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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160화 (1,159/1,307)

# 1160

체온을 낮추면서 신진대사 기능을 극도로 느리게 제어하는 마법이다.

이 상태에서 오토 리차지 마법진은 마나를 모았다. 원래대로라면 며칠이면 컴플리트 힐을 쓸 만큼 모여야 했다.

그랬다면 부상을 입은 모든 부위가 말끔하게 치료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수의 체내와 켈레모라니의 비늘이 텅 빈 상태라 이걸 같이 채웠다. 문제는 이걸 채우는 데 필요한 마나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컴플리트 힐은 구현되었다.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을 뿐이다. 만일 스승인 멀린이 신진대사를 늦추는 메타볼리즘 딜레이(Metabolism delay) 마법을 만들어놓지 않았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감사를 표해야 할 일이다.

아무튼 긴 시간이었지만 현수에겐 여러모로 유익했다.

우선은 심각한 부상이 말끔하게 치유되었다. 다음은 휴먼하트와 켈레모라니의 비늘에 마나가 완충되었다.

마지막 한 번 더 신체가 재구성되었다. 이는 신진대사가 극도로 늦춰지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덕분에 전에도 완벽했지만 이번엔 더욱 완벽해졌다.

수명은 약 200년가량 더 늘어났다. 하여 1,500살까지 살게 되었다. 남들에 비해 월등히 긴 수명인데 좋은 건지 아닌지는 살아봐야 알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많은 이별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들은 물론이고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와 손녀 등이 모두 본인보다 먼저 세상과 작별하게 될 것이다.

“끄응! 몸이…….”

아무리 신진대사를 늦췄다 하더라도 에너지 소모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여 현수의 몸은 완전히 말라 있다.

일단은 적절한 섭생이 필요할 듯하다.

“아공간 오픈!”

물을 꺼내 한 모금을 들이켰다. 그리곤 노트북을 꺼내 부팅을 시켰는데 켜지지 않는다.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모양이다.

“으응? 이게 왜 이러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현수가 반쯤 식물인간 상태로 있던 기간은 정확히 2년 하고도 8개월 21일이다.

방전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현수는 이런 사실을 모르기에 고개만 갸우뚱거리곤 음식을 꺼내 먹었다. 그리곤 수면을 취하려 했다.

그런데 잠이 오겠는가!

눈을 감아보지만 말똥말똥하기만 하다.

할 수 없이 아공간의 서적들을 꺼내 읽었다. 우선은 로렌카 제국 황태자 서고에 있던 2,000여 권의 마법서이다.

적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놈들! 반드시…….”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다. 드래곤 하트 두 개 분량의 마나를 모두 썼지만 차륜전을 이겨내지 못했다.

마지막엔 온몸을 걸레 짜듯 쥐어짜는 듯한 극심한 피로까지 느꼈다. 그랜드 마스터가 된 이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극도의 피로감이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정신력이 없었다면 단번에 고꾸라져 깊은 잠에 빠져들 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이제 적의 마수로부터 빠져나왔다. 철저히 준비하여 작살을 내줘야 한다. 하여 현수는 이를 갈며 마법서들을 살폈다.

그러던 중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다시 아공간을 뒤졌다.

예상대로 터번스 백작의 저택 서고엔 상당히 많은 마법서가 있었다. 거의 1,000여 권이니 개인이 소장한 것치고는 엄청나게 많은 양이다.

두 곳의 마법서들을 비교하며 검토하던 중 알리 브앙카 공작이 남긴 비망록을 발견했다.

아르센 대륙을 최초로 방문한 마인트 대륙 사람이다.

그런 그의 3대손이 바로 윈스턴 브앙카 공작이고, 그의 사위가 바로 터번스 토리안 백작이다. 그렇기에 알리 공작의 비망록이 터번스 백작의 서가에 꽂혀 있었던 것이다.

현수는 이것을 읽던 중 분통이 터져 책을 집어 던질 뻔했다.

알리 공작이 아르센 대륙에서 영광의 마탑주를 죽이고 강탈해 간 마법서가 있었기에 로렌카 제국의 마법이 급속도로 발전했다는 내용 때문이다.

아르센의 마법은 마인트의 마법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런데 그들은 장차 아르센을 먹으려 한다.

그러기 위해 지난 300년간 죽은 인간의 시신을 거의 모두 모아두고 있다. 구울과 좀비로 쓰기 위함이다.

이는 사내들의 시신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여자들의 시신은 거의 모두 흑마법의 재료로 소모되었다. 그리고 흑마법사들을 위한 식량이 되었다.

사람의 고기는 다른 짐승들과 달리 간이 배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흑마법사들은 다른 고기보다 인육을 더 많이 먹는다.

그리고 여인의 시신 가운데 일부는 지극히 변태적인 대상이 되어 죽은 후에도 편히 쉬지 못하고 모욕당했다.

알리 공작이 기록한 비망록에 있는 내용이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 꼭 죽여야겠군.”

인간 말종의 집합체라는 것을 확인하곤 나직이 이를 갈았다. 이런 것들은 살려둘 이유가 없다 생각한 것이다.

어쨌거나 마법서들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마인트 대륙의 마법사 가운데 4서클 이상은 모조리 제거 대상이라는 것이다. 3서클까지의 마법은 아르센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으니 제거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다행이군. 싸미라의 부친 드마인 백작은 제거하지 않아도 되니.”

싸미라는 더할 수 없이 겸손하고 순종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여인이다. 그런 그녀의 부친이니 반드시 죽여야 할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좋아, 4서클 이상은 깡그리 갈아 마셔주지.”

마인트 대륙의 마법서들을 살핀 후엔 이실리프 마법서를 다시 한 번 탐독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앱솔루트 배리어를 구현시키지도 않았고 타임 딜레이 마법 또한 시전하지 않아 시간이 마냥 흘렀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거의 보름이란 시간이 지났다. 마인트 대륙에서 오토 워프된 지 2년 9개월 6일이 지난 것이다.

“이런 젠장!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꽤 많이 흘렀는데. 끄응! 집에서 엄청 기다리겠군.”

현수는 지현과 연희, 그리고 이리냐를 떠올렸다. 소식이 없었으니 몹시 궁금해할 것이다.

지구는 아르센 대륙과 달리 통신이 발달되어 있다. 그러니 어디에 있든 연락할 마음만 먹으면 금방 연결된다.

그럼에도 두 달이 넘는 동안 한 번도 연락을 안 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일단 차원이동부터 해야겠군.”

현수는 꺼내놓은 것들을 모두 아공간에 담았다. 그리곤 곧장 지구로 귀환했다.

“마나여, 나를 지구로…….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릉―!

바세른 산맥의 어느 깊은 동굴 속에서 현수의 신형이 스르르 흩어졌다.

* * *

“흐음! 왔군.”

이곳은 눈에 익다. 킨샤사에 소재한, 프랑스어로 Ville de l’Ange(천사의 마을)이라 불리는 곳의 옥상이다.

“연희는 잘 있겠지. 쩝! 너무 오랜만에 왔다고 혼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나직이 중얼거린 현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웬 여인의 음성이 들린다. 하여 움직임을 멈췄다.

“어머, 철아. 그러면 안 돼. 그러지 마.”

“히잉! 나 이거 갖고 놀고 싶단 말이야.”

웬 아이의 음성이 들린다. 현수가 계단참에서 슬쩍 고개를 내밀어보니 네다섯 살쯤 된 사내아이가 보인다.

“누구지? 누가 왔나?”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울이라면 모를까, 이곳은 킨샤사이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방문할 사람은 거의 없다.

“엄마는 우리 철이가 이러는 거 마음에 안 드는데, 철이는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릴까?”

“히잉! 그래도 이거 타고 싶단 말이야.”

“철이 어제도 그거 타다 떨어져서 다쳤잖아. 근데 또 타고 싶어? 오늘 또 아야 할 거야?”

현수는 대체 뭣 때문에 그러나 싶어 고개를 좀 더 빼보았다. 거기엔 네다섯 살쯤 된 아이와 조금 큰 자전거가 있다.

“싫어, 싫어! 나 이거 타고 싶단 말이야!”

철이라 불린 아이가 몸을 좌우로 흔든다. 이때 아이를 잡는 손이 있다.

“요 녀석, 잡았다. 이건 조금 더 커야 탈 수 있는 거야. 세발자전거도 있잖아. 그러니까 그거 타자. 응?”

“……!”

여인의 얼굴을 발견한 현수는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놀랍게도 아이의 엄마는 연희였다.

‘웬 아이지? 설마 나랑 결혼하기 전에 애를 낳은 거야? 그렇지 않고야 저렇게 큰 아이가 있을 수 없잖아.’

뇌리를 스치는 불길한 상념이다. 이때 뭔가가 이상한 점이 눈에 뜨인다.

‘헐! 왜 이렇게 날씬해? 임신 중이었는데. 지금쯤이면 배가 많이 불러야 하는데 어떻게 된 거지?’

현수는 자신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식물인간과 다름없는 상태였다는 걸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마인트 대륙에서 레어로 오토 워프된 후 불과 수 시간 만에 깨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수는 혹시 잘못 보았나 싶어 연희를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혹시 연희를 닮은 여인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런데 아니다. 연희 같은 미인은 또 있기 힘들다.

‘뭐지?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저 아이는 누구지? 왜 연희더러 엄마라 하지? 뭐야? 대체 뭐야?’

순식간에 수많은 상념이 뇌리를 스친다. 하지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내려가서 물어보자.’

생각을 정리한 현수는 계단을 딛고 아래로 내려갔다.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던 연희의 움직임이 그대로 멈춘다.

“…세, 세상에! 자기야!”

“잘 있었지?”

현수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두어 달 만에 온 것이라 생각한 때문이다.

“뭐라고요? 대체… 대체 어디에서 뭘 했기에… 3년이 넘도록 연락 한 번 없었던 거예요?”

“3년? 3년이 넘었다니?”

“뭐예요?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몰랐단 말이에요?”

연희는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이때 아이가 치맛단을 잡고 묻는다.

“엄마, 이 아저씨 누구야?”

현수는 방금 들은 말이 있기에 아이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을 닮은 것 같다.

“설마… 이 아기가……?”

“철아, 인사드려. 아빠야.”

“아빠? 정말 아빠? 정말 아빠가 오신 거야?”

아이는 반색하며 눈빛을 반짝인다.

“그래, 네 아빠다. 3년이 넘도록 연락 한 번 없던.”

연희는 문득 화가 났다.

현수가 어디가 아주 심하게 아프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매일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너무나 멀쩡하다. 게다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는 듯 천연덕스런 모습이다.

“정말 3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거야?”

“설마 세월 가는 것도 몰랐단 말은 아니겠죠? 내 속을 새까맣게 다 태워놓고… 흐흑! 흐흐흑!”

“아저씨! 엄마 울어. 어디 아야 했나 봐. 호 해줘.”

“응? 그래, 그래. 알았어.”

연희를 달래기 위해 다가서자 와락 품에 안긴다. 그리곤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린다.

“아앙! 나는, 나는 자기가 잘못된 줄 알고, 흐흑! 흐흑! 대체 어디에서 뭘 했기에… 흐흑! 나 같은 건 잊은 줄 알고… 흐흑! 흐흐흑! 미워요. 흐흐흑!”

“미안, 미안. 정말 몰랐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거든. 미안해. 정말 미안해.”

“흐흑!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어디 많이 아팠어요? 다친 덴 없는 거죠? 그죠? 흐흐! 난 자기가 너무 걱정돼서… 흐흑! 정말 미칠 뻔했어요. 흐흐흑!”

“이런…….”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연희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걱정해 주었다. 그런데 아무런 연락도 안 했다. 그러고 보니 출산도 혼자 했다.

부모님께서 계시기는 하지만 남편과는 다르다. 얼마나 서운했을지 생각하니 진짜 미안하다.

하여 연희를 꽉 껴안고 등을 다독였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뭐라 할 말이 없네. 미안해.”

이때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는 손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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