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223화 (1,222/1,307)

# 1223

마음 같아선 당장에라도 첫날밤을 치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아직 슈퍼포션을 복용시키지 않은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키지 않지만 슬쩍 힘을 주어 떼어냈다.

“로시아, 장인어른에게 갔다 오자.”

“네? 이 밤중에요?”

“그래, 이제 더는 못 참겠어. 우리 로시아랑 얼른 혼인해야겠어. 이렇게 예쁜데 안아주지도 못하잖아.”

“아아!”

현수의 진심을 느낀 듯 로시아는 나직한 탄성을 내며 다시금 품으로 무너져 내린다.

“어서 옷 입어. 지금 당장 가서 정식으로 장인어른께 허락을 구할 테니까.”

“아, 알았어요. 잠깐만요. 참, 로잘린에게도 다녀오세요. 저는 준비하고 있을게요.”

“그래, 알았어. 금방 다녀올게.”

카이로시아의 집무실을 나서자 밖에서 근무 중이던 토마스와 투토의 눈이 커진다. 둘은 전직 A급 용병이다.

카이로시아의 남편이 그랜드 마스터이기에 한 수 배워보려는 의도에서 이레나 상단에 몸을 의탁한 상태이다.

“헉! 마, 마스터! 어, 언제 오셨습니까?”

둘은 얼른 바닥에 엎드리려 한다. 하여 기세로 움직임을 제어하여 그러지 않도록 했다.

“토마스, 투토, 둘 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이 되었군. 축하하네. 그간 잘 있었는가?”

“그, 그럼요! 저,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스터!”

또 허리를 굽실거린다.

“그래, 오랜만이지. 잘 지낸 듯하여 좋군. 그동안 우리 로시아를 잘 지켜주어 고맙네.”

“다, 당연한 일입니다. 공녀님을 수호하는 건 저희의 첫 번째 임무이니까요.”

“그래, 그래서 고맙다는 거네. 참, 조만간 미판테를 떠나야 하니 자네들도 슬슬 준비하게.”

“네? 여길 떠나요?”

“그래, 이제 곧 로시아와 결혼할 것이네. 자네들이 따라와서 지켜줘야 하지 않겠나?”

“겨, 경하드립니다. 그리고 당연히 따라가야지요.”

토마스와 투토는 로시아가 왕비가 된다는 것을 아직 모른다. 이는 로시아의 입이 무겁기 때문이다.

“제법 먼 곳이니 단단히 채비를 해야 할 것이야.”

“가면 안 옵니까?”

“글쎄, 가끔은 오겠지. 아마도 대부분은 그곳에서 지내게 될 것이니 이사 간다 치면 되네.”

일국의 왕비가 되면 여러 사유 때문에 마음대로 운신할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둘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주인이 가자고 하면 가야 하는 세상임에도 이처럼 미리 알려주니 고맙다는 마음뿐이다.

확실히 지구와는 다른 마음가짐이다.

12장 결혼해야겠습니다

둘과 헤어져 상단 입구에 당도하자 여느 때처럼 발루네가 위병근무 중이다.

“발루네, 요즘엔 발정 난 늑대들이 안 꼬이나?”

“누구……? 헉! 마, 마탑주님!”

“그래, 날세. 잘 있었는가?”

“그러믄입죠. 참, 날파리는 없습니다. 아가씨께서 공녀님이 된 이후로 하나도 못 봤습니다.”

이 말은 사실이다.

카이로시아가 이실리프 마탑주의 부인이 된다는 소문이 번진 그날 이후 어느 누구도 껄떡대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시신조차 온전히 남길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이레나 상단 입구엔 위저드 로드를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하는 마법사로 넘쳐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카이로시아를 탐낸다는 말을 한마디라도 하면 어찌 되겠는가!

덕분에 발루네는 아주 편하다.

마법사들이 진을 치고 있기에 정말 용무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이군. 다 자네가 열심히 근무해서 그런 거지?”

“네? 그, 그럼요! 앞으로도 열심히 근무하겠습니다!”

“좋아, 이걸로 술이나 한잔하게.”

팅―!

현수의 손을 떠난 금화를 받아 든 발루네는 눈을 크게 뜬다. 무려 10골드짜리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근무 잘하게.”

“가, 감사합니다!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발루네가 허리를 직각으로 꺾을 때 현수의 신형은 유유히 정문을 벗어났다. 그런데 많은 천막이 보인다.

늦은 밤이지만 로브를 걸친 인영도 많이 보인다.

“끄응!”

나직이 침음을 토한 현수는 좌표를 확인했다.

“텔레포트!”

샤르르르릉!

“아앗! 마나 유동이다! 누가 이런 고서클 마법을……?”

잠자리에 들어 있던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 * *

“로잘린!”

“어머! 자기! 흐흑! 흐흐흑! 으아앙!”

로잘린은 또 훌쩍 떠나 버린 뒤 한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던 현수를 보자마자 눈물부터 흘린다.

“끄응!”

현수는 여러 여자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자책감이 들어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두 팔을 벌려 어서 달려와 안기라는 몸짓을 했을 뿐이다.

“자기! 어떻게 된 일이에요? 또 소식이 없어서… 으아앙! 뭐가 또 잘못된 줄 알고… 흐흐흑!”

“울지 마. 내가 바빠서 소식도 못 전한 거니까. 여길 더 일찍 오려고 했는데 그만…….”

“됐어요. 이렇게 오셨으니까 됐어요. 이제 어디 가지 마세요. 네? 자기를 못 보니까… 흐흑! 흐흐흑!”

현수는 말없이 로잘린을 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었다. 잠시 그렇게 있자 차츰 진정이 되는 듯 떨림이 줄어든다.

슬쩍 힘을 주어 품에서 떼어내니 로잘린은 비에 젖은 한 떨기 백합처럼 청초한 모습으로 미소 짓는다.

“이제 괜찮지?”

“네, 이제 안심이 돼요. 사랑해요. 보고 싶어서 미칠 뻔했어요.”

말을 하며 다시 안기려 하는 로잘린을 슬쩍 밀어내자 왜 그러느냐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이 순간 현수는 아공간에 있는 반지 하나를 슬쩍 꺼내 들었다.

아내가 될 여인들에게 청혼할 때 쓰려고 준비한 것이다.

“로잘린 로니안 드 테세린!”

현수의 입에서 자신의 풀 네임이 나오자 로잘린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곤 반짝이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그 눈빛에 불안함이 담겨 있다. 미판테 왕국에선 파혼할 때 상대의 풀 네임을 부르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그냥 로잘린이라고 부르면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여럿 있을 수 있기에 나중에 파혼이 무효라는 말이 나올 수 있어 이런 관습이 생긴 것이다.

“네, 왜요?”

“나 하인스 멀린 킴 드 셰울이 그대 로잘린 로니안 드 테세린의 남편이 되고 싶은데 나하고 결혼해 주겠어?”

“…흐흑! 그럼요! 전 이미 하인스 멀린 킴 드 셰울의 여자였어요. 옛날부터요. 당신이 제게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를 주신 그때부터요.”

“그때? 왜?”

현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커피를 센트 오브 워머나이저라는 고약한 것이라 오인토록 했을 때는 별다른 친분 관계가 없을 때인 때문이다.

“그냥 자기가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자기의 여자가 되고 싶어 안달을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청혼을 해주시다니 정말 고마워요. 현숙한 아내가 되도록 노력할게요.”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자, 이거… 청혼 예물이야.

로잘린은 현수가 내민 반지를 보며 눈빛을 반짝인다.

“어머! 이건…….”

카이로시아에겐 푸른 벨벳 상자에 담긴 10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줬다. 로잘린에겐 준 건 붉은 벨벳 상자에 담긴 10캐럿짜리 에메랄드 반지이다.

성녀 스테이시 아르웬에겐 같은 크기의 루비를, 케이트에겐 사파이어를 줄 예정이다. 제5왕비가 될 다프네에겐 진한 보라색 자수정을 줄 것이다.

지구를 기준으로 하면 자수정은 다른 보석에 비해 비교적 염가이다. 그렇기에 다프네에게 줄 자수정엔 특별한 손질을 해두었다. 첫째는 마나 완충이다.

마나집적진과 타임 딜레이 마법진 속에 있던 10캐럿 자수정엔 초특급 마나석과 버금가는 마나가 담겨 있다.

하여 다른 자수성과 달리 영롱한 빛을 반사시킨다.

현수가 각기 다른 보석을 고른 이유는 의미 때문이다.

제1왕비가 될 카이로시아가 가진 다이아몬드는 영원한 사랑과 행복을 의미하는 보석이다. 에메랄드는 행운과 행복을 의미하고, 루비는 영원한 생명과 열정을 의미한다.

사파이어는 자애와 성실, 덕망, 그리고 자수정은 성실과 평화, 진실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보석이다.

어쨌거나 모든 반지엔 동일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다.

하루에 두 번 주기적으로 구현되는 바디 리플레쉬 마법진이 있다. 체내에 쌓인 피로 물질을 말끔히 제거하는 효능이 있다.

두 번째는 임플로빙 이뮤너티 마법진이다. 면역력을 높여줘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효과를 보일 것이다.

셋째는 체인 라이트닝이다. 심리적 불안감이 극대화되면 주변으로 벼락이 뿜어질 것이다.

넷째는 체인 라이트닝이 구현됨과 동시에 전해진 좌표로 텔레포트되는 마법진이다. 납치 등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다.

다섯째는 앱솔로트 배리어 마법진이다. 체인 라이트닝이 구현된 직후 신체 전체를 보호하는 효능을 가진다.

여섯째는 오토 리차지, 일곱째는 인비저빌러티, 여덟째는 귀환마법진이다.

이는 사랑하는 아내들을 위하는 마음이 담긴 배려이다.

에메랄드 반지를 받아 든 로잘린은 사랑스런 눈빛으로 현수를 바라보곤 손가락을 내민다. 끼워달라는 뜻이다.

어찌 마다하겠는가!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자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스르르 크기를 줄여 딱 맞게 끼워진다.

많은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것이니 웬만하면 빼지 말라는 뜻으로 한번 끼면 빠지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로잘린, 이제 정식으로 내 약혼녀가 된 거야. 영원히 사랑해 줄게.”

“고마워요. 자기의 여자가 돼서 정말 행복해요.”

로잘린이 와락 안겨 들자 현수는 얼른 받아 안았다. 그와 동시에 둘의 입술이 겹쳐졌다.

“으읍!”

로잘린은 현수가 주도하는 키스에 온몸을 해파리처럼 축 늘어뜨린다. 머릿속에서 화려한 불꽃놀이가 시작된 때문이다.

현수는 늘어지려는 로잘린의 교구를 바싹 끌어안았다. 그리곤 마음을 다한 입맞춤을 선사했다.

여자들이란 사소한 것으로도 트집을 잡기도 하지만 별것 아닌 것으로도 감동받기 때문이다.

10여 분에 걸친 키스가 진행되는 동안 로잘린은 황홀이라는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자! 이제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뵈러 가야지? 어디 계셔?”

“저기 저쪽에요. 근데 지금 가면 안 돼요.”

로잘린이 가리킨 곳엔 현수가 준 침실용 컨테이너가 놓여 있다.

“왜, 무슨 일 있어?”

무슨 뜻이냐는 현수의 물음에 로잘린은 고개를 숙인다.

3년 전에 남동생이 태어났다. 이름은 알렉산더이다. 태중에 있을 때 국왕이 지어준 이름이다. 약속한 대로 왕실 문장이 있는 요람도 하사받았다.

부모는 경사가 났다면서 기뻐했지만 로잘린은 괜스레 부끄러웠다. 한국말로 치면 남세스러워서이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또 동생을 만들려는 모양이다.

전에도 금슬이 좋았는데 공작이 된 이후엔 아예 애인 사이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붙어 있고, 밤만 되면 일찍 잠자리에 든다.

이번엔 꼭 ‘비앙카’를 낳겠다고 한다. 이것 역시 국왕이 딸을 낳으면 쓰라고 지어준 이름이다.

“그게… 요즘 잠자리에 일찍 드세요.”

로잘린의 어투와 몸짓을 보니 충분히 짐작된다. 하여 피식 웃어주었다.

“처남이 생기는 거야? 아님 처제가 생겨?”

“치이! 부끄러워요. 그런 말 마세요.”

로잘린의 얼굴은 능금 빛으로 붉어진다. 부끄러워서이다.

“그나저나 나 갈 데 많은데 어쩌지?”

“네? 또 어딜 가야 하는 거예요?”

로잘린의 표정이 확 바뀐다. 또 소식 없는 세월을 보내야 하는가 싶어서이다.

“카이로시아 데리고 라이셔 제국에 가서 퍼거슨 에델만 드 로이어 공작님에게도 결혼 승낙을 받아야 하잖아.”

“어머! 그럼 여기 결혼 승낙받으러 오신 거예요?”

“그래, 격식은 다 갖춰야지. 그래서 청혼도 한 거잖아.”

“고마워요, 자기.”

로잘린이 와락 현수의 품으로 파고든다. 격한 행복감을 느낀 때문이다.

“고맙긴, 당연한 건데. 그나저나 비누는 다 쓴 거야?”

“비누요? 아! 저한테서 냄새가 나요?”

로잘린이 얼른 떨어져 나간다. 몸에서 풍기는 악취를 본인도 아는 모양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