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0
“이보게, 친구!”
“네? 저요?”
“그래! 자네 혹시 돈 좀 벌어볼 생각 없나?”
“돈을 번다고요?”
“그래! 내가 하는 일이 있는데 자네가 조금만 거들어주면 하룻밤에 1골드 정도는 거뜬히 벌 수 있는 일이지.”
“네에? 일 골드나 벌어요? 하룻밤에요?”
현수는 촌구석에서 온 무지렁이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 내 말대로 하기만 하면 그렇게 되지. 근데 그걸 하려면 돈이 좀 있어야 해. 지금 주머니에 얼마나 있나?”
“그, 그건 왜요?”
이번엔 심히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야 시골에서 도회지로 처음 온 촌놈으로 인식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밑천이 있어야 버는 거거든.”
“그, 그래요? 그럼 얼마나 있어야 하룻밤에 일 골드를 벌게 되는 건가요?”
“흐음, 아무리 적어도 5실버는 있어야지.”
생각보다 판이 작은 듯하다.
“저, 정말 5실버만 있으면 1골드를 벌어요?”
“그래! 그 정도면 되네. 돈은 있어?”
“이, 있어요. 근데 더 있으면 더 많이 버나요?”
시골 촌놈이 욕심만 많은 듯한 눈빛을 보이자 사내는 몹시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뀐다.
“더 있어? 더 있으면 당연히 더 벌지. 얼마나 있는데?”
“이, 이십 골드요.”
“뭐어? 이십 골드? 그 돈 어디서 훔친 거야?”
“아뇨! 우리 마을 촌장님이 여기 와서 식량이랑 약초 같은 거 사오라고 주신 돈이에요.”
사내는 어느 촌구석인지 몰라도 순진한 놈 하나 때문에 적어도 몇 달은 개고생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하나 이런 건 표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흐음, 이십 골드나 있으면 당연히 40골드는 벌지. 어떤가 나랑 같이 가겠나?”
“그, 그럼요! 다, 당연히 가여죠. 근데 나중에 사례는 어떻게……. 좋은 걸 가르쳐 주셨는데 저 혼자 다 먹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사례? 그렇지, 돈을 벌게 해줬으면 사례를 하는 게 인간 된 도리지. 흐음, 40골드를 벌면 1골드만 주게.”
“저, 정말 그 정도면 돼요? 너무 적은 거 아니에요?”
현수를 정말 순진하게 보았는지 사내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오늘은 오랜만에 노름꾼들과 팀을 이뤄 20골드를 빨아먹을 생각을 하고 있는 때문이다.
잠시 후, 엘마가 꿍쳐 놨던 돈을 꺼내 왔다. 2골드 3실버 40쿠퍼이다. 한국 돈으로 치면 234만 원이니 적은 돈은 아니다.
현수는 스미스라는 사내의 뒤를 따라 노름꾼들이 있는 도박장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잠시만 기다리라 해놓고는 안에 들어가 작전을 짰지만 짐짓 모르는 척했다.
드디어 노름판에 끼게 된 현수는 도박꾼들 틈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이곳의 도박은 한국의 ‘포커’와 비슷하다.
얇은 나무패에 숫자를 새겨 넣고 일곱 장씩 나눠 가진 뒤 족보 높은 쪽이 이기는 게임이다.
현수는 잃었다 따기를 반복하면서 돈을 야금야금 잃어주었다. 판이 무르익어 모두가 판돈에 신경 쓸 때 현수의 입이 열렸다.
“그나저나 다들 아시나 모르겠네요.”
노름꾼 김현수의 시선을 받은 이는 4서클 마스터이면서 간간이 속임수를 쓰는 자이다.
이자는 밑장빼기와 바꿔치기가 특기이다. 아울러 상대로 하여금 방심하게 하는 데 도가 텄다.
지금하는 게임을 포커로 바꿔서 예를 들자면 사내의 앞에 깔린 패는 ♥3, ♠8, ◆10, ♣2이다.
스트레이트는 어렵고, 플러시는 불가능한 패이다.
기껏해야 투 페어 정도로 읽고 배팅에 들어가면 풀 하우스인 경우가 많았다. 바닥 패에 같은 무늬가 두 개 이상이면 스트레이트 플러시도 떴다.
이런 패를 어찌 당하겠는가!
현수가 이자에게 말을 건 것은 한참 돈을 잃어 남은 돈이 달랑달랑할 때이다.
“뭐 말인가?”
녀석은 부지런히 패를 섞느라 현수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표정관리를 해야 하는 때문이다.
“황제 폐하께서 4서클 이상인 마법사들에 대한 집결령을 내리셨다는데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집결령……? 언제, 어디로?”
“그야 맥마흔이죠. 날짜는…….”
현수가 말을 하는 동은 사내는 패를 돌렸다. 현수 역시 패를 받아 확인하느라 잠시 말을 끊었다. 잠시 후 추가로 패가 돌려졌고, 배팅이 계속되었다.
현수는 슬쩍슬쩍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마인트 대륙엔 간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판이 도는 동안 현수는 잃었던 돈 전부를 회수하고도 조금 더 딴 상태가 되었다.
다들 배팅에 신경 쓰는 동안 슬쩍 보니 사내는 패를 바꿔치고 있었다.
‘손이 눈보다 빠르다’는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정말 재빠른 손놀림이라 다른 이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싶다.
현수의 손에 쥔 것은 ◆A, ♣3이고, 바닥엔 ♠A, ♥3, ♣8, ♣10이 깔려 있다.
사내의 눈동자에 반사된 것을 보니 손에 ♣K, ◆K를 쥐고 있고, 바닥엔 ♠K, ♥Q, ♥J, ♣J가 깔려 있다.
손에 쥔 것은 방금 전에 바꿔치기한 카드이다. 원래는 ◆7과 ♠7이 있었다.
어쨌거나 현수는 A 투 페어이고, 상대는 K 풀 하우스 메이드이다.
“3골드!”
멤버 중 하나가 배팅하자 사내가 슬쩍 웃음을 짓는다.
“받고, 6골드 더!”
“나는 콜만 받아!”
“어휴! 판이 커지네. 그래도 콜!”
현수가 받자 처음 배팅한 자가 현수와 사내의 패를 유심히 바라본다.
“이 친구는 뭐지? 에이스 투 페언가? 이쪽은 쟈니 트리플이고? 좋아, 콜!”
사내가 바닥에 깔고 있는 패를 보면 ♣A, ♣2, ♣4, ♣5이다. 얼핏 보면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가능한 패이다.
하지만 절대 뜨지 않는다. 현수가 ♣3을 손에 쥐고 있는 때문이다. ♣4, ♣5, ♣6, ♣7, ♣8인 스트레이트 플러시도 불가능하다. 현수의 바닥 패에 ♣8이 깔려 있는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내가 가능한 패는 스트레이트, 혹은 A 탑 클로버 플러시이다.
제일 높이 봐줘도 5탑 풀 하우스가 고작이다. A를 현수가두 장이나 쥐고 있는 때문이다.
“에이, 내가 낄 판이 아니군. 다이!”
마지막 멤버가 카드를 엎자 현수는 지금껏 바꿔치기로 돈을 불린 사내를 슬쩍 바라보며 마지막 패를 돌렸다.
마지막 장을 잡아 이를 확인한 사내는 굳은 표정이다. ♥K가 들어와 포 카드가 완성된 때문이다.
현수의 패는 아무리 높아도 A 풀 하우스이다.
바로 곁 사내에게 ♣A, ♣2, ♣3, ♣4. ♣5가 뜰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럴 확률은 매우 낮다.
아니, 그냥 낮은 정도가 아니라 희박하다.
괜히 스트레이트 플러시의 족보가 높은 게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마음 놓고 배팅을 해도 된다는 뜻이다.
“흐음! 12골드!”
“…콜!”
클로버 플러시 메이드를 쥔 사내는 자신 없는 표정이다. J 풀 하우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때문이다.
“12골드 받고, 24골드 더!”
“난 다이.”
현수가 판을 키우자 Q 투 페어를 쥐고 있던 사내가 카드를 엎는다. 막장에 Q 한 장이 더 들어오면 풀 하우스가 되기에 끝까지 따라왔는데 안 떴으니 미련 없이 꺾는 것이다.
“호오! 24골드나 더? 뭔가 무시무시한 패가 떴나 보군. 좋아, 나는 거기에 48골드를 더 얹지.”
“제기랄! 내가 낄 판이 아니군. 플러시지만 죽는다. 쳇!”
사내는 메이드 된 플러시를 가지고도 판돈을 먹을 수 없는 게 배가 아픈지 패를 까발린다.
들고 있던 패는 ♣7, ♣9, ♣10이다.
몽땅 클로버만 가졌다. ♣8이 안 떠서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되지 못한 패이다.
모두가 아깝다는 말을 하지만 사내는 그따위 패엔 관심 없다는 듯 현수만 바라본다. 이때 현수는 바닥에 깔린 패를 보고 상념에 잠긴 듯한 표정이다.
“아! 카드 하는 사람 어디 갔나?”
“48골드 받고 96골드 더!”
“뭐야? 그만한 돈이 있으면서 그러는 거야?”
현수의 수중에 남은 돈은 3실버 정도였다. 그렇기에 입으로만 배팅하느냐는 말을 하려 할 때 현수가 품속에서 100골드짜리 금화 5개를 꺼냈다.
도박장의 모든 사내가 눈빛을 번뜩인다. 10년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대박이 코앞에 있다 생각한 것이다.
“크흐흐! 배짱 좋군. 좋아, 나는 그 96골드를 받고 200골드를 더 배팅하지. 이봐, 돈 좀 빌려줘.”
사내는 곁에 있던 사내에게 슬쩍 자신의 패를 보여준다. 그러자 두말없이 금화를 빌려준다. 현수가 질 것이 분명하기에 더 묻지도 않는다.
“흐음! 판이 커졌군요. 좋습니다. 200골드 받죠. 그리고 400골드 더합니다. 돈 없으면 꺾으세요.”
“뭐야? 어디서 이런 애송이가! 이봐, 돈 좀 더 빌려줘.”
사내는 탐욕 어린 시선으로 현수를 노려보곤 곁의 사내들에게서 돈을 빌렸다. 도박판의 돈 거의 전부가 이 한 판에 실려서 그런지 다들 눈빛을 반짝이며 구경한다.
“자! 400골드 더 받았네. 카드 까지.”
“좋습니다. 저는 A 풀 하우스입니다.”
“크하하하! 크하하하! 겨우 그것 가지고.”
사내는 큰 소리로 웃으며 판돈 전부를 자신 앞으로 끌어당기려 한다.
“잠깐! 카드는 보여주셔야죠.”
“카드? 아! 그렇지. 자, 여기! K 포 카드이네.”
말을 하며 손에 쥐고 있던 카드를 내려놓았다.
“으잉? 이게 뭐야?”
사내는 자신이 내려놓은 패를 보며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KKK가 아니가 KK2인 때문이다.
“에이, K 포 카드가 아니잖아요. K 풀 하우스네요. 그럼 제가 이긴 겁니다.”
현수가 판돈 전부를 쓸어 담는 동안에도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야? 무의식적으로 카드 바꿔치기를 한 거야?’
‘어라! 조금 전엔 분명 KKK였는데 어떻게 된 거지?’
돈을 빌려준 사내 역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어서이다.
“보아하니 오늘은 제가 다 딴 모양입니다. 자, 그럼 저는 이만 갑니다. 참! 스미스 씨. 제가 계산해 보니 대략 1,000골드쯤 땄나 봅니다. 여기 25골드요. 40골드당 1골드씩 드리기로 했으니까 맞죠?”
“으응? 그, 그럼!”
스미스는 자신에게 던져진 10골드짜리 금화 두 개와 1골드짜리 다섯 개를 슬쩍 손에 쥐며 눈치를 살핀다.
자신이 현수와 짜고 판돈을 휩쓸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돈에 대한 욕심을 못 이긴 것이다.
현수는 돈을 모두 쓸어 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조금의 미련도 없다는 듯 바깥으로 나갔다.
하지만 도박판의 사내들은 아무도 현수를 제지하지 않았다. 이 도박장의 주인인 사내가 멍한 표정으로 KK2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때문이다.
“뭐야? 아까 내가 봤을 때 분명 KKK였는데.”
“그러게! 나도 그렇게 봤어. 내 눈이 잠시 삔 건가?”
사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현수는 영지를 빈민촌을 거쳐 영지 바깥으로 향하고 있었다.
돈을 잃었던 사내가 제정신을 찾으면 4서클 이상인 마법사 전원에 대한 집결령에 내려진 것에 대한 소문이 퍼질 것이기 때문이다.
“도박으로 흥한 자는 도박으로 망하는 법! 후후후, 당분간 속 엄청 쓰리겠군. 그나저나 이 돈은… 그래!”
현수는 빈민촌을 돌며 가구당 2골드씩 넣어주었다. 같은 시각 스미스는 도박꾼들의 집단 린치를 당하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현수를 찾아보니 이미 사라졌다. 둘이 짠 것이라 판단한 도박꾼들에 의해 얻어터지는 중이다.
현수로부터 받은 25골드는 벌써 빼앗겼다.
게다가 가장 장사가 잘되는 선술집 두 개로부터 단물을 빼먹을 수 있던 밑천도 망가졌다.
누군가 엄청 세게 걷어찼는데 하필이면 그곳을 맞아 터져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