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147화 (1,146/1,307)

# 1147

“그나저나 여기 온 지 꽤 되었네.”

지구에서 차원이동을 한 날짜는 아르센력 2월 24일이다. 그리고 오늘은 4월 27일이다.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차원이동을 해도 예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이실리프 마법서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한 달이 넘으면 저쪽에서도 똑같이 시간이 흐른다고.

지구를 떠난 시간은 2015년 5월 15일이다. 따라서 돌아가면 7월 중순이 넘을 것이다.

“너무 오래 연락을 안 했다고 혹시 난리난 걸 아닐까?”

지현과 연희, 그리고 이리냐가 애를 태우고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차원이동을 해도 다프네를 아르센에 데려다 놓은 후에 해야 한다. 이제 이틀만 기다리면 된다.

어차피 늦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잘하고 있을까?”

자신이 보낸 메일을 보고 펄펄 뛰었겠지만 시킨 대로 킨샤사로 가서 이실리프 의료원 건설에 매진하고 있을 것이다.

“제수씨하고 빈관에서 행복한 신혼을 즐기고 있을까?”

민주영뿐만 아니라 이실리프 메디슨의 민윤서 사장도 떠오른다. 천지약품이 있기에 팡팡 잘 돌아갈 것이다.

“이춘만 사장님도 잘 계시겠지?”

어패럴의 박근홍 사장, 모터스의 박동현 대표, 엔진의 김형윤 대표, 트레이딩의 윌슨 카메론 대표 등도 승승장구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모두 채무 제로인 기업들이다. 그리고 자본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증자할 뒷돈도 챙겨놓고 왔다.

게다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니크한 아이템이 있으니 망하거나 간신히 현상 유지를 하고 있다면 무능의 극치라 할 만하다.

“남바린 엥흐바야르 전 대통령은 만났을까? 장인어른께도 말씀을 드렸어야 하는데.”

이곳저곳에 벌여놓은 자치령 개발이 은근히 걱정된다.

시작만 해놓고 본격적으로 달려들어야 할 때 너무 오랜 시간을 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할 수 없지. 일단 이곳의 일부터 어떻게 하고 되돌아가든지 해야지. 참, 로니안 공작님 일행이 라수스 협곡에 있겠구나. 그때가 2월이었는데.”

아마 라수스 협곡 안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임시로 통행증을 만들어주긴 했지만 아직 라이세뮤리안이나 드래고니안들과 협의된 것이 아니다.

“쩝! 거기도 얼른 해결해 줘야 하는군.”

지구와 아르센 대륙에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된다.

현수 본인에겐 큰일이 아닐 수 있지만 로니안 공작처럼 당사자가 되면 몹시 불편하거나 힘들 수 있다.

“아무튼 이틀만 기다리자. 그러면 나아질 거야.”

지구로 가기 전에 할 일은 두 가지로 압축되었다.

먼저 다프네를 라수스 협곡에 데려다 준다. 그 후 로니안 공작 일행을 테세린까지 호송하는 것이다.

시간이 걸릴 일이지만 어쩌겠는가!

“쩝! 여기서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어. 썩을 놈들! 하필이면 다프네를…….”

신임 공작이 되면 161번부터 164번까지 4명의 여인 중 최소 두 명은 뽑아야 한다는 규칙을 만든 때문에 지구를 다녀올 수 없었다.

남작, 자작, 백작, 후작위를 모두 확정 지은 후 공작위에 도전하라는 황태자의 말 때문이다.

“도와준 건 분명하지만 도와준 게 아닐 수도 있지. 쩝!”

나직이 혀를 찬 현수는 서둘러 드마인 백작가로 향했다. 제법 늦은 시각이었지만 거리엔 주정뱅이들로 넘쳐났다.

“어이! 거기! 꺽―! 돈 있음 좀 주슈! 한 잔 더 하게.”

“크흐흐! 나도, 나도!”

쿵―! 콰당―!

어깨동무를 하고 오던 취객 둘이 나뒹군다. 상당히 세게 넘어졌지만 비명조자 지르지 않는다.

알코올이 마취제 역할을 할 정도로 마신 모양이다.

“쯧쯧쯧!”

나직이 혀를 차곤 걸음을 빨리했다. 술에 취해 눈에 뵈는 게 없는 놈들을 상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서 오시어요, 부군.”

예상대로 현관에 발을 들여놓자 이제나저제나 현수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싸미라가 쪼르르 다가온다.

그리곤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준다며 현수의 몸 이곳저곳을 두드린다.

“작위식에 쓸 것들을 준비하느라 잠시 나갔었는데 어딜 다녀오세요? 크으! 술 냄새.”

싸미라는 현수로부터 풍기는 술 냄새에 살짝 이맛살을 찌푸리며 코를 잡는다. 하나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렇게 술을 드실 거면 말씀을 하시죠. 제가 준비했을 텐데. 나가서 사 드신 거예요?”

“응, 그랬어.”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은 깨끗한지 아닌지 구분도 안 되고 안 좋은 재료를 막 쓴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니 앞으로 술 드시고 싶을 때는 제게 말씀하세요.”

“그래, 그럴게.”

말대꾸하는 게 싫어 무조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피곤하실 터이니 안에 들어가세요. 목욕물 준비해 놨는데 데우라고 할까요?”

“아냐. 목욕은 안 해도 돼.”

현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싸미라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짓는다.

“부군, 씻는 건 매일매일 하라고 했어요. 그래야 병들지 않고 오래오래 산다고요.”

“그건 나도 알지. 그런데 난 마법으로 씻을 수 있어. 그러니 앞으론 물 준비하지 않아도 돼.”

“어머! 그래요? 그건 몰랐어요. 아무튼 안으로 드셔요. 피곤하시죠? 제가 안마 좀 해드릴까요?”

싸미라는 현수의 뒤를 쫓아 2층의 침실까지 따라왔다.

“싸미라, 나 조금 피곤한데…….”

“네에, 그러니까 제가 안마해 드린다고요.”

한번 믿어보라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속내가 충분히 짐작된다. 작위식이 끝나 미녀 네 명을 하사받기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첫날밤을 치르려는 것이다. 그래야 떳떳하게 정실 자리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냐. 안마는 안 해줘도 돼. 그저 조용히 쉴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

“…네에, 분부대로 할게요.”

싸미라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물러간다. 웬일인가 싶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다프네와 어떤 경로로 탈출할 것인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둬야 하기 때문이다.

* * *

짹, 짹, 짹―!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날이 밝았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지만 강철 체력인지라 아무렇지도 않다.

“흐음! 날이 밝았군.”

창밖 정원에 시선을 준 현수는 가만히 그 모습을 살펴보았다. 상당히 독특한 정원이기 때문이다.

지구로 치면 회양목 같은 관상목이 뜰에 심어져 있는데 높이가 2.5m 정도 된다.

보통은 사람의 키보다 낮은 정원수를 심어 탁 트이게 만드는데 다소 기이하다.

게다가 일부러 줄지어 심은 듯하다. 하여 가만히 정원수를 따라 살펴보았다.

“응? 저건……?”

정원의 관상목들은 하나의 커다란 마법진을 구성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중간중간에 길을 내느라 끊긴 상태라 효과가 없겠지만 온전했을 때엔 분명 마법이 구현되었을 것이다.

이 마법진의 명칭은 ‘마나결집억제진’이다. 다시 말해 마나가 모여드는 것을 막는 목적의 마법진이다.

아르센 대륙에서는 마물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곳에 이 마법진을 설치했다. 마물들에 대한 사냥이 끝난 후엔 거의 사용할 곳이 없어 아는 이들이 극히 적은 마법진이다.

“가만. 저게 작동하려면 마나석이 있어야 하는데……. 흐음, 어디 보자. 진의 핵심이…….”

눈으로 마법진의 핵심을 찾아 더듬어가니 정원에 조성되어 있는 여러 연못 중 하나에 다다른다.

다른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지만 주변에 꽃이 많이 심겨 있어 보기에 좋다.

“흐으음! 가만있을 수 없지.”

현수 역시 마법사이다. 그렇기에 호기심이 돋으면 해결을 봐야 한다. 하여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정원으로 내려갔다.

“여긴데……. 마나 디텍션!”

샤르르르릉―!

연못 속으로 마나가 스며든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현수는 아공간에서 긴 막대를 꺼냈다. 백두마트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약 3m 정도 되는 사각 쇠파이프이다.

힘으로 끝부분을 펼쳐 모종삽처럼 만든 후 연못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때 싸미라가 다가온다.

“어머! 아침부터 여기서 뭐 하세요?”

“잠깐만.”

설명 대신 눈을 감고 연못 속 진흙에 정신을 집중했다.

이 연못은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구덩이를 넓고 깊게 판 후 바닥을 돌판으로 덮었다.

원형의 중심부는 다른 곳과 달리 약간 파이도록 만들었는데 그 안에 마법진을 구동시키는 마나석을 넣고 뚜껑을 만들어 덮은 듯하다.

현수는 쇠막대의 끝을 잘 조절하여 뚜껑부터 열어젖혔다. 그리곤 조심스레 휘저어 마나석을 찾았다.

싸미라는 아침 댓바람부터 물고기 한 마리 없는 연못은 왜 뒤지나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는 동안 드마인 백작과 무하드, 토른, 셀마까지 나와서 구경한다.

물속이라 움직임이 여의치 않아 마나석을 모종삽처럼 구부린 것 위에 올려놓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조심스레 쇠막대를 끌어냈다.

“……?”

모두들 막대 끝의 진흙 덩어리에 시선을 주고 있다. 세월이 오래 흐르면서 마나석을 진흙이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역시!”

마나석엔 미량이지만 마나가 남아 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곤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마법사의 제국인지라 플라이 마법에 놀라는 이는 없다. 다만 왜 이러나 싶은 표정이다.

허공으로 솟아오른 현수는 정원 전체를 조망해 보았다. 예상대로 마나결집억제진이 있었는데 현재는 훼손된 상태이다.

“부군, 아침부터 왜 그러시는지요?”

싸미라가 물었지만 현수는 드마인 백작에게 시선을 준다.

“백작님, 여쭤볼 말이 있습니다.”

“말씀하시게.”

“이 정원, 언제 누가 조성한 겁니까?”

“이거? 글쎄… 잘 모르겠군.”

백작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 정원은 존재했다. 그걸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누가 궁금해하겠는가! 그렇기에 전혀 모른다는 표정이다.

이때 싸미라가 한마디 거든다.

“아버지, 가주일기 있잖아요. 그걸 보면 혹시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 그걸 보면 알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럼, 그걸 한번 살펴봐 주십시오.”

“그런데 왜?”

백작을 비롯한 모두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 정원이 다소 독특하기는 하지만 빼어난 아름다움을 간직한 것도 아니고 기화이초가 심겨진 것도 아니다.

과실이 열리는 유실수 또한 하나도 없으니 이처럼 관심 가질 일이 아닌 때문이다.

“이 정원을 위에서 살펴보면 하나의 마법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마나결집억제진이지요.”

“뭐, 뭐라고?”

“마나결집억제진이라면… 마나가 모여들기 어렵게 하는 마법진인 겁니까?”

싸미라의 동생 무하드의 물음이다.

“그래, 분명 마나결집억제진이야. 연못에서 꺼낸 이것은… 이건 마나석이야. 이 마법진의 핵심이지.”

현수가 진흙을 떨어내자 주먹만 한 마나석이 드러난다.

“허어!”

“대체 누가……?”

둘 다 놀란 표정이다. 싸미라를 비롯한 토른과 셀마도 마찬가지이다.

“그걸 알고 싶은 겁니다. 가주일기라는 걸 봐주십시오.”

“그, 그래, 그러지.”

말을 마친 드마인 백작은 얼른 자신의 집무실로 향한다.

“아버지, 저도 도울게요.”

“저도요.”

무하드와 싸미라가 뒤를 따르자 토른과 셀마 역시 그 뒤를 따른다.

잠시 후, 가주 집무실엔 수십 권에 달하는 가주일기가 켜켜이 쌓였다. 선대 가주들이 시간 날 때마다 중요한 일을 기록한 것이 바로 가주일기이다.

후손들에게 조상의 삶을 보여주기 위한 배려이다. 아울러 가문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해 주는 증거자료이기도 하다.

드마인 백작과 무하드, 그리고 싸미라는 정신없이 가주일기를 뒤적인다. 상당히 양이 많아 언제 다 볼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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