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2
들고 다니는 가방은 비싼 명품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제작한 펠트 가방이다. 그리고 목걸이나 귀고리, 반지, 팔찌 같은 장신구는 결혼식 이후 패용한 적이 없다.
공무원으로서 출퇴근이 명확하며, 무엇 하나 흠 잡을 것 없을 정도로 성실히 근무했다.
사치와 낭비를 일삼아도 별 타격을 입지 않을 여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산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한 용품 다 평범한 것들이다. 비싼 유모차나 카시트 같은 것도 쓰지 않는다.
지극히 서민적인 삶을 살고 있다.
딱 하나 베일에 싸인 것이 있다면 양평 저택의 내부이다. 하지만 이는 사생활이다.
외부인이 왈가왈부할 성질의 일이 아니기에 현수의 국적 포기 뉴스는 큰 이슈가 되기 못했다.
2018년 7월 11일, 김현수와 권지현, 그리고 김철과 현수의 부모님, 권철현, 이숙희 여사는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했다.
한동안 시끄러웠지만 이해하는 이가 더 많았다. 그동안 쌓아놓은 좋은 이미지가 큰 역할을 했다.
* * *
“앞으로 좋은 관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현수의 맞은편에 앉은 이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느닷없는 독대 요청에 웬일인가 싶었는데 푸틴의 특사 자격일 수 있어 접견을 허락했다.
그런데 앉자마자 너무도 놀라운 이야기를 꺼냈다.
사회주의 국가 북한이 전격적으로 붕괴되었고, 그 자리에 이실리프 왕국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절대왕권을 가진 현수가 국왕에 취임할 예정이라는 말엔 더욱 놀라움을 표했다. 공화정에서 왕정으로 복귀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산가족 상봉부터 시작하지요.”
“아픔이 많은 분들이니 그래야지요.”
“그럼 통일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을…….”
현수는 현재 대한민국 국적이 아니다. 어제부로 국적이 상실되었음을 통보받았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현수를 자신이 통치하는 국가의 국민으로 여기는 듯하다.
“아마도 통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네? 그게 무슨…….”
웬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느냐는 표정이다.
현수가 북한을 먹었으니 남한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는 방식은 어떨까 하고 생각하던 중이기 때문이다.
“이산가족의 상봉 정도는 성사시켜 드릴 수 있지만 이실리프 왕국을 남한에 편입하려는 생각은 갖지 말아주십시오.”
“네? 그게 무슨……!”
“이실리프 왕국은 대한민국과는 별개의 국가로서 존재하게 될 겁니다.”
대한민국엔 썩어빠진 정치인과 부정부패에 물든 공무원이 우글거린다. 그리고 권력자의 시녀 노릇이나 하고 있는 두 견찰이 있다.
뿐만이 아니다. 돈 좀 있다고 갑질을 서슴지 않는 개만도 못한 인간도 상당히 많다.
그런데 어찌 이실리프 왕국을 대한민국과 합치겠는가!
이런 분위기를 읽었는지 대통령의 얼굴이 굳어진다.
“그럼 대한민국과의 국교 관계는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이실리프 왕국은 새로 건국된 나라입니다. 당연히 새로운 관계를 정립시켜야지요.”
현수는 일국의 국왕으로서 대통령을 만나는 중이다. 그렇기에 당당한 표정이다.
“그럼 현재의 대치 관계는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아국은 공산당과 관련이 없습니다. 따라서 수십 년간 지속된 대립 관계는 당연히 청산되어야 할 겁니다.”
“그건 좋습니다.”
남북한의 대치가 중단되면 서로 좋은 일이다. 당장 국방에 대한 염려를 크게 줄여도 되기 때문이다.
“휴전선이란 명칭은 국경으로 바꾸겠습니다.”
“네, 우리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인다.
“국경 인근에 배치되어 있는 군대는 곧 철수될 겁니다.”
“그거 좋군요.”
현수가 하는 일이지만 대통령은 자신의 치적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은 이어진다.
“전쟁포로를 비롯하여 이실리프 왕국에 머물고 있는 모든 외국인은 곧 내보낼 계획입니다. 그와 동시에 아국의 모든 국경은 폐쇄될 것입니다.”
“그럼 쇄국정책을 쓰려는 겁니까?”
“아국의 체제가 공고히 될 때까지는 그렇습니다.”
“그럼 개성공단은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개성공단은 우리 이실리프 왕국과 대한민국이 교류하고 있음을 보여줄 상징적인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원치 않으시면 전부 철수시키셔도 됩니다.”
“아! 그건…….”
대통령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값싼 노동력을 공급받을 수 없어서가 아니다.
자칫 자신의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까 싶어서이다.
“오늘은 아국의 건국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자 방문했습니다. 다음에 또 뵐 때엔 국왕 자격으로 뵙겠습니다.”
“네, 그러십시오. 언제든 환영합니다.”
이실리프 그룹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다.
만일 전격적으로 모든 계열사를 북한으로 옮겨 버리면 대한민국의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이다.
그새 덩치를 많이 키운 결과이다.
현수가 돌아간 뒤 대통령은 비서실에 연락하여 홍익인간과 NOPA, 그리고 미라힐 시리즈의 신약 허가를 반려한 공무원들의 명단을 작성토록 했다.
아울러 이실리프 계열사들을 상대로 세무조사를 지시했거나 그와 관련된 자들의 명단도 요구했다.
조금이라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강력하게 처벌하려고 마음먹은 것이다.
이실리프 왕국과 친밀한 우호관계를 맺기 위한 포석이다.
9장 이실리프호 발사!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네, 그간 수고 많았습니다.”
현수와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은 이는 이실리프 우주항공과 이실리프 스페이스, 그리고 이실리프 코스모스의 사장들이다. 이 밖에 이실리프 기술연구소장도 자리하고 있다.
이들의 뒤에는 현수를 보기 위해 퇴근도 않고 기다린 기술진이 있다.
현수는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그간의 노고를 치하했다.
아직 왕국 선포가 이루어진 상태가 아닌지라 다들 현수를 국왕이 아닌 이실리프 그룹 총수로 알고 있다.
“그건 어디에 있습니까?”
“저쪽에 있습니다. 가시지요.”
이실리프 우주항공 사장의 안내를 받아 간 곳엔 거대한 구조물이 서 있다. 세 회사와 기술연구소의 모든 두뇌가 합쳐져 만들어진 이실리프호이다.
이실리프호는 반경 60m, 높이 5m짜리 원반형 물체이다. 현재 실내 용적은 약 56,520㎥이다.
기술진의 안내를 받은 현수는 이실리프호의 함 내로 들어섰다. 우선은 공간 확장을 위해 내부를 살폈다.
마법진이 구현되면 반경 150m, 높이 12.5m 정도로 늘어나니 용적 또한 약 883,125㎥로 확장된다.
바닥 면적만 축구장 124개 정도인 셈이다.
이실리프 함의 내부는 2층 구조이다. 따라서 바닥 면적을 다 합치면 약 53만 4,000평 규모이다.
이 정도면 전투용병 24명과 각 분야 연구원 24명, 그리고 함장과 부함장을 포함해 승조원 24명으로 총원 72명이 생활하지만 결코 좁지 않을 것이다.
승조원에는 의사와 간호사 각 한 명과 요리사 두 명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건 ‘이실리프의 창’입니다.”
이실리프 우주항공 사장이 손으로 가리키는 것을 보니 눈에 익다. 이것의 도면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전자기파를 발사하는 거죠?”
“맞습니다. 전자기파를 발사하면 1초 만에 목표 지점 반경 10㎞ 내의 모든 생명체를 말살시킵니다.”
미국이 정립시킨 이론을 바탕으로 이실리프 기술연구소 등에서 이를 기술적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약 314㎢이면 서울시 절반보다 약간 넓군요.”
“네, 이제 이쪽을 보시죠. 이건 ‘이실리프 미티어’입니다.”
이실리프 기술연구소장이 가리킨 것은 길이 6m, 무게 100㎏짜리 텅스텐 탄심이 가지런하게 박혀 있는 것이다.
우주에서 곧바로 자유낙하하게 되면 중력가속도가 붙으면서 어마어마한 운동에너지를 가져 하나하나가 핵폭발에 버금가는 위력을 보일 물건이다.
헤아려 보니 약 36개의 탄심이 장착되어 있다.
“탄심은 저게 전부인가요?”
“아닙니다. 예비 탄심 1,800개는 저장고에 있습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몇 발짝을 더 걸었다.
“이건 이실리프 샷건입니다.”
“샷건이라면… 아, 레일건인가요, 아님 코일건인가요?”
“레일건입니다. 이실리프호엔 총 12개 방위에 설치되어 있는데 적국이 발사한 탄도미사일, 또는 적기와 위성들을 요격할 때 사용될 겁니다.”
“투사체는 뭐를 쓰죠?”
“직경 1㎝짜리 텅스텐 구슬입니다.”
현수는 이실리프 기술연구소장에게 시선을 주었다.
“투사체 발사 속도는 어떻습니까?”
“현재는 초속 6,600m입니다.”
“휘유! 시속 23,760㎞군요. 마하로 따지면 19.4 정도 되니 웬만한 탄도미사일은 다 잡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실리프호가 우주에 있는 한 한반도의 안전은 확보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기술연구소 소장은 자랑스럽다는 표정이다.
샷건의 개발은 현수가 남긴 자료에서 시작되었으나 결과물은 연구팀이 기울인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샷건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상상보다 덩치가 큰 듯싶다.
“발사체가 하나가 아닌 모양입니다.”
“잘 보셨습니다. 보고 계신 이실리프 샷건은 12개가 한 묶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실리프호는 144개의 레인건으로 무장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일 대 다수의 대결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그렇군요.”
크게 고개를 끄덕인 현수는 잠시 내부를 더 둘러보았다. 그냥 보는 것 같지만 사실 고도의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실리프호에 대한 과학과 기술적 조치는 거의 마친 상태이다. 이제부터는 마법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상당히 많은 마법진이 필요하다.
내부 공간을 대폭 확장시켜 주는 Space expansion,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Perfect transparency, 완벽한 방어를 위한 Absolute barrier 마법진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반중력을 위한 Anti―gravity, 고도를 변경하는 Altitude change 마법진도 있어야 한다.
이 밖에 사용자가 선택한 온도를 유지시켜 줄 Selection temperature maintain, 실내공기를 쾌적하게 정화시켜 줄 Air purifying, 그리고 필요한 물자를 언제든 보내고 받을 수 있을 Teleport 마법진이 필요하다.
안전을 위해 적의 레이더로부터 안전할 전파, 음파 및 전자파 흡수 마법진도 필요하고, 추진기의 온도를 낮춰줄 냉각 마법진도 있어야 한다.
이처럼 많은 마법진이 필요한 이유는 이실리프호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레이더로도 잡히지 않으며, 어떤 추적 방식으로도 찾아낼 수 없는 절대 병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흐음! 이제부턴 내가 손을 좀 써야겠군요.”
현수는 이실리프호 한복판에 준비된 판금도구가 완벽하게 갖춰진 작업대 앞에 섰다.
이실리프 우주항공, 이실리프 스페이스, 그리고 이실리프 코스모스의 사장과 연구진, 그리고 이실리프 기술연구소의 기술진 모두 바라보고만 있다.
작업에 앞서 현수는 본인이 마법사임을 밝혔다.
당연히 모두들 몹시 놀란다.
전 같으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벌 떼처럼 달려들었을 것이다. 하나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매스 앱솔루트 피델러티 마법이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아공간을 열었다.
“아공간 오픈! 이실리프 오픈!”
말 떨어지기 무섭게 마법서가 허공에 둥실 뜬다.
현수는 마법서에 기록된 각종 마법진을 참조해 가며 작업을 개시했다.
필요한 도구를 모두 꺼낸 현수는 어떤 마법으로 이실리프호를 개조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평생토록 어느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발설하지 말 것이며, 메모조차 남기지 말라고 명을 내렸다.
지상명령이니 죽는 날까지 소문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