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6
“다음은 이실리프 왕국에 관한 사항입니다. 한반도 이북 지역에서 체결된 모든 계약을 무효로 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이 총리가 자리에 앉아 왕기산 부총리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요. 북한의 모든 것을 승계했으면 당연히 계약도 승계되는 것입니다.”
왕기산 부총리는 무역과 외국인 투자 등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자이다. 지나의 기업과 북한 사이에 체결된 다수의 계약 또한 왕 부총리의 업무 중 하나이다.
“저쪽에선 그렇게 생각지 않는 모양입니다. 모든 계약은 무효라 선포할 준비를 하고 있고, 그에 앞서 모든 외국인에 대한 추방령이 집행될 예정입니다.”
“모든 외국인을 다 내쫓는다고 합니까?”
“네! 이실리프 자치령이 있는 러시아와 몽골, 그리고 에티오피아와 콩고민주공화국,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외국인에 대한 추방령이 내려졌습니다.”
“각국 외교사절은 제외지요?”
외교사절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기에 한 말이다. 그런데 국안부장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아닙니다. 모든 외교사절 또한 즉각 출국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반대로 북한에서 외국으로 파견한 외교관 및 외화벌이꾼 전원에겐 복귀 명령이 떨어졌구요.”
“흐음, 현대판 쇄국정책이라도 펼칠 모양입니다.”
누군가 다소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대꾸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국안부장의 발언은 이어진다.
“그렇습니다. 이실리프 왕국의 체제가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는 그렇게 하겠답니다.”
“끄응! 마뜩치 않군요.”
습근평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에서 전면적으로 교류 중단을 선언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다.
북한과의 교류 중단은 지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맨날 징징대는 소리 듣기 싫어 적당히 연료와 식량을 대주는 일도 귀찮기만 하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언제든 뭔가를 요구하면 들어줄 호구인 때문이다.
아울러 소위 자유진영이라 불리는 한국과 국경을 맞대지 않게 하는 완충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주둔해 있는 미군이라는 존재가 마뜩치 않은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북한 쪽과 합작한 것에 대한 적절한 보상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발을 빼선 안 되겠지요.”
습근평의 말은 완곡한 표현이다. 이실리프 왕국이 어떤 소리를 하든 손해 보고 빠져나오진 않겠다는 뜻이며, 북한에 꽂아놓은 빨대를 계속 쓰겠다는 의사이다.
이런 말을 어찌 놓치겠는가!
관련 정치국원들은 부지런히 메모를 한다. 이를 잠시 지켜보던 습근평이 재차 말을 잇는다.
“일본이 어수선하니 이참에 조어도 영유권을 확정지어야겠습니다.”
신경 쓰지 못할 때 주저앉겠다는 뜻이다.
“저어, 그게 조금은 어려울 듯합니다.”
입을 연 이는 지나과학원 원장 우도안이다. 기초과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국립자연과학연구소라 할 수 있다.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우도안이 들고 있던 자료를 옆 사람에게 넘긴다. 릴레이식 전달을 요구한 것이다.
잠시 후 모두가 제법 두툼한 서류를 볼 수 있었다.
“저희 과학원 지학부 부장교수의 보고에 의하면 조어도 역시 일본 열도처럼 매일 70㎝씩 침강하고 있습니다.”
“……!”
“저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멀지 않은 미래에 완전히 수면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예측됩니다. 지금 보고 계신 보고서 26쪽을 보면 그래프가 보일 겁니다.”
말 떨어지기 무섭게 다들 26쪽을 찾아 펼친다. 거기엔 조어도가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그래프가 있다.
“보시는 대로 수면 아래로 상당히 깊이 내려갈 것으로 예측됩니다. 따라서 조어도 영유권에 관한 사항은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흐으음!”
조어도 영유권 분쟁은 섬 그 자체가 아니라 인근 수역에 대한 관할권 분쟁이라 봐도 무방하다.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포할 수 있으며, 영해 개념도 발생되기에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적 의미까지 가져 일본과 지나가 서로 차지하려 으르렁댔던 것이다.
“이 보고서, 확실한 겁니까?”
“네! 저희 과학원의 두뇌들이 모여 면밀히 검토한 결과 보고서가 지금 보고 계시는 겁니다. 조어도는 수면 아래로 내려갑니다. 확실히!”
과학원장의 말이 끝나자 습근평을 들고 있던 보고서를 툭 내려놓는다.
“조어도 관련 부서를 모두 폐지하십시오.”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자는 뜻이다. 이때 왕기산 부총리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다.
“주석! 그곳 인근 백화(白樺) 해역엔 우리 해상 플랫폼이 건설되어 있습니다.”
방금 언급된 곳은 일본과 EEZ 분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곳으로 약 9,200만 배럴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지나가 이를 차지하기 위해 엄청난 액수를 들여 해상 플랫폼을 제작하였고, 이 때문에 일본과 마찰이 일고 있다.
생각이 이에 미친 습근평은 과학원장에게 시선을 돌린다.
“원장! 해상 플랫폼은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데…….”
습근평 주석의 말은 중간에 잘렸다.
“아쉽게도 그곳 역시 해수면 아래로 침강되었습니다.”
현재 진행이 아니라 현재 완료라는 뜻이다.
“아……!”
모두가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다. 막대한 손실을 생각한 때문이다. 이때 과학원장의 말이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남사군도에서 진행된 매립 작업 역시 무산되었습니다.”
지나가 필리핀 등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남지나해의 스플래틀리 군도에선 대규모 매립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 해역에 수십억 톤에 달하는 원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를 얻기 위해 각각 1㎢ 이상인 규모의 섬 7개를 조성했다.
파이어 리그 로스 섬에서는 해수면 아래 있던 길쭉한 여울을 집중적으로 매립하여 길이 3㎞, 폭 200∼600m짜리 육지를 완성시킨 후 활주로 공사까지 마쳤다.
나방 벤 섬과 존슨 섬 등 4개의 매립지엔 높이 18m짜리 대형 건물까지 지어놓았다.
“그곳도 침강하고 있소?”
“네! 일대 전부가 빠른 속도로 침강하고 있습니다.”
“끄으응!”
습근평 등은 막대한 해상 주권을 얻기 위해 주변국과의 마찰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모든 게 허사라 하니 맥이 풀리는 듯 나지막한 침음을 토한다.
“알겠소. 인간이 자연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 그곳과 관련된 부서는 모두 폐지하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담당 정치국원의 대답을 들은 습근평을 좌중을 둘러본다. 잃은 건 잃은 것이고, 확인할 것은 확인해야 하는 국가 주석인 때문이다.
“한국과 이실리프 왕국을 조금 더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뜻이다.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회의를 마칩니다.”
모두가 물러간 뒤 습근평은 소파 등받이에 기댄 채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일본 및 동남아 각국과 벌이던 영유권 분쟁이 한 방에 사라진 것은 좋은데 너무 많은 손실을 입은 때문이다.
“끄으응!”
습근평의 침음은 길고 나직했다.
6장 화산 폭발 때문에
“뭐라고? 방금 뭐라 했소?”
“아쉽게도 천성 기지는 쓸 수 없게 되었다고 보고드렸습니다. 총리님!”
아베 신지는 이맛살을 잔뜩 찌푸린다.
본주 서북쪽엔 초카이(鳥海)산이 있다.
야마가타 현과 아키타 현 사이에 위치한 이 산의 최고봉은 높이는 2,236m나 된다.
경치가 좋아 상당히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이 산의 깊숙한 곳엔 세인들이 알지 못하는 은밀한 지하기지가 있다.
천연 수직 동굴을 개조하여 만든 이곳엔 ‘천황의 별’이라는 의미인 천성(天星) 기지가 조성되어 있다.
일본이 전 세계의 이목을 속이고 만든 메가톤급 핵미사일이 감춰져 있는 발사 기지이다.
한일전이 일방적인 패전으로 끝난 직후 아베는 이곳으로 명령문을 전송시켰다. 메가톤급 핵미사일에 연료를 주입하고 발사 대기를 지시하는 내용의 명령문이다.
목표 지점의 좌표는 북위 37° 33′ 59″, 동경 126° 58′ 40″이다. 이곳은 서울 시청의 좌표이다.
연료 주입이 완료되었다는 보고가 올라오면 지체 없이 발사 명령을 내리려 했다.
한국으로부터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가 있을 게 뻔하니 그 말을 듣고 열통 터지기 전에 먼저 박살 내기 위함이다.
그런데 느닷없는 초카이산의 분화가 시작되었다.
지난 1974년에 분화한 이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보고가 있었기에 이곳에 기지를 마련했다.
천성 기지가 있기에 늘 마음 한구석이 든든했다.
유사시 적의 심장을 단숨에 꿰뚫을 힘이 있으니 어찌 안 그렇겠는가! 그런데 느닷없이 쏟아져 나온 용암이 천성 기지를 완전히 뒤덮었다는 보고이다.
기지 안에서 근무 중이던 요원들이 하나도 탈출할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벌어진 일이라 희생이 컸다.
아베 신조는 요원들의 목숨보다 극비리에 준비한 핵미사일을 투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그런지 이맛살이 더 좁혀든다.
“끄응……!”
아베가 나직한 침음을 내는 순간 초카이산이 또 한 번 대규모 분화를 시작한다.
콰아앙! 콰콰콰콰콰콰콰쾅―!
화산 쇄설물이 높이 8㎞ 상공까지 순식간에 뿜어져 올라간다. 그러는 동안 시뻘건 용암이 넘실거리며 계곡을 메운다.
잠시 후, 또 한 번 거대한 진동이 시작된다.
우릉! 우르르릉! 우르르르!
콰아아아앙! 콰콰콰콰콰콰아앙―!
우르르릉! 우르르르르릉―!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높이 2,236m짜리 초카이 화산이 우뚝 솟아 있던 곳이 텅 비어 있다. 지면 아래에 품고 있던 것을 모두 뿜어내고 나자 육중한 자중이 작용하여 그대로 주저앉은 때문이다.
리히터 규모 10.2짜리 지진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해수가 쏟아져 들어온다.
일본이 두려워하는 초대형 쓰나미가 들이닥친 것이다.
높이 3.2m짜리 쓰나미는 해변으로부터 초카이산이 있던 곳까지의 모든 건축물들을 무너뜨렸다.
같은 순간, 본주 북서부 일대의 지각 중 일부가 수직 침강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쓰나미가 발생되어 니가타 일대와 자나자와 일대의 호쿠리쿠 공업지역의 대재난이 시작되었다.
바닷물의 염분은 기계류를 녹슬게 했고, 뻘은 모든 전동공구의 작동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수없이 많은 집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대경실색한 사람들을 일제히 고지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으와아! 으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달리는 고니시 테쯔야는 혐한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한국에 대한 적의만 품고 있어 2ch에 늘 개 같은 댓글만 달던 놈이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부모가 물려준 재산이 있어 놀고먹던 고니시 테쯔야는 방금 전 놀라운 것을 보았다.
누대를 이어온 과수원의 땅이 쩍쩍 갈라지면서 시뻘건 용암이 솟는 것을 본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2층짜리 집이 심하게 흔들렸다. 재빨리 정원으로 나온 직후 집마저 무너졌다.
콰르릉! 콰르르릉!
쩌억―! 쿠와아아아아!
집이 무너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땅거죽이 심하게 흔들리나 싶더니 단숨에 갈라지고 그 사이로 무너진 집의 잔해가 빨려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시뻘건 용암이 솟아오른다 생각한 고니시 테쯔야는 맨발임에도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00m쯤 달리고 뒤를 돌아본 순간 동공이 확장되었다. 시뻘건 용암이 넘실거리며 고니시의 뒤를 따라 흘러오고 있었던 때문이다.
“으아아아!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아앗! 으아아아아!”
뭔가를 밟았는지 통증이 느껴졌지만 고니시의 달리는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고니시는 방금 전 모든 것을 잃었다. 집과 과수원, 그리고 예금통장은 물론이고 가재도구 전부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