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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156화 (1,155/1,307)

# 1156

쉬익-!

당연히 조금 전보다 위력이 약해져 있다. 방금 전 좌에서 우로 그었다면 이번엔 우에서 좌로 긋는 수법이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났던 라세안은 검이 표적을 놓치자마자 두 걸음을 다가가 조금 전에 찬 어깨를 다시 찼다.

3장 당신은 누구십니까?

퍼억-!

“크아악!”

빠졌던 어깨가 강제로 다시 맞춰졌다. 그 고통은 안 당해본 사람은 알 수 없다. 어쨌거나 기사는 비명을 질렀다.

너무나 아파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빠진 어깨가 다시 끼워진 걸 느끼곤 다시 검을 쥐었다.

“야아압!”

퍼억! 우당탕탕-!

“흐윽!”

검을 휘두르면 한 번씩 맞아서 자빠지거나 엎어졌다.

때론 구르기도 했다. 그렇게 십여 번이 계속되자 그제야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공격을 멈춘다.

그렇다 하여 검을 놓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라세안을 겨눈 채 눈치를 보고 있다.

이때 저쪽에서 달려오는 일단의 무리가 있다.

우다다다! 우다다다다!

“여, 영주님!”

기사는 정문에 침입자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 파이젤 백작이 기사들을 이끌고 달려온 것으로 착각했다.

“여기 수상한 놈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껏 막고는 있었지만 너무나 강합니다.”

말을 마친 기사는 동료 기사들에게 눈짓했다. 강한 놈이니 주의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무도 검을 뽑지 않는다.

뿐만이 아니다.

털썩-!

“콘트라의 영주 파이젤 그루 폰 콘트라가 위대한 존재를 알현하옵니다!”

“콘트라의 기사 윌리엄이 위대하신 분을 뵈옵니다!”

“콘트라의 기사 토리가 위대하신 분을 알현하옵니다!”

“콘트라의 기사 헉슬리가 위대하……!”

동료 기사들까지 모두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는 모습을 본 기사는 넋이 나가 버렸다.

“그, 그럼……? 끄응!”

털썩-!

결국 지금까지 라세안에게 얻어터지던 기사는 혼절하고 말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구원의 손길을 베풀지 않는다.

지금은 그럴 타이밍이 아닌 것이다.

“영주, 나는 하인스를 찾아왔다. 어디에 있는가?”

“마, 마탑주님께서는 어제 이곳을 떠나셨습니다.”

“떠나? 어디로?”

“블랙일 아일랜드라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어디? 블랙일 아일랜드?”

“네, 어제 마탑주께서 검은별의 전설호를 타시고…….”

잠시 파이젤 백작의 보고가 이어진다. 라세안을 별다른 맞장구 없이 전후 상황을 모두 들었다.

“그럼 블랙일 아일랜드로 가는 배를 마련하라.”

뒤따라가 합류하려는 의도이다.

“그건… 죄송합니다. 블랙일 아일랜드는…….”

또 파이젤 백작의 설명이 이어진다.

하인스가 떠난 후 백작은 콘트라의 기항에 있는 모든 배의 선장을 불렀다. 그리곤 블랙일 아일랜드의 위치를 물었다. 병사들을 이끌고 따라가려는 의도였다.

이는 국왕의 명령이다. 그런데 아무도 그곳의 위치를 모른다. 어떤 자는 배를 50년이나 탔지만 블랙일 아일랜드라는 명칭은 처음 듣는다며 진짜 그런 섬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끄응!”

라세안은 나지막한 침음을 냈다. 협곡을 벗어나 분탕질을 치던 트롤들만 없었다면 제시간에 도착했을 것이다.

숫자도 많았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놈들을 단속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 결과가 하루 늦게 당도한 것이다.

“그럼 방법이 없다는 건가?”

“죄송합니다. 현재로서는…….”

“끄응!”

라세안이 대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파이젤 백작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연다. 어떻게든 진정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마탑주께서 가셨으니 곧 돌아오시지 않겠습니까? 오시면 이쪽으로 오실 것이니 예서 기다리는 건 어떠신지요?”

“여기서?”

“네, 제가 모시겠습니다.”

파이젤 백작은 저도 모르게 내뱉은 이 말로 본인의 거처를 잃었다. 라세안에게 자신의 침실을 내준 것이다.

그리곤 매일 극진하게 대접했다.

혹시라도 화가 나서 화염의 브레스라도 한 방 뿜으면 콘트라는 작살나기 때문이다.

그게 지난 2월 21일에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오늘은 4월 30일이다. 벌써 두 달이 넘는 기간이다.

그동안 콘트라의 재정은 말도 안 되게 줄어들었다. 매일매일 융숭하게 대접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조금만 실수해도 안 된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하여 영주성의 모든 사람은 극도의 긴장 속에서 살았다.

레드 드래곤은 성정이 사납고 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번 화를 내면 흉포하기 이를 데 없어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박살 낼 것이다.

그렇기에 매사 조심조심하면서 지냈다.

그 때문에 파이젤 백작은 비롯한 거의 모두의 눈 아래엔 짙은 다크서클이 형성되어 있다.

마음고생이 너무 심한 탓이다.

“제가 그분의 아내가 돼요?”

“그래, 넌 장차 이실리프 마탑주의 부인이자 이실리프 왕국의 왕비가 된다. 그러니 옥타누스라는 이름을 가져도 된다. 어떠냐? 좋지?”

“네? 네에.”

다프네는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다.

너무나 좋아서 환호성을 터뜨리고 싶지만 라세안이 있으니 그러면 안 된다. 아무리 자식이라고 해도 번거롭게 굴거나 화를 돋우면 가차 없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그 친구는? 왜 너 혼자 왔지? 하인스는 어디에 있느냐?”

“네? 아, 하인스 님은…….”

다프네의 길고 긴 설명이 끝나자 라세안은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9서클 마스터급 마법사가 100명 이상 있는 나라가 있다는 데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드래곤 로드조차 가급적이면 9서클 마스터는 건드리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데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그들에 의해 하인스가 완전히 에워싸여 있었다고 한다.

“그, 그럼……. 아무리 10서클 마스터에 그랜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그렇게 많으면……. 으음!”

라세안은 낮은 침음을 토했다. 본인도 자신이 없는 절지에 있다니 저절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이곳으로 온 것이냐?”

“저는 하인스 님이 주신 펜던트의 줄을 뽑아서…….”

“펜던트? 그거 이리 줘봐라.”

“네, 여기.”

지금껏 손에 꼭 쥐고 있던 펜던트를 건네는데 마나석의 색깔이 바뀌어 있다.

“어라? 이거 왜 이러죠? 원래는 진한 보라색이었는데 거의 투명해요.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된 거죠?”

“그건 초장거리 텔레포트를 하느라 담겨 있던 마나가 모두 소진되어 그렇다. 그나저나, 흐음, 이 친구 솜씨가 점점 일취월장하고 있군. 대단해. 정말 대단해.”

라세안은 펜던트에 그려진 복잡다단한 문양을 보며 계속 고개를 끄덕인다.

현수가 그려놓은 텔레포트 마법진을 살펴보니 이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바뀌었다. 마나 사용량이 이전에 비해 7분의 1 정도 절약되는 것이다.

“흐음! 이건 체인 라이트닝이군. 호오! 이건 마나집적진? 이건 오토 리차지? 이 친구, 이거 정말 대단하군.”

보통 드래곤들은 마나석에 담겨 있는 마나가 모두 소진되면 버린다. 그런데 현수는 다 쓴 마나석을 재사용하도록 만들었다.

드래곤으로선 생각지 않던 방법이다.

“어라, 이건…….”

라세안은 또 하나의 마법진을 발견했다.

“이 친구는 정말……. 과연 10서클 마스터답네.”

텔레포트를 함과 동시에 남는 마나 유동에 간섭을 일으켜 어디로 갔는지를 파악할 수 없도록 하는 마법진을 보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다프네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도록 하여 안전을 도모한 것이다.

“다프네, 네 남편은 정말 이 세상 모든 존재 중 가히 최고라 할 수 있다.”

“……!”

자세한 설명 없이 이렇게 말하니 뭐라 대꾸할 수 없어 눈만 크게 뜬다. 가능하면 설명해 달라는 뜻이다.

“이걸 보거라. 여기 이건…….”

라세안은 자애로운 아버지처럼 펜던트에 담긴 안배에 대해 설명해 준다. 다프네는 물론이고 곁에 있던 파이젤 백작까지 감탄을 금치 못한다.

“아! 그분께서…….”

“역시 마탑주님이시군요.”

“그래, 그런데 그 친구가 위기에 처한 것 같군. 문제는 거기가 어딘지 모른다는 거지. 끄응!”

“라이세뮤리안 님! 혹시 검은별의 전설호가 귀항하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백작의 말에 라세안이 눈을 번쩍 뜬다.

“그렇지! 그 배가 오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겠군.”

라세안은 파이젤 백작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좋은 생각이라는 의미이다.

백작은 상급자에게 칭찬받은 기분인지 웃고 있다.

“근데 언제 올지 모르니 문제일세.”

“네, 그건 그렇죠.”

“흐음! 일단 병사들을 모으게. 수도의 국왕에게 연락하여 아드리안 왕국의 최상급 기사들을 이곳으로 결집시키게. 아울러 검은별의 전설호가 오면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배도 징발해 놓고.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하인스 마탑주를 돕는 건 아드리안 왕국의 의무이다. 하여 당연한 말이라 생각하기에 백작은 즉시 허리를 꺾는다.

“좋아, 나는 나대로 조치를 취하지. 그동안 편안했네.”

“네? 어딜 가십니까?”

“나는 미판테 왕궁엘 다녀오겠네. 그쪽에서 데려올 아이들이 있거든.”

라세안은 직계 자손인 드래고니안들을 데려올 생각이다. 그리고 간 김에 미판테 왕궁을 들르려 한다.

“아, 그러십니까?”

백작의 말에도 라세안은 대꾸하지 않는다. 다프네에게 시선을 옮긴 때문이다.

“그나저나 다프네야, 네 옷이랑 장신구, 그건 다 뭐니?”

“아! 이거는요, 제가 거기 있을 때…….”

잠시 다프네의 설명이 이어진다. 로렌카 제국에서 30년에 한 번씩 벌어지는 영주 선발대회에 관한 이야기이다.

핫산 브리프 공작에 의해 선택을 받고 나자 시중들어 주던 시녀들의 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마치 다프네가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것처럼 생생하게 설명한 것이다.

이는 핫산 브리프가 단연 화제의 중심에 있었기에 일거수일투족이 소문이 되어 전해진 때문이다.

“와아! 세상에, 9서클 마스터를 겨우 블링크와 아공간 마법으로 제압하셨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파이젤 백작은 입을 딱 벌린다.

오로지 저서클 마법만 구사하여 고서클 마법사들을 농락한 이야기는 과연 전설이 될 만하다 느낀 때문이다.

실제로 현수가 핫산 브리프 공작이 되어 마인트 대륙에 살았다면 이번 영주 선발대회는 영원한 전설이 되었을 것이다. 상식을 깨는 전무후무한 일이기 때문이다.

“허어! 윈드 필드 속에 윈드 커터를 섞다니…….”

마법의 조종인 라세안 역시 감탄을 금치 못한다. 단순한 역발상으로 얻은 성과가 아닌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놓치고 있지만 윈드 필드 속에 윈드 커터를 섞는 것은 극도로 정교한 마나 조절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간혹 연기로 도넛을 만들어낸다. 연기를 머금은 채 볼을 톡톡 두드리며 슬쩍 숨을 내쉬면 계속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만든 두 개의 도넛을 마치 쇠사슬처럼 엮이게 만드는 것이 바로 윈드 필드 속에 윈드 커터를 구현시키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당연히 어렵다는 뜻이다.

다프네로부터 남작위 제1대결부터 공작위 최종 대결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라세안과 파이젤 백작은 과연 마탑주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저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쥘 정도로 실감나게 표현한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내가 칭찬받는 것이 기분 좋은지 열변을 토한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났다.

“정말 대단하군. 이야기책에 나올 만한 일이야.”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프네 옥타누스 폰 라수스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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