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195화 (1,194/1,307)

# 1195

케룰렌 강의 평균 수심은 어른의 무릎 깊이였다.

현재는 평균 수심이 약 10m에 달한다. 참고로 한강의 서울 부분 평균 수심은 약 3m이다.

강폭도 많이 넓어져서 물이 천천히 흐른다.

상류부터 따져 총연장 1,264㎞인 이 강의 끝에는 호륜호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지나 영토로 흘러들기 전에 자치령을 크게 한 바퀴 휘감는 형태가 되었다. 지각의 일부가 솟으면서 지형이 바뀐 때문이다. 그 결과 수많은 지류가 생겨 자치령의 거의 모든 농토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당연히 식수로도 사용된다.

[잘했네. 수고했다고 전해줘.]

[호호! 네.]

아리아니는 칭찬받은 것이 기쁘다는 듯 환히 웃으며 발장구를 친다. 바로 곁에 앉은 남바린 엥흐바야르에겐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행정수반은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을 가리키며 입을 연다.

“저기 보이는 케룰렌 강의 수량이 갑자기 풍부해져서 정말 다행입니다. 덕분에 식수와 농업용수 부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그런가요?”

현수는 짐짓 모르는 척했다.

“네, 신의 가호를 받지 않고서야 어찌……. 케룰렌 강은 본디 어린아이도 건널 수 있는 강이었는데 지금은 50m가 넘는 곳도 있습니다. 물도 아주 깨끗하고요.”

수질 검사를 한 결과 1.5급수 정도 된다. 물이 흐르는 속도가 느려서 그러하다.

“다행입니다. 초이발산 남쪽은 어떤가요? 가보셨습니까?”

“거긴… 가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쪽에서 상당히 많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보고는 받았습니다.”

남바린 엥흐바야르는 정권을 잃은 뒤 반대파의 집요한 정치공작 때문에 운신이 편치 않은 상태이다.

자치령은 몽골의 법과 관련 없는 곳이니 어디든 활보해도 괜찮지만 이곳을 벗어나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하여 초이발산 남쪽엔 발을 들여놓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거긴 왜 물으시는 겁니까?”

“초이발산 남부지역에 농토를 조성해 주는 대가로 고비사막의 일부를 또 다른 조차지로 받을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사막을요? 거길 무슨 용도로……?”

고비사막이 어떤 곳인지 어찌 모르겠는가!

고비란 몽골어로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란 뜻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암석사막이며 모래사막은 매우 적다.

하여 봄철 황사는 고비사막의 남부지역에서 발생된다.

사막 전체에 지하수가 있기는 한데 대부분 짠물이며, 대개 지표에서 6m 미만의 깊이에 있다.

“새로 조차를 받으면 그곳도 농토로 전용할 생각입니다.”

“네에? 사막을 농토로 바꿔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기에 눈을 크게 뜬다.

“네, 발전된 해수담수화 기술로 염수화된 지하수를 끌어 올려 민물로 바꾸면 됩니다.”

“…그럼 면적은 얼마나 됩니까?”

“40만㎢ 정도를 요구할 생각입니다.”

“휘유! 대단하군요. 근데 가능한 겁니까?”

대한민국 전체의 네 배가 넘는 면적이다. 그걸 전부 농토로 바꾸는 일은 개인의 역량으론 힘들다.

“한국의 해수담수화 기술을 이미 세계적입니다. 자본만 투입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요.”

드넓은 사막이 수천, 혹은 수만 대의 중장비에 의해 개발되는 장면을 떠올린 남바린 엥흐바야르는 현수를 다시 바라보았다.

자신이 몽골 대통령이었을 때에도 손대지 못한 일이다.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자치령을 떠올렸다.

수천 대의 불도저, 페이로더, 굴삭기, 덤프트럭 등에 의해 그야말로 눈 깜박할 사이에 황무지가 농토로 바뀌고 있다.

농토 인근 적당한 곳엔 축사가 지어지고, 유기비료 생산 설비들 또한 들어서고 있다.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곳엔 규모는 작지만 신도시들이 들어서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위락을 위해 경관이 뛰어난 곳마다 관광지로 개발되는 중이다.

이 밖에 거미줄같이 사통팔달한 도로가 만들어지고 있다. 동시에 전기, 수도, 가스, 통신 등을 공급하기 위한 지하 공동구가 조성되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기에 개발 속도는 매우 빠르다.

자고 일어나면 눈을 다시 비비고 봐야 할 정도이다. 무지막지한 자본 투입의 결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고비사막에서 또 일어날 것을 생각하니 전율이 느껴진다. 국가도 못한 일을 개인이 한다고 하니 어찌 놀랍지 않은가!

“근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저기 저곳입니다.”

남바린 엥흐바야르가 손짓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울창한 숲 속에 솟아 있는 커다란 성이 보인다.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Neuschwanstein)성과 매우 유사한 모습이다.

“외관은 중세지만, 중앙난방, 수도, 가스, 전기, 전화, 인터넷 등 현대문명의 이기가 두루 갖춰져 있습니다.”

“멋지군요.”

“그렇습니다. 저곳에 오르면 사방의 평원을 한눈에 볼 수 있지요. 저 성은…….”

잠시 남바린 엥흐바야르 행정수반의 설명이 이어졌다.

‘해모수’성이라 불리는 저것은 한창호 건축사가 설계를 했고, 천지건설 유니콘 아일랜드 팀의 역작이라 한다.

본관의 바닥 면적은 3,000평이며, 7층으로 지어졌다. 지형 때문에 지하가 된 곳은 창고 등의 용도로 사용된다.

성의 오른쪽에는 빈관이 지어졌는데 바닥 면적이 1,500평이며 4층으로 조성되어 있다.

둘 다 내부의 인테리어가 6성급 호텔 수준이라고 한다.

“원래 언덕에 나무가 저렇게 울창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성이 건립된 후 저처럼 우거졌습니다.”

아리아니가 한 일이라 현수는 고개만 끄덕였다.

“좋군요. 마음에 들어요. 테리나는 어때?”

“아아, 정말 멋져요!”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테리나는 자신이 이곳의 왕비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는 저 건축물이 자신이 머물 왕궁이라 생각하고 있다.

“저 건물의 주요 용도는 뭐지요?”

“저건 회장님 가족을 위한 건물입니다.”

예상대로의 답변이다.

“저걸 다 쓴다는 말이에요?”

“네, 이곳의 겨울은 매우 춥습니다. 하여 한겨울에도 거의 모든 걸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남바린 엥흐바야르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듯 B4 사이즈의 브로셔를 꺼내서 보여준다.

표지는 해모수궁을 항공 촬영한 사진이다.

이걸 넘기니 배치도와 평면도, 그리고 입면도가 있다.

실내에 수영장, 볼링장, 테니스장, 탁구장, 당구장, 극장, 공연장 등이 있다고 한다. 방금 전에 들은 대로 한겨울에도 실내에서 각종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궁의 부속 건물 중에는 마사(馬舍)도 있다. 승마를 즐길 수 있도록 해놓은 듯싶다.

산책로도 아주 잘 조성되어 있고 너른 마당도 있다.

커다란 유리 온실도 있어 한겨울에도 싱싱한 채소를 수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흐음! 좋군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테리나는 브로셔의 마지막 페이지를 눈여겨보고 있다.

“이건 어느 나라 달력인가요?”

그러고 보니 한 페이지에 열두 달을 한꺼번에 표기해 놓은 달력이 왠지 이상하다. 빨간 날이 상당히 많아 보인다.

하여 설명해 달라는 표정으로 둘은 남바린 엥흐바야르 행정수반을 바라보았다.

“먼저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건 아직 확정된 달력이 아닙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대한민국과 몽골의 공휴일을 모두 표기해 놓았습니다.”

“아! 그렇군요.”

최종 결재권자인 본인이 없어서 빚어진 일이기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나온 김에 이 부분만이라도 회장님께서 결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흐음! 그럼 그럴까요? 우선 설날과 추석을 휴일로 정하죠. 설날은…….”

현수는 몽골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이야길 시작했다.

남바린 엥흐바야르가 소련의 고리키문학대학교를 졸업한 문학박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현수는 이야길 하면서 본인의 생각을 정리했다.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자치령도 같은 달력을 쓰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각 자치령의 관리자들은 한민족이 많을 것이다. 하여 한반도를 기준으로 했다.

설날은 음력 1월 1일이다. 그날을 기준으로 전후 2일을 포함한 닷새가 휴일이다. 다시 말해 5일 연휴이다.

자치령은 기본적으로 주 5일 근무이다.

따라서 운 좋게 음력 1월 1일이 수요일이면 전 주 토, 일요일까지 끼어 내리 9일간 쉬게 된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이다. 이날은 기준으로 전후 2일씩을 포함하여 5일간 쉰다. 추석도 설날과 마찬가지로 9일 연휴가 될 확률이 7분의 1이나 된다.

개천절은 음력 10월 3일로 정했다.

환웅천황께서 신시(神市)를 도읍으로 정하시고 한민족 최초의 국가인 배달국(BC 3897)을 건국한 날이 음력 10월 3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조선을 건국하신 단군왕검께서 단목 터에서 삼신상제님께 제(祭)를 지내신 날도 바로 음력 10월 3일이다.

이를 기준 삼은 것이다.

다음은 가족 주간이 될 날을 정했다.

어린이날은 5월 5일, 어머니의 날은 5월 6일, 아버지의 날은 5월 7일, 그리고 스승의 날은 5월 8일이다.

미정인 것은 건국기념일이다. 그날을 기준으로 전후 이틀씩이 포함되면 5일간의 공식 휴일이 정해질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이실리프 왕국의 공휴일은 총 20일이다.

너무 적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공휴일은 신정(1일), 설날(3일), 3.1절(1일),어린이 날(1일), 석가탄신일(1일), 현충일(1일), 광복절(1일), 추석(3일), 개천절(1일), 한글날(1일), 크리스마스(1일)로 총 15일이다.

이실리프 왕국의 공휴일인 어린이날, 아버지의 날, 어머니의 날, 스승의 날은 양력 5월에 고정되어 있다.

가족 주간으로 칭하도록 일부러 몰아놓았다.

음력으로 쇠게 되는 설날은 양력 1∼2월에 있을 것이고, 추석은 9∼10월에 있기 쉽다. 따라서 건국기념일은 7월 말∼8월 초에 있어야 쉬는 날의 균형이 잡힐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대략 5일, 또는 그 이상의 휴가 기간이 만들어진다.

남바린 엥흐바야르는 현수가 한 말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행정수반으로서의 업무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현수는 아직 건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몽골 정부와 조율이 되지 않았기에 괜한 설레발을 치거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 먼저 마시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휴일이 주말과 겹치는 경우는 어떻게 할까요?”

“대체휴일제도는 차후에 고려해 보십시다. 지금은 할 일이 많은 때니까요.”

개발 작업이 완료되거나 국가로서의 기틀이 잡힌 후에 논의해도 될 일이라는 뜻이다.

“알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다 왔습니다.”

“그러네요.”

차는 활짝 열린 성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울창한 숲 속 길을 부드럽게 달렸다.

달리면서 보니 도로의 양옆과 중앙엔 적당한 간격을 두고 LED가 내장된 유도등이 매립되어 있다.

태양광발전 설비로부터 DC 24V를 공급받는 것이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조금 미끄럽겠군요.”

“자치령의 모든 도로엔 열선(Snow melting cable)이 깔려 있어 눈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 그런가요? 전력은 어떻게 공급됩니까?”

“오면서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태양광 발전설비를 사용합니다. 기존 태양광 발전 설비는…….”

주윤우 사장이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이실리프 솔라파워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태양광 발전설비 제작 및 설치 전문 회사이다.

그런데 태양광 발전은 모듈의 종류에 발전 효율이 다르다. 대강 12∼18% 정도이다.

주 사장은 콩고민주공화국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분야 최고 기술자들을 모았다. 그리곤 각자가 가진 노하우를 아낌없이 꺼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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