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5
그런데 몸에서 뿜어지는 위압감이 감히 어쩌지 못할 정도이다. 그렇기에 벌벌 떤다.
이를 본 특수첩보단 7연대 대원들은 한여름임에도 오한이라도 느껴지는 듯 부르르 떨고 있다.
전신을 휩쓸고 지나가는 싸늘한 전율 때문이다.
“제국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이처럼 무례하게 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하빈 시베른 백작은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현수는 말없이 아공간을 열어 안에 있는 놈들을 꺼내놓았다. 정확히 63명이다. 그리고 모두 시체이다.
살아 있을 때 무례히 군 것에 대한 대가이다.
“모두 죽었군.”
“다, 당연합니다. 하늘같으신 공작님께 무례를 범한 죄는 죽음으로 다스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옵니다.”
하빈 시베른 백작은 부하들의 죽음 따윈 안중에도 없다.
핫산 브리프 공작은 자신의 직속상관인 에단 듀크 후작도 아공간에 담았다가 꺼낸 인물이다.
따라서 아무리 벌벌 기어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음을 알기에 이처럼 도에 넘는 저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내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네.”
“무, 물론입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하빈 시베른 백작은 얼른 허리를 꺾어 사의를 표한다. 자신마저 처벌당하면 어쩌나 했던 것이다.
“이만 가지.”
“네! 그,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현수는 할 수 없이 드마인 백작가로 방향을 잡았다.
이제 곧 밤이 될 터인데 비루먹은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늦게 가는 것도 실례이기 때문이다.
“뭣들 하나? 이 시체, 어서 치워!”
“네, 대장님!”
특수첩보단원들은 직각으로 허리를 꺾었다. 상사의 심기가 몹시 불편함을 알기에 알아서 기는 것이다.
“이것들을 어디로 보내는지는 알지?”
“네! 구울 제작소로 곧장 보내겠습니다.”
“하나는 빼두는 거 잊지 마라. 참, 마빈이 좋을 것이다.”
마빈은 7연대 소속 마법사 중 가장 뚱뚱한 녀석이다. 죽었으니 두툼한 뱃살을 베어 구워 먹으려는 것이다.
“스턴과 호딘은 저희가… 해도 괜찮겠습니까?”
마빈보다는 못하지만 근육보다는 살이 많은 녀석들이다. 죽은 동료를 구워 먹겠다는 것이다.
“좋아, 허락하지. 다 먹고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스켈레톤 제작소로 보내는 거 잊지 마라.”
“네, 대장님. 참, 대장님, 생고기는 사흘쯤 저온 숙성시키는 것이 가장 맛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특수첩보단원들은 신 나서 시체들을 수습했다. 오늘 밤 모처럼의 회식을 허락받은 게 기분 좋아서이다.
“그래? 어느 정도지?”
하빈 시베른 백작은 흥미 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지난해부터 생고기 숙성에 대한 실험이 계속되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실험에 사용된 고기는 맥마흔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에서 얻어냈다.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인육 요리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여 실시된 일이다.
하여 별 방법을 다 써봤다. 시신에서 떼어낸 살덩이를 물에 담가두기도 했고 술 속에 넣어도 보았다.
살을 떼어내기 전에 전신의 뼈가 부러질 정도로 두들겨 패보기도 했다. 또한 살을 떼어내기 전에 뜨거운 물속에 넣어 삶기도 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실험한 결과가 엊그제 발표되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즉시 살을 베어내 3일간 저온 보관을 하는 것이다.
구웠을 때 육질이 부드럽고 육즙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지금 이걸 보고하는 것이다.
“실험 결과에 의하면 약 3℃ 정도가 좋답니다. 사흘쯤 숙성시키면 더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을 느끼게 된답니다.”
“그래? 알았다.”
하빈 시베른 백작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자신의 저택으로 되돌아갔다. 숙성실을 준비하려는 것이다.
특수첩보단 연대장 직을 유지하는 한 고기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수도에서 발생되는 시신에 대한 관할권을 가진 때문이다.
사내보다는 계집의 고기가 더 연하고 부드럽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그것도 늙은 계집보다는 젊고 싱싱한 계집의 그것이 훨씬 낫다.
하여 가끔은 사창가를 덮쳐 젊은 계집들을 데리고 왔다. 혐의야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고리니 얼마든지 연행이 가능하다.
데려다 실컷 즐긴 후 때려잡았다. 죽기 전에 두들긴 고기가 맛있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곤 술을 곁들여 안주 삼아 먹곤 했다.
“허험! 허허험!”
하빈 시베른 백작은 낮은 헛기침을 토하곤 자신의 자택으로 향했다. 그를 바라보는 눈길이 있다.
이들의 대화를 들은 현수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의 명에 따라 일희일비하던 부하의 고기를 구워 먹겠다는 놈의 심보가 이해되지 않는다.
나머지 놈들도 마찬가지이다. 동료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게 아니라 회식할 생각만 하고 있다.
“하긴 흑마법사들이니…….”
생각 같아선 모조리 아공간에 넣고 싶지만 괜한 분란을 일으켜선 안 된다.
가장 중요한 일은 다프네를 데리고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며, 다음은 오늘부터 사흘간 싸미라의 육탄 공세를 방어하는 것이다.
“어서 오시게.”
현수가 들어서자 드마인 백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자신보다 높은 공작으로 확정되어서가 아니다.
어쩌면 현수 덕분에 헐값에 처분한 영지를 되살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그러기 위해선 현수 덕에 마련된 거금에 대한 사용을 승낙받아야 한다.
신랑이 신부의 예물을 사라고 준 돈이라고 하지만 너무나 액수가 크기에 백작이지만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상의할 일이 있네. 바쁘지 않으면 잠시 이야기 좀 나누세.”
백작과 공작이지만 이곳은 백작의 저택이고 현재 둘은 장인과 사위의 관계인지라 말을 낮추는 것이다.
공석에선 당연히 높임말을 써야 한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말씀하시지요.”
대화가 길수록 좋은 상황이기에 얼른 의자에 앉는다.
“우리 가문의 6대 조상께서 노름빚 때문에 영지를 헐값에 처분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가?”
“네, 싸미라가 말해주더군요. 사기도박이었고, 그래서 가문의 몰락이 시작되었다고요.”
“그래, 그랬지. 근데 그때 처분한 그 영지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는데 공작이 좀 도와주시게.”
“제가요?”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아무런 실권도 없는 예비 공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 영지는 전임 재상이신 알폰소 공작님의 공작령과 인접해 있었네. 현재는 윈스턴 공작님의 사위인 터번스 백작이 차지하고 있지.”
라인리히 후마네 공작에게 영지를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그 결과 현수가 차지한 영지가 바로 전임 재상이던 알폰소 공작령이다.
“……!”
현수는 윈스턴 공작이나 터번스 백작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 하여 뭐라 대꾸하지 않았다.
“터번스 백작에게 선을 대어 영지를 되팔라 하였는데 너무 터무니없는 액수를 부르네. 중재 좀 해주시게.”
“얼마에 팔았고 얼마를 달라고 합니까?”
“6대 조상께서 매각한 금액은 400만 골드라네. 정말 헐값이었지. 하여 나는 700만 골드를 제시했네. 그런데 2,000만 골드를 요구하더군.”
700만 골드라면 약 7조 원이다. 2,000만 골드는 당연히 20조 원이다.
마인트 대륙은 농업이 기반인 곳이다. 그렇기에 서울처럼 땅값이 비쌀 수 없고 시세 변동도 거의 없다.
영지 안에서 영주의 허가를 받아 토지를 매매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비싸지는 않을 것이다.
드마인 백작이 제시한 금액은 터번스 백작령에서 평민들에게 토지를 팔 때 부르는 금액의 약 1.3배이다.
매각된 영지는 약 40만㎢이다. 약 121억 평이다. 드마인 백작이 제시한 금액은 평당 약 579원이다.
부동산 가격이 비싸기로 이름난 대한민국에도 평당 1,000원 이하인 땅이 있다.
지난 2013년에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명도리 임야 26,700평이 2,670만 원에 거래되었다.
도로에 접한 ‘농업진흥구역’이다. 다시 말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평당 1,000원에 거래된 것이다.
2015년 3월 기준 부동산 자료를 검색해 보면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대성리의 어느 토지는 평당 462원이었다.
마인트 대륙엔 부동산 투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드마인 백작이 제시한 금액은 터무니없지 않다.
값이 있을 수 없는 절벽이나 산꼭대기, 하천 등을 망라한 평균 금액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드마인 백작가의 예전 영지엔 질 좋은 철광이 있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백작가의 살림을 풍족하게 유지시킬 정도로 생산량이 많던 광산이다.
그런데 현재는 폐광되어 있다. 부존(富存)되어 있던 철광석 전부를 캐버린 때문이다. 이 밖에 동광도 두 개나 있었는데 그것 역시 폐광 직전이다.
윤작이나 휴경의 개념이 없는 곳이기에 농지의 지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이다. 드마인 백작의 6대 조상이 팔았을 때에 비하면 형편없어진 것이다.
터번스 백작의 6대 조상은 사기도박으로 드마인 백작의 6대 조상을 곤경에 처하게 했다. 그리곤 사채업자들이 연체된 채무자들에게 하는 짓을 그대로 했다.
빠져나갈 수 없는 코너로 몰아 결국 헐값에 영지를 팔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하여 영지를 차지한 뒤엔 최우선적으로 모든 지하자원을 캐갔다.
그걸 적정한 가격을 지불할 테니 다시 팔라고 하자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부른 것이다.
참고로 영지 매각은 황제, 또는 황태자의 윤허가 필요하다. 아울러 한번 매매된 영지는 다시 매매될 수 없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투기꾼들이 써먹던 미등기전매가 완전히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다만 예전의 주인이 되살 수는 있다. 특정 귀족가가 무한정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제국의 법이다.
드마인 백작이 생각하기에 핫산 브리프는 권력의 중심에 설 인물이다. 따라서 터번스 백작에게 적절한 압박을 가할 수 있기에 이런 요청을 한 것이다.
“일단은 한번 알아보도록 하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제로 무얼 할 생각은 없다. 곧 떠날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런 속내를 모르기에 드마인 백작은 한시름 놓았다는 듯 한숨을 몰아쉰다.
“휴우! 정말 고맙네.”
드마인은 사랑하는 딸 싸미라를 내주기는 했지만 너무나 큰 혜택을 입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여 쓰라고 준 돈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돈을 돌려주기는커녕 터번스 백작을 압박해 달라는 청까지 넣었다. 아직 정식으로 사위가 된 것도 아닌데 너무나 과한 부탁이다.
그럼에도 얼굴에 철판을 깐 것은 가문의 후세를 생각해서이다. 조상으로서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핫산 브리프 공작은 전임 재상인 알폰소 공작의 저택과 영지를 물려받았다. 아마 그에 걸맞은 권력 또한 쥐게 될 것이다.
그 결과 계속해서 재물이 쌓일 것이다. 일가붙이 하나 없는 혈혈단신이니 돈 쓸 일이 없어서이다. 하여 반환하기로 마음먹은 돈으로 영지를 되찾으려는 것이다.
훗날 영지가 어느 정도 자리 잡히면 그때 조금씩이라도 상환하여 입은 은혜를 잊지 말라 유언을 남길 생각이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실제로 땅값이 그렇게 비싸다면 압력을 행사하는 것밖에 안 되니까요.”
“그럼, 그럼. 그렇다면 당연히 그렇지. 이제 막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는데 우리 가문이 누가 되면 안 되지. 그때는 내가 깨끗이 포기하겠네. 그러니 일단 알아만 봐주시게.”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현수는 저택 이 층에 준비된 침실로 향했다. 부속실이 있어 문을 열어보니 욕실이다. 수욕을 할 수 있도록 물통 가득 물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