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6
일본대사가 물러난 후 정순목 권한대행은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긴급 브리핑을 받았다.
한일전의 최종 결과와 향후 일정에 관한 것이다.
국민들은 일본을 통렬하게 깨버린 것을 너무도 시원해한다. 일본 해군 2함대와 3함대 전함들이 미사일에 피격되어 하나하나 침몰할 때마다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과감한 작전을 지시한 정순목 권한대행의 결단 덕분이다. 그렇기에 권한대행의 전쟁 결정을 지지한다는 성명문이 이곳저곳에서 발표되는 중이다.
가장 먼저 전국의 대학생과 교수들이 지지 설명을 발표했다. 다음으로 노동조합들이 찬성의 뜻을 표했다.
많은 언론사도 이에 동참했다. 다만 청와대 출입을 제한받게 된 언론사들은 예외이다.
일본과의 전쟁이 신중치 못한 처사이며, 차후 막대한 국가적 손실이 우려되므로 즉각 일본에 사과하고 적절한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개 같은 기사들만 보도했을 뿐이다.
덕분에 국민의 지탄을 더욱 많이 받고 있다.
어쨌거나 국민의 성원을 얻은 권한대행은 대마도 정벌은 지시했다. 준비가 갖춰지는 대로 진군하라는 명령을 받자 국방장관은 얼른 물러났다.
한반도 역사상 대마도 정벌은 세 번 실시되었다.
고려 시절인 1389년(창왕 원년)에 박위가, 1396년(태조 5년)엔 김사형이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조선시대인 1419년(세종 원년)엔 이종무가 삼군도체찰사가 되어 대마도를 정벌한 바 있다.
모두 역사책에 생생히 기록되어 있는 일이다.
이번 대마도 정벌 역시 역사에 기록될 일이기에 이권호 국방부장관은 재빨리 물러났다.
치밀한 작전을 수립하여 아군의 피해는 최소화하는 반면 적에겐 치명타를 안기기 위함이다.
바야흐로 네 번째 대마도 정벌이 시작되려 한다. 대한민국의 영토가 조금은 늘어날 모양이다.
* * *
똑, 똑, 똑―!
“권한대행님, 계엄군사령관 오셨습니다.”
“아, 들어오시라 하세요.”
계엄군사령관은 육군 3성장군이다. 이권호 국방장관의 추천을 받아 임명했다.
권한대행은 각 군의 최고 계급인 4성장군 중에 하나를 계엄사령관에 임명하려 했는데 모두가 고사했다.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대통령이 의식을 찾으면 계엄군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강제 예편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외교부장관 정순목이 이번 정권과는 코드가 일치하지 않는 인사라는 세간의 평판이 이런 결정을 내리게 한 것이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는데 본인의 안위만을 따지는 걸 보면 국군의 4성장군들은 모두 똥별이다.
그 결과 임문택은 3성장군이면서 4성장군들을 지휘할 수 있는 계엄군사령관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필승! 계엄군사령관 임문택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앉으세요.”
“네, 권한대행님.”
임문택 계엄군사령관이 자리에 앉자 정 권한대행이 준비된 서류를 펼친다.
“이 언론사들에 대해 조사하십시오. 불법 및 범법 행위 전반에 걸쳐 철저히 뒤져야 합니다. 모르겠거든 인터넷으로 네티즌의 협조를 요청해도 됩니다. 네티즌수사대의 능력도 제법 좋습니다.”
권한대행이 지목한 언론사는 조아일보, 동선일보 등이다. 사주는 물론이고 주필과 기자들까지 망라된 명단을 받아 든 계엄사령관은 권한대행의 내심을 묻는다.
“어떻게 하시려는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나라를 위해 걸러낼 것은 걸러내야지요. 아! 외교적 수사인가요? 이번 기회에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언론사는 폐간 및 폐업시킬 생각입니다. 우리 사회가 바로 서려면 언론이 건강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샅샅이 뒤지겠습니다.”
임문택 사령관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에 해악이나 끼치는 나쁜 언론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로 할까요?”
“사주를 필두로 그들과 사돈 관계를 맺고 있는 자들까지 모두 뒤지십시오. 공정치 못한 논조를 세운 주필은 물론이고 공정한 보도를 하지 않는 기자 역시 대상입니다. 현직뿐만 아니라 이미 은퇴한 자들까지 포함입니다. 모조리 교도소로 보낼 정도가 되어야 할 겁니다.”
“교도소요?”
“네, 그간 해온 짓을 보면 징역형으로도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추징할 것은 모조리 추징하여야 할 겁니다. 거지를 만들어도 좋습니다.”
권한대행은 지금 대놓고 표적 수사를 지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계엄사령관은 토를 달지 않는다. 사회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작업이다.
이런 땐 인권 따위를 따질 이유가 없다.
“다음은 이겁니다.”
권한대행이 내민 것은 상당히 많은 이름이 적힌 명단이다.
“이건 뭡니까?”
“이건 욱일회라는 친일행위자들의 명단입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친일파의 우두머리라 보면 됩니다. 그리고 이건 유사시 욱일회의 명을 받아 움직이는 행동대원 명단입니다. 하나도 놓치지 말고 다 잡아들이셔야 할 겁니다.”
“어디서 이런 걸……?”
임문택 계엄사령관은 이런 명단이 어디에서 났는지 궁금했다. 정순목은 주로 재외공관에 있었는지라 이런 정보를 접하기 힘들다 생각한 때문이다.
“이실리프 그룹에서 제공한 명단입니다.”
“아! 이실리프 그룹이요.”
임문택은 대한민국 최대 기업군이 된 이실리프 그룹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워낙 기업 이미지가 좋아서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재벌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기업군이다.
이실리프 뱅크를 예로 들자면 팍팍한 삶을 사는 서민을 위한 은행으로 단단히 자리 잡았다.
현재 자본금 300조 원에 이르는 거대 은행으로 발돋움한 이실리프 뱅크의 신용대출 금리는 연 3%이다.
다른 금융기관에서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힌 사람이라도 갚을 능력과 의지가 있다 판단되면 즉시 대출해 준다.
참고로 일반 시중 은행에서 신분이 확실한 공무원(신용 1등급) 등에게 제공하는 신용대출 최저 금리는 연 4.6%이다.
대부분의 은행은 신용 7∼10등급자의 경우는 아예 대출을 해주지 않거나 최고 금리를 받아 챙긴다.
제1금융권은 연 6.46∼11.1%이다.
제2금융권이라 불리는 캐피털사들은 연 22%대이고, 제3금융권인 대부업체는 연 34.9%나 받아 챙긴다.
이실리프 뱅크는 확실히 차별되어 있다.
수시 입출금 통장의 경우 일반 시중 은행에선 잔고가 일정 금액 이하면 단 한 푼의 이자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실리프 뱅크에선 이런 기준 없이 연 2%의 금리를 제공한다.
당연히 서민들의 예금이 몰려들었다.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은행들은 코웃음을 쳤다. 잔고가 낮은 통장은 영업에 큰 도움이 안 된다 여긴 때문이다.
하여 이실리프 뱅크의 출현을 오히려 환영했다.
번거롭기만 하고 이익은 별로 나지 않는 찌질한 고객들을 알아서 대신 감당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찌질하다 생각한 고객들이 몰려들자 수신고가 급속히 늘어났다. 티끌 모아 태산이 된 것이다.
게다가 대출자들의 연체율은 예상보다 훨씬 낮았다.
이실리프 뱅크의 연체율은 0.01%이다.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수입 감소, 또는 사망과 같은 정말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납입 일을 칼같이 지키기 때문이다.
참고로 시중은행의 담보대출 연체율은 3.1%이다. 수치를 단순 비교하자면 시중은행 쪽 연체율이 310배나 더 높다.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에 대출된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실리프 뱅크는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그룹 각 부서에 회람을 돌렸다. 그 결과 부도 위기에 처해 있다 기적적으로 소생한 중소기업이 상당히 많다.
납품과 거의 동시에 100% 현금으로 결재해 주는 기업과 연결시켜 주는데 어찌 흥하지 않겠는가!
때에 따라 기술을 전수해 주기도 하고, 중소기업들을 묶어 보다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하도록 돕기까지 한다.
계엄사령관의 친척 중 하나도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에 전조등 및 후미등을 납품하는 회사와 거래했는데 경쟁이 치열해서 단가가 몹시 박했다.
게다가 3∼6개월 후에 결재되는 어음 쪼가리를 받으니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수익이 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받은 어음이 부도나는 바람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시중 은행을 돌아다니며 대출을 받으려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담보는 없고 신용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두들긴 곳이 이실리프 뱅크이다.
방문 당일 대출 승인이 떨어졌고, 그와 동시에 계좌로 대출금이 입금되어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곧바로 이실리프 모터스와 거래하게 되었다.
직접 전조등과 후미등을 제작하여 납품하게 된 것이다.
그 후로 날마다 노래를 부른다. 그렇기에 임 사령관은 이실리프 그룹에 대해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 회사에서 제공한 명단이라면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욱일회 명단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내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학자, 고위공무원 등이 망라된 때문이다.
심지어 군인도 명단에 끼어 있다.
“이, 이게 정말입니까?”
계엄사령관은 심히 당황스러운지 말을 더듬는다.
“사실일 겁니다. 곧 이실리프 그룹에서 놈들에 대한 추가 자료를 보내준다고 합니다. 모든 증거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어 기소되면 100% 처벌받을 것이라 하더군요.”
이실리프 정보가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꼼꼼히 조사한 것이니 틀림없는 이야기이다.
“……!”
임 사령관이 생각하기에 재벌사들은 의외로 집요하다. 자그마한 실수로도 큰 손실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순목 권한대행의 말이 사실이라면 욱일회 회원들에 대한 증거는 완벽하다. 그렇다면 잡아넣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동안 프랑스는 독일에 점령되었고, 한국은 일본에 의해 통치를 받았다.
전쟁이 끝난 후 드골 프랑스 임시정부 대통령은 나치 협력자들에 대한 방침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국가가 애국적 국민에게는 상을 주고 민족 배반자나 범죄자에게는 벌을 주어야만 비로소 국민을 단결시킬 수 있다.
나치 협력자들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 전체에 전염하는 흉악한 종양(腫瘍)을 그대로 두는 것과 같다.
프랑스 임시정부는 이들을 처단함에 앞서 경찰과 사법부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벌였다. 그리고 나치 협력자 전원을 총살시켜 과거를 확실히 정리했다.
같은 기간 동안 이승만은 친일파들을 고위직에 앉혔다. 확연하게 다른 처사였다.
과거를 확실하게 청산한 프랑스는 가뿐한 마음으로 새 출발하여 선진국이 되었다.
반면 한국은 그때 이후 지금까지 늘 시끄럽다.
권력의 수뇌부에 죽여도 시원치 않을 친일파들이 앉아 있으니 어찌 조용할 수 있겠는가!
임문택 사령관의 조부는 임정(臨政)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렇기에 물실호기를 맞이한 느낌이다.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친일파를 모조리 잡아들일 수 있는 권력과 명단이 손에 있다.
하여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서려 한다. 하나 그럴 수는 없다. 정순목 권한대행의 말이 이어진 때문이다.
“욱일회와 그 하수인들을 잡으면 계엄사에서 적당한 곳을 물색하여 수용토록 하세요.”
“잡는 대로 검찰에 넘기는 게 아닙니까?”
“명단을 보세요. 놈들을 검거하고 처벌해야 하는 경찰과 검찰에도 친일파가 수두룩합니다.”
“…그렇군요.”
“따라서 놈들을 모조리 제거할 때까지는 따로 관리해야 합니다. 자칫 타초경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아, 그렇겠군요.”
타초경사란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말로 중의적인 말이다. 정 권한대행이 이 어휘를 쓴 건 ‘문제를 일으켜 화를 자초함’을 비유한 것이다.
친일파 하나를 잡아들였는데 다른 친일파들이 놀라서 숨어버릴 수 있음을 뜻한다.
임 계엄사령관은 단번에 그 뜻을 알아들었다. 그렇기에 나직한 침음과 더불어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