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2
분명 보안 유지를 철저히 해달라고 여러 번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거둔 성과의 일부가 외부로 알려진 것은 몇몇 정신 나간 장성 때문이었다.
기껏 견학시켜 주면서 보안 유지를 요구했건만 나가자마자 미국에다 대고 나불거린 것이다.
하여 세 회사의 수장은 긴급회동을 갖고 외부로 유출된 정도를 파악했다. 그리곤 그중 일부만 가능성을 본 것뿐이지 실제로 기술이 개발된 것은 아니라고 발뺌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자신들에게 정보를 제공한 한국 장성들을 만나 다시 한 번 사실 확인했다.
이번엔 더 적나라하게 제원까지 불어댔다. 눈에 뜨이는 즉시 대가리를 잘라 버릴 놈들이다.
미국의 압력을 받은 한국 정부는 세 회사에 사실 확인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세 회사는 ‘정보 공개 불가’를 선언했다.
이들 세 회사의 지분은 100% 현수의 것이다.
영원히 대한민국 국방부에 군납을 하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개인 회사의 정보를 공개할 수 없음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자 여당 정치인들이 들고일어났다. 불법 무기 개발과 세무 조사 운운하면서 별의별 압박을 다 가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세 회사의 수장은 현수의 지시에 따라 민주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영은 통화를 마치자마자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연락을 취했다. 다음 날 청와대는 러시아 대사의 방문을 받았다.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특임대사 개인이 운영하는 회사에 대한 압박을 즉각 중지하라는 것이 요지이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자 푸틴은 현수가 투표권을 가진 러시아 국민이라는 것을 주지시켰다.
대한민국은 원칙적으로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지만 현수만은 예외로 했다. 북한 내에서의 사업과 남북한의 경제 협력 관계 유지 등에 있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수는 대한민국 국민이면서 동시에 러시아의 국민이기도 하다. 실제로 러시아에선 주민세를 납부하고 있다.
모스크바 저택으로 고지서가 발부되고 있으며, 지금껏 이리냐가 제 날짜에 납부했다.
한국 정부가 예외로 인정한 이상 현수는 정식으로 러시아 국민의 신분을 가졌다. 게다가 푸틴 대통령이 임명한 국제협력담당 특임대사라 면책특권까지 있다.
이런 사람이 소유한 기업에 대한 음해 및 압박은 국제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음을 알린 것이다.
청와대로부터 설명을 들은 정치인들은 깨갱 했다.
누군가의 농담이 진짜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여당 국회의원들에게 은밀히 나돈 소문은 다음과 같다.
누구든 김 회장을 건드리면 은밀히 납치하여 참수해!
이 말을 한 당사자가 푸틴이라는 말에 얼른 찌그러진 것이다. 강자 앞에 한없이 비굴해지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흐음! 국적이 문제될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현수는 나직이 중얼거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나라에서 개발 중에 있는 자치령은 대한민국의 것이 아니다. 순전히 현수 개인이 얻어낸 성과이다.
이걸 개발하는 데 있어 대한민국은 단 한 푼의 돈도 내지 않았다. 오히려 개발 사업에 필요한 각종 기자재 등을 수출해 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를 얻었다.
게다가 자치령으로 이주한 실업자 수가 많아지면서 실업률 자체가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5년 3월의 청년(15∼29세) 실업률은 11.1%였다. 15년 7개월 만의 최고치이다.
IMF사태 때보다도 취직이 어려웠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2018년 현재 청년실업률은 0.1%이다.
이런 상황이 되자 기업들은 우수한 신입사원을 뽑기 위해 경품까지 내걸었다.
인턴, 열정 페이, 수습, 파견 근무, 비정규직이라는 말은 완전히 사라졌다. 구인공고에 그런 어휘가 하나라도 포함되면 지원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도 마찬가지이다. 시간당 1만 원이 최저 임금으로 정해졌지만 이를 지키는 사업주는 거의 없다.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 보니 대부분 시간당 12,000원 이상을 제시하고 있다.
현수가 만들어낸 풍속이다.
그래도 욕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에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든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자신은 나라를 위해 나름 애를 썼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 국적을 버리자. 나 때문에 한국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고, 나는 이실리프 왕국의 국왕이 될 사람이니까.”
현수는 마음을 정했다. 그리곤 테리나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나머지 일은 테리나가 알아서 할 것이다.
“그나저나 세 회사에도 가보긴 해야겠군.”
얼마나 많은 성과를 얻어냈을지 기대된다.
현수는 퇴근 후 직원들과 회식을 했다. 회사 근처 김치찌개 집에서 한잔 기울인 것이다.
송송 썰어 넣은 돼지고기가 아주 맛있었다. 게다가 칼칼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국물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현수가 탄 차가 양평 저택으로 접어들자 경호원들이 도열해 있다가 경례를 붙인다.
마치 왕의 귀환인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이다.
리노와 셀다, 그리고 다 커버린 새끼 네 마리도 현수를 보자 컹컹거린다. 몹시 반갑다는 뜻이다.
“숫자가 좀 늘어난 것 같네요.”
“네, 저 녀석들이 또 번식을 해서요. 지금은 21마리나 됩니다. 늑대들의 천국이죠.”
정일환 집사의 말이다.
“하하, 네!”
현수는 경호원 및 저택 직원들과 함께 파티를 벌였다. 미리 연락을 해두었기에 바비큐 준비가 되어 있다.
리노와 셀다, 그리고 녀석들의 새끼와 손자들도 배불리 얻어먹었다.
현수는 지현, 연희, 그리고 이리냐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귀국할 때 다 같이 들어온 것이다.
철이와 현이, 그리고 아름이는 킨샤사에 남아 있다.
이리냐의 모친 안나 여사 역시 그곳에서 머물고 있다.
예전과 달리 무스크하코 마을에서 온 러시아인이 많기에 심심해하지 않는 것이 다행한 일이다.
권철현과 이숙희 여사는 수시로 비행기를 타고 와 손자를 안아본다고 한다.
지현과 연희, 그리고 이리냐 모두가 곯아떨어지자 현수는 의복을 갈아입었다. 그리곤 저택 옥상에 올랐다.
“트랜스퍼 디멘션!”
샤르르르르르릉―!
현수의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 * *
“아리아니!”
“네, 주인님.”
“여긴 여전해. 그치?”
“네, 고요하고, 맑고, 신선하고, 그리고 정답고요.”
“그래, 그나저나 포인세 잎사귀를 채취해야 하는데, 정령들 좀 불러줘.”
“네, 주인님.”
잠시 후 아리아니의 부름을 받은 정령들이 나타나 포인세 잎사귀 채취 작업을 한다.
3년이 넘도록 오지 않아서 엄청 번식해 있다.
공간 확장 마법이 걸린 컨테이너를 20개 이상 꺼냈는데 겨우 절반 정도 채취했을 뿐이다.
채취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현수는 켈레모라니의 레어에 머물렀다. 10서클 마법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켈레모라니의 사체는 여전했다. 적어도 몇백 년은 더 견딜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비늘 하나하나에 새겨진 각종 마법을 둘러본 후 다른 것들도 살폈다. 골드 드래곤의 후계자로 지목되었으니 이것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셈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있나 싶어 샅샅이 살펴본 것이다. 아리아니는 앞장서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금은보화도 많았고 켈레모라니가 젊었을 때 수집한 각종 병장기도 많았다. 하지만 현수의 눈을 끈 것은 없었다.
“수고들 했어. 이건 내 선물.”
현수는 품고 있던 마나를 개방했다. 운디네, 운다인, 실프 실리안들은 현수의 주위를 맴돌며 깔깔거린다.
“얘들 또 자라겠지?”
“네, 그럼요. 참, 오신 김에 가이아 여신의 축복을 한 번 더 내려주세요. 비실거리는 녀석이 몇 보이네요.”
“그래? 알았어.”
현수는 포인세를 바라보며 두 팔을 벌렸다.
“나 하인스가 가이아 여신을 대리하여 너희에게 축복을 베푸노라! 싱싱하게 생장하거라!”
고오오오오오―!
현수의 전신으로부터 신성력이 뿜어지는가 싶더니 곧장 포인세에게로 향한다.
여신의 신성력 세례가 기쁜지 포인세들은 부르르 떨며 환희하고 있다.
“나 숲의 요정 아리아니가 너희에게 가호를 베푸노라!”
쏴아아아아아―!
아리아니의 가호가 사방을 뒤덮자 포인세들은 마치 더할 수 없는 오르가즘을 느끼기는 듯 일제히 향기를 뿜어낸다.
곧이어 점점 진해지더니 현수와 아리아니에게로 모여든다.
“흐으으음! 후와아아!”
현수는 폐부까지 청량해지는 향기에 심호흡을 했다. 그러는 사이 향기는 옷 속을 파고든다. 그리곤 섬유를 통과하여 땀구멍과 모공으로 스며들었다.
현수는 잠시 심호흡을 하며 포인세의 천연 향을 즐겼다. 억만금을 주고도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고마워. 다음에 또 부탁할게. 너희의 잎사귀는 유용한 곳에 쓰고.”
식물들도 의사소통을 한다고 들었기에 들으라는 듯 소리치곤 아리아니를 바라보았다.
“다음은 어디죠?”
“이번엔 디오나니아들을 보러 가자.”
“냄새나는 애들 없는데 어쩌죠?”
그러고 보니 하수도에서 사는 생쥐들을 잡아오지 못했다. 그러던 중 기억나는 게 있다.
“아리아니, 아공간에 시체들 좀 있잖아.”
“그거 주게요? 냄새 좀 이상하던데.”
“할 수 없잖아.”
“알았어요.”
“좋아, 간다! 텔레포트!”
샤르르르릉―!
“흐음! 여긴 여전하군.”
현수의 신형이 나타난 곳은 캐러나데 사막의 오아시스 인근이다.
“그러네요. 개체 수도 조금 더 늘어난 것 같아요.”
“그래, 내가 보기에도 그러네. 아리아니, 이 녀석들에게 잎사귀와 꽃, 그리고 열매를 줄 수 있는지 물어봐 줄래?”
“네, 그럴게요.”
고개를 끄덕인 아리아니가 잠시 후에 한 말은 오케이이다.
“이번에도 정령들 불러서 부탁해 줘.”
“걱정 말고 채수병이나 꺼내놓으세요.”
현수가 채수병을 꺼내는 사이 아리아니는 정령들을 불렀다. 그리곤 디오나니아의 잎사귀를 어떻게 채취하며 수액은 어떻게 모으는지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꽃을 따는 법과 열매를 수거하는 법도 가르친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디오나니아들은 기꺼이 잎사귀가 찢어지는 고통을 감내해 냈다. 그 결과 엄청난 양의 잎사귀와 꽃, 그리고 수액과 열매를 얻었다.
“고마워. 아리아니, 아공간에 있는 놈들 좀 꺼내줘.”
현수의 아공간에는 마인트 대륙의 9서클 마법사들의 시신이 담겨 있다. 아리아니는 이들의 의복과 소지품을 빼놓고 디오나니아에게 나눠 주었다.
9서클 마법사들은 갓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
당연히 상당히 많은 양의 마나를 체내에 품고 있어서 그런지 디오나니아들은 상당히 기쁜 듯 펄럭인다.
“다음은 어디죠?”
“알베제 마을부터 가보자. 텔레포트!”
샤르르르릉―!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마탑주님?”
엘베른은 현수를 보자마자 오체복지한다. 집채만 해진 샤벨도 납작 엎드린다.
“오랜만이네. 샤벨도 잘 있는 모양이군.”
“네, 그럼요. 여기가 어디라고요.”
이실리프 자치령과 그리 멀지 않은 이곳은 마법사들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마탑주가 처음으로 존재를 드러낸 곳이기 때문이다.
“촌장에게 안내 좀 해주게.”
“네, 가시죠.”
엘베른의 안내를 받아 간 곳은 이전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너른 평원이다. 상당히 많은 집이 지어져 있는데 오두막이 아니라 제대로 지은 집들이다.
“여긴 어딘가?”
“이전의 마을이 좁아서 일부는 이쪽으로 이전했습니다. 촌장님은 저기 계십니다요.”
알베제 마을은 30가구에 150여 명이 거주하던 곳이다. 그런데 이곳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00명은 살 정도로 넓다.
“마레바, 오랜만이네.”
“헉! 마, 마탑주님!”
마레바 역시 엘베른과 다를 바 없이 오체복지한다.
많은 마법사가 이주해 오면서 마탑주가 어떤 존재인지 수없이 들은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