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7
1장 내가 돌아왔습니다
“휴우! 한시름 놓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재고가 없어서 많이 곤란하던 참입니다.”
창고에 가득 차 있는 쉐리엔을 본 민윤서 사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방금 말한 대로 곤란을 겪던 중이다.
드모비치 상사의 채근이 아주 심했던 것이다.
현수가 사라진 뒤에도 쉐리엔을 요구하는 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핵심 원료를 공급해 줄 현수와 연락이 닿지 않으니 똥줄이 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남아 있던 재고가 완전히 소진되었다. 영어로 ‘Perfect sold out’이 되어버린 것이다.
쉐리엔을 믿고 마음껏 음식을 섭취하던 여자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럴 리야 없지만 자고 일어나면 허리가 1인치씩 늘어난다며 투덜거렸다.
항의 전화가 빗발쳐 이실리프 메디슨은 한동안 업무를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반년쯤 지나자 잠잠해졌다. 그런데 이는 백조의 발 같은 것이다. 수면 위는 고요하지만 아래에선 죽어라 발을 움직이는 것과 같이 쉐리엔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웃돈이 붙어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쉐리엔 밀거래 가격은 정가의 열 배이다. 엄청 비싼 가격임에도 워낙 효능이 좋기에 구하지 못해 안달이다.
그런데 오랜 가뭄을 완전히 해갈시켜 주고도 충분히 남을 만큼 엄청난 양의 쉐리엔이 공급되었다.
무려 4,000㎥, 2,000톤이다.
현수가 가져온 것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양이지만 창고가 가득 차서 더 줄 수 없는 상황이다.
나머지는 순차적으로 공급되도록 조치를 취했으니 앞으론 재고 부족 현상 같은 일은 없을 것이다.
민윤서 사장은 갓 채취한 듯 너무도 신선한 쉐리엔으로 꽉 채워진 창고를 보며 미소 짓고 있다.
한동안 생산 라인을 24시간 풀가동을 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당연히 엄청난 돈벌이가 될 것이니 회사의 성장은 따 놓은 당상이다.
“참, 효소도 곧 올 겁니다.”
“네, 여기서 1차 처리가 되면 곧바로 이실리프 반둔두 자치령으로 보내겠습니다.”
한국에선 미라힐 시리즈 때문에 난리가 벌어졌었다.
기적의 신약이라는 것도 몰라보고 엄청 까다로운 임상 결과를 내놓으라며 반려한 것 때문이다.
언론에서 줄기차게 씹어대자 식약청은 담당자를 좌천시키고 감봉 처리하는 것으로 징계를 마쳤다.
그리고 이실리프 메디슨에게 미라힐 시리즈와 홍익인간, 그리고 NOPA와 청향으로 신약 신청을 하면 즉시 허가하겠다는 통지문을 보냈다.
이에 대한 대답은 다소 과격했다.
당연히 언론의 살벌한 질타가 있었다.
이에 민윤서 사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 자리에서 왜 신약 허가가 나지 않았는지 소상히 밝혔다.
그게 문제가 되어 사업하는 데 애로 사항이 생기면 콩고민주공화국으로 회사를 옮기고 국적을 버릴 생각까지 했다.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기자회견 내용이 언론에 의해 보도되자 전국이 들끓었다.
신약 허가를 내줬으면 한국의 병원에서 편안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관계자들의 뻘짓 때문에 킨샤사까지 날아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매일 항의 집회가 열렸고, 정부청사는 물론이고 청와대 앞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그 결과 보건복지부는 서슬 시퍼런 칼을 뽑아 들었다. 식약청장을 비롯한 모든 관계자는 물론이고, 이 일에 관여된 것으로 확인된 공무원 전원을 파면시켰다.
해임으로 끝냈으면 공무원 연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중들의 분노가 너무 컸다. 하여 연금을 받을 수 없는 가장 큰 처벌인 파면에 처해진 것이다.
신약 허가를 반려한 것도 한 이유지만 그동안 저지른 부정부패가 결정적이었다.
어쨌거나 국익을 크게 저해한 당사자들이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실리프 메디슨은 천지약품에서 필요로 하는 일반의약품 제조에 힘썼다.
최근엔 국내 시판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네 개의 자치령에 우선 공급하고 남은 양은 콩고민주공화국과 에티오피아, 그리고 몽골과 러시아로 전량 수출하는데 워낙 수요가 많아 공장을 풀가동해도 늘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 입장에선 이실리프 메디슨에게 압박을 가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어쨌거나 미라힐 시리즈는 완제품이 한국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곳에서 중간 원료를 만들어 반둔두에 공급하면 그걸 배합하여 완제품을 생산해 내는 것이다.
이곳 공장에서 처리하는 것 중 하나는 지구에선 합성할 수 없는 물질인 두 가지 효소 중 하나이다.
나머지 하나는 반둔두에서 제조하는 것으로 했다. 보안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두 효소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빠지면 약효가 거의 없다. 둘이 상승작용을 일으켜야 효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현수는 이곳에 오기 전 충분한 양의 효소를 만들었다. 컨테이너에 실려 오는 건 적어도 10년간 모든 미라힐 시리즈를 생산할 수 있을 물량이다.
나머지 효소 한 가지는 킨샤사 저택에서 제조해서 반둔두에 있는 이실리프 메디슨 공장으로 보냈다.
“그러고 보니 공장이 꽤 커졌습니다.”
“네, 20만 평에 달하는 향남제약단지 전부와 인근 부지까지 포함되었으니까요.”
“저기 보이는 저 아파트는 직원용입니까?”
“네, 전에 말씀하신 대로 직원 복지를 위해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잘 크고 있죠?”
현수가 없었으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아이다.
“그럼요. 아주 활발합니다.”
자식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확실히 밝아진다. 세상 사는 맛이 나서 그럴 것이다.
현수는 민윤서 사장과 점심을 같이했다. 그리곤 곧장 이실리프 코스메틱으로 향했다.
* * *
“어서 오십시오. 정말 오랜만입니다.”
“하하, 네. 제가 좀 많이 바빴습니다.”
“네, 그러시겠죠. 자, 안으로 드시지요.”
태정후 사장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니 이예원 이사가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네, 오랜만입니다. 잘 계셨죠?”
“그럼요!”
사장실 소파에 앉으니 이예원 이사가 커피를 내온다.
“그동안 원료 때문에 걱정 많으셨죠?”
“네, 그렇죠.”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디오나니아의 눈물’과 ‘아르센의 공주’라는 상품명을 가진 두 가지 천연 향수는 출시되자마자 전 세계 향수 시장의 투톱이 되었다.
3위와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처럼 차이가 컸다. 가격이 아니라 평가가 그러했다. 전문가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둘을 투톱으로 뽑은 것이다.
문제는 다음해 생산이 없었다는 것이다.
포인세의 잎사귀에서 추출한 천연 향수 ‘아르센의 공주’는 매년 남성용 10,000병, 여성용 10,000병을 생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디오나니아의 눈물’ 또한 그러하다.
첫해에 향수를 사지 못한 사람들은 1년을 기다렸다. 그런데 생산되지 않았다. 원료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문의가 쇄도했다. 전화가 걸려온 것은 비단 국내뿐만이 아니었다.
세계 곳곳에서 걸려온 전화로 인해 전 직원이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렇다 하여 선을 뽑아버릴 수도 없었다.
영국, 스웨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요르단,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 브루나이, 모나코, 태국 등의 왕실에서 전화가 걸려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각국 대통령실에서도 전화가 왔다. 수교된 국가의 대사가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은 하나라도 있으면 달라는 것이다. 값은 부르는 대로 치른다는데 참으로 난감했다.
재고는 완전히 소진되었고, 원료가 없어서 제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 하여 그걸 밝힐 수도 없다. 하여 다음과 같이 둘러댔다.
지극히 죄송합니다!
디오나니아의 눈물과 아르센의 공주를 제조는 했지만 품질이 당사 기준에 미치지 못하여 올해는 출시하지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성명이 발표되자 품질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같은 값을 지불할 테니 팔아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이실리프 코스메틱은 이에 대해 다시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당사는 내규로 정한 품질 이하의 제품이 생산될 경우 전량 폐기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올해 제조한 디오나니아의 눈물과 아르센의 공주가 이에 해당되어 이미 폐기 처분되었습니다.
내년을 기약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두 번의 공지문이 홈페이지에 뜨자 난리가 벌어졌다. 전년도에 팔린 두 향수에 프리미엄이 붙은 것이다.
절반이나 썼음에도 다섯 배 가격에 거래된 것이 있을 정도이다. 다시 말해 값이 열 배나 급등한 것이다.
디오나니아의 눈물은 향도 향이지만 이성을 유혹하는 페로몬(페로몬(Pheromone) : 동물의 체내에서 만들어져 체외로 방출되어 동종의 다른 개체를 자극하여 여러 종류의 행동이나 발육분화(發育分化)를 유도하는 물질의 총칭.) 효능까지 가졌다. 그런데 노골적인 자극이 아니라 은은한 매혹의 효과를 보였다. 유혹하고 싶은 이성이 있는 사람에겐 필수 아이템이 된 것이다.
아르센의 공주는 향기 자체가 폐부 및 심신을 쇄신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다시 말해 상쾌한 향이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하여 한 해가 넘어갔고, 다음해가 되자 전 세계의 이목은 다시 이실리프 코스메틱에 집중되었다.
이번에도 품질이 기대 이하였다는 공고문이 붙었다. 그 즉시 기존 향수의 가격은 20배로 뛰었다.
다음해에도 마찬가지이다. 하여 현재 두 향수의 암거래 가격은 기존 판매정가에 각각 40배와 50배이다.
아르센의 공주가 더 오른 것은 폐질환을 치료하는 효과가 상당하다는 임상 결과가 발표된 때문이다.
하여 단순한 향수의 기능뿐만 아니라 폐질환 치료 기능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어쨌거나 이실리프 코스메틱은 매년 겪은 일을 올해도 또 겪을 것이라 생각하여 걱정이 태산 같았다.
영어와 프랑스어 정도는 어떻게 응대하겠는데 아랍어와 태국어 등으로 걸려오는 전화가 오면 골치 아프다.
그렇다 하여 이런 언어에 능통한 사람을 고용할 수도 없다. 향수 매출은 제로이기 때문이다.
“걱정 마십시오. 상당히 많은 양을 확보해서 이쪽으로 보냈으니까요.”
“아! 그런가요?”
태정후 사장과 이예원 이사의 눈이 커진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이기 때문이다.
“디오나니아의 눈물, 그리고 아르센의 공주의 원료뿐만 아니라 듀 닥터 원료도 넉넉하게 확보했습니다.”
“허어! 그거 참 다행입니다.”
이실리프 코스메틱의 주력 상품이 방금 언급된 세 가지이다. 원료가 없어 개점휴업 상태였는데 이제야 풀릴 모양이다.
원료에 대한 의견이 오간 후 상품 인상가에 대한 의견을 조율했다. 이실리프 코스메틱은 자사가 정한 기준 미달인 제품은 과감하게 폐기하는 정책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러댄 말이지만 사람들은 신뢰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내놓는 제품 전부가 초히트 상품들이다.
다시 말해 없어서 못 파는 물건들이다. 그러니 가격을 올려보자는 의견이다.
“길게 보는 건 어떨까요? 우린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고객인 거죠. 그들의 주머니 사정까지 헤아려 준다면 어떨까요?”
“……!”
사실 듀 닥터 세트와 슈피리어 듀 닥터 세트의 정가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지구에 없는 원료를 썼으니 그만큼 받아도 되지만 다른 저가 상품에 비하면 훨씬 고가이다.
그런데 또 가격을 올리면 서민들은 쓸 수 없는 제품이 되어버린다. 일부 회사들은 고가정책을 실시하여 자사 제품을 명품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마케팅을 실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