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5
“제 생각도 그러합니다. 푸틴이 있는 한 지나는 이실리프 왕국을 건드리지는 않을 겁니다.”
“끄응! 그럼 한국에서 요구한 대로 전작권을 돌려주고, SOFA를 개정해야겠군요.”
힐러리가 다시 등받이에 등을 댄다.
“한국의 군인과 정치인들을 만나보겠습니다.”
국방장관이 나서자 외무장관이 이에 대응한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의 대통령 권한대행은 친미인사가 아닙니다. 국방장관도 그렇구요.”
“나머지 장관들과 여당, 그리고 야당엔 친미인사가 상당히 많습니다.”
“저희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곧 의회가 해산될 듯합니다.”
CIA국장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그게 사실입니까?”
“네! 저희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그것에 대한 법률적 검토가 시도되었습니다.”
“끄응!”
국방장관이 나직한 침음을 낸다.
한국의 국회의원 중에는 친미인사가 많아서 미국의 입맛대로 정국을 바꿀 수 있었는데 그게 무산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CIA국장은 다시 입을 열었다.
“한국은 현재 비상계엄 상태이며 전군에 대한 숙군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와 연결되어 있던 많은 인사가 낙마되고 있습니다.”
“국회가 해산되면 계엄령 해제에 관한 권한은 권한대행에게 있는 거지요?”
계엄령만 해제되면 육·해·공군 4성 장군들은 업무정지에서 풀려나게 된다. 이들 모두 친미인사인지라 물은 말이다.
“네! 맞습니다. 한국의 대통령 권한대행이 계엄령을 해제하지 않은 한 계엄사령관의 뜻대로 체제가 개편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계엄사령관이 임문택이라고 했나요?”
“네, 3성장군 출신으로… 자세한 것은 보고서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국방장관의 말이 끝나자 모두들 테이블에 놓인 패드를 집어 든다. 거기엔 임문택의 사진과 약력 등이 기록되어 있다.
“접근은 해봤습니까?”
“주한미군 사령관과 우리 대사가 면담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되었습니다. 일본과의 전쟁을 수습한 뒤에 시간을 내겠다는 뜻만 전달받았을 뿐입니다.”
“임문택 사령관의 성향은 어떻습니까?”
“그의 성향은… 군인이면서 학자입니다.”
“끄응! 접근이 쉽지 않겠군요.”
“그렇습니다. 권한대행과 계엄사령관은 이번 기회에 한국의 체질을 바꾸려는 듯합니다.”
CIA국장의 말이 끝나자 모두들 입을 다문다.
이 침묵은 제법 길었다. 머릿속으로야 오만 가지 상념이 스치겠지만 입을 열어 묻거나 확인할 것이 없는 때문이다.
긴 침묵을 깬 것은 힐러리 로댐 클린턴이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봐야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들 한국에 대해 보다 면밀한 조사를 실시하세요. 상황이 바뀌면 조건도 바뀌는게 당연합니다. SOFA를 개정해서라도 지나를 견제해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지요. 자, 오늘 회의는 마칩니다. 이만 해산하세요.”
각부 장관 및 첩보기관장들의 표정은 굳어 있다.
“참! 외무장관님은 좀 남으세요.”
잠시 후, 힐러리와 독대하게 된 존 캐리는 다이어리를 펼쳐 든다. 보안이 강화된 패드도 있지만 아날로그식으로 사는 게 편해서이다.
“말씀하십시오.”
“한국의 권한대행에게 미국이 지지한다는 뜻을 보내세요.”
“정순목 권한대행을 말입니까?”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등이 코마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한국은 정권이 바뀔 것이에요. 미리 친해둬서 나쁠 것 없지요. 그리고 차기에 누가 유력한지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존 캐리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곤 물러났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힐러리는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손쉽게 요리되던 한국이라는 식재료가 왠지 상당히 까다롭게 변할 것 같은 느낌이 든 때문이다.
* * *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분노한 습진평의 시선을 받은 이는 국가안전부장이다.
얼마 전 지나에선 어디에다 대고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비밀 핵무기 발사 기지에 있던 핵미사일들이 사라진 것이다.
지난 2013년 12월에도 천진시 외곽 무룡빌딩 인근에 있던 지하기지에서 DF―21A와 DF―21C가 사라지는 사건이 있었다.
그날, 국안부 3국은 궤멸당했다.
사건 이후 핵 기지 근무자 전원에 대한 정밀 수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아직도 누가 핵미사일을 어떻게 했는지 밝혀진 바 없다.
서방에선 약 12만 명의 병력이 배치된 지나의 핵미사일 부대에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탄도미사일 1,500∼2,000기를 배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실제와 차이가 있다. 지나는 3,252기의 핵미사일을 실전 배치했다. 서방의 눈을 감쪽같이 속인 것이다.
의뭉스럽기 이를 데 없는 지나다운 일이다.
아무튼 이 중 489기의 핵미사일이 증발해 버렸다.
발사 버튼을 눌러 발사된 것이 아니라 기지 내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보고가 올라오자 습근평은 노발대발하며 즉시 범인 색출을 지시한 바 있다. 아울러 이틀에 한 번씩 진행사항이 기록된 보고서를 올리라고 했다.
그런데 방금 전 국안부장이 가져온 보고서엔 누가 범인인지 도저히 알아낼 수 없다는 내용만 있다.
“국안부장! 내가 뭐라고 했나?”
“저, 전력을 기울여 범인을 색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건 뭐지?”
습근평은 방금 가져온 보고서를 흔들며 노려본다.
“말씀하신 대로 전력을 기울여 수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침입 흔적이 없었습니다. 기지 내 모든 감시 카메라를 확인해 보았지만 우리 인원 말고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핵미사일이 없어져? 그게 만년필이나 볼펜처럼 작아서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습근평의 분노한 표정을 읽은 국가안전부장은 나직이 한숨은 쉰다.
“휴우∼! 정말 아무런 증거도 없습니다. 핵미사일이 사라진 걸 빼면 다친 사람도 없고…….”
“자네 이렇게 무능했나?”
“……!”
국안부장은 뭐라 할 말이 없는 듯 입을 다문다.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핵미사일이 사라졌어. 한두 개도 아니고 무려 489개나! 그걸 뭐로 운반했겠나?”
“주석! 도난 사건이 벌이진 기지를 중심으로 반경 50㎞ 내의 모든 CCTV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미사일을 운반했을 것이라 의심되는 차량 전부를 조사했지만 결과가 없는 겁니다.”
국안부장은 몹시 답답하다는 표정이다.
습근평의 말대로 국안부의 모든 능력을 기울여 범인 색출에 나섰다. 그런데 아무런 증거가 없어 진행 상황 없음이라는 보고서를 올린 것이다.
그런데 예상대로 닦달을 하니 미치고 환장하겠는 것이다.
“핵미사일을 아무런 운반도구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건 불가능해. 군부의 불량한 자들에 의한 소행일 수도 있어. 그리고 도난된 시각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빠를 수도 있고. 무슨 말인지 아나?”
습근평은 러시아 레드 마피아를 떠올렸다. 부패한 군부와 짜고 비밀리에 무기를 내다 팔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압니다. 그래서 기지 근무자 전원에 대한 내사도 했습니다. 미사일이 배치된 날 이후의 모든 근무자가 대상입니다.”
“그래서?”
“혐의점이 없습니다.”
“그럴 리가 없지. 조사에 임했던 국안부 요원들에 대한 내사를 시작하게.”
“그것도 염두에 두고 조사했습니다. 크로스 체크를 하여 누군가와 짜고 사건을 은폐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것도 깨끗합니다.”
습근평은 보고서가 든 파일을 흔들며 입을 연다.
“도난 사건이 빚어졌는데 범인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그, 그건……!”
국안부장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앞으로 1개월의 시간을 더 주지. 그 안에 누가 범행을 저질렀는지 확실하게 파악해서 보고해.”
“끄응! 알겠습니다.”
국안부장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배석해 있던 7인 정치국 상무위원과 25인 정치국원은 신랄하게 깨지는 국안부장을 보며 표정을 굳힌다.
침묵을 깬 것은 지나의 권력 서열 2위인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 장덕강이다.
“다음은 한일전에 관한 내용을 보고하시오.”
“네! 위원장님. 이번 한일전에서 한국이 스텔스기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스텔스기라니? 한국에도 스텔스기가 있단 말이오?”
모두의 시선이 국안부장에게 쏠린다.
한국이 어떤 무기를 얼마만큼 보유하고 있는지는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네! 이번 한일전 때 한국의 K―2기지에서 40대의 전투기가 이륙했습니다. F―15K로 짐작되는데 중간에서 레이더에서 사라졌습니다.”
“F―15K가 스텔스기란 말이오?
“미국으로부터 스텔스 도료를 받은 바 없으니 새로운 스텔스 도료를 개발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잠시 모두의 입이 다물려진다.
그러다 하나둘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이라면 그럴 만한 역량이 있다는 의미의 끄덕임이다. 미국과 달리 지나는 한국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었다.
“그럼 그게 일본의 F―15J 40기와 F―35A 40기를 떨군 거란 말이오?”
상무위원의 물음에 국안부장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울러 조기경보기와 공중 급유기, 그리고 대잠 초계기들도 격추시켰습니다. 위원님.”
“으으음!”
한국과 많은 교역을 하고 있지만 우방국이라 할 수는 없다. 유사시 미국의 편을 들 확률이 매우 높은 나라가 전에 없던 무기를 가졌다. 결코 환영할 만한 일은 결코 아니다.
그렇기에 다들 침중한 표정을 짓는다.
“자자, 489기의 핵미사일은 사라졌고, 한국은 스텔스기를 가졌습니다. 아프리카로부터 애써 구해온 금괴들이 감쪽같이 사라진 이후 최대 위기입니다.”
습근평의 말에 아무도 토 달지 않는다.
“으으음……!”
수년 전부터 엄청난 액수의 외환과 금괴가 사라지는 등 외부에 알려지면 큰일 날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났다.
국가의 체제 자체가 흔들일 일인지라 극비로 다뤄 지금껏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핵미사일이 무려 489기나 사라졌고, 언젠가는 도모해야 할 나라라 생각한 이웃 국가는 강력한 무기를 얻었다고 한다.
지나의 수뇌부들은 다들 기가 찬지 입을 다물고 있다.
“한국이 정말 스텔스 기술을 취득했는지 확인하게.”
“네! 주석.”
국안부장이 정중히 허리를 꺾는다.
“일본은 어떤가?”
“한일전의 패배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던 모양입니다. 감춰두었던 핵무기를 발사하려던 때에 후지산 등 거의 모든 화산이 분화를 시작해서 현재 아수라장 분위기입니다.”
“흐음, 그건 마음에 드는군.”
습근평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조어도에 대한 일본의 야욕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이때 국안부장의 보고가 이어진다.
“현재 일본 열도 전체가 화산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대대적인 엑소더스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엑소더스?”
“네! 상당수가 일본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려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총리!”
“네, 주석!”
습근평은 이극강 국무원 총리와 시선이 마주치자 심중을 토로한다.
“화산 분화로 일본 열도를 탈출하는 보트피플((Boat people) : 망명을 하기 위해서 배를 타고 바다를 떠도는 사람.)이 많이 발생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겠지요.”
“그들이 본토에 발을 들여놓는 걸 보고 싶지 않군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오늘 이후 일본인들의 출입을 엄히 단속토록 하겠습니다.”
“국안부장!”
“네! 주석.”
“오늘 언급된 것들에 관한 상세 보고서가 올라오길 기다리겠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안부장이 고개를 숙이자 이 총리가 화제를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