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1
누라하 영지를 벗어난 현수는 곧장 카이젠 영지로 가서 황제 집결령에 관한 소문을 퍼뜨렸다.
뒤를 이어 펜말 백작령과 후펜자 후작령도 들렀다.
수도에서 가까운 케즈만 공작령을 방문했을 때는 마인트 대륙 전역으로 소문이 번져 있었다.
서로 정보를 확인하려는 시도를 했던 결과이다.
3장 번지는 유언비어
한편, 맥마흔의 황실 정보처는 전국 각지로부터 쇄도하는 소문 확인 통신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여보세요. 여긴 무크타크 공작령입니다. 저는… 황제께서……. 사실인지요?]
[아아! 여긴 세트보리 후작령입니다. 저는… 인데요. 황제께서……. 사실인지요?]
[여긴, 로라크센 남작입니다. 황실 정보처지요? 황제께서……. 사실인지요?]
“끄응! 끄으응!”
똑같은 이야길 하루에 삼백 번 이상 들으려니 짜증이 난다. 그렇기에 오는 말은 고왔지만 가는 말은 그렇지 않다.
“네, 맞아요! 다 맞습니다.”
하도 짜증이 나기에 무심코 한 말이다.
말을 한 당사자는 이 말이 기폭제가 되어 대륙 전체로 소집령이 번져 갈지 몰랐을 것이다.
집결령이 떨어졌는데 가지 않으면 참수형으로 다스려진다.
그렇기에 대륙의 4서클 이상인 마법사 전원은 부지런히 짐을 쌌다. 오라니 가기는 하겠지만 언제 되돌아올지 모르는 집결이기에 만반의 준비를 하느라 그러하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기에 두메산골 속에 처박혀 있던 마법사들도 모두 수도를 향해 출발했다.
그렇다 하여 도보로 맥마흔까지 가는 것은 아니다. 큰 영지마다 포탈 마법진이 있기에 그곳까지만 가면 된다.
어쨌거나 마인트 대륙엔 대이동이 시작되고 있다. 유언비어가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단순한 유언비어 때문에 이런 대이동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로렌카 제국의 황제는 3년 전부터 공식석상에서 양위에 관한 언급을 했다. 조만간 황태자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본인은 10서클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핫산 브리프가 맥마흔을 뒤흔든 뒤 10서클에 이르고 싶다는 욕구가 다시 강렬해진 것이다.
아무튼 수백 년 만에 양위가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자리 때문에 집결령이 내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전국 각지의 마법사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약 40만 명이나 된다.
* * *
“어서 오십시오, 전하!”
“네, 요슈프 님! 오래간만입니다.”
현수가 당도한 곳은 반 로켄카 전선의 일원인 화티카 왕국의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는 동굴이다.
“전엔 저희에게 베풀어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뜻도 제대로 표하지 못했습니다.”
지난번 방문 때 현수는 20㎏짜리 밀가루 5,000포대를 주었다. 뿐만 아니라 양파, 파, 마늘, 후추 이외에도 소뼈, 돼지 뼈 등도 상당히 많이 주었다.
늘 식량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은 때문이다.
현수가 떠난 후 요수프는 세 번이나 놀랐다.
식품의 품질과 신선도 때문이다. 밀가루는 더없이 곱게 빻아져 있었고, 야채와 축산물은 너무도 신선했다.
덕분에 모든 식솔이 배부르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놀란 건 거울과 옷, 비누, 중성세제 때문이다. 거울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빛을 동굴 내부로 끌어들여 훈기를 주었고, 비누와 세제의 성능은 더없이 좋았다.
가장 크게 놀란 세 번째는 항온마법진이다. 덕분에 한겨울에도 춥지 않았다.
간단한 식사 한 끼와 잠자리, 그리고 소개장 하나를 제공한 대가치고는 너무 과했으니 장본인이 떠난 후에도 제대로 감사의 뜻을 표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수가 다시 오자 이처럼 환대하는 것이다.
“에구, 무슨 말씀을……. 괜찮습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일 때 화사한 원피스를 걸친 여인이 들어선다. 요슈프의 딸 말라크이다.
23살이 된 말라크는 더욱 아름다워져 있었다.
전에는 촌스러운 포카혼타스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 훨씬 세련되어 보인다. 현수가 준 옷 때문이다.
마치 인도의 여배우 프리얀카 초프라(Priyanka Chopra)가 가장 아름답던 시절 같은 모습이다.
“말라크가 다시 오신 전하를 뵈옵니다.”
“오랜만이군, 말라크! 많이 예뻐졌네.”
현수는 무심코 한 말이다. 그런데 말라크의 얼굴이 금세 붉어진다. 몇 년이 지나도록 잊혀지지 않던 사내로부터 칭찬을 들은 것이 너무 기분 좋아서이다.
“아! 네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식사가 준비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쉬실 방으로 안내하겠사옵니다. 소녀를 따르시지요.”
“그래, 그러지.”
말라크의 안내를 받아간 곳은 누가 봐도 규방이다. 그것도 말라크 본인이 쓰는 방이다. 그 증거는 전에 왔을 때 현수가 꺼내 놓았던 극세사 이불과 요이다.
“여긴 말라크의 방 같은데?”
“네! 여기선 이 방이 제일 호사스러워서요. 쉬고 계시는 동안 식사를 준비할 거예요.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참, 차 한 잔 드릴까요?”
“차? 여기도 차가 있나?”
“그럼요.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차가 있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말라크는 현수의 대꾸도 기다리지 않고 쪼르르 나가 버린다. 졸지에 혼자 남게 된 현수는 두리번거렸다.
바위를 파서 만든 방이다. 투박한 가구 몇 점 이외엔 별다를 게 없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부조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어느 가문의 역사가 시간대별로 새겨진 것 같다. 그런데 상당히 뛰어난 솜씨이다.
“흐음! 말라카가 후작가의 자손이라 했는데 요슈프 가문의 역사인가? 그나저나 거의 빌모아 일족 솜씬데?”
현수는 부조 하나 하나를 살피며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정말로 굉장한 솜씨였던 때문이다. 작은 부분까지도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아! 그거 구경하세요? 아버지가 우리 왕국의 역사를 잊지 말라고 하셔서 새긴 거예요. 어때요? 보기 흉하진 않죠?”
“에에? 이게 말라크가 새긴 거라고?”
현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라크 같은 미인에게 이런 솜씨가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이다.
“네! 부끄럽지만 그래요. 여긴 시간이 많거든요.”
외부에서 식량을 구하는 시간보다 동굴 속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긴 것이 이곳 사람들의 삶이다.
수시로 순찰을 도는 로렌카 제국 병사들에게 발견되면 몰살당할 수 있기에 가급적 외출을 자제한 때문이다.
“대단해! 아주 솜씨가 좋네.”
“호호! 칭찬 고맙습니다. 전하! 참, 차 드셔요.”
말라크는 투박한 컵을 건넸다. 질그릇에 담긴 차에선 향긋한 내음이 풍긴다.
후루룩―!
“흐으음!”
따뜻한 차가 입안에 머물 땐 단맛이 느껴졌고, 목구멍을 넘는 느낌은 부드러웠다. 내쉬는 숨과 함께 비강을 통해 빠져나가는 냄새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생전처음 느껴보는 향기인 것이다.
“이건 무슨 차지?”
“사실 차는 아니에요.”
“차가 아니라고?”
“네! 저흰 차를 수확할 정도로 시간이 많지 않아요. 방금 드신 건 스위티 클로버라는 식물의 잎사귀를 뜨거운 물에 넣은 거예요. 달콤하죠?”
감초(甘草)는 한약재의 약성을 중화시켜서 우리 몸이 더 잘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주요 효능이다.
한약은 쓰다는 선입견이 있는 사람들에겐 단맛 때문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감초에겐 다른 효능도 있다. 니코틴과 알코올의 해독을 하며, 도라지와 더덕처럼 기침 완화에도 좋다.
뿐만 아니라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효과 및 노화 방지에도 기여한다. 이쯤 되면 왜 한약에 감초가 꼭 끼는지 충분히 짐작된다.
스위티 클로버 역시 감초처럼 달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데 아르센 대륙의 쉐리엔처럼 지천에 널려 있어 손쉽게 수확된다.
그런데 스위티 클로버는 단순히 단맛만 나는 식물이 아니다. 매우 뛰어난 해독 작용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알코올 분해에 탁월하다.
음주 전에 마시면 쉽게 취하지 않게 하고, 음주 후에는 숙취가 발생되지 않도록 한다.
장복하면 술 생각이 나지 않도록 해준다. 다시 말해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알코올뿐만 아니라 마약류 해독에도 탁월하다.
로히피놀(Rohypnol), 케타민(Ketamin), GHB((Gamma Hydroxy Butrate) : 무색무취로 음료에 몇 방울 타서 마시게 되면 10∼15분 내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3∼4시간 지속된다. 향정신성 의약품의 하나로‘물뽕’이라고도 한다.), 졸피뎀(Zolpidem)은 ‘데이트 강간 약물(Date Rape Drug)’로 악용되는 마약 및 마약성 수면유도제이다.
여성들이 마시는 음료수나 술에 섞은 뒤 제 욕심만 채우려는 나쁜 놈들이 애용한다.
스위티 클로버는 이것들에 대한 매우 신속하면서도 강력한 분해 및 해독과 배출 효능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위에 언급된 데이트 강간 약물이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스위티 클로버는 피로 회복에도 매우 좋다.
체내에 축적된 피로물질들을 독으로 간주하기에 매우 빠른 속도로 분해 및 배출시켜 늘 최상의 컨디션이 유지되도록 돕는 효능이 있다.
과도한 운동 후 근육이 당기거나 아픈 건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젖산(Lactate)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포 성장을 조절하는 단백질과 결합했을 때 산소가 부족한 상태가 되면 암세포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
스위티 클로버는 이러한 젖산 또한 강력하게 분해하는 효과가 있다. 암 발생 억제 효과까지 있는 것이다.
일련의 효과에 대해 마인트 대륙인들은 전혀 모른다.
현수 또한 모르고 있다. 방금 설명된 일련의 효능은 추후 이실리프 연구소에서 밝혀질 것들이다.
“향도 좋고, 맛도 좋은데?”
“그쵸? 가실 때 싸드릴까요?”
“나한테 싸줄 만큼 충분히 있는 거야?”
“혹시 여기 오실 때 이렇게 생긴…….”
말라크의 설명을 들어보니 발길에 채이는 식물이었다. 너무 무성히 자라서 잡초로 보았던 것이다.
“저희는 스위티 클로버를…….”
이곳 사람들은 입안이 텁텁하거나 입 냄새가 나면 스위티 클로버의 열매를 씹는다. 그러면 입안이 상쾌해지는 느낌이고, 구취도 사라지는 때문이다.
열매를 씹어 달콤한 맛과 그윽한 향을 느낄 때쯤이면 구강 내 세균들이 박멸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나중에 밝혀질 일이다.
잎사귀는 차로 마시기도 하지만 출출하면 따뜻한 물에 가루를 타서 먹기도 한다. 때때로 음식에 단맛을 내기 위한 식재료로도 쓰인다.
줄기는 잘 말렸다가 밑을 닦을 때 쓴다.
“그래? 그거 아주 신통한 녀석이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눈빛을 빛냈다.
이실리프 코스메틱은 듀 닥터 시리즈와 아르센의 공주, 그리고 디오나니아의 눈물로 많은 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이실리프 메디슨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전 세계 여성들은 물론이고 남성들까지 필수품으로 인식하고 있는 쉐리엔 때문이다.
현수는 스위티 클로버를 차로 개발할 것을 고려해 보았다. 둥굴레차보다 훨씬 달고, 향도 그윽하다.
나중의 일이지만 스위티 클로버는 다양한 형태의 상품으로 개발되어 또 하나의 메가 히트 상품군을 탄생시킨다.
열매는 새로운 형태의 껌과 화장품의 원료가 된다.
껌은 구강 내 세균을 완전히 박멸시켜 구취 및 충치 발생을 억제시키는 효능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진다.
뿐만 아니라 플라크 생성도 억제된다.
그 결과 껌으로 판매되지만 소비자들은 필수 의약품으로 인식하여 매일 두 개씩 씹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껌과 치약, 그리고 칫솔과 치실 등을 구강 관련 제품을 취급하는 업체들과 치과는 매출이 급감하여 죽을 맛이겠지만 부작용 없이 구취 제거와 충치가 예방되는 껌은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그 효과가 너무도 확실한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