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6
“아, 저거요? 저희는 저걸 미라클 라이스라 부릅니다. 수확량이 기존 벼의 열 배 정도입니다. 맛도 아주 좋고요.”
확실히 성녀와 함께 종자 개량을 한 그것인 모양이다.
“3모작을 하나요?”
“네, 그렇긴 한데 지력을 고려하여 감자, 벼, 사탕수수 순으로 3모작을 합니다.”
“감자를 심었다 수확하고, 거기에서 쌀을 수확한 뒤엔 사탕수수를 심는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그래야 지력이 저하되는 걸 줄일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노에디아가 애쓰고 있음을 모르기에 이런 방법을 쓰는 모양이다.
그렇기에 현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감자와 사탕수수도 필요한 작물이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타고 둘러본 농작물 경작지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지평선 끝까지 모두 싱싱한 식물이 재배되고 있다.
중간중간에 위치한 저장 창고의 규모 또한 엄청나다. 곡물을 가공하는 공장에선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인상적이군요.”
생각보다 도로와 농지 등이 훨씬 잘 정비되어 있다.
인상적이라 한 것은 이것들이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손실이나 낭비를 최대한 줄이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효율 극대화를 꾀한 일종의 계획 농업 및 축산 등이 진행되는 현장이라는 말이다.
“일하시는 분들은 어떻답니까? 불만사항이나 요구사항 같은 건 없나요?”
“있지요. 왜 없겠습니까.”
관리인은 갓 채용된 원주민이라 현수가 누군지 모른다.
사무실마다 사진이 걸려 있기는 하지만 대충 보았기에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라는 느낌만 있을 뿐이다.
어쨌거나 이 관리는 행정수반으로부터 내려온 지시에 따라 안내를 맡았을 뿐이다. 그렇기에 속사정을 털어놓는다.
“공급이 원활치 않은 각종 생필품이 조금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들어왔으면 합니다. 그리고 학교 수업을 개선시켜 달라고 합니다.”
권철현 행정수반의 말에 따르면 반둔두 자치령 내의 거주자 숫자는 약 200만 명이다.
콩고민주공화국 원주민 160만 명과 한국 등지에서 온 이주민 40만 명이다.
원주민은 주로 농업과 축산업 등에 투입되어 있고, 한국 등지에서 온 이주민들은 가공업 등 기타 산업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자치령을 건설할 때 최우선적으로 진행한 것은 거주민들을 위한 주택과 농지 개발, 그리고 축산단지 건설 등이었다.
대단히 넓은 지역이라 많은 사람이 투입되었음에도 아직도 다 개발된 것은 아니다. 이러니 각종 생필품을 생산하는 공장들까지 모두 갖추진 못했다.
현재는 한국 등으로부터 수입하여 공급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생필품 수입 물량을 늘려달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이는 현수의 오해이다.
각종 생필품은 필요한 만큼 충분히 공급되고 있다.
방금 전 관리가 부족하다 한 것은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뜻하는 말이다. 대중교통 수단까지 완비된 것이 아닌지라 이동 수단이 필요한 것이다.
자치령 사람들의 평균 급여는 약 100만 원이다.
그럼에도 불만이 없다. 워낙 물가가 싸기 때문에 한국에서 월 1,000만 원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정도면 충분히 먹고살 만하다.
게다가 자치령에선 주거를 제공한다. 가족 수에 따라 평형만 다를 뿐이다.
임대보증금 같은 건 없다.
다만 감가상각을 고려한 사용료는 받는다. 32평형 아파트의 월 임대료는 고작 5만 원 정도이다.
전기는 곳곳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 설비에서 공급되므로 이 또한 무상에 가깝다.
대한민국 가정에서 월 350㎾h의 전기를 사용한다면 매달 약 6만 5,000원을 내야 한다.
그런데 이곳 반둔두 자치령에서 같은 양의 전기를 사용할 경우 내는 비용은 겨우 2,000원 수준이다.
3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금액이다.
태양광 발전 설비의 감가상각비를 고려하지 않았다면 이마저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가정에서 사용하는 평균 가스 양은 약 103㎥이며, 요금은 약 10만 4,000원이다. 겨울에 보일러를 가동하는 경우가 포함된 평균치이다.
반둔두에서는 이보다 훨씬 적은 양을 사용한다. 가정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10㎥를 넘겨 사용하는 가정이 드물다.
이럴 경우 약 1.200원을 사용료로 납부한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8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비용도 가스관 유지 보수비용의 일환이다. 따라서 가스는 무상 공급되는 셈이다.
상수도 역시 100% 무료이다. 수자원이 풍부한 지역인지라 따로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다. 다만 하수도의 경우엔 처리 비용을 청구하는데 이 역시 매우 적은 금액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약 100분의 1이다.
소위 다운타운이라 불릴 만한 곳엔 주민들을 위한 펍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이 있다.
한국에서는 맥도널드 빅맥 세트와 베이컨 토마토 디럭스 세트를 배달시킬 경우 각각 6,100원과 7,100원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같은 품질의 햄버거를 다운타운에서 먹을 경우엔 각각 120원과 130원을 내면 된다.
50분의 1도 안 되는 진짜 저렴한 가격이다.
이때 사용되는 식재료는 싱싱 그 자체이다. 유기농 채소와 신선한 쇠고기가 쓰인다.
아웃백이나 빕스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배불리 먹는 것처럼 먹어도 200원을 넘지 않는다.
자치령 정부에서 주민복지를 위해 신선한 쇠고기와 야채를 거의 무상으로 공급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문을 살펴보면 초등, 중등, 고등학교 과정까지 모두 무상 교육이다. 물론 급식비 포함이다.
그런데 한국의 어느 지역에선 가난한 것을 증명해야 무상 급식을 제공했다. 소위 ‘가난 증명’이라는 걸 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01. 서민 자녀 교육 지원 사업 신청서
02. 소득 재산 신고서
03. 금융 정보 제공 동의서
04. 개인 정보 수집 이용 조회 제공 동의서
05. 개인 정보 제공 동의 및 미성년자 법정 대리 동의서
06. 고용 임금 확인서, 또는 일용 근로 소득 사실 확인서
07. 소득 금액 증명원
08. 사업자등록증
09. 건강보험료 납부영수증, 또는 부과 내역서
10. 지방세 세목별 과세 증명서
11. 임대차 계약서 사본
12. 차량 보험 가입 증서 사본
13. 예금 잔액 증명서(예금, 적금, 보험 등)
14. 부채 증명원(금융기관 대출금 확인)
이를 본 한국의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 무지한 놈이 신념을 가지면 위험하다! 》
따라서 ‘욕먹는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는 헛소리나 지껄이는 자질도 없는 자에게 함부로 권력을 쥐어주는 바보 같은 짓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어쨌거나 자치령에선 고등학교까지 완전 무상이다.
다만 대학교육 이상은 수업료가 있다. 무분별한 진학을 막기 위해 한 학기당 약 40만 원을 받는다.
급여 평균이 100만 원이니 자치령 물가에 비하면 엄청 비싼 금액이다. 한국에서처럼 자질도 없음에도 무조건 진학하지 말고 꼭 필요한 사람만 배우라는 뜻이다.
자치령은 한국처럼 경쟁적인 줄 세우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험을 봐도 석차를 매기지 않는다. 성적은 본인이 어느 정도 성취를 했는지 파악하기 위한 자료로만 쓰인다.
대신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저마다 가진 소질을 계발하여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보조한다.
학교를 마치면 누구나 취업할 수 있다.
당연히 급여는 직종에 따라 다르다. 직업을 갖기 위해 필요한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대한 차이는 인정한 것이다.
다만 가장 낮은 급여를 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생활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수준은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공부를 계속하려는 자들은 시험을 치른다. 이것을 통과하면 다시 무상교육이 실시된다.
자치령의 두뇌들이기 때문이다. 하여 급여도 지불된다. 다시 말해 돈을 받으면서 공부를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처우는 당연히 일반인보다 낫다.
어쨌거나 자치령은 이제 직업 및 주거가 안정된 상태이다. 게다가 극빈자 층이 없는 이상적인 사회이다.
하여 일종의 마이카 붐이 일고 있다.
한국으로부터 계속 수입하고 있지만 아직 수요를 충분히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실리프 모터스의 생산력이 아직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수가 보기에 자치령 주민들은 활기찬 표정이다. 하긴 근심걱정이 거의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시찰을 마친 후 장인을 찾아뵙고 비날리아 지역의 현황에 대해 들었다. 이곳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장인은 일주일 단위로 반둔두와 비날리아 지역을 오가며 업무를 보고 있다. 김성률 통령과 맞교대하는 형식이다.
그곳에도 이곳과 비슷한 규모의 저택이 지어져 있다고 한다. 다만 습도가 높은 지역이라 한옥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요? 뭐 현대식 건물도 괜찮죠. 참, 어젯밤에 지현이 왔습니다.”
“오! 그래? 현이도 데리고 왔는가?”
“그럼요. 이따 장모님과 함께 킨샤사로 오십시오. 아버지가 장인어른과 한잔하고 싶다 하십니다.”
“그래? 그거 좋지!”
술 좋아하는 장인인지라 단박에 얼굴이 환해진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는 뜻이다.
이곳에선 지엄한 행정수반 직을 수행하여야 하기에 마음 놓고 술을 못 마신 것이다.
“제가 좋은 술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장인어른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도 있으니 꼭 오십시오.”
바이롯 세트라 이름 붙인 활력증강제를 주려는 것이다.
“그럼, 그럼! 걱정 붙들어 매게. 꼭 가겠네. 그나저나 더 둘러봐야지?”
“네, 이번엔 차를 타고 돌아보겠습니다.”
“그래, 그러게.”
현수는 축산물 가공 공장도 둘러보았다.
신선육과 냉장육, 그리고 냉동육이 제조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위생상 문제가 없는가를 확인한 것이다.
육포와 소시지, 그리고 햄과 베이컨이 만들어지는 것도 살펴보았다. 그 밖에 상당히 많은 종류의 농·축산물이 깨끗한 환경 속에서 가공되고 있다.
농장 규모가 크기에 이런 공장이 수십 군데나 더 있다고 한다. 하긴 이곳의 규모만 해도 대한민국의 절반 크기이다.
따라서 가공공장이 많은 건 당연한 일이다.
모든 상표는 ‘이실리프 자치령’으로 통일되어 있다.
라벨을 읽어보니 제품의 생산 및 가공 과정 전부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가격표도 붙어 있다.
하여 인터넷으로 가격을 비교해 보았다. 한국에선 340g짜리 햄 한 캔의 가격이 1,690∼4,200원이다.
이실리프 자치령에서 생산된 것은 120원이다.
한국에서 팔리는 것 중 가장 저렴한 것의 약 14분의 1이며, 가장 비싼 것과 비교하면 불과 35분의 1이다.
거의 거저라 할 수 있는 값이지만 질은 국내산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못하지 않을 것이다.
내친김에 계란 가격도 비교해 보았다.
한국에선 60g짜리 특란 열 개의 소매가가 3,000원이다. 이곳에선 100원에 팔고 있다.
한우 등심 1등급 이상 1㎏의 국내 소매가는 72,000원이다. 이곳에선 같은 품질이 불과 1,200원이다.
돼지고기 삼겹살 1㎏의 국내 소매가는 19,800원이다. 이곳에선 겨우 1,000원에 팔리고 있다.
흰 우유 1,000㎖짜리 1팩의 국내 소비자가는 2,520원이다. 이실리프 자치령에서 생산된 것은 고작 60원이다.
계란은 30분의 1, 쇠고기는 60분의 1, 돼지고기는 20분의 1, 흰 우유는 40분의 1 가격이다.
이실리프 라면이라는 게 있어서 가격을 살펴보았더니 한 봉지에 불과 12원이다. 이 정도면 가격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흐음, 살기는 괜찮겠군.”
현수는 기분이 좋아졌다. 거저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렴한 물건 가격이 마음에 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