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0
태양광 발전설비 및 기술이 전수되어 자체적으로 충분한 전력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시급하던 문제 전부가 해결된 것이다.
현재는 산림녹화작업이 진행되는데 전 국토의 과수원화를 지시하여 사과, 배, 감, 대추, 밤, 은행, 모과, 유자, 석류, 호두, 잣, 살구, 포도나무 등의 묘목을 심는 중이다.
당연히 기후와 토질 등을 면밀히 고려한 식재이다.
그리고 허락 없이 산에서 나무를 베어내면 처벌받는 것으로 법이 바뀌었다.
당분간은 각 가정에서 닭 몇 마리 키우는 정도만 허용된다. 사료의 원료가 곡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교적 많은 사료를 소모하는 소나 돼지는 별도의 명이 떨어질 때까지는 키우지 않는다.
북한 내부가 거의 혁명적으로 바뀌는 동안 강성하던 군부는 서서히 힘을 잃고 있다.
남한과의 대치 상황에서 별다른 위협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먹고살 만해지자 인민들의 마음이 바뀐 때문이다.
“제1위원장님, 오랜만에 온 기념으로 만찬을 베풀려 합니다. 공화국의 높은 분들을 초청해 주시겠습니까?”
“기래요? 기러디요. 근데 전에 마신 그 술 조금 남아 있습니까?”
“그 술이요? 아, 그거요?”
엘프주 맛을 못 잊은 듯하다.
“남은 게 있으면 몇 병 주시라요. 우리 설주도 아주 맛이 좋다 합니다.”
“네, 그러지요. 그보다 이것이 더 좋을지 모릅니다.”
현수가 손짓하자 동석했던 테리나가 상자를 꺼낸다.
마나포션과 열다섯 병의 바이롯이 담긴 ‘슈퍼 바이롯 세트’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기에 옻칠한 오동나무 상자와 붉은 벨벳으로 그럴싸하게 만든 것이다.
“흐음, 이거이 뭡네까?”
“흐음, 설화와 테리나는 잠시 자리 좀 비워주겠어?”
“네에.”
말 떨어지기 무섭게 둘이 바깥으로 나간다.
“이건 슈퍼 바이롯 세트라는 것으로…….”
현수의 설명이 이어지자 김정은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아직 젊은 나이이기는 하지만 사내라면 누구나 정력이 세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특히 ‘침실의 황제’라는 표현을 들었을 땐 침을 꿀꺽 삼키기도 했다.
“이건 조만간 출시될 제품인데 세트당 약 1억 5천만 원 정도 받을 겁니다.”
“……!”
김정은도 남한의 화폐 가치를 알기에 놀랍다는 표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설명은 이어졌다.
“이것의 복용 방법은……. 이것의 효능은…….”
“이거 정말 대단합네다.”
현수가 하는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정도이기에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표정이다.
하긴 먹기만 하면 웬만한 질병은 저절로 낫는데다 면역력이 급상승하여 무병장수는 기본이고 1년간 수컷으로서의 당당함을 가질 수 있다는데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이걸 200세트 정도 준비해 왔습니다. 위원장께서 중히 여기는 분들을 초청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만찬 때 선물로 주려고……?”
“네! 저는 공화국의 어느 분이 중요한지 모르니 수고스럽겠지만 위원장님께서 선별해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그럼 이것부터 복용해 보십시오. 대번에 효능의 일부를 느끼실 겁니다.”
“아! 그런가요?”
뿅―!
플라스크의 코르크 마개가 빠지자 마나포션의 그윽한 냄새가 번진다.
꿀꺽, 꿀꺽, 꿀꺽―!
김정은의 호위 임무를 맡은 호위총국 요원이 말리기도 전에 마나포션은 그의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들어갔다.
이때 현수의 입술이 나직이 달싹인다.
“바디 리프레쉬! 아리아니, 엘리디아 불러서 이 친구를 깨끗하게 해줘.”
샤르르릉―!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가 김정은의 체내로 스며들 때 엘리디아는 그의 몸을 한 바퀴 휘감고 사라진다.
“허엇―!”
신체의 내부에선 쌓여 있던 피로 물질들이 대번에 분해되고, 외부에선 엘리디아의 싸늘한 동체가 훑고 지나자 김정은의 눈이 더없이 커진다.
단숨에 10년은 젊어진 듯한 느낌 때문이다.
“어떻습니까?”
“과, 과연……! 후와아! 세상에 이런 게 있었다니. 이건 정말… 뭐라 형용할 수가 없군요. 정말 좋습니다.”
김정은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오늘 저녁부터 이틀에 한 병씩 드시면 더 좋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김 회장 동지!”
김정은은 기분이 좋은 듯 상자를 조심스레 갈무리한다. 이런 건 아랫사람들에게 관리시킬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참, 가스관 연결 공사는 어느 정도 진척되었습니까?”
“그것도 거의 끝나갑니다. 공사는 마쳤고, 최종 점검을 하는 중이랍니다.”
천지건설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챠안다 가스전 개발 공사의 공정률은 95%이다.
동시베리아 야쿠티아 자치공화국으로부터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총연장 3,200㎞짜리 연결 공사도 공정률이 95%라 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까지 공사는 이미 끝나 있고, 남한에서의 공사 역시 거의 끝나간다.
이 공사엔 대한민국 유수의 건설사들이 참여했다.
천지건설이 태백건설, 백두건설 등 주요 건설사들에게 일감을 나눠 준 것이다.
불경기와 아파트 미분양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건설사들은 천지건설 덕분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천지건설 입장에선 이것 말고도 공사가 많다. 이실리프 자치령 내에서의 공사들이 그것이다.
도로, 철도, 주택, 농장, 축사, 가공공장, 근린 생활 시설 등 그야말로 공사가 널리고 널렸다.
대한민국을 동시에 3.5개나 만드는 일이니 얼마나 일이 많겠는가!
모든 공사는 공정률에 따라 100% 현금으로 기성고가 지불된다. 단 한 번도 날짜를 미룬 적이 없다.
그야말로 순풍에 돛을 달고 쾌속으로 항진하는 중이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수주한 공사 중 일부를 국내 건설업계에 나눠 주고 있다.
하여 천지건설은 특등급 건설사고, 태백건설, 백두건설 등은 1등급 건설사(1등급 건설사 : 시공능력평가액 1,000억 원 이상인 건설업체.)라 한다.
천지건설은 명실상부한 절대 강자, 하늘 위의 하늘이 된 것이다.
삼류대학 수학과를 졸업한 진짜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김현수라는 인물 하나가 입사한 결과이다.
“그럼 조만간 가스 공급이 시작되겠군요.”
“그렇습니다.”
김정은은 고개를 끄덕인다.
차얀다 가스전으로부터 공급되는 가스 중 일부를 공화국에서도 사용키로 한 때문이다. 대신 숙천유전에서 퍼 올린 원유를 이실리프 정유에 공급하기로 했다.
처음 북한에 가스를 공급하겠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을 때 일부 극우들이 이적 행위라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리곤 이실리프 빌딩 앞에서 격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실리프 그룹은 당장 자폭하라는 등의 구호이다.
참고로 이실리프 빌딩은 전국 각지에 소재하고 있다.
모두 400개 소가 있는데 현재는 이실리프 뱅크의 지점이 입주해 있고, 항온의류 매장만 개설되어 있다.
조만간 이실리프 모터스의 자동차가 전시되며, 자치령에서 가져온 신선한 농축산물도 판매될 예정이다.
쉐리엔과 항온의류 등도 다시 판매하기 시작할 것이다.
어쨌거나 극우들의 시위 때문에 한동안 시끄러웠다.
이실리프 뱅크는 별 타격이 없었지만 항온의류 매장은 매출 손실이 발생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일 극렬한 시위가 계속되는가 싶더니 몇몇 매장에선 유리창이 깨지는 불상사가 발생되었다.
극우 시위대에서 던진 돌멩이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숙천유전으로부터 원유를 직접 공급받게 되어 국내 소비자들이 보다 저렴한 가격에 휘발유 등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보도가 나갔다.
극우 시위대는 그날 이후 종적을 감췄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다.
주영의 지시를 받은 직원들은 시위 현장을 녹화해 두었다. 그걸 증거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한 것이다.
아울러 그룹 차원에서 형사소송까지 걸었다.
돌을 던져 매장 유리창을 깨고, 출퇴근하는 직원들을 겁박하는 동영상이 있기에 증거 자료는 충분했다.
극우 시위대에선 당황하는가 하더니 이내 큰 소리로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즈음에 선처를 호소하는 정치인들의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 이실리프 그룹에선 모든 통화 내용이 녹음됨을 알렸다. 그러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동안 재판이 시작되었다.
돌을 던진 인물은 800여 명이다. 한 점포당 두 명 정도가 던진 것이다.
이들에게 청구된 손해배상 금액은 1인당 10억 원이다.
매출 급감으로 인한 손실과 정신적인 피해보상 등이 포함된 액수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극우들은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하지만 이실리프 그룹은 일절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이실리프 정보는 극우 시위대의 인적 정보를 파악했다.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이다.
마지막까지 간 재판의 결과는 이실리프 그룹의 승리였다. 1인당 7억 원 정도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떨어진 것이다.
판결문을 받자마자 법무팀은 즉시 행동에 들어갔다.
그렇게 하여 800여 명으로부터 거둬들인 총액은 약 3,600억 원이다.
이 돈은 전액 이실리프 자선재단에 기탁되었다.
그 결과 현수의 양평저택 뒤쪽 부지에 1,500세대짜리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는 중이다.
1,000세대는 소년소녀가장들을 위한 것이고, 나머지 500세대는 무연고 독거노인들이 기거할 곳이다.
추가로 확보되는 돈 역시 공사비로 충당될 예정이다.
극우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해댔다.
하지만 이실리프 빌딩을 상대로 테러를 가하는 일은 없었다. 아울러 이실리프 계열사 직원들을 상대로 겁박을 가하는 일도 없었다.
걸리기만 하면 7억 원 정도를 물어주어야 하니 알거지가 될 각오를 하지 않으면 행동으로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 * *
늦은 저녁, 현수는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했다.
김정은이라 할지라도 북한의 권력자들을 한자리에 모으려면 시간이 걸리므로 쉬겠다며 물러난 것이다.
전용으로 지정된 검은색 벤츠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다. 현수의 왼쪽엔 테리나와 백설화가 앉아 있다.
운전은 호위사령부 제1호위부 특임대원이 맡았고, 최철 대좌는 조수석에 앉아 그간에 있었던 주요한 일들을 상세히 보고했다.
3년 사이에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이도 많지만 건재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강성군부에서는 남조선 기업과 같이 일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지만 김정은 등 권력자들은 이를 무시했다.
전기, 비료, 연료, 식량 등 고질적인 부족이 해결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강성군부라 할지라도 반발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많은 인민이 가스관 연결 공사에 투입되었고, 남한의 발전된 열차 제작기술이 북한에 전해져 새롭게 조성된 함흥 열차제작소 등은 밤낮을 잊고 일하고 있다.
전량 에티오피아와 아와사 자치령으로 수출될 물량이다.
이런 것들이 계속해서 뉴스에 나오자 군부에도 변화가 생겼다. 남한과 극한 대치를 해서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을 수 있음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쨌든 최철 대좌의 보고는 많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북한 내부에 긍정적인 변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은 직후이다.
자본주의의 폐습이 북한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은 때문이다. 예를 들어, 뇌물을 주고 품질이 낮은 제품 납품하기, 한밤중에 오염 물질 무단 방류하기 등이다.
남한과 비교하면 북한은 오염의 정도가 훨씬 덜하다. 그런 자연을 훼손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여 객실에 들어가자마자 여러 가지를 메모했다. 내일모레 있을 회동 때 화제에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오라버니, 목욕물 받아놨어요.”
“그래, 알았어.”
다이어리를 덮고는 욕실 문을 열었다.
“흐으음!”
폐부가 청량해지는 듯한 박하향이 느껴져 저도 모르게 심호흡을 했다. 뜨거운 물 위에 초록색 잎사귀들이 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