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181화 (1,180/1,307)

# 1181

박하는 피부의 염증이나 가려움증, 부스럼에 효능이 있다.

아울러 세균 번식을 억제하고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데 도움 되는 식물이다.

“아아! 시원하다.”

수온은 따끈한 정도이다. 그럼에도 나이 많은 노인처럼 시원하다고 말한 현수는 피식 웃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헷갈려 하는 말 중 하나를 본인이 내뱉은 때문이다. 이 밖에 ‘골 때린다’, ‘죽인다’, ‘애먹었다’, ‘오늘은 내가 쏠게’ 등등이 더 있다.

“하으으음!”

따끈한 수온이 느껴지자 스르르 눈을 감았다. 노곤해서 잠이 오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지난 며칠간 너무나 바쁘게 움직였다.

그랜드 마스터이니 체력적으론 아무런 문제도 없다. 한숨도 자지 않아도 되는 몸이다.

그럼에도 정신적으론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쉬지 않고 이곳저곳 방문하여 온갖 것을 점검했기 때문이다.

눈을 감았지만 잠든 것은 아니다.

3장 실링팬에 걸린 넥타이

대한민국은 현재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시끄러웠다.

이웃나라 일본 때문이다.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라는 것을 모든 교과서에 실었다.

역사와 지리, 그리고 일반 사회 교과의 경우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전공서적까지 모두 바꾸어놓았다.

자신들의 영토를 대한민국이 무단으로 점령하고 있다는 말은 예전부터 했기에 ‘미친놈, 별소리를 다 한다’는 기분으로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독도를 즉시 반환하는 것은 물론이고 점유 기간 동안의 사용료를 지급하라는 정식 외교 문서를 보냈다.

이것에는 독도의 해안선을 기선[Baseline]으로 하여 인근 12해리를 영해로 선포하며, 대한민국의 어선 및 군함, 경비함 등의 접근을 불허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영해뿐만 아니라 영공에 대한 언급도 있다.

독도와 12해리 영해의 상공엔 어떠한 비행물체도 통과를 허락하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다. 그렇기에 한일전만 벌어지면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독도에 관한 민감한 외교문서는 타오르는 불길에 휘발유를 뿌린 듯 반일감정을 격화시켰다.

하여 일본산 자동차는 테러의 대상이 되어 자고 일어나면 앞 유리창이 깨져 있거나 타이어가 터져 있다.

학생들은 일본산 문구류를 폐기하고, 기업들은 가급적 일본산 부품을 배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민들은 일본과의 국교 단절까지 이야기하고 있지만 대다수 정치인은 뚜렷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 홍진표가 주축이 되어 설립된 양국당 소속 42명의 의원과 일부 야당 의원들만 목청을 돋울 뿐이다.

참고로 양국당은 ‘올바른 양심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모인 정당’에서 따온 말이다.

과반수가 넘는 의석을 가진 정당은 친일파의 후손들이 만든 정당답게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될수록 손해라면서 국민들에게 어리석은 짓으로 국익을 해하지 말고 찌그러져 있으라는 성명을 발표했을 뿐이다.

몇몇 황색 찌라시와 공영방송을 표방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방송사들을 제외한 언론에선 연일 이를 꼬집는 기사들이 넘쳐나지만 콧방귀도 뀌지 않고 있다.

2016년 4월엔 총선이 치러졌고, 2017년 12월엔 대선이 있었다. 얼마 전인 2018년 6월엔 지방선거까지 끝났다.

그렇기에 표를 의식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흐음! 그냥 놔두면 안 될 놈들이지.’

6.25 전쟁 이후 한국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하여 외국에선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전쟁이 남긴 폐허를 딛고 일어나 2014년 연말 기준 무역 규모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세계 9위에 해당된다.

이런 발전이 거듭되는 동안 상당한 돈이 일본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들로부터 부품과 소재를, 그리고 기술을 수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와의 무역은 흑자였지만 일본만은 늘 적자였다. 1965년 이후 단 한 번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애써 수출해서 돈을 벌면 그중 일부는 늘 일본으로 흘러들어 가는 꼴이다.

이를 어찌 그냥 두고 보고만 있겠는가!

하여 일본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부품과 소재의 국산화를 위해 안주 기계공업단지를 조성했다.

‘흐음! 부품과 소재가 100% 국산화된다면 굳이 국교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지.’

일본은 언제 적이 될지 모르는 나라이다. 야욕을 애써 감추지 않는 것이 그 증거이다.

최근의 미국은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서 일본이 중심’이라고 평가했지만 한국은 ‘그저 오래된 친구’라고 했다.

이처럼 한미동맹보다 미일동맹이 더 상위에 놓이게 된 결과 유사시 일본군이 한반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무능한 정치인들이 전시작전권을 확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왜놈들이 다시 한반도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한단 말인가!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겨우 국교 단절로 골탕을 먹여봐야 큰 엿은 안 되지.’

2013년 통계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GDP는 1조 2,210억 달러였다. 일본은 4조 9,040억 달러로 대한민국의 네 배가 넘는다.

따라서 한국이 부품 및 소재를 수입해 가지 않는다 하여도 일본 경제는 휘청거리지 않는다.

‘흐음! 그동안 당한 게 있으니 아주 큰 엿을 먹여야 하는데 뭐가 좋을까?’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한 일본 기업을 M&A 하는 것은 일단 고려 대상이 아니다.

기업을 빼앗아 내 것을 만들어봐야 그곳에서 근무하는 자들 대부분이 일본인이다. 따라서 빼앗는 것보다는 망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통쾌하다.

‘흐음, 이실리프 모터스가 전면에 나설 때가 되었나?’

2015년에 발표한 일본의 658㏄짜리 경차 스즈키 알토는 가솔린엔진이 장착되어 있는데 리터당 37㎞가 공식연비이다.

세계 최고의 연비라 자랑하고 있지만 실제 시내 주행연비는 30㎞ 정도일 것이다.

아무튼 이 차의 가격은 약 800만 원이다.

만일 이실리프 모터스에서 실제 주행연비가 리터당 400㎞인 1,500㏄급 승용차를 내놓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남한의 A자동차 회사에서 생산하는 1,400㏄급 자동변속기 승용차 가격은 1,300∼1,600만 원이다.

이실리프 모터스는 1,500㏄급을 1,000만 원 이하로 출시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생산 대수가 적으니 대당 생산비가 올라가야 하지만 인건비가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A자동차 노조원의 평균 연봉은 약 9,400만 원이다. 이 돈은 북한 근로자 326명의 연간 수입과 맞먹는다.

이러니 귀족 노조라는 말이 있다.

아무튼 A자동차에서 남한 근로자 3,067명을 고용하는 비용은 북한 노동자 100만 명을 채용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자동차의 판매 가격엔 근로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이 포함되어 있는데 안주 기계공업단지에서 차를 조립하게 되면 이 비용이 326분의 1로 줄어든다.

자재와 부품의 제조부터 시작하여 완성 차 조립까지 전 과정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적지 않다. 따라서 배기량이 더 많더라도 값이 내려갈 수 있는 것이다.

리터당 30㎞를 달리는 800만 원짜리 경차와 값은 200만 원 더 비싸지만 실내 공간이 훨씬 더 큰데다 연비가 13배인 자동차가 있다.

더 크고 비싼 차는 연비만 좋은 게 아니다.

소음이 훨씬 더 적고, 사고 위험이 있을 때 버튼만 누르면 자기 집 차고로 안전하게 이동될 수도 있다. 웬만해선 교통사고로 죽지 않음을 의미한다.

소비자들은 과연 어떤 차를 고르겠는가!

‘그러면 도요타, 스즈키, 혼다, 닛산, 미쓰비시, 스바루, 미쯔오카, 다이하쯔는 모조리 망하겠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하여 웃음 짓고 있는데 스르르 문이 열린다. 희뿌연 수증기가 자욱하기에 사람의 형체조차 짐작하기 어려워야 정상이다.

그런데 현수가 누구인가! 자욱한 운무 같은 수증기를 꿰뚫고 방금 들어선 인물이 누군지 환히 보인다.

“설화? 왜, 무슨 일 있어?”

“아뇨. 오라버니 등 밀어드리려구요.”

정말 그러려고 하는지 손에 뭔가를 들고 있다. 하지만 다른 속셈이 있다는 게 훤히 들여다보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벽한 나신이다.

“…나 목욕 다 했어. 이제 나가려고 하는데.”

“네에? 벌써요?”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응. 나 나가니까 설화가 씻을래?”

“아, 아뇨!”

놀란 듯한 발짝 물러선다.

“참, 나 목마르다. 시원한 맥주 하나 부탁해.”

“네? 아, 알았어요.”

설화가 나간 사이에 현수는 얼른 물기를 닦아냈다.

욕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설화가 캔맥주를 들고 들어오던 참이라 마주쳤다. 여전히 나신이다.

“어머나!”

“땡큐! 그럼 씻어. 물 깨끗하니까 그냥 써도 될 거야.”

백설화의 손에 든 캔맥주를 빼 들고는 슬쩍 빠져나왔다. 설화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욕실로 들어간다.

현수는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고 맥주를 땄다.

딱―!

꿀꺽, 꿀꺽, 꿀꺽―!

“캬아아―!”

“시원해요?”

“응?”

시선을 돌려보니 테리나가 생긋 미소 짓고 있다.

“설화가 작전에 실패했군요.”

“……!”

사전에 무슨 이야기가 된 듯한 뉘앙스가 풍기지만 반문하진 않았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음이다.

“나랑도 한잔해요.”

딱―!

테리나가 들고 있던 캔을 딴다. 그리곤 현수처럼 단숨에 들이켠다.

꿀꺽, 꿀꺽, 꿀꺽―!

“캬하아! 진짜 시원하네요.”

350㎖짜리를 단숨에 비우곤 환히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치?”

슬쩍 대답하곤 현수는 소파로 가서 앉았다.

설화의 육탄돌격을 피하려 급히 나오느라 팬티를 입지 않은 상태이다. 다시 말해 맨몸에 가운만 걸치고 있다.

앉으면 당연히 드러나는 것이 있어 신경이 쓰였지만 어쩌겠는가! 그냥 앉았다.

“저랑 얘기 좀 해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하기에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 뭔 말인데?”

남한에서 북한으로 이동하는 동안 비행기에서도 이런 표정을 지었다. 그때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는 잠시 쏘아보는 듯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이고 깊은 한숨만 내쉬었다.

지근거리에 스테파니가 있어서 말을 못한 듯했다.

어쨌거나 현수는 아무래도 아랫도리가 신경 쓰였다.

“근데 앞에 앉지 말고 옆에 앉으면 안 될까?”

마주 앉았는데 잠시라도 방심하면 큰 실례가 될 수 있기에 그런 것이다.

“…네, 그럴게요.”

현수의 곁에 앉은 테리나는 또 하나의 캔을 딴다.

딱―!

꿀꺽, 꿀꺽, 꿀꺽―!

“크흐으!”

또 단숨에 비운다.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캔맥주 두 개라면 술이 제법 센 사람이라도 취기가 오른다.

“대체 뭔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여?”

현수는 가벼운 분위기로 만들고 싶었다. 왠지 심각한 말을 하려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저요, 자기의 아내가 되고 싶어요.”

“…뭐라고?”

“당신의 아내가 되고 싶다고요.”

“알잖아. 난 이미 결혼했어. 아내가 셋이나 있다고.”

무거운 분위기가 되면 테리나의 페이스에 말려듦을 의미하기에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알아요! 근데 여기 이거요!”

테리나는 현수의 대꾸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탁자 위의 가죽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낸다. A4용지이다.

탁―! 스윽―!

종이를 탁자에 내려놓음과 동시에 현수가 볼 수 있도록 밀어놓는다.

“이게 뭔데? 뭐야? 혼인승락서?”

표제를 읽은 현수는 아래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권지현, 강연희, 그리고 이리냐 파블로비치 체홉은 순수한 자의로 예카테리나 일리치 브레즈네프가 김현수의 네 번째 처가 되는 것에 동의합니다? 2017년 12월 24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