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0
“황제폐하의 명을 받드옵니다.”
이번에도 김정은이 가장 먼저 고개를 숙인다.
그 뒤를 이어 모두가 고개를 숙였지만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심신 굴복 상태이다.
현수는 이들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김정은을 바라보았다. 북한 권력의 핵심인 김정은이 반심을 품으면 안 되기에 절대충성마법을 중첩시켰다. 그래서 그런지 지극한 충성심이 엿보이는 눈빛이다.
“이실리프 왕국은 이곳뿐만 아니라…….”
현수의 말이 이어지자 테리나는 준비한 영상을 틀었다.
여러 장의 사진이 빠른 속도로 이어진 것인데 러시아, 몽골, 에티오피아, 콩고민주공화국의 자치령이 어떻게 발전되고 있는지를 압축한 것이다.
허허벌판이던 곳에, 혹은 울창한 밀림이던 곳에 도시가 들어서고, 거대 규모 농장이 조성되는 모습은 북한 인사들에게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조차지 개발에 관한 것이 끝난 후엔 이실리프 그룹의 현황에 대한 것들이 방영되었다.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의 권력자들은 감탄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한 사람의 영도력이 빚어낸 결과치고는 너무나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화룡점정은 이실리프 트레이딩의 현황이었다.
맨 마지막으로 멈춘 화면엔 두 줄의 글귀만 쓰여 있다.
2018년 7월 현재 이실리프 트레이딩 자산총액
◈ 3조 2,866억 8,718만 2,279달러 ◈
북한의 1년 예산은 한화로 약 5조 원이다.
따라서 이실리프 트레이딩이 가진 자산은 북한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입이 딱 벌어질 수밖에 없는 숫자이다.
북한을 완전히 새롭게 하고도 남을 만큼 어마어마한 액수라는 것을 확인하곤 현수에게 시선을 모은다.
이쯤해서 한마디 할 타이밍이라는 것을 직감한 듯하다.
“이실리프 왕국으로 탈바꿈함과 동시에 기존에 체결된 모든 조약은 무효가 될 것이다. 아울러…….”
현수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북한 인사들은 부지런히 메모한다. 현수의 발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한반도 북쪽에 자리 잡은 사회주의 국가 조선인민주의민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은 폐지된다.
2. 같은 장소에 이실리프 왕국이 새롭게 들어선다.
3. 북한의 모든 재산은 이실리프 왕국에 귀속된다.
4. 기존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계약은 폐기된다.
국제 사회를 강타할 만한 내용이지만 모두들 받아쓰며 고개만 끄덕인다. 자신들에게 문제 생길 일이 아닌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제5공화국은 독재정권이다. 이들은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우민정책을 썼다.
우민(愚民)이란 어리석은 백성을 뜻한다.
다시 말해, 국민을 멍청하게 만들 정책을 써서 자신들이 독재함을 가리고자 했다.
이때 실시된 것이 ‘3S 정책’이다.
스크린(Screen)과 스포츠(Sport), 그리고 섹스(Sex)의 이니셜을 모은 어휘이다.
에로영화의 검열 완화와 프로 스포츠의 출범, 그리고 통행금지 폐지와 교복과 두발의 자유화 등이 실시되었다.
현수는 북한에 자리하게 될 왕국의 권력을 현재의 집권 세력이 대대손손 물려받도록 하지 않을 생각이다.
다시 말해 왕국이 기틀을 잡기 전까지는 이들을 이용하지만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언제든 내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 첫 번째 S를 실시하려 슈퍼 바이롯 세트를 하나씩 하사했다.
“이것의 사용법은…….”
설명을 마치고 모두에게 마나포션을 복용토록 했다.
“매스 바디 리프레쉬! 엘레이아, 지금이야!”
샤르르르르릉―!
서늘한 마나가 뿜어져 체내의 피로 성분을 단숨에 분해하는 동안 물의 정령왕 엘레이아는 북한 인사들의 신체를 깨끗하게 씻김과 동시에 온갖 질병을 치료했다.
마나포션과의 상승효과 덕분에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간경화, 지루성피부염, 치질, 무좀 등이 단번에 치료되었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상태인지라 서늘한 물줄기가 온몸을 훑는 느낌은 너무도 생생했을 것이다.
“으읏! 차가워.”
“세상에! 어떻게 이런…….”
마나포션을 복용하자마자 체내의 균형이 잡힘과 동시에 묵직하거나 나른하던 몸이 상쾌함을 느끼게 되자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질병을 앓고 있던 자는 이제 그로부터 해방되었다. 내게 충성하는 자는 무병장수함을 그대들이 증명하게 될 것이다.”
“어라! 한쪽이 늘 저릿저릿했는데 이제 괜찮습니다.”
“나는 두통이 사라졌시요.”
“허어! 나는 무릎이 시원치 않았는데…….”
북한 인사들은 너무도 놀라운 결과에 서로를 바라본다.
“자! 이제 우리 이실리프 왕국의 건국을 위하여 다 같이 건배합니다!”
술잔을 높이 치켜든 이는 김정은이다. 이에 모두가 황급히 잔을 든다.
“이실리프 왕국의 만세무궁을 위하여!”
“만세무궁을 위하여!”
만찬은 흥겹게 진행되었다.
“정말 대단하셔요. 국왕폐하라니요.”
백화원 영빈관으로 되돌아오자 테리나는 현수의 양복을 받으며 생긋 미소 짓는다.
북한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왕국이 자리 잡는다는 말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게 조금 이상할 뿐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현수의 곁에서 보좌한 테리나와 백설화는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제까지는 이곳의 귀빈이었는데 오늘부터는 주인이다. 그것도 평범한 주인이 아니라 국왕폐하이다.
깊은 밤, 테리나와 백설화를 재운 현수는 플라이 마법으로 평양 상공에 올라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마인트 대륙에서 가져온 터번스 토리안 백작의 저택을 내려놓을 자리를 찾으려는 것이다.
평양직할시 대성 구역에 자리 잡고 있는 안학궁 터가 괜찮아 보였다.
안학궁은 고구려 시대 때 궁성으로 현재는 대성산(大城山) 기슭에 터만 남아 있다. 장수왕이 국내성(國內城)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때인 서기 427년(장수왕 15)에 세워졌으며 평상시 왕이 거주하던 궁성이다.
궁은 두꺼운 성벽으로 네모나게 둘러싸였으며 궁성 한 변의 길이는 622m이고, 그 둘레는 2,488m이며, 넓이는 약 38만㎡에 달한다.
그런데 토번스 토리안 백작의 저택을 꺼내놓기엔 조금 좁은 듯하다.
“쩝! 여기가 딱 좋은데 아쉽군.”
안학궁 터에서 북서쪽으로 이동하니 적당한 땅이 보인다.
동쪽엔 조선중앙동물원이 있고, 서쪽엔 평양외국어대학이 있는 널찍한 부지이다.
평양시 청암동 지역에 있는 이곳은 가로 1,200m, 세로 700m쯤 된다. 약 25만 4천 평 정도이다.
부지 인근을 살펴보니 별 무리 없이 확장도 가능하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곤 아리아니를 불렀다.
8장 북한을 먹다!
“아리아니!”
“네, 주인님!”
“아공간에 담긴 저택을 이곳에 내려놓을 거야. 정령들 불러서 준비시켜 줘.”
“네, 알았어요.”
마인트 대륙을 차지한 로렌카 제국 터번스 토리안 백작가의 저택은 ‘王’자형으로 생겼다.
바로크 양식과 로코코 양식이 혼합된 건축양식으로 가로 700m, 세로는 300m 정도 된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베르사유궁전보다 더 큰 규모이다.
베르사유궁의 면적은 2만여 평이지만 이 저택은 1층 바닥 면적만 약 4만 5천 평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넓다.
1층 층고는 약 12m로 안에 들어서면 누구나 웅장함과 화려함을 느낄 정도로 세심한 손길을 받은 건축물이다.
2층 층고는 약 8m, 3층부터 5층까지는 6m 정도 된다.
2,000개가 넘는 널찍널찍한 방과 부속실이 있는데 약간은 손을 봐야 한다.
화장실의 경우 정화 마법으로 대소변의 냄새를 제거하게 되어 있는데 일정량이 차면 일일이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벽에 걸린 미술품 중 일부는 걷어내야 한다.
흑마법사의 저택답게 사람을 죽여 그 고기로 요리하는 그림 등이 있기 때문이다.
서가의 책들은 당연히 모두 아공간에 담겨졌다. 마인트 대륙어로 쓰인 것들이니 세상에 선을 보여선 안 된다.
부지의 풀과 나무들은 단 한 포기, 한 그루도 손상되지 않았다. 아리아니가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 식재한 것이다.
“아공간 오픈! 출고!”
쿠우웅―!
어마어마한 크기의 저택이 목표한 곳에 자리 잡는다.
땅의 정령왕 노이아가 저택 아래 흙을 잘 다져 부동침하(부동침하(不同沈下, Uneven settlement) : 건축물의 기초가 장소에 따라 침하량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 부동침하가 발생되면 지상의 건축물이 기울어지거나 벽에 균열이 발생된다.)와 같은 일은 빚어지지 않는다.
현수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치울 것을 치웠다.
지구와 다른 모습이 그려진 미술품이나 흑마법과 관련된 모든 것이 대상이다.
꺼내놓은 것도 많다. 특히 침실의 매트리스는 모두 교체 대상이다. 하여 상당량의 매트리스를 꺼냈다.
그러면서 보니 정말 화려하다. 베르사유궁전의 ‘거울의 방’보다 더 휘황찬란하게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터번스 백작의 집무실에 있던 책상과 의자 등은 화려함의 극치이다. 장인의 세심한 손길이 알알이 배어든 골동품이자 예술품 수준이었다.
“흐음! 항온마법진이 필요하겠군.”
현수는 선택온도유지 마법진을 곳곳에 부착했다. 에어컨과 보일러가 필요 없는 건물로 바꾼 것이다.
“아리아니!”
“네, 주인님.”
“인근에 정원과 연못 등을 조성해 봐.”
“네, 주인님!”
아리아니의 부름을 받은 정령들은 주변을 정화함과 동시에 외곽에 야트막한 언덕과 숲을 형성시켰다.
자연 친화적인 담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리아니는 현수가 멀린의 레어에 있는 동안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온갖 양식의 정원들을 둘러본 바 있다.
숲의 요정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 결과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꽃을 감상할 수 있는 숲과 정원이 조성되었다.
저택의 앞에는 부정형의 연못들이 만들어졌다.
바닥에서 솟은 샘에 의해 순식간에 물이 차오르자 대동강의 물고기 중 일부를 옮겨놓았다. 이 연못엔 많은 수련과 부레옥잠, 창포 등이 식재되어 있다.
정령들이 힘을 합치자 적어도 몇 년 동안 정원사의 정성스런 손길을 받은 연못처럼 되어버린다.
“흐음, 상하수도가 문제군.”
그러는 동안 현수는 저택을 살피고 있다.
마인트 대륙에선 우물의 물을 길어다 사용한 듯 상수관 시설이 없다. 당연히 하수관 시설도 없다.
“이건 기술자들이 알아서 하겠지.”
모든 작업을 마친 현수는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다른 차원에서 가져온 건축물이지만 왠지 잘 어울린다.
“근데 이 건물의 명칭은 뭐로 하지?”
이 순간 현수의 뇌리를 스치는 어휘 하나가 있다.
“다물궁! 그래, 이 이름 괜찮네.”
‘다물’은 고구려 말로 ‘옛 영토를 다시 찾는다’는 뜻이다. 고구려가 되찾으려던 것은 그 옛날 고조선의 땅이다.
비파형 동검과 청동 단추를 이어 붙여 만든 청동 갑옷과 청동 군화 등이 출토되는 모든 지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후후! 내일 놀라서 자빠지겠군.”
각 나라에는 시조에 얽힌 설화가 있다.
예를 들어,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등의 이야기 등이다.
현수는 이실리프 왕국을 건국한 초대 국왕이다. 따라서 이 정도의 이적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저택을 꺼내놓은 것이다.
비록 전기와 상하수도 시설 등은 갖추지 못했지만 내부 인테리어는 이 세상 어떤 건축물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을 예술품의 반열에 올라 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단 하루 만에 베르사유궁전보다 더 웅장하고 화려하며, 고상하고 예술적인 건물을 지어낼 수는 없다. 첨단 과학이 총동원되어도 불가능한 일이며, 요즘 유행하는 조립식 건축 기법을 써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