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150화 (1,149/1,307)

# 1150

싸미라가 먼저 고개를 끄덕인다.

“흐흑! 네, 고마워요.”

“알았어요, 매형. 그렇게 할게요.”

“토른은 저택의 규모에 맞춰 하인들을 더 고용하게.”

“네, 명대로 합죠.”

“셀마 역시 시녀들을 더 뽑게. 다른 귀족가에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참하고 얌전한 아가씨만 뽑지 말고 왈가닥도 있어야 해. 이 저택의 분위기는 너무 고요해.”

“네, 공작님. 흐흑! 정말 감사드려요.”

셀마가 대답할 때 현수는 축축해진 등에서 또 한 번 뭉클함을 느꼈다.

싸미라가 두 팔을 벌려 온 힘을 다해 안은 때문이다.

13장 자넨 누군가?

콰쾅! 콰콰쾅! 콰릉! 콰르릉! 콰르르르릉!

깊은 밤, 거대한 저택 하나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복자의 길 13번지에 당당히 서 있던 유서 깊은 건물이다. 이 저택엔 힐만 공작과 더불어 권력을 양분하고 있던 윈스턴 공작이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 한 줌 먼지가 되어 흩어지는 중이다.

힐만 공작의 풀 네임은 힐만 본이치이다.

알리 공작과 다른 대륙이 있는지의 여부를 놓고 내기를 한 케리 본이치 공작의 4대손이다.

로렌카 제국이 건국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앙숙이라 할 수 있는 두 가문 중 하나이다.

오늘 오후, 신임 공작인 핫산 브리프의 예방을 받은 게 이 건물의 마지막 공식 행사이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아! 우르르! 와르르르르!

화아악! 화르르르르! 화르르르르!

또 한 번의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온다.

곧이어 시뻘건 화염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날름거리는 화마는 붉은 혓바닥을 내밀어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연기를 뿜어낸다.

윈스턴 공작가의 모든 것을 지우고 있다.

“뭐 하느냐? 어서 불을 꺼라! 불을 끄란 말이다! 이잇, 안 되겠다! 아쿠아 퍼니쉬먼트!”

콰륵! 콰르르륵! 쏴아아아아아!

“고, 공작님!”

저택의 모든 마법사와 병사, 그리고 하인과 하녀들까지 총동원되어 물을 뿌렸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윈스턴 공작은 9서클 궁극 마법 중 하나인 아쿠아 퍼니쉬먼트를 구현시켰다.

그러자 엄청난 양의 물 폭포가 쏟아졌다. 덕분에 불은 꺼졌다. 그런데 건물은 더 무너졌다. 공격 마법이기 때문이다.

공작가의 시종장은 이를 지적하려 했으나 이내 입을 닫았다. 분노에 찬 윈스턴 공작의 사나운 눈매를 본 때문이다.

“이, 이런! 대체 누가 감히……!”

윈스턴 공작은 너무도 화가 나서 부르르 떨었다.

330년 역사를 이어온 가문의 모든 것이 불타거나 무너진 잔재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엄청난 물까지 뿌려놨으니 온전한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붕괴되면서 깔려 죽은 이들 가운데에는 공작의 아들도 포함되어 있다. 술 한잔 걸치고 새로 들인 첩과 질펀한 밤을 보내던 중 무너진 건물의 대들보에 깔려 즉사했다.

그런데 그런 건 신경도 안 쓰인다. 아들이야 또 낳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다만 가문의 역사가 사라진 것에 대한 분노만 있을 뿐이다.

“으으! 으으으! 찾아라! 대체 누가 이따위 짓을 했는지!”

“존명!”

공작의 명을 받은 휘하 마법사들이 재빨리 흩어진다. 이럴 땐 가까이 있다가 벼락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하나만은 그럴 수 없다. 공작의 측근 중의 측근, 심복 중의 심복인 리만 시종장이다.

“리만!”

“네, 공작님.”

한쪽에선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고 몇몇 곳에선 잔불이 다시 일고 있다. 분노에 찬 눈빛으로 이를 바라보는 공작은 시선도 돌리지 않는다.

“누구의 소행인 것 같은가?”

“소인의 생각엔 최근 나타난 10서클 거수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10서클 거수자?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지 않아도 정체를 알 수 없는 10서클 거수자가 수도를 향해 다가오고 있음을 보고받은 바 있다.

영주 선발대회가 개최되는 바람에 잠시 논점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심각한 문제로 다루고 있었다.

“저택을 보십시오. 크고 웅장하던 저택을 한순간에 저렇게 만들 마법이 뭐가 있을까요?”

“……!”

9서클 궁극 마법엔 미티어 스트라이크가 포함되어 있다. 그걸 쓰면 운석이 소환되어 모든 것을 부순다.

그런데 이 마법은 광역 마법이다. 그리고 이처럼 정확히 목표물만 파괴할 수는 없다.

이 밖에 라이트닝 퍼니쉬먼트가 있는데 이 마법으론 건물을 부술 수 없다.

파이어 퍼니쉬먼트도 불만 지를 뿐이다.

윈드 퍼니쉬먼트라면 건물이 약간은 파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무너지진 않는다.

마지막으로 어스 퍼니쉬먼트가 있는데 지진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9서클 마법은 아니다.

“소인이 알기에도 9서클 마법으론 저택을 이렇게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윈스턴 공작가의 저택은 탄탄하기로 이름난 건축물입니다.”

“그렇지.”

“그런데 보십시오.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소인의 생각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10서클 마법 때문인 듯합니다.”

“흐음! 10서클이라…….”

9서클 마스터가 된 이후 두렵다는 기분을 느껴보지 못했다. 그런데 문득 소름이 돋는다.

10서클은 황제조차 올라가 보지 못한 경지이다. 그렇기에 붙으면 진다는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겁이 난 것이다.

“수도에 비상령을 내린다! 모든 마법사를 풀어 거수자 색출에 나서도록 하라!”

“존명!”

윈스턴 공작가의 시종장 리만은 허리를 직각으로 꺾고 물러났다. 그런 그의 의복은 파란색이다. 견장 수술도 달려 있고 비스듬한 띠까지 두르고 있다.

제국의 백작이라는 뜻이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이가 있다. 오늘 오후 이 저택을 예방한 핫산 브리프 공작이다.

현수의 손에는 망원경이 들려 있다. 1㎞ 이상 떨어진 거리인지라 육안으론 보이지도 않는다. 게다가 밤이다.

“그게 욕심 부린 자의 말로야.”

나직이 중얼거린 현수는 물러났다.

“그나저나 오늘 엄청 챙겼네. 이제 다음 집으로 가볼까.”

현수의 아공간엔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가 추가되었다. 윈스턴 공작가 지하의 보물창고를 몽땅 턴 때문이다.

그중엔 300여 년 전 케리 본이치 공작이 준 10톤의 황금도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별로도 포장되어 있었는데 그 위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케리 본이치 공작이 바친 공물》

백제에서 제작된 칠지도는 왜왕에게 하사되었다. 참고로, 하사(下賜)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것이다.

이것은 광개토대왕비와 더불어 고대 일본과 한반도의 관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하지만 표면이 부식되어 일부 글자는 판독이 어렵다.

일본에선 이를 교묘히 악용하여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

이것은 4세기 후반에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왜가 진출하여 백제와 신라, 그리고 가야를 지배했다는 것이다.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日本府)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지배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내용은 현재 일본 교과서에 수록되어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편견과 우월감을 조장하고 있다.

알리 브앙카 공작은 케리 공작으로부터 받은 황금을 따로 포장해 놓고 상당히 애매한 표현을 해놓았다.

후세에 누군가가 케리 본이치 공작가에 대한 우월감을 표현할 때 증거로 쓰라는 의도이다.

참으로 일본 놈 같은 자이다.

그런데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하게 되었다. 모조리 현수의 아공간 속에 담겨 버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상당량의 금은보화가 딸려왔다. 부피로만 따지면 40피트 컨테이너를 두 개나 가득 채울 양이다.

참고로 규격이 약 12m×2.3m×2.4m인지라 가득 채우면 약 66.24㎥나 된다.

금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약 2,556톤이나 된다.

* * *

펑! 퍼엉! 퍼퍼퍼펑―!

로렌카 제국 수도 맥마흔의 밤하늘에 화려한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있다.

백두마트를 털 때 창립 기념행사에 쓸 폭죽이 딸려왔는데 아주 유용하게 써먹는 중이다.

세 개 점포에서 가져온 것이라 상당히 양이 많았는데 그중 3분의 1을 썼다. 나머지는 아드리안 왕국 선포일과 이실리프 왕국 선포식에 쓸 것이다.

어쨌거나 느닷없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벌어지자 맥마흔의 거의 모든 주민이 밖으로 나왔다.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한 진귀한 불꽃놀이를 어찌 안 보겠는가!

펑! 퍼펑! 퍼퍼펑!

화르르! 화르르르!

붉고, 푸르고, 하얗고, 노랑과 초록, 연두, 그리고 주황과 보라색이 환상적으로 섞여 있다.

이것을 제대로 보려면 가까운 언덕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래야 간신히 보일 수 있는 곳에서 불꽃이 터지는 중이기 때문이다.

“흐음! 이 상황에 집에 있으면 이상한 거지? 그래도 최종 확인은 한다. 와이드 센스!”

고오오오오―!

마나가 뿜어져 거대한 저택의 내부를 샅샅이 훑는다.

예상대로 아무도 없다. 터번스 백작은 아마도 윈스턴 공작가의 변고 소식을 듣고 달려가 자리를 비웠을 것이다.

“아공간 오픈! 입고!”

현수의 입술이 달싹이자 거대한 저택이 통째로 아공간 속으로 빨려든다.

9서클 마스터인 에단 듀크 후작으로부터 승리를 취할 때 사용한 멀티 스토리지 마법을 연구하면서 아공간 마법을 가일층 발전시킨 결과이다.

베르사유 궁전보다도 큰 거대한 저택이 주춧돌까지 모조리 아공간에 담겼다. 저택 내부에 있던 금은보화는 물론이고 모든 예술품과 문서들까지 모조리 빨려들어 갔다.

물론 아까 지불한 700만 골드에 상응하는 전표 역시 딸려갔다. 이로써 터번스 백작은 맥마흔의 재산뿐만 아니라 드마인 영지까지 잃은 것이다.

“대(代)는 다음에 시간 날 때 끊어주지. 아마 오늘 잃어버린 걸 잊기 전이 될 거야.”

* * *

“핫산 브리프 경(卿)!”

“네!”

현수는 자신을 호명한 황태자를 바라보았다.

늙은 황제는 베일 뒤쪽 의자에 앉아 있다. 황제를 대리하여 황태자가 집전하는 작위식인 것이다.

“그대 핫산 브리프는 로렌카 제국의 공작으로서 황실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겠는가?”

“네, 맹세합니다.”

현수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주었다. 다프네만 구할 수 있다면 고개쯤은 백만 번도 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슈레이만 로렌카는 로렌카 제국의 황태자로서 지엄하신 황제폐하를 대리하여 그대에게 공작위를 하사하려 한다. 받겠느냐?”

“네, 받겠습니다.”

“폐하의 스태프를 대령하라!”

“네, 전하!”

황태자의 명이 떨어지자 흰 제복을 걸친 황실 시종장이 뒤쪽의 황제로부터 황제의 스태프를 받아 온다.

철보다 단단하여 철심목이라 불리는 나무의 가지에 주먹보다도 큰 특급 마나석을 박은 스태프이다.

“이제 작위식을 거행하겠다. 핫산 브리프는 어전에 무릎을 꿇어라.”

“네!”

현수는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황제의 스태프가 머리 위에 얹힌다.

“나 슐레이만 로렌카는 금일 핫산 브리프에게 공작위를 내리노라. 제국에 충성하는 새로운 가문이 되길 바라노라.”

“황태자 전하의 금언,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진중한 음성으로 작위를 내렸고, 그걸 받았다. 생각보다 간단했지만 분위기는 몹시 엄숙했다.

빠빵! 빠빠빠빠빠빵―!

대기하고 있던 악사들이 장중한 음을 뿜어낸다.

“다음 라인리히 후마네 경, 앞으로 오라.”

“네!”

현수에 이어 라인리히 후마네가 작위를 받았다.

똑같이 영주 선발대회를 거쳐 공작이 되었건만 훨씬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는 느낌일 것이다. 속은 어떤지 몰라도 겉으론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있다.

공작들에 대한 작위식이 끝난 후 다섯 명의 신임 후작에 대한 작위식도 순서에 따라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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