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9
최철 중장의 표정과 어투는 진심으로 승복한 신하의 모습이다. 이는 지난 며칠간 평양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다.
현수가 평양을 떠난 직후 김정은 등 예전 북한의 수뇌부 200여 명 등은 금수산태양궁전에 모였다.
이곳은 김일성이 생전에 생활하던 금수산의 사당이었는데 그의 시신을 영구 보존하는 목적으로 개조된 바 있다. 지금까지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보존되어 있었다.
김정은 등 수뇌부 200여 명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을 모란봉으로 옮겼다. 을밀대와 사허정 사이의 숲 중 일부를 밀어내고 무덤을 조성한 것이다.
김일성은 조선인민주의민주공화국을 만든 사람이다. 그런데 이 땅에 새롭게 이실리프 왕국이 들어서게 되자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행사를 거행한 것이다.
안장식을 마친 후 김정은 등은 다시 모였다. 그리곤 충성대회를 열었다. 이실리프 왕국의 만세무궁을 기원하는 다짐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최철 중장 또한 이 자리에 참석했다.
국왕의 수행총관이니 일련의 행사를 눈여겨보았다가 훗날 보고를 올리기 위함이다.
아무튼 이 대회를 마친 후 김정은 등 수뇌부들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충성심에 격한 눈물을 흘렸다.
현수가 북한의 인민들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천제의 아들쯤으로 여기는 마음이 든 때문이다.
이는 매스 앱솔루트 피델러티 마법 때문이다.
와인이 숙성되면 더 깊은 맛을 내듯 점점 더 충성심이 높아지는 효능을 가진 마법이다. 그렇기에 사내들 눈에서 눈물이 나오도록 한 것이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기를 바라네.”
“…언짢으셨던 겁니까?”
“아니, 그렇지는 않지만 집까지 팔아가며 그럴 필요는 없다는 뜻이야. 자네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네.”
“충…! 각골명심하겠습니다, 폐하!”
“조만간 청암동 다물궁에 입주할 것이네.”
“네, 그러셔야지요.”
“최 수행총관은 지근거리에서 나를 보필해야 하니 공사가 끝나는 대로 가족들을 데리고 입주하게.”
“네? 그, 그게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최철의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크게 떠졌다. 궁전에 들어와서 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물궁에 들어가 보았나?”
“…네! 소신, 감히 궁 안을 살펴보았습니다.”
현수는 다물궁은 공사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들어가지 말라고 지시한 바 있다. 하여 혹시라도 불호령이 떨어질까 두렵다는 표정이다.
사실 최철은 본인의 의사로 들어간 게 아니다. 내부를 살펴보고 오라는 김정은의 지시 때문이다.
궁전에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하기 위함이다.
어쨌거나 다물궁 내부로 들어선 최철은 입을 딱 벌렸다.
그 화려함과 우아함, 그리고 고상함과 웅장함이 어우러진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림이 걸려 있지 않은 복도의 벽엔 아름다운 부조(부조(浮彫) : 돋을새김.)들이 새겨져 있고, 코너를 돌 때마다 절묘하게 조각된 조각상들을 볼 수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문을 열고 내부를 들여다보니 거기엔 예술품 반열에 올라 있어야 할 각종 집기가 들어 있다.
책상, 의자, 테이블, 책장, 옷장, 장식장 등 어느 것 하나도 평범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 동안 쓰다듬다 나왔다.
인간의 솜씨가 아닌 듯해서이다.
최 중장은 고성능 디카로 사진을 찍었다. 이걸 본 김정은 또한 대단히 놀랐다. 온갖 호사스런 걸 다 보면서 자란 그의 눈에도 놀라움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다물궁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국왕폐하의 엄명이니 허락되지 않은 이상 발을 들여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다물궁의 주위는 호위총국에 의해 보호되고 있다. 개미새끼 한 마리도 들어갈 수 없다.
다만 천지건설 유니콘 아일랜드 팀원만은 예외이다. 현대식으로 내부를 개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최 중장은 다물궁의 1층부터 7층까지 모두 둘러보았다. 그래서 어마어마하게 큰 건물이고 수없이 많은 방이 있음을 알고 있다.
“거긴 내 가족만 살기엔 너무 넓네. 그러니 들어와 살게.”
“폐, 폐하! 죽을 때까지 충성, 또 충성하겠습니다, 폐하!”
최철은 눈물이라도 흘릴 기세다.
국왕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는 수행총관에 임명되었지만 아직은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다. 그래서 아파트에서 출퇴근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물궁에서 살라고 하니 더없는 명예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기에 격동하고 있는 것이다.
“……!”
한편, 곁에 앉아 있던 백설화는 눈빛을 반짝이며 현수를 바라본다. 뭔가 예사롭지 않은 의미가 담긴 눈빛이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는 않는다. 현수는 옆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안주 기계공업단지에 당도했다.
잘 닦인 길과 줄지어 서 있는 공장들이 인상적이다.
설계와 시공은 남북한 합작이다.
다만 건축 자재 거의 대부분은 남한에서 가져왔다. 이곳이 북한이라는 기분이 들지 않을 정도이다.
안주 기계공업단지의 정식 명칭은 ‘이실리프 기계공업단지’이다. 그렇기에 전체를 조율하는 단지 관리실이 있다.
현수는 관리실장의 안내를 받아 각각의 공장들을 둘러보았다. 작업 환경은 깨끗했고 일하기 편하도록 배려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좋군요.”
단지엔 1,000개가 넘는 공장이 있다. 당연히 다 둘러보려면 몇 날 며칠 가지곤 부족하다. 그렇기에 10여 군데만 돌아보곤 단지관리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PPT를 이용해 보고를 받았다.
“…그러므로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던 각종 소재 및 부품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언제쯤이면 100%가 되겠습니까?”
“이달 말 안에 기술 독립이 가능하다고 사려됩니다.”
“좋군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애써주십시오.”
“네, 물론입니다.”
관리실장은 긴장된 표정으로 보고를 바쳤다. 김정은 등 수뇌부들이 즐비한 때문이다. 그런데 왜 현수의 좌우에 앉아 있는지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린다.
관리실장이 물러간 후 차 한 잔을 마시고 있을 때 아리아니가 돌아왔다.
[주인님, 노이아가 보고드린대요.]
[그래, 보고해.]
[네, 마스터. 말씀하신 서한만 일대를 조사한 결과 지나 쪽 대륙붕에도 상당량이 매장되어 있음을…….]
잠시 노이아의 보고가 계속되었다. 현수는 잠자코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원유 전부를 우리 쪽으로 하는 방법은?]
[지나 쪽 조금 융기시키고 이쪽은 조금 낮추면 되죠.]
[좋아, 그건 그렇게 해. 그리고 내가 지적하는 곳에서 원유가 나올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지?]
[네, 크게 어려운 일 아닙니다.]
[알았어. 이따가 다시 이야기하지.]
[네, 마스터. 어느 때든 필요하면 말씀만 하십시오.]
노이아가 물러간 뒤 현수는 벽에 걸린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서한만에서 기름을 퍼 올리면 거의 100% 욕심 사나운 지나와 분쟁이 빚어질 수 있다.
하지만 북한 내륙에서 채굴하게 되면 지나로선 권리를 주장할 아무런 근거가 없게 된다.
그렇기에 안주 기계공업단지 인근 내륙 지역을 유심히 살피는 중이다. 원유를 수출할 수도 있으므로 가까운 곳에 항만이 있어야 하며 유화단지가 들어설 곳도 가까워야 한다.
[주인님, 왜요?]
[여기 이쯤에서 원유가 나오면 좋은데 인근 바다의 수심이 너무 낮아서 그러지. 대형 유조선이 드나들려면 수심이 꽤 깊어야 하거든.]
30만 톤급 초대형 유조선인 VLCC(Very Large Crude oil Carrier)가 입항하려면 수심이 30m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서해는 간만의 차가 심한데다 수심도 낮다.
하여 현수는 지도를 보며 적당한 곳을 물색했다. 그러던 중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아리아니, 노이아 좀 다시 불러줘.]
[네, 주인님.]
잠시 후 노이아가 다시 나타난다.
[노이아, 여기 이 부근의 수심을 낮춰줄 수 있겠어?]
[그럼요. 말씀만 하세요. 얼마나 낮춰 드릴까요?]
[으음! 썰물일 때에도 50m가 넘었으면 좋겠어.]
7만 톤급 선박이라도 수심이 15m는 되어야 드나들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수심은 그에 훨씬 못 미친다.
참고로 현존 최대 유조선은 Knock Nevis호이다. 길이 458m짜리 선박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배다.
참고로 여의도에 있는 63빌딩의 높이는 250m이고, 세계 최대 항공모함인 미 해군 니미츠호의 길이는 330m이다.
56만 톤급 극초대형 유조선(ULCC : Ultra Large Crude Oil Carrier)인 Knock Nevis호는 흘수(흘수(Draft, 吃水) : 수중에 떠 있는 물체가 수면에 의해 구분되는 면에서 그 물체의 가장 깊은 점까지의 수심.)가 너무 커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없을 정도이다.
장차 이런 배가 드나들 수도 있을 것을 감안해야 하기에 수심 50m를 이야기한 것이다.
[말씀하신 대로 해드릴게요. 그리 어려운 일 아니니까요.]
[그래? 그럼 낮추는 김에 여기에서부터 이렇게…….]
유조선이 쉽게 입항하고 되돌아나갈 수 있도록 한반도 서쪽에 세 개의 길고 깊은 고랑을 파달라고 요구했다.
하나는 초대형 유조선이나 대형 컨테이너선 및 대형 화물선 등이 쉽게 오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다른 두 개는 대한민국 해군 및 이실리프 왕국의 해군 잠수함들이 오갈 통로이다.
이걸 조성하기 위해 준설(준설(浚渫) : 항만·항로·강 등의 수심(水深)을 깊게 하기 위하여 물 밑의 토사(土砂)를 파 올리는 일.)한 흙은 서쪽으로 옮겨 지나의 황하와 양자강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이 가급적 서해로 유입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했다.
노이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급한 일이냐고 묻는다.
현재 열도를 침몰시킴과 동시에 강원대지와 울릉대지, 그리고 제동도와 제서도를 융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탐라북도와 탐라남도 등의 융기도 진행 중이다.
[이건 2년 안에만 끝내면 돼.]
말 나온 김에 현수는 안주의 한 부분을 손으로 짚었다. 유화단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여기와 여기, 그리고 여기에서 원유를 퍼 올릴 거야. 그러니까 서한만의 원유가 몽땅 이쪽으로 쏠리게 해줘.]
[네, 마스터. 뜻대로 해드리겠습니다.]
땅의 정령왕 노이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참! 이 일대에 있는 원유의 총량은 얼마나 되지?]
[제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노이아의 첫 보고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인간과 정령은 도량형 단위가 다른 때문이다. 하여 일일이 예를 들어 설명해 준 후에야 대강의 양을 짐작할 수 있었다.
노이아의 보고대로라면 향후 숙천유전에서 퍼 올릴 원유의 총량은 약 1,760억 배럴이다.
참고로 2015년 국가별 원유 매장량 순위는 다음과 같다.
2014년에 대한민국이 수입한 원유의 양은 9억 2,752만 4천 배럴이었다.
숙천유전의 원유를 몽땅 대한민국에서 쓴다면 약 190년간 사용할 양이다.
마법이 적용되면 엔진의 연비가 12배나 증가한다.
따라서 거의 모든 분야에 효율을 극대화할 마법을 적용한다면 무려 2,280년간 사용할 양이다.
물론 숙천유전에서 퍼 올린 유전은 우선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쓰는 게 아니다. 이실리프 왕국이 먼저이다.
현수는 노이아에게 설명할 때 세 개의 유정을 언급했다. 유정이란 지하의 유층(油層)으로부터 원유를 산출하는 갱정(坑井)이다.
하나는 이실리프 왕국용이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으로 보낼 것이다. 마지막 하나는 수출용이다.
7대 석유 메이저들이 유가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