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238화 (1,237/1,307)

# 1238

CNN 특파원은 할 말을 잃은 듯 아무런 멘트도 하지 않고 있다. 하여 현장음이 생생하게 잡혀 있다.

“뭐야, 이거! 으앗, 제기랄! 쓰벌, 차 다 부서졌잖아. 빌어먹을! 하필이면 왜! 바보 같은 운전수 자식!”

이시하다 신타로는 새로 뽑은 승용차의 본닛 위로 무게가 1톤쯤 되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떨어지자 온갖 욕을 해댄다.

그러다 멍하니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에 시선을 준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의 신체가 깔려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이때 이시하다 신타로의 뒤쪽 건물이 소리 없이 흔들린다. 방금 전 붕괴가 일으킨 진동에 대한 반응이다.

이 건물 옥상엔 커다란 간판이 올려져 있다. 1층에서 영업하는 게 요리를 홍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처럼 평면 간판이 아니다. 커다란 집게가 튀어나와 있고 마치 가위질을 하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다.

이 간판은 건물 옥상 물 탱크실 위에 설치되어 있는데 8개의 앵커볼트로 고정되어 있다.

문제는 매우 오래된 건물이라는 것이다. 최상부 콘크리트는 손으로 문지르면 모래가 떨어져 내릴 정도이다.

앵커볼트가 박혀 있지만 바람의 영향을 무시할 정도로 긴밀하게 고정된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간판이 흔들이고 있다. 그러는 동안 앵커볼트를 물고 있던 콘크리트가 힘없이 부풀어 오른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다.

우직! 우지지직―!

커다란 간판이 자유낙하를 시작했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순간 찌그러진 자동차 앞에서 쩔쩔매고 있던 운전기사가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를 바라보았다.

죄송하다는 뜻을 표하려던 것이다.

그런데 이시하라 신타로의 머리 위에서 커다란 간판이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앗! 도지사님! 어서 피하세요. 어서요!”

운전기사의 시선을 따라 위를 바라보던 이시하라 신타로는 대경실색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 순간 커다란 간판이 지면과 충돌한다.

콰아앙! 와장창! 와당탕탕―!

간판이 부서지면서 많은 파편이 튀었다. 이 중엔 게의 집게 부위도 포함되어 있다.

“으아아아!”

죽어라 앞을 향해 달리는 이시하라 신타로의 뒤쪽으로 집게가 쇄도한다.

퍼억―!

“케에엑―! 아아아악!”

온 힘을 다해 달리던 이시하라 신타로는 하체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집게의 뾰족한 부위가 불알을 꿰뚫는 순간 터져 나온 비명이다. 바지가 금방 선혈로 물든다.

이시하라 신타로는 잔뜩 웅크린 채 바들바들 떨며 비명을 지른다.

“아악! 아아아아악!”

이 순간 게 요리점이 있던 건물 또한 흔들린다. 그러던 어느 순간 힘없이 무너지면 온갖 파편을 쏟아낸다.

우릉, 우릉, 와르르르―! 콰아앙―!

콰직―!

“케엑! 아아아아악!”

이시하사 신타로는 왼쪽 발목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또 한 번 긴 비명을 지른다. 이때 건물 옥상 물탱크가 지면과 충돌하면서 쏟아낸 물이 해일처럼 쇄도했다.

“어푸! 어푸! 어푸!”

꿀꺽― 꿀꺽―!

발목을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가 짓누르고 있어 뺄 수 없고, 불알은 터져 나가 더 이상 남자구실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엄청난 물이 쏟아지자 이시하라 신타로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더러운 먼지가 섞인 물을 두어 모금 들이켠 이시하라 신타로는 새롭게 느껴지는 격통에 긴 비명을 지른다.

“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도, 도지사님! 여기 사고가 났습니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여기요! 여기! 여깁니다!”

황급히 달려온 운전기사는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버린 이시하라 신타로를 보며 사람들을 불렀다.

하지만 다가오는 이는 없다. 다들 무너지는 건물 잔해를 피하느라 여념이 없는 때문이다.

CNN 특파원이 얼른 달려가 건물 잔해를 밀어내려 했지만 너무 무거웠다. 하여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람까지 달려들어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를 치웠다.

그러자 드러난 것은 선혈로 물든 오징어처럼 납작해진 발이다. 의술의 신이 와도 절대 정상으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으스러진 발을 당기려던 이시하라 신타로는 또 한 번 긴 비명을 지른다.

“아아아아악!”

얼른 카메라를 집어든 카메라맨이 이시하라 신타로를 화면에 잡는데 바지를 뚫고 나온 게의 집게 끝이 보인다.

상당히 날카롭다.

“도지사님! 괜찮으십니까? 도지사님!”

“끄응!”

이시하라 신타로가 정신을 잃은 듯 축 늘어지자 운전기사는 뺨을 두드린다.

“이 사람 하체에 심각한 손상이 있어요. 얼른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네? 뭐라고요?”

CNN 특파원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 운전기사는 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 사람 심각해요. 얼른 병원으로 가라고요.”

또 한 번 영어로 이야기 했지만 운전기사는 영어를 전혀 모르는 듯 동문서답을 한다.

“이시하라 신타로! 이시하라 신타로! This is Isihara Shintaro!”

손으로 이시하라 신타로를 가리키며 이름을 또박또박 이야기한다. 방금 전 이 사람 이름이 뭐냐고 물은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OK! I see. Hurry up! Go to hospital!”

“뭐라는 거야? 이 사람은 전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라고. 알았어?”

운전기사는 영어 무식자인 것이 틀림없다. 어쨌거나 CNN 본사에선 금방 자막을 입힌다. 화면에 비추어진 인사가 전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라는 걸 표시한 것이다.

7장 사용 허가를 요청합니다.

“맨날 헛소리나 지껄이더니 쌤통이군.”

정순목 권한대행이 중얼거릴 때 화면이 바뀐다. 계속해서 끔찍한 상처를 보여줄 수 없어서이고, 인근에 있던 커다란 건물이 또다시 붕괴하려는 조짐을 보여서이다.

이때 화면 뒤쪽 누군가가 고함을 지른다.

“All withdrawal! Withdrawal.”

“아앗!”

콰르릉! 콰르르르르릉!

화면이 몹시 흔들리며 지면을 비추는가 싶더니 희뿌연 먼지 연기로 어두워진다.

보도진 뒤쪽 건물이 순식간에 붕괴된 결과이다.

CNN은 제철을 만난 물고기처럼 일본 전역의 영상을 전 세계로 전파했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 중 절반 이상은 냉담이다.

일본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한 역할이 별로 없었음을 반증하는 반응이다.

같은 시각, 오키나와 주일미군 기지는 몹시도 어수선하다.

모든 장병이 나서서 긴급 철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때문이다. 달려 있던 레이더 등을 철수하고 있으며 미사일 발사대 역시 해체되는 중이다.

이를 위해 본토로부터 긴급 지원병력이 대거 투입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바다 속에 잠겨 버릴 수 있다는 경고를 받은 때문이다.

오키나와뿐만이 아니다. 일본 곳곳에 주둔해 있는 주일미군기지 전체가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에 머물고 있던 미국인들에겐 긴급 대피명령이 떨어졌고, 이들을 태우기 위한 배들이 곳곳에 정박해 있다.

많은 일본인이 이 배를 타기 위해 몰려들었다. 하지만 미군은 이들의 승선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본과 미국의 밀월 관계가 완전하게 끝나는 상황이다.

정순목 권한대행이 화면에 시선을 주고 있을 때 집무실 문이 열리고 계엄사령관이 들어선다.

“권한대행님!”

“네, 어서 오십시오.”

계엄사령관은 1일 1회 진행 상황 보고를 위해 권한대행의 집무실을 찾기에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앉으세요! 수고가 많으시죠?”

“제가 당연히 해야 할입니다. 자, 여기 보고서입니다.”

계엄사령관이 내민 보고서를 받아든 권한대행은 꼼꼼하게 내용을 살핀다.

“욱일회와 일꾼들 전원에 대한 체포가 끝났군요. 수고하셨습니다.”

“한일전이 우리를 도왔습니다.”

일본과 한판 붙었을 때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그와 동시에 모든 항만과 공항에서의 출국이 제한되었다. 내국인 대상이었으며 외국인들은 자유롭게 입출국이 가능했다.

이 중 일본인은 예외이다. 입국은 가능하지만 출국은 할 수 없었다.

이처럼 내국인 입출국이 금지되었기에 욱일회와 일꾼들의 명단에 있던 자들 전원에 대한 색출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현재 어디에 있지요?”

“현재 최전방 GOP 근처 임시 천막에 머물고 있습니다.”

“천막이요?”

권한대행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자신의 지시와 다른 결과인 때문이다.

“이실리프 그룹에서 북한 지역 군사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그곳에 수용시키면 탈출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임문택 계엄사령관의 말은 중간에 잘렸다.

“그거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거기에 수용해 놓으면 어느 누구도 손을 못 쓰겠군요. 좋습니다. 이실리프 그룹의 제안을 받아들이세요.”

“네, 알겠습니다.”

북한군이 사용하던 열악한 시설과 북한의 급식, 그리고 북한군의 삼엄한 경계를 떠올린 권한대행은 마음에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욱일회’나 ‘유능한 일꾼들’이란 명부에 있던 자들은 북한군들을 보는 순간부터 겁에 질려 벌벌 떨게 될 것이다.

“참! 진도 정벌작전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해군 1함대 사령관 심흥수 소장의 지휘 아래 현재 순조롭게 작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항은 없었답니까?”

권한대행의 물음에 계엄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인다.

“왜 없었겠습니까? 상륙 작전 직전과 직후에 제법 격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함포사격과 상륙 후 일제사 등으로 확실히 제압했습니다.”

“아! 그래요? 우리의 피해는요?”

“심 소장이 준비를 잘한 덕분에 전사자는 없고, 부상자만 113명 있습니다. 모두 생명엔 지장이 없구요.”

“휴우∼!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정순목 권한대행은 본인이 내린 결정 탓에 애꿎은 젊은이들이 전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을 무척이나 염려했다.

그런데 그런 피해 없이 순조롭다니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 모양이다.

“일본은 어떻습니까?”

“현재 점령 작전이 진행되는 중이라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최하 연대 병력 이상이 사살되었습니다.”

“그렇군요.”

연대 병력이라면 약 2,500명을 뜻한다.

자위대 시절엔 대마도에 육상자위대 4사단 쓰시마 경비대 350여 명과 항공자위대 서부항공경계관제단 예하 100여 명만 주둔해 있었다.

현재는 육군 1개 사단 12,000여 명과 해군 1개 연대 2,500여 명이 배치되어 있다. 공군은 특성상 예전의 병력만 근무하는 중이다.

“아군의 피해가 없도록 확실하게 지원해 주세요.”

“물론입니다. 잘 준비된 상태이고, 병사들의 사기 또한 매우 높다고 합니다.”

하긴 일본과의 축구나 야구가 아니라 전쟁이다. 피 끓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라면 당연히 사기가 높을 것이다.

“진도에 있던 민간인들은 어떻죠?”

“거의 대부분 우리의 경고를 받아들여 그곳을 떠나고 있는데 반대로 유입되는 사람도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진도는 전역이 전쟁터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곳으로 올 사람은 급파된 군인 또는 종군기자들뿐이다.

그렇기에 정 권한대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들어오는 인원수가 많다는 말에 주목한 것이다.

“그래요? 누가 온다는 거죠?”

“노인수와 사사키 노조미 부부를 비롯한 재일교포들과 일본인들입니다.”

“아, 재일교포들이요?”

“네, 노인수 씨는 이실리프 그룹 인력담당 일본팀장이고, 사사키 노조미 씨는 부팀장으로 신분이 확인되었습니다.”

설명을 들은 정순목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실리프 그룹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대우해 줘야 하는 때문이다.

“이실리프 그룹 사람들이군요. 근데 그 사람들이 왜……?”

“재일교포와 선량한 양심을 가진 일본인들이라 하는데 전원 이실리프 자치령으로의 이주를 위해 그곳에 대기 중이라 합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