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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240화 (1,239/1,307)

# 1240

다시 말해 투자된 돈이 독재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갈 나라들은 배제되었다.

그렇다 하여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대출된 것은 아니다. 대출금에 상당하는 담보를 잡은 것이다.

베네수엘라와 앙골라는 유전이 담보물이다. 우크라이나는 티타늄 광산, 아르헨티나는 철광석 광산이 담보물이다.

현금이 아닌 석유와 광석 등 자원을 이자로 받았기에 위기를 겪고 있던 국가들은 큰 부담 없이 난국을 돌파할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앙골라를 비롯한 아프리카들의 경우엔 지나가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한 상태였는데 이것들을 거의 모두 밀어낼 정도로 지원해 주었다.

언젠가 아프리카 국가들도 개발도상국으로 발돋움할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 모든 지하자원을 빼앗긴 상태라면 어찌하겠는가! 그래서 아프리카 대륙에서 자원을 싹쓸이하고 있는 지나의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개입한 것이다.

어쨌거나 어려움을 겪던 국가들은 이실리프 그룹이 웬만한 국가 이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당연히 이실리프 그룹에 대한 우호도는 최상이다.

그렇기에 이실리프 그룹에서 파견한 직원들에게 외교관에게나 부여하는 면책 특권을 주는 국가도 있다.

어쨌거나 일련의 상황은 외신을 통해 국내에까지 전파된 상태이다. 정순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얼마 전까지 외교부장관이었기에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실리프 그룹 덕분에 대한민국의 위상이 크게 올랐음을 가장 먼저 체감한 인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실리프 그룹에서 협조 요청을 했는데, 아직 대한민국 영토에 포합되지 않은 진도의 일부분에 대한 임시 사용 허가이다.

거대 다국적 기업인 이실리프 그룹이 진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분명히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실리프 그룹이 인정한다면 러시아, 몽골, 에티오피아, 콩고민주공화국은 물론이고 우크라이나,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앙골라,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아르헨티나 등도 인정함을 의미한다. 이들 나라에 대한 영향력이 커진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려면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당연히 돈도 많이 든다.

그런데 그런 것 하나 없이 이런 결과가 기대되니 얼마든지 쓰도록 배려한 것이다.

* * *

같은 순간, 진도 이즈하라항 인근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이 서성이고 있다.

“아아! 모두 여기로 집중해 주십시오.”

누군가 커다란 트럭 위에 올라서서 확성기로 소리치자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혹시 저를 모르시는 분들이 있을까 싶어 다시 한 번 인사드립니다. 저는 이실리프 그룹 일본팀장 노인수입니다.”

“아아, 저는 부팀장 사사키 노조미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노인수가 다시 확성기를 든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곳에 머무는 것은 임시입니다. 이곳 이즈하라에 머물고 계시면 이실리프 그룹에서 배편으로 여러분을 안전하게 모실 겁니다.”

노인수의 말이 끝나자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다 좋은데 이제 곧 밤입니다. 어디서 잡니까?”

항구도시 이즈하라는 1만 5천여 명이 살던 도시이다. 그런데 10배나 되는 인원이 몰려 있으니 당연한 질문이다.

“일단은 이곳의 빈 건물 어디든지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건물이 싫으시면 저희 회사에서 마련해 놓은 텐트를 사용하셔도 됩니다.”

8장 맥마흔 도착

“배가 고픈데 음식은 어떻게 됩니까?”

“곳곳에 식재료와 버너 등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원하시는 만큼 가져다 쓰시면 됩니다.”

“화장실은 어떻게 됩니까?”

“임시 화장실도 충분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인원이 많아 사용에 불편함이 있을 겁니다. 며칠만 지나면 여러분께서 거주하실 곳으로 옮겨갈 것이니 그때까지만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노인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것저것을 묻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들 살던 터전과 직장을 버리고 왔다. 모든 것을 처분한 엔화를 손에 쥐고 있지만 불안하다. 열도 전체가 바다 속으로 잠기면 휴지로도 못 쓰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곧 평생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미지의 땅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이실리프 그룹이 제시한 대로 정말 살기 편한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혹시 우리가 가진 엔화를 달러화나 다른 것으로 바꿔주실 수 있습니까?”

누군가의 물음에 노인수는 시선을 돌려 누군가 확인했다. 도쿄 최고급 음식점 조조엔의 사장과 그 일가이다.

노인수가 현수를 접대했던 곳이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여러분께서 지니고 계신 엔화 등에 대한 교환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확 쏠린다.

“갖고 계신 것은 모두 다른 화폐로 교환 가능합니다. 내일 오전 제비뽑기를 하여 이곳을 떠날 순서가 정해질 겁니다.”

한꺼번에 15만 명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배가 없는 한 당연한 이야기이다.

“순서가 정해지만 이틀 후부터 이곳을 떠나게 되는데 그 전에 저희가 마련한 화폐교환소에서 원하시는 화폐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환율은 오늘을 기준으로 할 예정입니다.”

“우리가 가는 곳에서는 어떤 화폐를 사용합니까?”

“이실리프 왕국은 고유의 화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노인수는 지갑에서 여러 종류의 지폐와 동전을 꺼내 들었다.

“그곳에서 쓰는 화폐의 단위는 ‘밤(BAM)’입니다. 참고로 BAM은 ‘Benefit all mankind’의 이니셜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아시죠?”

노인수의 질문에 다들 입을 다문다. 그런데 트럭 아래에 있는 청년이 입을 연다.

“그거 혹시 홍익인간(弘益人間)을 뜻하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편(紀異篇)에 실린 고조선(古朝鮮) 건국신화에 나오는 말로,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뜻이지요.”

노인수의 말이 끝나자 다들 의아해하는 표정이다. 하긴 일본에서 삼국유사를 가르쳤을 리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때 조금 전의 청년이 소리친다.

“삼국유사는 고려 충열왕 때 보국각사 일연이 지은 역사서입니다. 고조선은 민족의 시조이신 단군께서 건국하신 조선으로 위만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이라 하는 겁니다.”

청년의 말이 끝나자 대다수 재일교포들을 고개를 끄덕인다. 언젠가 한 번은 들어본 말이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인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인수의 설명은 이어진다.

“1밤은 한국 돈으로 10원의 가치를 지녔습니다. 지폐는 100밤, 500밤, 그리고 1,000밤짜리가 있습니다. 동전은 1밤, 5밤, 10밤짜리가 있습니다.”

노인수의 말이 끝나자 조금 전 설명했던 청년이 다시 입을 연다.

“그거 혹시 태환화폐인가요, 불환화폐인가요?”

태환화폐란 돈을 가져가면 그 가치에 맞는 금이나 은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참고로 대한민국의 화폐는 불환화폐이다.

“이실리프 왕국에서 사용되는 고유 화폐는 태환화폐라 할 수 있습니다. 보유한 양만큼의 금괴를 별도로 보관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노인수의 말이 끝나자 청년이 입을 연다.

“그럼 여기서도 밤으로 화폐 교환이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환율에 따라 교환해 드릴 것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노인수의 말이 끝나자 또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모든 것이 불안하니 물을 게 많은 것이다.

노인수와 사사키 노조미는 조금의 짜증도 부리지 않고 친절하게 응대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지났다.

저녁때가 된 것이다.

“저희 이실리프 그룹은 이즈하라항 상점마다 생활용품과 식재료들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필요하신 만큼 가져갈 수 있으니 이제 해산하십시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제히 산개한다. 혹시라도 식량이 부족할까 싶어서인데 이는 기우이다.

“휴우∼! 한시름 놓았네.”

“수고하셨어요, 자기!”

노인수를 바라보는 사사키 노조미의 눈빛은 매우 다정스러웠다.

“수현이와 현지는?”

“아버님, 어머님께서 맡아주고 계셔요. 가요. 맛있는 저녁 지어드릴게요.”

노인수와 사사키 노조미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는 수현과 현지라 이름 붙여졌다. 현수와 지현 부부의 이름을 거꾸로 해서 지은 이름이다.

“그럴까?”

노인수의 눈빛에 은근함이 어린다.

“여기선 셋째 만드는 게 좀 그렇잖아요. 아직 아이들도 어리구요. 안 그래요?”

“그런가? 그럼 맛있는 저녁이나 먹어야겠군.”

팔짱을 낀 부부는 서둘러 숙소로 이동했다. 뒷모습이 참으로 다정해 보여 많은 사람이 바라보고 있었다.

* * *

마일티 왕국 공작가의 후손 헤럴드 폰 하시에라가 이끄는 테라카 요새를 떠난 현수는 로렌카 제국의 수도 맥마흔에 다시 입성했다.

“흐음! 여길 와본 지도 3년이나 지났군.”

상당히 많은 사람이 오가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약간은 달라졌다. 전에 비해 민간인들은 줄고 흑마법사들이 늘어난 듯싶은 것이다.

이들 사이를 누빈 끝에 당도한 곳은 ‘황야의 굶주린 여우’라는 괴상한 이름의 간판을 달고 있는 주점이다.

삐이꺽―!

“어서 옵셔!”

카운터에서 컵을 닦고 있던 사내는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서자 의례적인 대꾸를 한다. 어두컴컴한 실내엔 12개의 6인용 테이블이 있는데 그중 여덟이 채워져 있다.

저벅, 저벅, 저벅―!

“어서 오슈! 혼자 오셨소?”

현수가 대꾸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는 마음에 드는 테이블에 앉으라는 눈짓을 한다.

현수는 자리에 앉는 대신 사내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말이오, 검은 고블린의 혓바닥을 뽑고 싶은데 혹시 있소?”

“…검은 뭐라고 했소?”

“검은 고블린의 혓바닥을 뽑고 싶다고 했소이다.”

“으음! 이쪽으로 오슈!”

슬쩍 손님들의 눈치를 본 사내는 현수를 주방으로 안내했다. 그러는 동안 고개를 갸웃거린다.

사내는 무심한 듯 고저장단도 없는 억양으로 묻는다.

“관에 핀 꽃은 무슨 색이었소?”

“초록색이라오. 모두 156송이였다오.”

“흐음……! 따라오시오.”

삐이꺽―!

마찰음이 나는 문을 열고 들어선 사내는 곧 다른 문을 열고 들어서며 다시 묻는다.

“그런데 검은 칼은 본 적 있소?”

“그렇소. 여러 자루 부러뜨렸소이다.”

사내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복도를 따라 들어갔다. 현수는 잠자코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아홉 개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비로소 방이 나타난다. 중앙에 작은 탁자가 하나 있고, 주변에 의자 몇 개가 있을 뿐인 단출한 방이다.

“손님의 신분을 밝혀주시겠소? 전갈받은 바 없는데 불쑥 나타나셔서 확인 좀 해야겠소이다.”

다른 문의 고리를 잡고는 다시 한 번 묻는다. 이때 지금까지 와는 달리 젊음 음색으로 대꾸했다.

“라트보라 남작! 나요. 핫산 브리프!”

“…누, 누구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하긴 현재의 모습은 50세쯤 된 중년인의 모습이다.

어찌 핫산 브리프라 짐작하겠는가! 하여 라트보라 남작이 놀라는 표정을 지을 때 현수의 얼굴이 스르르 변한다.

“날세, 핫산 브리프! 그간 잘 있었나?”

“아아! 마탑주님. 저,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저는 마탑주님께서… 그때 잘못되신 줄 알고…….”

라트보라 남작은 진심으로 걱정을 했는지 말을 제대로 잊지도 못 한다.

“나야 잘못될 일이 없지. 그나저나 라트보라 남작의 얼굴을 보니 그간 잘 있었던 모양이군.”

현수는 말을 내렸다. 이곳 로렌카 제국의 작위만으로도 그러한 때문이다.

“네, 그럼요! 저야 잘 지냈습죠. 근데 그간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나? 한적한 곳에서 흑마법사들을 모조리 때려잡을 마법을 구상하느라 한참 애를 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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