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207화 (1,206/1,307)

# 1207

부인들이 말하길 많은 술을 마신 듯하여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니 어쩌겠는가!

교육부총리는 아예 연락이 닿지 않았다.

부인에게 물어보니 중요한 회의가 있어 늦게 귀가하거나 아예 못 들어올 수도 있다고 했다.

하여 교육부 비상연락망을 가동시켰다. 그런데 중요한 회의라는 건 애초에 없다고 한다.

평상시 같으면 어떻게든 연락을 취했겠지만 지금은 일본 해군이 독도를 침범한 상태이다.

통수권자의 결정이 필요한 시기이다. 하여 순서에 입각하여 외교부장관에게 연락했다.

“네, 정순목입니다.”

“장관님, 접니다. 청와대 김 실장입니다.”

“아, 네, 김 실장님. 대통령님이 찾으시나요?”

조금 전 청와대를 방문했던 정 장관은 일체의 대응도 하지 말라던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일까를 고심하던 중이다.

대통령은 권모술수에 뛰어난 인물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섯 번이나 국회의원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일본의 무력 침공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야 함에도 마냥 느긋하기만 했다.

뭔가 수가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게 뭔지 도통 알 수 없다. 하여 청와대를 나온 이후 집으로 가지 않고 집무실에서 대기하던 중이다. 일본대사와 어떤 대화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올 듯싶어서이다.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즉시 청와대로 와주셔야 합니다.”

“들어오라고 합니까?”

“그건… 네. 지금 들어오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들어갑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정 장관은 의복을 가다듬고 곧장 청와대로 향했다.

“네에? 대통령님이 유고 상태라고요? 총리님은요?”

“국무총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술을 과하게 드신 겁니까?”

“아닙니다. 두 분은 술을 드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의사들도 모른다고 합니다. 아무튼 일본 해군의 무력 침공에 대한 대응 방법을 결정하여야 하는 시점입니다.”

“그렇지요.”

정 장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 비서실장이 입을 연다.

“경제부총리와 미래창조과학부장관은 과음으로 인사불성 상태이고, 교육부총리는 현재 연락 두절입니다. 법률에 따라 외교부장관께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셔야 합니다.”

“제가요?”

정순목은 단 한 번도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을 꿈꾼 바 없다. 정치적 기반이 없으니 후원 세력도 없다.

외교부는 특성상 국민과의 접촉도 적다. 따라서 출마해도 인지도가 낮아 당선될 확률이 없다.

무엇보다도 본인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만큼 큰 그릇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느닷없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하라는 말을 들었다. 하여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비서실장의 말이 이어진다.

“대통령 권한대행 결정을 위한 긴급 국무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잠시 후에 모두 당도할 예정입니다. 그에 앞서…….”

만일을 생각하여 모든 법적인 절차를 밟으려는 듯 소상한 설명이 이어진다. 그러는 동안 국무위원들이 당도했다는 보고 또한 이어졌다.

약 30분 후 출석 가능한 모든 국무위원이 모였다.

“방금 전에 설명드린 대로 대통령님 이하 승계권자 모두가 강력한 각성제로도 의식을 찾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누군가의 음모가 있었던 것은 아니오?”

“대통령님과 국무총리는 집무실에서 회의를 하던 중에 의식을 잃었습니다. 경제부총리님과 미래창조과학부장관은 과음이 확실합니다.”

“교육부총리는 왜 이 자리에 없는 거죠?”

“현재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일국의 장관 겸 부총리인데 연락이 닿지 않는다니요? 비서며 운전기사가 있잖습니까?”

“부총리께서 홀로 차를 몰고 퇴근하셨다 합니다. 아직 귀가 전이고요. 교육부 비상연락망을 가동했지만 소재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

방금 질문한 행정자치부장관은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듯 입을 다문다. 교육부총리와는 친구 사이이기에 나이 어린 첩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독도 해역에 일본 군함이 들어와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 초계함인 광명함을 향한 포격도 있었습니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님의 결정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유고 상태입니다. 따라서 법률에 의거 권한대행에 관한 국무회의 의결이 있어야 합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정부조직법 제26조 ①항을 보면 대통령 유고 시 권한대행 서열은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교육부총리,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외교부장관, 통일부장관, 법무부장관 순입니다.”

이번에도 모두들 고개만 끄덕이고 있다. 장관에 임명된 이후 한 번쯤은 읽어본 조문이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그리고 교육부총리와 미래창조과학부장관은 현재 권한대행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다음 서열에 해당하는 외교부 정순목 장관께서 권한대행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의결을 실시토록 하겠습니다. 찬성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비서실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국방부장관이 손을 든다.

이건 어차피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법률에 의해 정해진 순서가 있으니 이의를 제기하고 말고 할 건더기가 없기 때문이다.

나머지 국무위원 역시 손을 든다. 반대할 수 없는 의결이니 찬성을 표한 것이다.

“만장일치로 찬성하셔서 정순목 외교부장관께서 대통령직 권한대행을 맡으셨음을 선포합니다.”

땅, 땅, 땅―!

의사봉을 세 번 두드린 비서실장은 한 걸음 물러서며 정순목 장관을 바라본다.

“허험! 미흡한 제가 너무도 막중한 책임을 맡았습니다. 법률에 의거한 국무회의 의결에 따라 대통령님께서 깨어날 때까지 임시로 권한대행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

모두들 말이 없다. 축하해 줄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어 시간 전 저는 일본대사를 불러 일본 해군이 우리 독도 해역에 난입한 것과 우리 초계함인 광명함을 상대로 포격을 가한 것에 대한…….”

정 장관은 일본대사와 있던 일을 이야기했다.

국방부장관은 얼굴이 붉어진다. 제대로 열 받은 것이다. 장관들 가운데 절반이 그러하다. 나머지 절반은 친일파라 안면 변화가 없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눈치채지 못한다.

“그랬더니 대통령님께서는 대기하라 하셨습니다. 하여…….”

대통령 면담 시 오간 대화 역시 소상히 설명하였다.

“비서실장님, 대통령님께 어떤 복안이 있으셨는지요?”

“저는 모릅니다. 권한대행께서 면담하시는 동안 비선을 통한 정보를 수습하느라 바깥에 있었습니다.”

“흐음! 대체 어떤 생각을 하셨기에 대응하지 말고 기다리라 했을까요?”

“그러게요. 뭔가 수가 있으셨을 텐데……. 국방장관님, 혹시 따로 지시받은 내용이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국방장관이 단호하게 대꾸하자 국무위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대통령의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운 때문이다.

이때 국방장관의 입이 열린다.

“권한대행님, 일본 해군은 우리 영해를 무단 침입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초계함에 포격을 가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한 보복을 허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자칫 한일전으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여 손 놓고 당할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해군도 국방부 소속이다. 그러니 열 받는 게 당연하다. 이때 행정자치부장관이 끼어든다.

“국방장관님, 우리에게 전작권이 없습니다. 따라서 한일전을 결정하기 전에 미군에게 먼저 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강도가 칼을 들고 집 안에 들어왔는데 30분 거리에 있는 경찰서에 신고하고 가만히 있자는 말씀이십니까?”

국방장관의 시선을 받은 행정자치부장관은 슬그머니 음성을 줄인다.

“아, 아니, 제 말을 그게 아니고…….”

이때 정순목 권한대행이 단호한 표정으로 국방부장관에게 시선을 준다.

“권한대행으로서 전군에 데프콘1을 선포합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일본 해군을 즉각 우리 해역 밖으로 쫓아내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전군에 데프콘1 선포합니다.”

국방부장관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행정자치부장관이 다시 입을 연다.

“데프콘 발령 권한은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있습니다.”

“뭐요?”

지금껏 유하다는 평가를 받던 정순목 권한대행의 쏘는 듯한 시선을 받자 행정자치부장관은 다시금 발을 뺀다.

“제가 드린 말씀은 법률상 그렇다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우리에겐 전시 작전 권한이 없지 않습니까.”

“내가 아는 전작권은 북한과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를 대비한 겁니다. 한일전에 관한 내용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우리가 일방적으로 나가면 미군이 딴죽을 걸거나 일본 편에 설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방적이라고요? 일본이 우리 영해에 침범하여 우리 함선에 포격을 가한 건 대체 뭡니까?”

정 권한대행의 고함에 가까운 소리에 행정자치부장관은 슬그머니 물러앉는다. 평생을 권력에 빌붙어 살다 드디어 한자리 차지하고 앉은 인물답다.

그러면서도 할 말은 하겠다는 듯 중얼거린다.

“제 말은 그렇다는 거지요.”

행정자치부장관이 찌그러지는 모습을 본 국방부장관은 이맛살을 찌푸린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다.

“방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대한민국은 전시 상태입니다. 각 부서는 법령에 의거하여 알아서 움직여 주십시오.”

“네, 권한대행님.”

정순목은 다시 국방장관에게 시선을 준다.

“내가 알기로 우리 해군은 일본에 비해 열세입니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있습니다. 놈들을 납작하게 찌그러뜨리겠습니다.”

여성가족부 해체 건의 이후 괘씸죄로 물러난 오정섭 전임 장관의 후임인 이권호 국방부장관은 해군 출신이다.

해군 내부에 비리가 있음을 고발한 부하가 있었는데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물어 3성장군일 때 강제 예편당해 초야에 묻힐 뻔한 인물이다.

특이하게도 이 장관은 해사를 졸업한 후에도 공부를 계속하여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했고, 이후 칼텍((Caltech) :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파사데나에 위치한 연구 중심 공과대학. MIT공대와 쌍벽을 이루는 미국 최우수 대학.)으로 가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엘리트이다.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자 목포에 소재한 국립해양대학교 총장은 이 장관을 석좌교수로 초빙하였다.

그 후 많은 젊은이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어느 날 문득 세상의 한쪽 면만 보고 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세상사에 대한 자신과 학생들 간의 의견에 골 깊은 괴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하여 지난 세월 동안 뉴스를 섭렵해 보았다.

평생을 보수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는데 세상은 나름 정의롭고 공평했다. 그런데 다른 시각으로 보니 대한민국엔 불편부당한 일투성이고 불공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애교라 할 정도이다.

있는 자들은 온갖 갑질을 하며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반면 약자들은 아무리 열심히 발버둥 쳐도 평생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합리한 사회 구조이다.

어느 한쪽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기에 보다 깊이 있는 사색을 통해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하여 냉철하고 엄정한 중립적 시각으로 본 세상은 예편하기 이전과 많이 달랐다. 그 결과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마인드에 변화가 있었다. 그러다 장관직 제의를 받았다. 보수주의 안경을 벗어버린 후의 일이다.

이 일이 있기 이전에 대통령은 국회에 네 명의 후보에 대한 임명 동의를 요구했다.

그런데 넷 다 비리와 부정, 그리고 부패와 독직으로 점철되어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

당연히 야당의 반대는 심했고, 여당에서조차 안고 가기에 난감하다는 판단에 스스로 물러나도록 압력을 넣었다.

후임을 임명해야 하는데 마땅한 인물이 없었다. 그때 억울하게 예편했다는 평가를 받던 이 장관이 물망에 올랐다.

야당은 청문회 과정에서 부하들이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당시의 이 장관은 변명 대신 과오를 순순히 인정하고 향후엔 보다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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