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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183화 (1,182/1,307)

# 1183

숙천유전을 개발하고 있으며, 에티오피아에 기관차를 수출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게다가 북한 체재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과 빈민들을 거의 모두 데리고 갔다.

북한 입장에선 단순한 우방국 이상의 혜택을 주는 존재이다. 그래서 불상사를 대비한 초특급 경호 중이다.

따라서 방금 느낀 위화감은 결코 외부의 요인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현수는 테리나가 들어간 방을 바라보았다. 이때 강렬한 위화감이 엄습한다.

“앗! 안 돼!”

쿵, 쿵―!

문이 잠겨 있다.

“언락!”

철컥―! 벌컥!

4장 왕국 선포

문을 열고 들어선 현수의 눈에 실링팬에 목을 맨 테리나가 보인다.

“테리나!”

황급히 아공간에서 바스타드 소드를 꺼낸 현수는 실링팬에 감겨 있는 넥타이를 잘라냈다. 떨어지는 테리나를 받아 안은 현수는 침대에 눕혀놓고 심장에 귀를 댔다.

이때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흐흑! 흐흐흑! 그냥 놔두지 왜……! 마음 졸이며 사는 게 지겨워서 그랬는데! 흐흑, 흐흐흑!”

고함에 가까운 현수의 목소리에 놀라서 달려온 백설화는 실링팬에 감겨 있던 넥타이를 보는 순간 어찌 된 영문인지를 깨달았다. 곧이어 테리나의 독백을 들었다.

기쁨조에 속해 있는 동안 다른 아이들과 달라야 함을 느껴 러시아와 지나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기에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듣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상념이 있다.

‘나는 오라버니를 내 목숨보다 사랑했나?’

화두 하나가 던져지자 백설화는 조심스레 물러났다.

지금은 자신이 끼어들 타이밍도 아니고 생각해 볼 것이 많다 느낀 때문이다.

이러는 동안에도 테리나의 눈물은 줄줄 흐르고 있었다.

“흐흑! 흐흐흑! 그냥 두지 왜요? 나 같은 건 없어져도 그만이잖아요! 흐흑! 흐흐흑!”

“테, 테리나!”

이전의 일이 뇌리를 스친다.

자신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이리냐가 자살하려는 걸 연희가 말리려다 총에 맞은 상황이다.

사랑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있을까 싶던 현수의 마음을 단번에 헤집은 사건이다. 그 결과 지현과 연희, 그리고 이리냐는 다정스런 자매처럼 사이좋은 아내가 되었다.

“테리나, 나 같은 게 뭐가 좋다고……. 아내도 셋이나 있는 유부남이잖아. 엄청 바빠서 함께해 줄 시간도 거의 없고.”

“흐흑! 그래도 사랑해요. 그래서 자기의 아내가 되고 싶었어요. 처음 자기를 만났을 때… 그때 무릎을 꿇고라도 결혼해 달라고 애원하지 않은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진심이 담긴 말과 표정이다. 그렇기에 현수는 뭐라 대꾸해야 할지 난감했다. 하여 잠시 말을 끊었다.

“테리나처럼 아름답고 똑똑한 여자는…….”

“싫어요! 난 오로지 자기뿐이에요! 오늘은 실패했지만…….”

불과 몇 분 사이에 기진맥진했는지 테리나의 음성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말이 이어지려는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알았어! 그러니 이젠 이러지 마. 알았지?”

“……!”

테리나의 눈이 커진다. 시선은 당연히 현수에게 고정되어 있다. 방금 한 말의 의미를 알아내려는 모양이다.

“저, 정말이에요? 정말 날 아내로 받아줄 거예요?”

“……!”

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이다. 그런데 그 시선 속에 담긴 의미를 읽은 모양이다.

누워 있던 테리나가 발딱 일어난다. 그와 동시에 영사 같은 두 팔로 현수의 목을 휘감으며 안겨든다.

“흐흑! 고마워요. 흐흐흑! 잘할게요. 정말 잘할게요.”

테리나가 눈물로 앞섶을 적시는 동안 현수의 뇌리로 스치는 상념이 있다.

‘지현은 에티오피아, 연희는 콩고민주공화국, 이리냐는 러시아, 테리나는 몽골의 왕비가 되는 건가?’

지구로 귀환하고 국적 포기를 권유받은 후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상념이 있었다.

조차받은 땅들을 시한부 왕국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당연히 국가명은 ‘이실리프 왕국’이다.

참고로 이실리프(Yisilipe)란 카이엔 제국어로 ‘위대한 마법사의 생애’라는 뜻이다.

현재 러시아, 몽골, 콩고민주공화국, 에티오피아에 조차지를 확보했다. 러시아만 150년이고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200년이다. 이 정도면 시한부 왕국 선포가 불가능하지 않다.

지나대륙 왕국들의 존속 기간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200년이면 원나라와 금나라의 존속 기간보다 길다. 따라서 시한부이긴 하지만 왕국이라는 명칭이 어색하지 않다.

물론 국제사회 및 조차지를 내준 국가에선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왕국을 선포하고 절대왕권을 가진 국가로서의 면모만 갖추면 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 조차지를 준 국가의 사전 양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에 대해선 생각해 둔 바가 있다.

지난 2014년 4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크림반도를 합병했고,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고유가 덕분에 탄탄한 재정 수입을 올렸다. 잘나가던 때이다.

그러다 국제 유가가 하락하기 시작하자 달러 대비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는 폭락하고 말았다.

이에 러시아 중앙은행은 파격적인 금리 인상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통화 불안은 계속되었다.

그러는 내내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거의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별다른 탈출구가 없었다.

러시아 경제가 매우 비관적이던 시기이다.

지금은 간신히 그 상황은 모면한 상태이지만 완전한 회복세로 접어든 것이 아니다.

언제 같은 일이 또 벌어질지 모른다. 하여 경제 전문가들은 러시아를 ‘금이 간 유리잔’에 비유한다.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몽골과 콩고민주공화국, 그리고 에티오피아는 러시아와 상황이 다르다. 산업이랄 게 변변하지 않은 빈국이다.

2014년 자료를 보면 한국은 1인당 GDP가 2만 8,739달러로 29위에 올라 있다.

러시아는 1만 4,317달러로 53위에 랭크되어 있다.

몽골은 116위로 3,880달러이고, 에티오피아는 188위로 532달러이며, 콩고민주공화국은 195위로 241달러이다.

참고로 북한은 146위로 1,800달러이다.

러시아에겐 또다시 경제 위기에 처했을 때 백기사 역할을 해주겠다는 약속만으로도 왕국 선포를 승낙받을 수 있다.

냉전 이후에도 러시아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국가들과 두터운 친분 관계를 형성하지 않았다.

여전히 대립 관계인 것이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를 길들이고 싶어 경제적 압박을 가하지만 러시아는 굴복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떠한 압박을 가하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는데 어찌 반대하겠는가!

어차피 빌려준 땅이니 그걸로 국을 끓이든 찜을 하든 상관없는 일이다. 따라서 러시아 자치령에 대한 왕국 선포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콩고민주공화국과 몽골,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경우는 경제 개발 및 산업 발전을 돕겠다는 약속만으로도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워낙 낙후된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실리프 트레이딩은 뉴욕증시(NYSE)와 나스닥(NA SDAQ)의 상위 기업 거의 모든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는 대주주이다.

50.1% 이상의 지분을 가졌으니 언제든 경영진을 바꾸고 세 나라에 대한 투자를 결정할 수 있다.

이는 별도의 돈을 들이지 않고도 콩고민주공화국 등의 실업률을 대폭 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 세 나라의 조차령도 왕국 선포에 그리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각 나라의 국왕은 당연히 현수이다.

왕이 있으면 당연히 왕비가 있어야 한다. 국본(國本)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국본이란 나라의 근본이라는 뜻으로, 왕위를 이을 세자, 또는 태자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왕국 선포는 최소한 네 나라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 혼자서 그 자리 모두를 차지할 수는 없다.

아이를 넷 이상 낳아야 하며, 그 아이들을 기르면서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는 건 말도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우간다와 케냐에서도 조차지를 얻게 되면 여섯 명 이상의 아이를 출산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이렇게 많은 아이를 낳는 여자가 어디에 있는가!

그러니 각 나라별로 왕비를 두는 것이 맞다.

‘근데 이런 식이면 케냐와 우간다에 조차지를 얻으면 아내를 늘려야 하는 거잖아? 끄응!’

현수는 나지막한 침음을 냈다. 마뜩치 않은 때문이다.

“왜요?”

눈물을 흘리면서 속을 다스리고 있던 테리나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혹시나 방금 전에 한 말을 번복할까 싶어서이다.

“아냐, 아무것도. 그나저나 이제 좀 진정이 돼?”

“네에, 고마워요. 저를 받아주셔서요.”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 테리나의 마음을 알면서도 외면해서……. 많이 사랑해 줄게.”

“고마워요! 흐흑! 흐흐흑!”

테리나는 또 한 번 굵은 눈물을 흘린다.

이번엔 슬퍼서가 아니다. 그간 마음에 맺혀 있던 모든 것이 스르르 풀어지는 가슴 벅찬 희열 때문이다.

“그나저나 배 안 고파? 뭐 좀 만들려고 하는데.”

“…고파요. 그전에 이것 먼저요.”

쪼오옥―!

테리나가 주도권을 가진 입맞춤이다.

“……!”

조금 전 목을 매달았던 테리나가 환한 얼굴로 샌드위치 만드는 모습을 본 백설화는 기이하다는 표정으로 둘을 본다.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여자의 직감에 따르면 뭔가 큰 고비를 넘어 잔잔한 바다에 이르렀다는 느낌이다.

‘나도 목을 매야 하나?’

깜찍한 생각이다.

그걸 느꼈는지 현수가 둘째손가락을 좌우로 흔든다.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칫! 누군 되고 누군 안 되는 이런 건 차별이에요.”

“차별이 아니야. 그리고 넌 내 동생이야.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알았지?”

백설화는 불만스럽다는 듯 볼을 부풀린다.

“치이! 마음에 안 들어요. 난 백 씨고 오라버닌 김 씬데.”

“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현수가 뭐라 타이르려 할 때 테리나가 접시를 들고 온다.

“여기요. 근데 맛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테리나가 만든 샌드위치를 보니 살이 엄청 찔 것 같다.

버터를 발라 익힌 식빵 사이엔 체다 치즈와 모차렐라 치즈가 녹아 있다. 설탕에 약간의 물을 부어 만든 시럽엔 호두 부스러기가 섞여 있다.

“우와, 이건… 칼로리가 엄청나겠군.”

한눈에 보기에도 칼로리 폭탄이다.

“헤헷! 하지만 우리에겐 쉐리엔이 있잖아요.”

테리나가 환히 웃고 있다. 짐짓 하는 행동일 것이다. 왠지 찡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건 조금 너무한데?”

“그래도 맛은 끝내줘요. 한번 먹어봐요.”

테리나는 순한 양의 시선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평생을 존경하고 흠모하며 사랑해 줘야 할 대상이라는 눈빛이다.

현수는 시선이 마주치자 싱긋 웃어주곤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 고소, 짭짤한 맛이 동시에 느껴진다.

“어머! 이거 정말 맛있어요.”

백설화는 눈을 크게 뜨곤 손에 든 칼로리 폭탄을 바라본다. 이처럼 맛있는 건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때문이다.

순식간에 야식을 먹어치운 현수와 테리나, 그리고 백설화는 소파에 앉아 영화 한 편을 감상했다.

2014년에 개봉한 ‘명량’이다. 누적 관객 수 1,760만 명짜리 영화이다.

개전 초기에 이순신이 탄 대장선은 홀로 왜선들을 맞서 싸웠다. 휘하 장수들이 압도적인 병력 차이 때문에 겁을 먹어 뒤따르지 않은 때문이다.

고군분투하던 대장선이 네 척의 왜선에 둘러싸여 격전을 벌일 때 이순신은 대장선이 보유한 모든 화포를 동원하여 이들을 격멸토록 하였다.

노를 젓던 선원들까지 총동원된 작전이었다.

어찌어찌하여 간신히 네 척의 왜군 군함을 물리쳤지만 대장선은 명량의 격류에 휘말렸다. 전투에 몰두하느라 회오리 바다로 쓸려 들어간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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