포트한 뒤 블랙일 아일랜드를 거쳐 아르센 대륙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기회가 되면 황태자를 만나 아르센에 대한 야욕을 영원히 갖지 말라고 권유할 것이다.
말을 안 들으면 시쳇말로 깽판을 한번 칠 생각도 있다. 그간 굽실거린 게 억울해서이다.
그리고 보니 해결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아드리안 왕국이 공국이던 오랜 옛날에 7서클 마스터가 영광의 마탑주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쌔신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그때 7서클 마법서가 모두 사라졌다.
그 후 영광의 마탑은 6서클 마법사가 마탑주였다. 7서클 이상의 마법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현재의 마탑주인 로만 커크랜드도 6서클 유저이다.
이 이야기는 카트린느 조세핀 반 피리안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고 사실이다. (→ 전능의 팔찌 18권)
참고로 카트린느는 아드리안 공국의 변경백인 레더포드 아물린 반 피리안 백작의 손녀이다.
이 영지의 명칭은 아드리안 멀린 반 나이젤이 난동을 부리던 광룡을 죽인 것을 기리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
‘아드리안을 위하여’ 라는 뜻을 가진 피어 아드리안(Fur Adrian)을 줄여 피리안(Furian)이라 한 것이다.
아르센력으로 지난해 9월 12일, 현수는 라이세뮤리안과 더불어 미판테 왕국을 지나 아드리안 공국에 당도했다.
공국의 위기를 해결해 주기 위한 행보였다.
당시 현수는 소드 마스터인 코리아 제국의 백작 행세를 했고, 라세안은 수석호위 겸 영지 기사단장 역할을 맡았다.
하룻밤 피리안 영지에서 머문 뒤 수도 멀린으로 가려 하자 레더포드 백작은 손녀로 하여금 안내를 맡도록 했다.
소드 마스터 초입인 백작에게 대련을 통해 작은 깨달음을 준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다.
그리고 윤작과 휴경농법, 두엄과 퇴비 제조법, 그리고 살균작용을 하는 목초액 만드는 법 등을 전수해 준 것이 너무도 고마워서이다.
그때 수도로 가는 동안 카트린느는 영광의 마탑주가 오래전에 암살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마탑주를 살해하고 마법서를 강탈해 간 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이는 아르센에서는 어느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현수가 이를 알게 된 곳은 황태자 전용 서고이다.
약 300년 전, 로렌카 제국 초대 공작이던 알리와 케인은 다른 대륙이 있음을 걸고 내기를 한 바 있다.
그때 알리 공작은 수십 번의 텔레포트 끝에 블랙일 아일랜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실시한 수백 번의 텔레포트 끝에 우연히 아드리안 공국 최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 콘트라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 알리 공작은 용병으로 신분을 위장한 뒤 대륙을 횡행하면서 안전좌표들을 수집했다.
그러는 동안 아드리안 공국을 지나 미판테 왕국을 방문했고, 이어서 테리안 왕국과 브론테 왕국 또한 가보았다.
그렇게 10년을 돌아다닌 알리 공작은 마인트 대륙으로 복귀했다. 그리곤 내기의 결과를 증명하여 케인 공작으로부터 황금 10톤을 받아냈다.
그때 알리 공작은 자신의 공적을 문서로 남겼다.
그 증거로 영광의 마탑에서 가져온 7서클 마법서들을 황실에 넘겼다. 이것의 표지엔 알리 공작의 공적이 기록되어 있었고, 시일이 흐른 뒤 황태자 전용 서고로 보내졌다.
그저께 밤, 그러니까 공작위 결정전을 하루 앞둔 날이다.
현수는 황태자 전용 서고로 들어갔다. 마법서에서 승리를 취할 힌트를 얻으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세 명의 공작 후보자가 연명으로 불평등을 호소했다.
황태자는 이를 일리 있다 판단하여 현수로 하여금 전용 서고에서 나오도록 했다.
현수가 그곳에 머문 시간은 약 30분이다. 그런데 그때 알리 공작이 가져온 것을 보았다. 정말 우연한 일이다.
마인트 대륙과 아르센 대륙은 오랫동안 교류가 없었다. 그래서 음식, 복식, 언어 등등이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법만은 유사성이 많았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몹시 궁금했는데 알리 공작이 영광의 마탑주를 죽이고 강탈해 온 7서클 마법서들을 보고 나서 깨닫게 되었다.
마인트 대륙의 마법은 원래 뛰어났다. 그렇기에 9서클 마스터들을 배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아르센의 마법 이론이 추가되었다.
다른 각도에서 마나에 접근한 이것이 있었기에 마인트 대륙의 마법은 더욱 발전했다.
그 결과가 9서클 마법사가 우글우글한 것이다.
아무튼 이곳을 떠나기 전에 가능하다면 알리 공작가를 찾아갈 예정이다.
아드리안 왕국에 소재한 영광의 마탑은 이실리프 마탑을 추종하여 건립된 것이다. 그런 영광의 마탑에 난입하여 마탑주를 암살하고 마법서들을 강탈해 갔다.
마탑주로서 그것에 대한 적절한 응징을 가함이 마땅했다.
현재 영광의 마탑에서 잃어버린 7서클 마법서들은 모두 회수되어 아공간에 담겨 있다. 돌아가는 즉시 돌려줄 것이다.
현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라인리히 후마네 공작 예정자 역시 네 명의 여인을 선택했다.
공정한 제비뽑기를 통해 미녀 선택권을 먼저 가질 수 있었음에도 라인리히 후마네가 양보한 것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정치적인 것이다.
핫산 브리프는 황태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곧 실세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사람이 호감을 갖고 있다면 결코 손해 볼 일이 아니다.
둘째는 신체적인 것이다.
라인리히 후마네는 올해 135세이다.
겉모습은 30대로 보이지만 속은 늙었다.
생식 능력을 잃은 건 아니지만 색(色)에 대한 호기심은 완전히 사라진 나이이다.
여자들이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기간은 불과 몇 년이다. 그 기간만 지나면 시든 꽃처럼 보일 뿐이다.
라인리히 후마네는 그 몇 년을 위해 정치적인 이득을 포기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그렇기에 과감하게 선택권을 현수에게 양보한 것이다.
그렇다 하여 아무 여인이나 고른 것은 아니다.
1번부터 160번의 여인 가운데 자신의 눈에 차는 미녀들을 골라냈다.
그중에는 낮에는 유명 모델로, 밤에는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는 미국 뉴저지 출신 린제이 스콧(Lyndsey Scott) 같은 여인이 끼어 있다.
뿐만 아니라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섬 마르티니크 출신의 완벽한 미녀 코라 엠마누엘(Cora Emmanuel) 같은 분위기를 내는 미녀도 있다.
다프네에 비하면 약간 손색이 있을 뿐 절세미녀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만하면 체면도 차리고 실리도 얻은 셈이다.
“다음은 후작 예정자들 순서입니다. 최종 승자들께서는 나와 주십시오.”
진행자의 말이 떨어지자 후작 예정자들이 나온다. 그중엔 홀리오 고드니 백작이 끼어 있다.
현수에게 겁먹고 마지막 순간에 기권했다.
그런데 현수가 공작위를 차지하면서 후작위가 비게 되자 그에게 배정되었다. 전화위복인 상황이다.
후작위 결정전에서 현수를 만났을 때는 절망했다.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여 대결을 포기했는데 최종 대결에서 패하지 않은 유일한 도전자인지라 운 좋게 후작에 오르게 된 것이다.
“순서에 따라 제비뽑기를 하고…….”
진행자가 안내하는 대로 제비뽑기에 이은 미녀 선택의 시간이 있었다. 모두들 누가 어떤 미녀를 데려갈 것인지 바라보느라 여념이 없다.
* * *
“공작님, 선택하신 미녀들을 작위식이 거행된 직후 다시 보시게 될 겁니다.”
현수의 안내를 맡은 황실 시종은 지극히 공손하다. 하긴 이제 곧 권력의 실세가 될 사람이다.
당연히 극고의 예를 취함이 마땅하다.
“그런가? 작위식은 언제이지?”
“공작님의 첫 예복은 황궁 예복부에서 제작됩니다. 치수를 재고 재단을 하는 등의 일에 꼬박 이틀이 걸립니다.”
“흠! 그럼 앞으로 3일 후에 작위식을 하는 건가?”
“그러합니다. 잠시 후 치수를 재러 시녀들이 들어올 것입니다. 예복이 다 만들어지면 공작님께서 머무시는 곳으로 보내집니다. 혹시 드마인 백작가에 머무실 것인지요?”
오늘을 포함하여 사흘을 그곳에서 보내고 나흘째 되는 날 황궁으로 들어가 작위식을 하게 된다.
그 기간 동안 싸미라가 귀찮게 할 듯싶다. 전혀 원치 않는 일이다.
“흐음, 거기 말고 따로 숙박할 만한 곳은 없나?”
“현재 수도의 모든 숙박업소는 만원이라 합니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공작님께서 머무실 만한 곳은 없습니다.”
“공작이 되면 황궁에서 며칠을 보내야 한다고 들었네.”
황실 시종은 예법을 훤히 꿰뚫고 있는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대꾸한다.
“그건 작위식을 마친 뒤의 일입니다.”
“그럼 그전엔 황궁에 못 들어가나?”
“외람된 말씀이지만 신원조회를 마칠 때까지는 출입을 금하게 되어 있습니다.”
“흐음! 그런가? 알았네. 예복은 드마인 백작자로 보내면 되네.”
“네, 그럼 앞으로 3일 후 아침까지 드마인 백작가로 예복과 마차를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황실 시종이 물러간 후 현수는 턱을 괴었다. 드마인 백작가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대대손손 흥청망청 써도 다 못 쓸 만큼 엄청난 액수를 안겼으니 다프네만 데리고 사라져도 원망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슬슬 인연을 끊어야 한다.
‘흐음! 라트보라 남작을 찾아가야겠군.’
“공작님, 잠시 후 영지 결정을 위한 제비뽑기가 실시됩니다. 가시지요.”
“허엄! 그럴까?”
현수는 황궁 시종의 뒤를 따라 대결장으로 되돌아갔다. 어느새 제비뽑기를 실시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가 갖춰져 있다.
대결 진행자가 이번에도 진행을 맡았는지 현수를 보자 직각으로 허리를 꺾는다.
“어서 오십시오, 핫산 브리프 공작님!”
아직 작위식이 거행되지 않아 공작 예정자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 그것은 요식행위일 뿐이다. 하여 대놓고 공작이라 칭하는 것이다.
“아! 라인리히 후마네 공작님도 나오시는군요. 두 분, 이쪽으로 오시지요.”
진행자의 안내를 받아 단상에 오르니 흰 천을 덮은 탁자 위에 식당에서 사용하는 수저통 같은 것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통 안에는 손가락 굵기 정도 되는 황금 막대 두 개가 꼽혀 있다.
“눈에 보이는 저 황금 막대 아래엔 두 분께서 영주가 되실 영지의 이름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뽑으시는 것을 갖게 되는 겁니다. 어느 분이 먼저 뽑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