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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170화 (1,169/1,307)

# 1170

연말이 되자 이실리프 트레이딩의 전 직원은 화려한 파티 대신 회의실에 모여 숙의했다.

그 결과 자신들이 받은 보너스 3억 700만 달러 가운데 700만 달러를 내놓기로 했다.

리사와 해리먼 등도 기꺼이 동참했다.

이렇게 하여 조성된 1억 9,600만 달러는 노숙자들을 위한 기금이 되었다. ‘이실리프 자선재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뉴욕 외곽 오렌지카운티에는 워릭(Warwick)이라는 곳이 있다. 맨해튼의 북서쪽에 위치한 곳이다.

이곳은 부동산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다.

브루클린 지역의 Park Slope는 주택 평균가가 172만 달러이고, 비교적 싼 지역인 Sheepshed bay도 46만 달러이다.

이에 비해 워릭은 약 30만 달러이니 확실히 저렴하다.

윌슨과 에머슨 등은 조성된 기금으로 워릭의 부동산을 매입하여 이실리프 단지를 건설했다. 그 결과 1,000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아파트가 지어졌다.

미국 최대 도시인 뉴욕에는 약 6만 명의 노숙자가 있다. 이 중 2만 5,000명은 어린이 노숙자이다.

윌슨은 사람들을 고용하여 노숙자 가운데 재기 의지가 있는 자들을 선별했다.

이들에겐 거주지가 무상으로 제공되었다. 전기와 수도, 그리고 가스까지 이실리프 자선재단이 부담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일이 주어졌다.

뉴욕을 떠도는 각종 소문을 취합하여 보고하는 일종의 정보 길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실리프 트레이딩에서는 이들에게 매달 일정한 비용을 지급했다. 명칭은 ‘정보 수집비’이다.

이를 바탕으로 진짜와 가짜 소문을 구별하여 주식을 매입하고 매도했다. 그 결과가 현재의 이실리프 트레이딩이다.

* * *

“야! 너… 어휴! 왔으니 거기 앉아라.”

집무실에서 결재 서류를 뒤적이던 주영이 벌떡 일어선다.

“잘 있었지?”

“내 얼굴을 봐라! 이게 잘 있는 얼굴이냐?”

그러고 보니 주영의 얼굴이 예전과 사뭇 다르다.

한쪽 팔을 쓰지 못하던 무적 1등 수학교습소 선생일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때는 ‘피폐’라는 두 글자로 충분히 설명될 만큼 깡마른데다 볼품도 없었다. 수입은 적고 저축과 희망은 보이지 않던 시절이니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두둑하게 살이 올라 있고 얼굴엔 관록이 배어 있다.

3년간 산전수전, 그리고 공중전까지 모두 겪은 역전의 용사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전에는 티셔츠 쪼가리나 걸치고 있었는데, 지금은 반듯한 정장 차림이다. 배도 약간 나온 듯싶다. 전형적인 아저씨 몸매가 되어가는 과도기에 놓인 듯하다.

“보기 좋은데 뭘. 잘 있었구먼. 제수씨가 너무 잘해줘서 그러지?”

“시끄러! 일단 몇 대 맞고 시작하자.”

“워워! 폭력은 쓰는 게 아냐. 그리고 너, 나하고 싸우면 니가 지잖아.”

“시끄러! 그동안 내 속 썩은 생각을 하면… 어휴∼!”

주영은 화는 나지만 참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런 때엔 적절한 당근이 즉효이다.

“야, 이거 너 주려고 내가 가져온 거야. 한번 봐.”

말을 하며 가방 속의 것들을 꺼냈다.

처음엔 시큰둥하더니 보라색 액체가 담긴 플라스크 비슷한 것이 눈에 띄자 대번에 눈이 커진다.

“너, 그거……!”

“그래, 이실리프 바이롯 사장 하고 싶다며. 싫어?”

“싫기는, 당연히 아니지. 근데 뭐가 이렇게 많아?”

마나 포션 한 병에 바이롯 열다섯 병이니 많아 보이는 모양이다.

“음! 이건 Tremendously Vigorous Vigor Set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은 거야.”

“헐! 엄청나게 격렬한 정력 세트?”

주영의 눈빛이 대번이 번뜩인다.

현수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하여 조(兆) 단위의 돈을 쓰는 데 과장하여 경(京) 단위로 바뀌면 어떻겠는가!

완전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하여 대화할 때 가급적이면 과장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격렬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사업가로서 상품에 대한 파악을 마쳤다는 것이다.

“그럼 너무 적나라하니까 ‘Super Virrot Set’라 부르고 싶은 거야.”

“수퍼 바이롯, 이걸 먹으면 어떻게 되는 건데?”

“여기 이걸 먼저 복용하고…….”

마나 포션을 집어 든 현수의 설명이 이어지자 주영의 눈빛은 점점 더 매서워진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의 그것과 같다.

“그러니까 일단 이거부터 마셔봐.”

뿅―!

마나 포션이 담긴 플라스크의 코르크 마개가 빠지자 주영은 얼른 받아서 냄새부터 맡는다.

“흐음! 흐으으음! 하아!”

폐부를 시원케 하는 냄새에 눈을 지그시 감는다. 그리곤 단숨에 들이켠다.

꿀꺽꿀꺽, 꿀꺽―!

“캬아아―!”

“으이그, 술도 아닌데 캬는 무슨. 자, 이제 이거 마셔.”

바이롯 즙을 내밀자 이것 역시 단숨에 들이켠다.

“이제 남은 것은 이틀에 하나씩 마시면 1년간 변강쇠 소리를 들을 거다. 잔병치레도 안 하고.”

“고맙다, 친구야!”

주영은 그간 밤을 무서워했다. 은정이 아들을 낳고 난 이후 더욱 왕성해진 때문이다. 그런데 일이 워낙 많아 야근이 잦은데다 스트레스도 많이 쌓였다.

여기에 술자리까지 잦았다. 현수를 대신하여 이실리프 계열사 전부를 아우르는 임무를 맡은 때문이다.

이실리프 어패럴 박근홍 사장, 그리고 이실리프 모터스 박동현 대표, 이실리프 솔라파워 주윤우 사장 등은 주당이다.

이들에겐 어쩌다 한 번이지만 주영은 돌아가며 만나야 했기에 거의 매일 술집을 드나들었다.

당연히 정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밤이 무서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끝이다.

이건 100% 확신할 수 있다. 신혼여행 첫날 딱 한 병을 마시고 침실의 폭군이 될 수 있었다. 그런 걸 열다섯 병이나 받았다. 마음이 아주 든든하다.

하여 모처럼 환한 웃음을 짓는다. 이때 현수의 입술이 나직이 달싹인다.

“바디 리프레쉬! 리커버리!”

샤르릉! 샤르르르릉―!

두 개의 마법이 중첩되어 구현되자 주영의 눈 밑 다크서클이 스르르 사라진다. 다리가 묵직하던 느낌 역시 없어진다.

“와! 이거 정말 좋은데?”

마나 포션과 바이롯의 효능인 것으로 착각하는 듯 하지만 알려주진 않았다.

현수는 주영으로부터 계열사 전부에 대해 상세하게 보고를 받았다. 모두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다만 원료가 부족하거나 마법진이 없어서 더 이상 상품을 생산하지 못하는 게 많았다.

‘흐음, 일단 아르센 대륙엘 다녀와야겠군. 그전에 마법진부터 해결하자.’

주영의 집무실을 나선 현수는 영등포로 전화하여 마법진을 그려 넣을 스테인리스 철판을 주문했다.

앞으로도 엄청나게 필요할 것인지라 주문 물량은 10억 장이다. 이것의 납품 장소는 이실리프 상사 지하주차장이다.

다음으로 만난 사람은 황학동 농기구 가게 김 사장과 리어카 가게 이 사장이다.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엄청난 수량의 농기구를 주문했다.

이전엔 아르센 대륙에서만 사용할 것이었지만 이젠 자치령에서도 써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값이 후한 대신 솜씨 좋은 대장장이들이 제작한 것이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둘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황학동을 떠난 현수는 천지건설로 향했다.

3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활기찬 건 여전하다.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공사가 모두 순조롭기 때문일 것이다.

“김 부회장, 너무한 거 아냐?”

“죄송합니다.”

현수는 신형섭 천지건설 회장 사무실 소파에 앉아 있는 그룹 총괄 이연서 회장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진짜 괜찮은 거지?”

신형섭 회장이 걱정된다는 눈빛을 보낸다.

“네, 지금은 멀쩡합니다.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네. 우린 자네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정말 애를 많이 태웠네.”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회장님.”

면목이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자 이연서 회장이 다가와 와락 포옹한다.

“우리 연희, 과부되는 줄 알았네.”

“죄송합니다.”

“회장님, 우리 김 부회장을 보니 아주 건강해 보입니다. 이제 그만 심려 놓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래!”

이연서 회장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현수의 어깨를 두드린다.

“앞으론 진짜 몸조심하게. 경호원 붙여줄까?”

“아니,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자넨 우리 회사의 보물이네. 조금이라도 이상타 싶으면 바로 연락하게. 알았지?”

신형섭 사장의 말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전화를 넣지 않고 왔다면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제가 자리를 오래 비웠는데 그간 어떻게 일이 진행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일단 자네가 마지막으로 수주한 리우데자네이루 재개발 공사와 아제르바이잔 유화단지 건설공사는 순조롭네. 잉가댐 공사와 수력발전소 공사는 마무리 단계에 있고. 자세한 건 실무자들에게 듣게.”

“네, 알겠습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신형섭 사장과 이연서 회장은 저녁 식사를 같이하자고 한다.

“네, 이따 연락드리겠습니다.”

현수는 34층으로 올라갔다. 천지기획과 천지건설 기획영업단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진짜 오랜만에 왔네.”

사실 멀린의 레어에 있던 기간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혼수상태 비슷한 채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불과 며칠이 지난 기분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다. 꼬박 3년 하고도 3개월 이상 현수를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보는 이들마다 정말 반가워했다. 다들 현수의 덕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현재 천지건설은 대한민국 건설업계 1위이다. 그리고 전 세계 건설업계에서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현수가 큰 공사를 많이 수주한 때문도 있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시행되는 이실리프 자치령 개발공사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콩고민주공화국, 러시아, 몽골,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자치령 공사는 대한민국을 3.5개나 새롭게 만드는 것과 같다.

당연히 공사할 것이 어마어마하다. 하여 천지건설에서 공사 수주 업무를 맡은 인원 대부분이 타 부서로 발령 났다.

신입 및 경력 직원을 어마어마하게 뽑았음에도 더 이상 공사를 수주하면 감당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모두가 현수를 격하게 반기는 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네, 박 차장, 아니, 부장이 되었다죠?”

“네, 모든 게 회장님 덕분입니다.”

박진영 과장은 아제르바이잔 유화단지 신설 공사와 리우데자네이루 재개발 공사 건 모두에 관여한 바 있다.

회사는 그 공을 인정하여 전격 부장으로 승진시켰다. 그럼에도 잡소리가 별로 없다.

전례를 세운 현수가 있기 때문이다.

황만규 주임도 두 계급 승진하여 천지건설 과장이 되었고, 구본홍은 천지기획 대리가 되었다.

유민우는 한 계급 승차하여 과장이 되었고, 신민아도 진급하여 주임이 되었다.

구본홍은 스테파니와의 연애 전선에서 승자가 되었다.

열렬한 구애 끝에 결혼한 것이다. 하여 꿀맛 같은 신혼생활을 즐기는 중이라 한다.

연희는 임신과 출산을 위해 퇴사한 상태이다.

“모두들 오랜만입니다. 다들 승진한 거 축하하구요. 특히 구본홍 대리는 결혼 축하합니다. 자, 이거…….”

현수가 흰 봉투를 내밀자 구본홍은 이게 뭔가 하는 표정이다. 눈치 빠른 박 부장이 나선다.

“회장님께서 주시는 축의금인가 보네.”

“아, 뭘 이런 걸……. 결혼한 지 벌써 1년이나 되는데요.”

구본홍이 봉투를 다시 내밀려고 한다.

“이 사람아, 회장님께서 일부러 마련하신 건데 그걸 거절해? 자네, 신혼인데 잘리고 싶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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