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1
어쨌거나 모든 것을 마쳐놓고 백화원 초대소로 되돌아갔다. 테리나와 백설화는 여전히 꿈나라를 헤매는 중이다.
현수가 3년간 자리를 비운 사이 백설화는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생물학부 과정을 공부했다.
처음엔 로그비노프 특임대사의 후광 덕분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자신의 실력으로 당당하게 입학했고, 전액 장학금을 받으면서 3년 만에 조기 졸업하는 개가를 올렸다.
석사 과정 전공은 분자&세포 생물학(Molecular & Cell Biology)을 선택했다.
이걸 하기 위해선 물리학, 화학, 수학, 유전학 등이 기초되어 있어야 한다. 하여 부족한 부분을 익히기 위해 귀국한 상태였다.
다시 말해 백설화는 아주 영특한 두뇌를 가졌다.
테리나는 하버드대학 출신 변호사이니 둘이 머리를 맞대면 문과와 이과가 조화를 이루는 정책들이 입안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테리나를 받아준 게 잘한 일인 듯하다.
고용된 법률자문보다는 배우자가 훨씬 더 성심껏 일 처리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 *
2018년 7월 10일, 월요일 오전.
많은 사람이 청암동에 자리한 다물궁을 바라보고 있다.
“세상에 맙소사! 어떻게 이런 일이……!”
“허어! 이건 진짜……!”
“말도 안 돼! 하루 만에 어떻게 이런 건물을……!”
예상한 그대로의 반응이다.
김정은을 비롯하여 황병서 노동당 총정치국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박봉주 내각총리, 리영길 총참모장,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등은 입을 딱 벌리고 있다.
빛은 안 나지만 그야말로 휘황찬란한 건물이 하룻밤 새에 지어졌는데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이 궁의 이름은 다물궁이다. 다물이란…….”
잠시 현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여 나는 이 궁을 우리 이실리프 왕국의 정궁으로 삼고자 한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폐하!”
김정은이 직각으로 허리를 꺾는다.
진심으로 탄복한 표정이다. 북한은 김일성을 신격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설화를 날조해 냈다.
모래알로 총알을 만들고, 가랑잎으로 압록강을 건넜으며, 축지법을 쓰는 영웅이라는 내용 등이 그것이다.
말은 전해지지만 이를 눈으로 본 사람은 없다. 하여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아무것도 없던 청암동 공원에 단 하루 만에 엄청난 건물이 실제로 세워졌다. 게다가 평범한 건물도 아니다.
호화롭고 웅장하며, 우아하고 예술적 가치마저 지닌 지상 최고의 건축물이 당당하게 서 있다.
북한의 권력자들에게 설명해 주는 동안 현수는 자신의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뿜어냈다. 당분간은 이들 모두가 손발이 되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다들 현수를 반신(半神) 정도로 여기게 되었다. 공들여 신격화를 날조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전기와 상하수도 공사는 천지건설 유니콘 아일랜드 팀이 맡아서 마무리할 것이니 당분간 출입을 막도록 하라.”
“네, 폐하!”
모두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인다. 현수는 이들을 데리고 대성구역 림흥동에 자리 잡은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했다.
“어서 오시라요!”
백화원에 당도하자 대기하고 있던 제1호위부 소속 안경호 소좌가 경례를 붙인다. 남한으로 치면 소령이다.
일전에 현수가 중앙당 제1청사를 방문했을 때 파도 그림이 있는 곳에서 현수를 맞이했던 자이다.
그런데 방금 전의 경례는 다분히 형식적이다.
게다가 극존칭도 쓰지 않고 있다. 현수가 젊기에 저도 모르게 낮춰본 결과이다.
“어허, 이놈! 어디서 감히!”
“네? 자, 자, 잘못했습니다.”
안경호 소좌는 현수의 뒤를 따르던 리영길 총참모장의 노갈에 벌벌 떨며 말을 더듬는다. 이때 안경호의 직속상관인 호위사령관 윤정린 대장이 나선다.
“강인국 대좌!”
“네, 말씀하십시오.”
“폐하 앞에서 이자를 치우게.”
“네!”
강인국 대좌는 벌벌 떨고 있는 안경호의 뒷덜미를 잡아당긴다.
“사, 사, 살려주시라요, 동지! 내레 잘못했수다레.”
북한에서 죄를 지으면 본인이 숙청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본인은 목숨을 잃거나 교화소 등에 수감되고, 직계가족 전부는 완전한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
안경호는 본인이 뭔가 잘못을 저질러 숙청당한다 생각했다. 반항하면 가족들까지 목숨을 잃을 수 있기에 순순히 끌려가면서도 살려 달라 애원한다.
“사령관, 몰라서 그런 거니 심하게 하진 말도록!”
“네, 그렇게 지시하겠습니다, 폐하!”
윤정린 대장이 얼른 고개를 숙인다.
호위총국은 3개 군단 12만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정예 3,000여 명이 1호위부에 배속되어 있다.
출신 성분과 당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본인의 능력 등이 고려되어 선발되었다.
어제까지는 김정은 일가가 최우선 경호 대상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윤정린 대장은 김정은의 부름을 받았다.
그 자리에는 현수도 같이 있었는데 호위총국의 명칭은 이실리프 왕궁 근위사령부로 바뀌었다.
제1대 근위사령관 보직을 받은 윤정린은 감격에 겨워 눈물까지 흘렸다. 너무나 영광스럽다 생각한 것이다.
“자! 안으로 들어가지.”
“네, 제가 모시겠습니다.”
현수의 왼쪽 한 발짝 앞에 서 있는 최철 중장의 어깨엔 별 두 개가 달려 있다. 국왕의 수행총관에 임명되면서 두 계급이나 승차한 결과이다.
“가지!”
“네!”
일행이 들어선 곳은 백화원 영빈관의 메인 홀이다.
이곳엔 현재 전군 사령관이 집결해 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는 전원 집합이다.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김정은이 직접 내린 집합 명령의 결과이다.
열린 문 사이로 현수가 들어서자 누군가 소리를 친다.
“일동 기립!”
무슨 영문으로 전군 사령관들을 집결시켰는지 알 수 없어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다 기립 소리에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서자 의자 밀리는 소리가 들린다.
촤르륵! 촤르르르르―!
“이실리프 왕국의 초대 국왕이신 김현수 폐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모두 경례!”
처척! 처처처처척!
현수의 바로 뒤에 김정은과 윤정린 등 북한 수뇌부들이 경건한 표정으로 따르는 것을 본 사령관들은 시키는 대로 경례를 올려붙인다. 남한과 달리 경례 구호는 없다.
“매스 앱솔루트 피델러티!”
샤르르르르르―!
눈에 보이지 않는 마나가 경례를 하고 있는 사령관들의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그러자 눈빛이 가장 먼저 변화한다.
지금껏 김정은에게 충성을 바쳤는데 이제 그 대상이 바뀌게 되었음을 자연스레 깨달은 것이다.
현수는 준비된 단상에 올랐다.
“어제 조선인민주의민주공화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현수의 한마디에 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전부 김정은 등 수뇌부에게 시선을 돌린다.
이때 김정은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한다는 뜻을 표한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다시 현수에게 쏠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 어서 설명해 달라는 뜻이다.
“공화국이 있던 한반도 북부 지역엔 이실리프 왕국이 건국되며 나는 초대 국왕이다. 나는 오늘…….”
현수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사령관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무런 조짐도 없던 일이 느닷없이 일어났으니 의아한 것이다.
그러는 동안 어제 김정은 등에게 보여준 영상을 보여주었다. 이에 대한 설명은 테리나가 맡았다.
자치령의 발전상을 보는 사령관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모두에게 주거와 직업이 제공되고, 신선한 먹을거리를 무상에 가까운 가격에 공급받으며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
항온의류에 관한 내용이 나오자 입을 딱 벌린다. 북한의 겨울은 몹시 춥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한복판에 자리 잡은 러시아 자치령이 보이는데 아파트 베란다에서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을 뿌리자 그 즉시 눈으로 변하는 모습이 먼저 보였다.
그곳의 기온이 최하 ―40℃ 이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걸 보고 깔깔 웃는 사람들은 모두 얇은 봄 점퍼 같은 것만 걸치고 있다.
“끝으로 나는 앞으로 일만 년을 이어갈 이실리프 왕국의 법궁(법궁(法宮) : 임금이 사는 궁궐.)을 어젯밤 청암동에 지었다.”
“대체 뭔 소리야?”
“궁을 하루 만에 지었다고?”
“그걸 어떻게 하루 만에 지어?”
모두가 웅성거릴 때 누군가 텔레비전을 켠다. 북한의 중앙방송사인 조선중앙TV이다.
“저기를 보십시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던 이곳에 인간의 솜씨라 믿을 수 없는 초대형 궁전이 나타났습니다. 이곳은 청암동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리포터에 해당하는 여인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엔 정말 초대형 궁전이 서 있다.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엔 여러 건축물이 있다. 근정전, 자경전, 사경전, 강녕전, 교태전, 경회루, 향원정 등이다.
이들의 모든 면적을 합쳐도 다물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면적이다.
접근 금지 명령이 내려져 가까이 다가갈 수 없지만 줌 렌즈로 당기니 호화로운 외관이 드러난다.
이때 리포터의 발언이 이어진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저곳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새벽 이곳을 지나던…….”
리포터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카메라는 다물궁의 이곳저곳을 끌어당겨서 보여준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호화스런 궁전이다. 잠시 화면을 지켜보던 테리나는 리모컨으로 소리를 죽였다.
“저곳이 내 왕궁이다. 지금이라도 말하라, 이실리프 왕국의 건국에 반대하는 이는!”
현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윤정린 대장의 살벌한 시선이 사령관들을 훑는다.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기미가 보이면 곧장 총살이라도 시킬 듯싶다.
“지엄하신 국왕폐하께서 반하는 이는 표하라 하셨다.”
매스 앱솔루트 피델러티 마법이 구현된 상태이다.
호위총국을 맡은 윤정린 대장의 눈빛을 받고도 멀쩡한 이는 있을 수 없다.
현수는 잠시 시간을 주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자 말을 이었다.
“이로써 이실리프 왕국은 건국되었다. 너희는 각자에게 합당한 직위가 주어질 것이다.”
“……?”
대체 뭔 소리인가 싶어 할 때 현수의 발언이 이어진다.
“특별히 오늘부로 소장은 남작, 중장은 자작, 상장은 백작, 대장은 후작에 봉해질 것이다. 김정은은 공작에 봉해질 것이니 충성을 다하라!”
“추웅―!”
누군가 일어서며 큰 소리를 내자 나머지 사령관들 역시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국왕폐하께 추웅―!”
“추웅―!”
매스게임의 왕국답게 정말 일사불란했다.
* * *
“아니, 김현수가 왜 우리 국적을 버린다는 거야?”
“그러게? 군대 가기 싫어서 그러나?”
누군가의 대화에 또 다른 누군가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끼어든다.
“야, 이 바보야. 외국에 있는데 예비군훈련 안 나왔다고 벌금 물린 거 잊었어?”
“어라? 그럼 군대를 다녀왔다는 거잖아.”
“당연하지. 김현수 회장은 예비역 병장이야. 국방과학원 소화기 개발팀 특등 사수 출신이라고.”
“근데 군대도 다녀왔는데 왜 국적을 버려?”
“바보야, 김현수 회장이 콩고민주공화국과 러시아, 그리고 몽골 등지에서 얻은 조차지 면적이 얼만지 잊었어?”
“잊기는, 각각 우리나라보다도 크잖아.”
“그래, 근데 그런 조차지를 운영하는 걸 몇몇 외국이 싫어하나 봐.”
“그럼…….”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깨달아지는 것이 있는 법이다.
현수가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였다는 보도가 나가자 한바탕 시끄러웠다. 예전 같으면 매국노나 배신자 같은 말이 무성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수는 병역을 면탈할 목적으로 국적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군필인데다 성실히 세금을 납부해 온 모범적인 기업인이자 직장인이다.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지만 졸부들처럼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폼을 잡지도 않는다.
5급 공무원인 권지현은 이실리프 모터스에서 제작한 1,000㏄짜리 경차를 타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