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3
“그런데 여기 이 표시는 뭐죠?”
국무총리를 비롯한 열다섯 명의 장관 가운데 여덟 명의 이름 옆에 붉은색 별표가 보여서 물은 것이다.
“아! 그들은 욱일회 회원입니다.”
“욱일회 회원이라구요? 아, 그렇군요.”
머릿속 명단과 일치함을 깨달은 현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보니 욱일회와 유능한 일꾼 명부에 있는 자들에 대한 조치가 아직 없었습니다.”
“조사는 끝났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언제라도 조치 가능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3년 전 엄규백은 현수로부터 보안 메일을 받은 바 있다.
여러 지시 사항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욱일회 명단과 유능한 일꾼 명단에 대한 확인이었다.
실제인지의 여부를 확실하게 알아보라고 한 것이다.
언젠가 징벌을 가할 때 애꿎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시간과 공을 들여 일일이 확인하는 동안 이실리프 정보요원들은 제대로 열 받았다.
거꾸로 매달아놓고 하루 종일 두들겨 패도 시원치 않을 놈들이 사회의 지배층이 되어 떵떵거리면서 온갖 호사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이놈들의 집요하면서도 악랄한 갑질에 수많은 서민이 고혈을 빨리고 있음도 확인되었다.
당장에라도 징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요원들은 조용히 물러섰다. 제1국 국장이자 이실리프 정보의 대표인 엄규백의 엄중한 경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욱일회나 유능한 일꾼의 명부에 있는 자들에 대한 처벌은 이실리프 그룹의 총괄 회장이자 직속상관인 현수의 명이 있어야 가능하다 생각한 것이다.
이실리프 정보요원들에겐 절대충성마법이 구현되어 있다. 이 마법이 유지되는 기간은 개인에 따라 다르긴 해도 길어야 2년이다.
그런데 현수가 사라진 기간만 3년이 넘는다.
그럼에도 이실리프 정보요원들의 충성심은 감소하지 않았다. 패용하고 있는 신분증에서 흘러나오는 미약한 마나가 마법의 효능이 유지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현수가 마지막으로 보낸 보안 메일엔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언젠가 쓸어버리고자 마음먹었을 때 단숨에 훑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를 건드렸다가 전체가 숨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자칫 경각심을 주어 단합된 저항과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기에 두 견찰을 이용할 경우 제압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명단의 내용과는 일치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긴…….”
욱일회 명단은 일본 내각조사처에서 빼온 자료이다.
그 자료에는 한국을 병탄할 경우 어떤 혜택을 줄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남작, 자작, 백작, 후작 같은 작위를 수여함과 동시에 봉토를 주는 등이다.
대대로 귀족이 되어 일반 국민 위에 군림하도록 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영원한 수탈을 가능토록 하는 등의 일이 획책되고 있었다.
현수가 다시 서류에 시선을 주고 있을 때 백설화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선다.
“오라버니, 급한 일이 터졌어요!”
“급한 일?”
“네! 잠시만요.”
백설화는 익숙한 솜씨로 노트북을 조작한다. 그러자 속보가 뜬다.
일본 해군 함정이 독도 해역을 무단으로 침입했으며 초계 중이던 광명함이 함포 공격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광명함의 누군가가 현 상황을 중계하는 듯 속보 내용이 시시각각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이……!”
“엄 대표, 현 상황 얼른 알아봐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엄규백은 노트북을 꺼내 이실리프 정보에 접속했다.
그리곤 채팅창을 띄워놓고 ‘현 상황을 보고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답신들이 올라온다.
일본 해군 함정이 무단으로 독도 영해를 침범했으며 광명함이 공격을 받는 중이라는 내용이다.
같은 순간, 현수 역시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우주에 떠 있는 이실리프호로 메시지를 보내는 중이다.
내용은 현 상황을 보고하라는 것이다. 잠시 후, 우주에서 살핀 정보가 입력된다.
이실리프호는 지표면으로부터 약 3만 5,800㎞나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가로세로 10㎝짜리 물체도 식별해 낸다.
뿐만 아니라 고해상도 영상도 볼 수 있다.
현수는 약 10초 간격으로 촬영한 위성사진을 지켜보았다. 광명함을 향해 함포사격을 가하는 장면이 너무도 생생하다.
“정부는 어떤 움직임을 취하고 있습니까?”
“조금 전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외교부장관이 강한 질책을 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나와 청와대로 들어가는 중이랍니다.”
“흐음! 그래요?”
현수는 잠시 말을 끊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해군 1함대와 대구 K―2 기지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별다른 대응 없이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잠시 두고 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엄규백은 고개를 끄덕이곤 본인의 노트북에 올라오는 보고들을 읽고 있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연다.
“회장님, 청와대 상황을 알아볼까요?”
“…알 수 있습니까?”
“청와대 국가안보실 소속 정보 분석 담당비서가 우리 쪽 사람입니다.”
“그럼 알 수 있는 데까지 알아보세요.”
“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엄규백은 얼른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흐른다.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각종 정보를 읽느라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 10분이 흘러 대강의 내용을 파악했을 즈음 엄규백이 다시 입을 연다.
“방금 외교부장관이 집무실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알았습니다.”
현수는 고개만 끄덕이곤 일본 해군 함정들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3함대의 항공모함형 헬기구축함 이즈모함을 필두로 이지스 구축함 아타고와 묘코를 비롯한 제3호위대와 제7호위대 함정 여덟 척은 독도 영해로 진입한 상태이다.
이 중 하나는 광명함을 향해 함포사격을 가하고 있는데 굳이 맞추려고 하지는 않는 듯하다.
오키 군도 인근 해역에 머물고 있던 하루시오급 SS―588 후유시오와 오야시오급 SS―599 세토시오, SS―600 모치시오는 전속으로 독도 해역으로 접근 중이다.
바닷속의 잠수함 위치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삼차원 운동에너지 추적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먼저 아무것도 없는 일정 구역을 스캔해 둔다. 그런데 새로운 운동에너지, 또는 위치에너지를 가진 물체가 나타나면 그 즉시 식별해 내는 방식이다.
미국이 자랑하는 F―22 랩터는 기존의 레이더로는 탐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실리프호에서 사용하는 삼차원 추적 방식을 전투기에 장착시키면 4,000㎞ 밖에서도 식별이 된다.
본인은 아무도 모르겠지 하면서 다가오지만 이실리프호에선 다 보고 있다는 걸 알면 소름이 끼칠 것이다.
이실리프 그룹이 만들어낸 송골매의 레이더 탐지 거리가 4,000㎞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실리프호에서는 송골매의 움직임을 탐지할 수 있다.
송골매 역시 다른 송골매들을 탐지하지만 이실리프호는 탐지 거리 바깥에 있어 식별이 불가능하다.
현수가 스크롤바를 내려 보니 일본 해군 제2함대의 기함 쿠라마를 비롯하여 제2호위대와 제6호위대 소속 함정 여덟 척이 보인다. 하루시오급 잠수함 한 척과 오야시오급 두 척의 위치도 파악되고 있다.
이들은 포항과 부산의 중간쯤 되는 영해 바로 바깥에 있다. 아직 대한민국의 영해를 침범한 것은 아니다.
다른 쪽을 확인해 보니 미사일 기지들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명령만 떨어지면 일본 본토를 타격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 밖에도 거의 모든 군부대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만일을 대비하는 것이다.
“아베노믹스의 결과에 대한 보고서도 있나요?”
“아베노믹스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엄규백은 이실리프 정보요원들이 분석해 놓은 보고서를 현수에게 텔레그램으로 보냈다.
한국의 이메일 시스템을 이용할 경우 내용이 유출될 수 있어 러시아의 온라인 메신저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걸 확인 안 했군.”
“설화야, 스테파니 좀 불러줘.”
“네, 오라버니.”
앉은 자리에서 전화해도 되지만 설화는 발딱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현수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배려이다.
잠시 시간이 비자 현수는 지난 3년간의 뉴스를 훑어보았다. 주로 일본에 관한 것이다.
엄규백 대표의 보고에 따르면 이실리프 정보요원들은 지나와 일본, 그리고 미국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5국 600명은 일본 담당, 6국의 600명은 지나 담당이다. 7국 요원은 미국 담당이다.
8국은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을 담당하고, 9국은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와 브라질 등 남미에 파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10국 요원 600명은 네 개의 자치령에 분산 배치되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일본 현지에서 활동 중인 요원의 숫자만 550여 명이다.
그런데 독도 침공에 대한 사전 보고가 없었다. 이는 수뇌부의 전격적인 결정에 따른 것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침공을 결정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일본 관련 기사들을 검색한 것이다.
“엄 대표님, 아베노믹스가 실패한 정책으로 보도되어 있는데 이실리프 정보 평가도 그러한가요?”
극우꼴통인 아베 신조는 침체된 일본 경제를 살리겠다며 양적완화정책을 실시한 바 있다.
중의원 해산이라는 카드로 신임을 받고는 일사천리로 양적완화정책을 펼쳤다.
처음엔 반짝했다. 하지만 지갑을 열 여력이 없는 서민들이 늘어나면서 일본의 내수경기는 또다시 침체 일로를 걸었다.
아베가 바란 것은 다음과 같다.
무제한 양적완화 → 엔저 유도 → 수출 대기업 이익 증가 → 임금 인상 → 내수 자극 → 경기 확장
이런 선순환 구도를 기대한 것이다.
하여 일본의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엄청난 돈을 풀기 시작하자 곧바로 엔저 현상이 나타났다.
주가는 오르고, 외국인 투자도 늘었으며, 관광객 수도 대폭 늘어났다. 일본 수출 기업의 성과는 호전되었고, 소비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베가 바라던 선순환 구도가 제대로 작동된 것이다.
그런데 이즈음에 소비세가 5%에서 8%로 인상되었다.
늘어나는 국가 부채 때문에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국채 가격 폭락이 우려되어 불가피하게 올릴 수밖에 없었다.
물가가 오를 때 임금이 따라 오르면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임금이 오르기 전에 세금만 늘어났으니 실질 임금은 감소한 것과 다름없게 되었다.
아베가 원한 1∼6 과정 중 4번째 과정부터 삐끗한 것이다.
일본 가계의 저축률이 바닥을 치자 더 이상 국채를 받아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는 일본 중앙은행 및 시중은행의 자산건전성 악화로 이어졌다.
국채 금리가 인상되자 일본 정부의 국채 이자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세금으로 점점 더 많아지는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경기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이전에 올라온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 정부의 재정은 이미 파탄이 난 상태이며, 무제한으로 찍어내는 엔화로 간신히 막고 있던 중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악재가 발생되었다.
한국의 기술력이 좋아지면서 일본의 수출 주력 상품들의 시장 점유율이 점점 더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2장 새로운 OS 삼족오
“흐음! 전쟁만이 살길이라고 판단한 모양이군.”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은 패전했다. 졸지에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어줘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번영을 이루게 된 것은 한국전쟁 덕분이다.
세계적인 전략물자 사재기로 인해 국제 상품 가격이 상승하고, 이와 함께 미군 특수로 일본의 수출은 급증하면서 생산과 고용, 그리고 이윤이 급증한 결과이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또 한 번의 전쟁을 통해 난국 돌파를 획책한 것이다.
“지들이 잘못해서 망하게 된 건데 그걸 타개하고자 남의 나라를 공격해? 이런 미친놈들은 뜨거운 맛을 봐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