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7
1장 유언비어 만들기
흑마법사들의 제국만이 존재하는 마인트 대륙 북단에 위치한 항구도시 헤르마는 자유영지이다.
중앙의 입김이 닿지 않는다 하여 모든 것이 자유는 아니다. 이곳 또한 로렌카 제국의 법을 따르도록 흑마법사들이 파견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헤르마에는 여러 선술집이 있는데 그중 뿔난 양의 엉덩이라는 괴상한 이름을 가진 곳의 음식이 가장 맛있다. 그렇기에 가게 안은 늘 북적이는데 오늘도 그러하다.
뿔난 양의 엉덩이에 손님이 많이 꼬이는 이유는 술과 음식이 맛있어서이다. 그리고 파티마 이브라힘 때문이다.
파티마는 지구로 치면 인도의 여배우 디피카 파두콘 정도 되는 미모와 몸매의 절세미녀이다.
그래서 파티마를 어찌해 보려는 욕심을 가진 사내들이 득실거리는 곳이 바로 뿔난 양의 엉덩이이다.
이곳의 모든 음식은 파티마의 부친이 만들지만 영업은 전적으로 그녀의 영역이다. 따라서 파티마는 글을 읽고, 쓸 줄 안다.
장부 정리 및 세금 계산을 하여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이 정도면 마인트 대륙에선 엘리트에 속한다. 거의 대부분 글을 읽는 것도 쓰는 것도 하지 못한다.
우민화 정책이 시행되는 중인 때문이다. 하여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모두 교육을 받지 못한다. 촌무지렁이들은 다루기 쉽고, 부리기도 쉽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뿔난 양의 엉덩이엔 많은 손님이 앉아 있고, 그중 로브를 걸친 사내들이 앉은 테이블이 있다.
모두 셋인데 그중 하나가 입을 연다.
“이봐, 세반! 자네 그 소문 들었나?”
“소문? 무슨 소문?”
“폐하께서 4서클 이상에 대한 소집령을 내리셨다네.”
듣고 있던 둘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4서클 이상 전부를? 칼리드! 그게 정말인가?”
“그러게. 숫자가 어마어마할 텐데? 근데 왜?”
둘의 즉각적인 대꾸에 처음 말을 꺼냈던 칼리드는 다소 냉소적인 표정으로 대꾸한다.
“그거야 잘 모르지.”
“말을 꺼내놓고 모른다고 하면 어떻게 해?”
“나도 자세한 건 몰라. 그냥 4서클 이상인 자는 전원 수도로 즉시 집결하라는 칙령을 내리셨다는 것만 들었어.”
“누구한테 들은 건데?”
“혹시 라쉬드 님에게서 들은 거야?”
라쉬드는 헤르마의 포탈 마법진을 관리하는 총책임자이다.
6서클 마스터이며, 휘하에 우마르와 샤림 등 6명의 마법사와 200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있다.
“아니! 라쉬드 님이 아니라 중앙에서 파견 나온 헤마… 뭐라고 하는 사람이 그랬는데. 아! 이상하다. 왜 그 사람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
“헤마, 뭐라고?”
“그래! 헤마 뭔데 생각이 안 나. 근데 키가… 컸나? 아니, 작았나? 얼굴은 어땠지? 길었나? 둥글었나? 허! 이상하네. 왜 생각이 안 나지?”
“뭐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거야?”
맨 처음 말을 꺼냈던 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오늘 오전에 만나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의 이름과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때문이다.
“너 어제 과음했지.”
“어제? 그래, 어젠 조금 많이 마시긴 했지.”
“으이그, 술 때문에 그렇군! 칼리드, 자넨 이제 술 끊어! 그나저나 그 사람이 뭐라고 그랬어? 4서클 이상인데 수도로 안 가면 뭐 어떻게 된다든지 하는 거 말이야.”
“아! 그거? 황제 폐하께서 누구든 명을 어기면 항명죄로 다스린다고 들었네.”
“뭐어……? 항명죄면 참수형이 아닌가?”
로렌카 제국에서 황제의 위상은 신과 맞먹는다. 그렇기에 황명을 듣지 않는 건 신의 뜻을 저버리는 것과 동일시하여 참수형에 처한 후 저잣거리 한복판에 효수((梟首) : 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음.)를 한다.
“그래! 목 잘리기 싫으면 수도로 집결하라는 거야.”
“가, 가야 하는 거지?”
“그야 죽기 싫으면 그래야지. 감히 황명을 어길 건가?”
“끄응! 얼마 전부터 새로 눈독 들여 놓은 계집이 있는데, 제기랄……!”
사내 중 하나가 침음을 내자 다른 하나가 끼어든다.
“눈독 들인 계집? 설마 파티마 이브라힘은 아니겠지?”
파티마의 이름이 나오자 사내의 눈빛이 확 달라진다.
“파티마는 왜? 그러면 안 되는 건가?”
아무래도 파티마를 자빠뜨린 뒤 어떻게 해보려고 이곳에서 만나자고 했던 모양이다.
“이 친구야, 파티마는 이미 임자 있어. 몇 년 전에 내기에서 져서 하인스라는 놈에게 입술을 빼앗겼거든.”
“하인스? 그게 누군가?”
칼리드는 관심 있다는 듯 세반에게 시선을 고정시킨다.
“모르네. 소문에 의하면 룩셔의 고수인 외출자였다고 하는데 밝혀진 것은 없네.”
“외출자? 끄응……! 상대가 만만치 않네.”
일반인이라면 마법사인 본인이 무조건 한 수 위이다. 마법사의 제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가 외출자라면 조금 껄끄럽다. 최소 5서클 이상인 마법사일 것이기 때문이다.
파티마를 노린 놈은 5서클 유저이다.
외출자가 같은 5서클이라면 한번 해볼 만하다.
상대가 마스터 수준에 올랐다 하더라도 본인의 풍부한 경험이 뒷받침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덤빌 수는 없다. 외출자를 건드리는 건 제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 사람아! 이미 임자가 있다고 해도 그러네.”
“아! 임자 있는 게 뭐 대수야? 자빠뜨리고 올라타 버리면 그만이지. 안 그런가?”
칼리드는 외출자 본인이 아닌 외출자의 여인을 건드리는 건 큰 문제 되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이다.
“허! 이 친구 정말 경을 칠 소리만 골라서 하네. 상대는 외출자라고! 황실에서 파견한 외출자! 외출자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공무수행 중인 외출자를 건드리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내가 건드리는 게 외출자야? 파티마지.”
칼리드는 나름대로 논리적인 대답이라는 듯 우쭐해하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에 세반은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이 친구야! 파티마를 건드리면 자동적으로 하인스라는 외출자와 한판 붙게 될 거라는 거 몰라?”
“그건 공무가 아니잖아. 따라서 공무를 수행 중인 외출자를 직접 건드리는 건 아니지. 안 그래?”
파티마의 미모와 몸매에 환장한 칼리드는 어떻게든 파티마를 정복하고야 말겠다는 표정이다.
이때이다. 앞치마를 두른 파티마가 다가왔다.
“이봐요, 손님들! 주점에 오셨는데 주문은 안 하고 계속 노닥거리기만 할 겁니까? 꼬추 떨어진 계집도 아니면서.”
“어떤 씨댕이가… 아! 파티마였군.”
욕을 하며 돌아보던 칼리드의 어투가 확연히 달라진다.
“여기 왔으면 당연히 주문을 해야지. 파티마가 안 와서 못하고 있었던 거야. 그나저나 뭐가 좋을까? 이 집에서 제일 비싸고 맛있는 게 뭐지?”
“제일 비싼 거 3인분 드려요?”
“그래! 술도 좋은 걸로 주고.”
제일 비싼 게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주문하는 칼리드이다.
“술은 얼마나 드려요?”
“사나이들이니 당연히 1인당 한 병씩은 줘야지.”
칼리드는 파티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혼이라도 빨려 나갈 듯한 느낌인 때문이다.
“술도 제일 비싼 걸로 드려요?”
“당연하지! 날 봐, 내가 싸구려나 먹게 생겼어? 그치?”
칼리드는 세반에게 시선을 준다. 동조해 달라는 의미이다.
“그럼! 우리 칼리드는 제일 비싼 거 아니면 거들떠도 안 봐. 그러니 이 집에서 제일 비싼 술 세 병! 알았지?”
“알았어요! 제일 비싼 음식 3인분, 그리고 제일 비싼 술 세 병이요. 12골드 60실버네요.”
파티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셋의 몸이 움찔거린다. 깜짝 놀랐다는 뜻이다.
“어, 얼마……? 얼마라고?”
“12골드 60실버요. 식사는 1인당 2골드 80실버고, 술은 한 병에 1골드 40실버예요.”
파티마는 이들 셋의 속내가 어떤지 뻔히 짐작한다. 이런 손님을 한두 번 상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손님들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그냥 그대로 내오라며 호기를 부리거나 깨갱하고 싼 음식과 술로 주문을 바꾸는 것이다.
뿔난 양의 엉덩이 입장에선 전자가 낫다. 그렇기에 상대가 반응을 보이기 전에 얼른 말을 이었다.
“돈 몇 푼에 찌질하게 구는 사내들이 있는데 손님들은 아니신 거 같아요. 제 눈이 옳은 거죠?”
“응? 그, 그럼! 당연하지! 파티마, 방금 주문한 거 그거 내와. 돈은 여기…….”
칼리드는 허리춤의 전대에서 금화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으며 하나하나 헤아린다. 1골드는 한국 돈으로 100만 원의 가치를 가졌다. 하나를 더 주면 100만 원을 더 내는 셈이다.
“하나, 둘, 셋… 열하나, 열둘… 에이, 인심 썼다. 열셋! 파티마, 남는 건 팁!”
“호호! 감사드려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음식과 술은 금방 나온답니다. 호호호!”
얼른 금화를 챙긴 파티마는 자신의 손목을 잡으려는 칼리드의 손길을 재빨리 피하곤 쪼르르 주방으로 향한다.
걸을 때마다 씰룩이는 둔부를 바라보는 칼리드의 눈에는 욕정의 빛이 가득하다. 아무도 없는 곳이라면 당장에라도 덮칠 표정과 눈빛이다.
“쩝……!”
파티마가 주방 안으로 쑥 들어가자 칼리드는 입맛을 다신다. 이때 세반이 중얼거린다.
“한 끼 식사에 2골드 80실버? 그리고 술 한 병에 1골드 40실버라고? 엄청 비싸군. 제기랄, 음식과 술을 금으로 만드나? 뭐 이리 비싸? 그나저나 칼리드 오늘 과용하네.”
“파티마 저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데 이 정도 돈은 들여야지. 그래야 한입에 쓱싹할 때 더 기분 좋지 않겠어?”
“그거야 그렇지, 아무튼 오늘 자네 덕에 우리 입이 호강하네. 세상에! 2골드 80실버짜리 음식과 1골드 40실버짜리 술이라니. 정말 기대되네.”
세반은 정말로 기대된다는 표정이다. 이때 주방 안의 파티마는 주방장을 맡고 있는 아빠에게 주문을 넣는다.
“아빠! 골빈 애들 셋 왔어요. 그러니 골빈탕 셋 해주시구요. 쉰 술 세 병이요.”
“러비쉬 셋에 콜키 세 병? 휘우! 내일 아침에 고생할 놈 셋이 확보된 거네.”
파티마의 아빠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뿔난 양의 엉덩이 선술집엔 원래 러비쉬란 메뉴가 없었다.
파티마가 자신을 어떻게 해보려는 사내들에게 먹이려고 직접 레시피를 만든 요리이다.
주방에서 사용하고 남은 자투리 식재료들을 모조리 쓸어 넣고 적당히 간을 본 다음 펄펄 끓인 후 적당한 데코레이션을 해서 내놓는 것이 러비쉬이다.
파티마는 이걸 골빈탕이라고도 부른다. 참고로, 러비쉬란 쓰레기라는 뜻이다.
원래는 버려야 할 식재료이니 쓰레기가 될 것이었는데 아주 비싼 탕이 되어 나가는 것이다.
콜키는 쉰 술로 만드는 것이다.
와인은 보관을 잘못하면 쉰다. 이를 부쇼네((Bouchonne) : 프랑스어로‘마개 냄새가 나는 포도주’이며, 와인 용어로 ‘불량 코르크로 인해 변질된 와인을 일컫는 용어’. 영어로는 콜키(Corky)라고 한다.)라고 한다.
콜키는 버려야 할 부쇼네와 가장 싸구려 술을 적절히 배합하여 만든 것이다.
파티마의 표현에 의하면 부쇼네와 최하급 술이 황금비율로 섞이면 말로 형용하기 힘든 묘한 맛과 향이 난다.
이곳 소믈리에((Sommelier) : 원래 수도원에서 식기, 빵, 와인을 담당하는 수도승을 일컫는 프랑스어였으나 지금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인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웨이터를 가리키는 프랑스어. 영어로는‘Wine captain’또는‘Wine waiter’라고 불린다.)도 가끔 주향이 상당히 독특하며, 깊이가 느껴진다는 평가를 할 정도이다.
파티마는 이걸 쉰 술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골빈탕의 원가는 30쿠퍼, 쉰 술은 10쿠퍼에 불과하다. 둘을 합치면 40쿠퍼에 불과하니 이를 4골드 20실버를 받는다면 1,050배나 바가지를 씌우는 셈이다.
“감히 나를 어쩌려는 놈들은 어떻게 그냥 둬요? 암튼 골빈탕 셋에 쉰 술 셋이에요. 너무 쓰레기 냄새 나면 안 되니까 향신료 적절히 넣는 것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