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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241화 (1,240/1,307)

# 1241

“그, 그래서 성과가 있으셨습니까?”

혜성처럼 나타난 핫산 브리프가 맥마흔을 휘젓고 사라진 후 말이 많았다.

수없이 많은 마법 공격에 격중당했다곤 하지만 시신이 손톱 끝만큼도 남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다.

죽었다는 쪽에 무게를 둔 자들은 현수가 너무 많은 마법에 노출되어 신체가 일시에 증발한 때문이라 하였다.

그렇지 않은 쪽은 한 줌이라도 남은 마나로 텔레포트 또는 워프 마법을 구현시켜 위기를 탈출했을 것이라 짐작했다.

모일 때마다 갑론을박이 오갔지만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때문이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자 황태자가 나서서 정리를 했다.

“들어라! 핫산 브리프의 시체는 없었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증명되지 못했다.”

황태자의 시선을 받은 후작과 공작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타당한 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이때 황태자의 발언이 이어진다.

“핫산 브리프는 10서클 마법사이다. 최후의 한 수쯤은 분명히 있을 터! 어딘가에 텔레포트된 것으로 짐작하니 모든 수사력을 기울여 위치를 파악한 후 즉각 보고하라.”

“네! 황태자 전하.”

모두가 승복할 때 다시 말이 이어진다.

“아다시피 웬만한 전력으론 그를 포위하는 것 자체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따라서 쓸데없는 공명심을 부리지 말고 발견 즉시 보고토록 단단히 이르라!”

“존명!”

9서클 마법사가 수십 명이나 죽어나갔다. 원로원에서 온 아홉 리치조차 모조리 제압당해 버렸다.

황태자의 말처럼 함부로 덤비는 것은 당랑거철((螳螂拒轍) :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힘은 헤아리지 않고 강자에게 함부로 덤빔을 이르는 말.)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공작과 후작들 모두 절감하는 일이기에 얼른 허리를 꺾은 것이다.

“아울러 모든 공작과 후작들에게 수도에 머물라. 황제 폐하의 안위가 심히 걱정되는도다.”

혹시라도 핫산 브리프가 되돌아 왔을 때 너무 숫자가 적으면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여 황제와 황태자를 보호하기 위해 8서클 이상인 마법사 전원이 현재까지 수도에 머무르고 있다.

그날 이후 로렌카 제국의 흑마법사들은 전국 각지를 그야말로 샅샅이 뒤졌다.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무조건 체포한 뒤 무자비한 고문을 서슴지 않았다.

반 로렌카 전선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확인하곤 일제히 움츠러들었다. 파견했던 인원 중 귀환 가능한 자들은 원대 복귀를 명령했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숨죽인 채 사태의 추이만 지켜보도록 했다.

그럼에도 상당히 많은 반 로렌카 일원이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본인들의 조심스럽지 못한 행실 때문이니 누굴 원망할 일은 아니다.

그날 이후 수도 맥마흔은 흑마법사들의 도시가 되었다.

그들은 칙칙한 분위기를 풍겼고, 음울한 기운과 무자비하면서도 잔인한 행실을 서슴지 않았다.

수많은 여인이 간살당했으며, 시신은 식재료가 되어 흑마법사들의 식탁에 올랐다.

지난 3년간 새롭게 만들어진 인육 조리법이 로렌카 제국이 건국된 이래 가장 많을 정도이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사건은 황태자가 신하들과 함께 자신의 차비(次妃)를 요리해 먹은 것이다.

차비는 투기가 심했고, 잔소리가 많았다.

황태자는 수시로 귀찮게 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죽였고, 조리대에 올리도록 했던 것이다.

팔은 굽고, 다리는 쪘다. 염통과 허파는 전골의 재료가 되었고, 간은 회로 떠져 식탁에 올려졌다.

몸통 부분의 살들은 편육으로 저며져 해(젓갈)로 담가졌다.

‘해’란 젓갈이란 뜻인데, 옛날의 가혹한 형벌의 하나로 사람을 죽인 후 살을 잘게 저며 젓갈을 담는 것이다.

흑마법사들의 잔악함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황태자비까지 그렇게 당하는 것을 본 이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수도를 떠났다. 겁이 나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예전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수가 빠져나갔다. 비율로 따지면 약 7할이다. 나머지 3할만 해도 상당히 많은 숫자이다.

제국의 수도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맥마흔에 거주하고 있다. 흑마법사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여긴 어떤 일로 오신 겁니까?”

“흐음! 이곳에 오기 전 테라카 요새에 머물렀네. 그런데 이곳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더군.”

“그럴 겁니다. 그날 이후 출입이 너무 조심스러우니까요. 저만 해도 수도 바깥으로 나가본 게 벌써 1년하고도 반이나 지났으니까요.”

“허어! 그렇게 감시가 심한가?”

“네! 누구든 수상한 자를 신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신고 결과 반 로렌카 전선의 일원이거나 거수자일 경우 상당한 포상이 내려집니다.”

“그렇군. 그래서 이곳의 상황이 일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나 보군.”

“맞습니다. 어쨌거나 무엇이 궁금하신지요?”

“이곳 전반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네. 가능한가?”

“시간을 주셔야겠습니다. 오랜만에 동지들에게 연락하여 각자가 가진 정보를 취합해야 하니까요.”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올 거라 생각하고 미리 정보를 모아놓았을 리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나?”

“사흘! 사흘만 주십시오. 전 같으면 하루면 되었겠지만 워낙 감시의 눈초리가 많아 그 정도 시간은 주셔야 합니다.”

“그래, 그러지! 그나저나 이곳에 머물 곳은 있나?”

“…누우실 자리야 있지만 저택으로 가실 게 아니십니까?”

“저택? 무슨 저택?”

맥마흔에 집을 사놓은 적이 없으니 이해가 안 된 것이다.

“황태자께서, 아니, 황태자 놈이 마탑주님께 하사, 아니, 준다고 했던 정복자의 길에 있는 저택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기억나는 게 있다.

“로렌카 제국의 전임 재상이었던 알폰소 공작의 저택을 말하는 건가?”

현수의 물음에 라트보라 남작의 고개가 크게 끄덕여진다.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핫산 브리프 님은 여전히 로렌카 제국의 공작님이십니다. 정복자의 길에 있는 저택은 현재 브리프 공작가로 불리고 있습니다.”

“…무슨 수작이지?”

현수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9서클 대마법사들을 죽이고, 원로원에서 파견한 리치들까지 해쳤다.

제국의 마법사들을 상대로 끝까지 저항을 했음에도 여전히 작위가 유지되고, 주겠다던 저택도 그대로 주었다니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진 것이다.

“황태자는 자존심이 매우 강한 인물입니다. 마탑주님은 그런 황태자가 인정한 몇 안 되는 인물 가운데 하나이구요.”

“그래서?”

“자신이 내린 작위를 거두지 않고, 본인의 입으로 한 약속을 지킴으로써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참, 영지는 황태자가 직접 지목한 대리인이 맡아서 경영하고 있습니다.”

“영지까지? 흐음! 자존심이 강하다…….”

현수는 잠시 말을 끊었다.

이를 본인이 한 말에 동조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라트보라 남작은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참, 공작가엔 공작부인들께서 머물고 계십니다.”

“공작부인들? 누구의 부인이지?”

“그야 마탑주님의 부인들이시죠. 싸미라 브리프 폰 가르멜 님께서 1부인이시고, 2부인은 아만다 님, 3부인은 스타르라이트 님, 그리고 4부인은 도로시 님이십니다.”

“……!”

싸미라야 그렇다 쳐도 아르센 대륙 도델 왕국의 공주인 아만다 프러페 반 도델과 테이란 왕국 후작가의 딸 도로시 칼라 폰 발렌틴, 그리고 농노의 딸 스타르라이트는 30년에 한 번 개최되는 영주 선발 대회의 상품이었다.

공작위가 확정된 뒤 고르라 하여 골랐을 뿐이다. 단순히 몸매가 아름답고 얼굴이 예뻐서 선택한 것은 아니다.

당시 164번 미녀 다프네와 인접된 번호였기에 아무 생각 없이 선택한 번호가 161번과 162번, 그리고 163번이었다.

얼굴과 몸매를 못 본 것은 아니지만 현수의 관심을 끌지는 않았다. 얼른 다프네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 가득하던 때이기 때문이다.

어쨌듯 로렌카 제국의 법도에 의하면 영주 선발 대회에서 하사된 미녀는 반드시 품도록 되어 있다.

좋은 유전자를 지닌 후손이 태어나도록 하여 국가에 이바지해야 하는 때문이다.

로렌카 제국의 황태자 슐레이만 로렌카는 아만다와 도로시, 그리고 스타르라이트도 공작부인으로 인정했다.

핫산 브리프 휘하에 별다른 세력이 없으므로 황궁 근위대원 중 일부를 파견하여 브리프 공작가의 경호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물론 경호보다는 감시가 우선이다.

현수가 사라진 후 싸미라를 비롯한 네 여인은 엄중한 문초를 받았다. 공작부인이기에 고문을 가하지는 않았다.

현수와 주고받았던 모든 대화를 기억하게 하여 일일이 확인 작업을 했다. 대체 무슨 이유로 공작이라는 지고한 작위를 얻었음에도 제국에 반(反)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가시겠다고 하면 제가 모시겠습니다.”

“남작이?”

“네! 언제고 마탑주님께서 오시면 모시려고 브리프 공작가까지 비밀 통로를 파두었거든요.”

“허어, 이런……!”

현수는 라트보라 남작을 새삼 바라보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엄청나게 긴 거리의 터널을 뚫어놓았다는데 어찌 다시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맙군. 뭐로 보답하지?”

“아닙니다. 마탑주님 덕분에 로렌카 제국 놈들의 코가 납작해진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직도 강력하긴 하지만 로렌카 제국의 마법 전력은 최상위 9서클 마법사가 대거 줄어들었다. 반 로렌카 전선의 일원들은 그 소식만으로도 속이 다 시원했다.

현재 9서클에 있는 자 가운데 상당수가 자신들의 국가를 멸망으로 몰아간 장본인인 때문이다.

라트보라 남작 역시 현수 덕분에 통쾌함을 느꼈다.

하여 길고 긴 터널을 뚫어놓은 것이다. 언제고 도움이 되고 싶어서이다.

“그나저나 자네에게 부탁할 것이 있네.”

“말씀만 하십시오.”

라트보라 남작은 형형한 눈빛으로 현수를 바라본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4서클 이상인 마법사들 전원이 수도로 집결할 것이네.”

“아! 저도 그 소문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거 헛소문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그게 벌써 이곳까지 소문이 번진 모양이군.”

현수는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속담이 사실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고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 소문 내가 퍼뜨린 거네.”

“네? 마탑주님께서 왜요?”

라트보라 남작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로렌카 제국의 4서클 이상 마법사의 숫자는 대략 30만 명 이상일 것이라 추측된다. 이들을 모두 수도로 집결시켜 놓고 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어서이다.

지난번 대결에서 로렌카 제국의 9서클 마법사 다수가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지만 패자는 현수이다.

이쪽은 약간의 피해를 입었지만 현수는 치명상을 당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10서클과 9서클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9서클 마법사들이 반신지경에 올라 있다면 10서클 마법사는 신계를 관장하는 존재 정도로 여겼다.

그렇기에 로렌카 제국의 황제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소원이 10서클 마법사가 되는 것이었다.

제국의 마법사 중 가장 먼저 9서클에 오르는 영광을 이미 맛보았다. 9서클 마스터에 이른 것도 최초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남에 따라 점차 9서클 마법사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드래곤을 사냥한 뒤 얻은 드래곤 하트를 하사한 결과이다.

그때는 9서클 마법사가 많을수록 저항하는 이들에게 강력한 철퇴를 내릴 수 있으며, 숨죽인 채 보복하려는 드래곤들을 보다 쉽게 사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황제에 버금갈 실력을 지닌 마법사만 80명이 넘는다. 권위를 훼손당했다 생각한 황제는 명실상부하게 모든 마법사를 내려다보는 우월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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