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2
그래서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존재를 만들어보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실험에 성공하면 보다 쉽게 10서클에 오를 것이고, 9서클 마법사들은 얼마든지 대적해 낼 것이라 생각해 왔다.
그런데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현수는 완벽한 10서클 마스터였다. 사용한 마나의 양을 계산해 보면 드래곤 하트 두 개에 담긴 것보다도 많았다.
그런데 다구리를 견뎌내지 못했다. 황제로서는 맥 빠지는 결과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현수가 보복을 위해서 왔다면 은밀히 다가가 한 방 찔러놓고 빠지는 전술을 써야 한다. 이런 게릴라전을 통해 축차 소모를 시켜야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더라도 꼬리가 길거나 제국군의 간계에 빠지면 금방 포위망이 구축될 것이다. 황실 직할인 제국 특수첩보단원들의 능력은 결코 허무맹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수가 정말 대단한 10서클 마법을 새롭게 창안해 내지 않았다면 이전처럼 9서클과 8서클 마법사들에게 포위된 채 서서히 마나 고갈을 느끼다 제압될 것이다.
이런 경우를 상정하여 수도에 머물고 있는 고서클 마법사 전원이 보름에 한 번씩 모여 포위망 구축작전을 연습한 바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라트보라 남작의 생각엔 각개격파를 하며 적의 전력을 조금씩 줄이는 것이 상수이다. 그런데 거꾸로 적의 세력을 한곳에 결집시킨다니 의아할 뿐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그리했네.”
“아……!”
라트보라 남작은 낮은 감탄사만 터뜨렸다.
이곳에 ‘봉황의 깊은 뜻을 뱁새가 어찌 알겠느냐’는 속담은 없지만 그런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소문을 더욱 그럴듯하게 포장해 주게.”
“제가 듣기론 앞으로 한 달 이내로 들었습니다. 한 달 이내라면 건국기념일이 있는데 그날이라 하면 되겠습니까?”
“건국기념일?”
“네! 건국기념 행사 때문에 집결하라 한 것이라면 설득력이 있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거 괜찮군. 기왕이면 9서클 마법사가 모두 모여 마나샤워를 베풀 것이라 하게.”
“마나샤워요? 아, 그거 좋은 생각이십니다.”
9장 소문 좀 내주게.
마법사들 가운데에는 마나를 모으는 데 소질이 없는 자가 있다. 깨달음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에 합당한 마나가 축적되어 있지 않으면 새로운 서클이 생겨나지 않는다.
이럴 때 순도 높은 마나샤워를 할 수 있다면 단숨에 새로운 서클을 형성시키게 된다.
따라서 건국기념일 행사 때 특별히 황제가 은총을 내리려 한다고 소문을 내면 그럴듯하다.
“그런데 자네 혼자 소문을 낼 수 있겠나?”
“수도의 여관과 선술집, 그리고 살롱의 3할이 반 로렌카 전선과 선이 닿아 있습니다.”
“아! 그럼…….”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선술집과 살롱은 가장 빨리 소문이 번지는 곳이다. 두 곳의 공통점은 술을 마시는 장소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의 풍습은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끝장을 본다. 따라서 웬만해선 맨 정신인 자가 드물 것이다.
이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데 아주 적합하다.
누가 최초 유포자인지를 완벽하게 감출 수 있다.
듣기는 들었는데 누가 말한 것인지 술에 취해 기억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이 무려 3할이라 한다.
“한데 위험하진 않겠는가?”
“소문 퍼뜨리는 것 정도는 누워서 식은 스튜 먹기보다 쉽습니다. 자주 해오던 일이거든요.”
반 로렌카 전선을 위한 정보 수집 및 불안감 조장 등이 맥마흔에 침투해 있는 요원들의 임무이다. 라트보라 남작의 말처럼 늘 하던 일인지라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아울러 소문 하나를 더 퍼뜨리게.”
“말씀만 하십시오.”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 아! 3서클 이하는 예외이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3서클 마법사는 마법사도 아니라는 말씀이신 건지요?”
10서클 마법사가 볼 때는 그럴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정정하지. 조만간 수도에 전염병이 돌 것이네. 3서클 이하 마법사들과 일반인들은 역병이 돌면 화를 당할 수 있으니 가급적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라고 하게.”
“전염병이요?”
라트보라 남작은 눈을 크게 뜬다. 로렌카 제국이 건국된 후 전염병이 여러 번 돌았다. 그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것은 ‘프랜들린’이라는 질병이다.
지구로 치면 유행성 뇌척수막염인데 고열과 두통, 그리고 구역질과 목이 뻣뻣해지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문란한 성생활을 일삼던 흑마법사들 사이로 그야말로 순식간에 번졌다. 아무렇지도 않다가 증세가 나타나면 불과 2∼3일을 넘기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다.
힐링이나 큐어는 물론이고, 컴플리트 힐이나 리커버리 같은 고위 마법으로도 제어되지 않았다.
사망자가 속출하자 제국은 발병 원인을 찾아 나섰다. 그러는 동안 죽은 흑마법사의 수만 10만 명이 넘었다.
결국 전염 경로가 파악되었다. 환자의 입과 코에서 나오는 물질과 직접 접촉하면 전염되었던 것이다.
이를 확인한 즉시 황제는 전국에 키스 금지령을 내렸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황제의 칙령은 유효하다.
그 내용 중 일부를 보면 ‘어떤 여인이든 키스를 하게 되면 종신토록 그 사내에게 영혼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함은 물론이고 지극 정성으로 수발을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파티마가 현수에게 그처럼 절절맸던 것이다.
이는 여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흑마법사들의 문란한 성생활에 경종을 울리려는 조치였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니 여인들이 강력하게 거부하도록 한 것이다.
어쨌거나 전염병이라는 말을 듣자 라트보라 남작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기록을 보면 ‘프랜들린’이라는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은 죽기 전까지 지옥과 같은 고통을 겪었다고 쓰여 있다.
그런 고통을 겪고 싶은 사람은 없기에 놀란 것이다.
“저, 정말이십니까? 정말 수도에 전염병이 창궐하게 되는 겁니까?”
흑마법 중에 대상자로 하여금 시름시름 앓게 하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있기에 물은 말이다.
“그렇다는 것이네. 아무튼 소문을 내서 4서클 이상인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은 모두 수도에서 빠져나가도록 하게.”
“그게… 그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귀족들의 수발을 드는 시종이나 시녀 등은…….”
“그들도 건국기념일엔 수도를 벗어나도록 소문을 퍼뜨려 주게. 그래야 목숨을 부지할 것이네.”
“그럼 그날……!”
라트보라 남작은 건국기념일에 무지막지한 마법을 구현시키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눈빛으로 맞느냐고 물었기에 현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건국기념일을 D―Day로 잡았네. 그날 수도에 아주 큰 변고가 있을 것이네. 그날 수도를 벗어나지 않으면 아마도 목숨을 잃을 것이야.”
“아……!”
라트보라 남작은 나직한 탄성을 냈다.
맥마흔은 제국의 수도답게 상당히 큰 도시이다.
그런데 수도에 어마어마한 변고가 있을 것이라 하는 현수의 말에 무지막지한 10서클 마법을 떠올렸다.
가장 먼저 엄청난 열기를 동반한 시뻘건 화염의 폭풍이 불거나, 모든 것을 무너뜨릴 듯 쇄도하는 대홍수를 떠올렸다.
곧이어 땅거죽이 쫙쫙 갈라지며 시뻘건 용암이 솟구치는 지진과 하늘로부터 커다란 바윗덩어리들이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미티어 스트라이크의 업그레이드판을 생각했다.
이런 상황이라도 고서클 흑마법사들은 마법으로 막아내거나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화염과 홍수, 그리고 운석에 의한 공격은 배리어나 앱솔루트 배리어를 중첩시켜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땅거죽이 흔들리며 갈라지는 지진의 경우는 플라이 마법, 또는 텔레포트만으로도 간단히 해결된다.
반면 3서클 이하 마법사를 포함한 민간인들은 이럴 만한 능력이 없다. 그렇기에 피하라는 뜻으로 이해한 것이다.
“아마도 그날 수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살아남기 힘들 것이네.”
“9서클 마법사들도 그러합니까?”
반신지경에 있는 존재들이니 그들은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대답을 기대했다. 그런데 현수의 대꾸는 전혀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다.
“황제나 황태자라 할지라도 그날의 공격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네. 그러니 소문을 잘 내주게.”
“헉! 저, 정말이요?”
9서클 마스터조차 피할 수 없는 공격이라는 것이 대체 뭔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수의 표정엔 전혀 농담기가 담겨 있지 않다. 뻥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 알겠습니다. 명심하고 유념하지요.”
“그래, 그렇게 알고 소문을 내주게.”
잠시 대화가 끊겼다.
현수는 하고 싶은 말은 다한 때문이고, 라트보라 남작은 어떤 소문을 퍼뜨려야 하는지 고심하고 있었던 때문이다.
현수는 노파심에 한마디 더 했다.
“가급적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좋지. 황궁으로부터 최소 20㎞는 떨어져야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네.”
“네에? 20㎞라굽쇼?”
세상에 어떤 공격이기에 이처럼 멀리 떨어져 있으라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8서클 마법의 대명사라 불리는 헬 파이어의 공격 반경도 고작 50m를 넘기지 못하는 때문이다. 아르센 대륙에선 100m가 넘는데 이곳은 마나 효율이 떨어져서 그러하다.
그러다 생각난 게 있는 듯 다시 입을 연다.
“그런데 그런 소문이 번지면 제국 특수첩보대가 즉각 수사에 돌입할 겁니다.”
“그렇겠지. 그러니 은밀히 소문을 퍼뜨려야 하네. 잊지 말게 황궁으로부터 최소한 20㎞이네.”
“황궁의 중심으로부터가 아니라 황궁 외곽으로부터 20㎞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황궁 외벽을 기준으로 20㎞이네. 물론 더 멀면 더욱 안전하겠지. 때론 실수도 빚어지니까.”
“세상에 맙소사!”
라트보라 남작은 입을 딱 벌린다. 아무래도 농담이 아닌 것 같은 때문이다.
“특히 수도에 있는 반 로렌카 전선에겐 빠짐없이 말이 전해져야 하네. 괜한 희생이 될 수도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우리 반 로렌카 전선은 웬만하면 지하에 대피시설을 갖추고 있으니까요.”
“지하 대피시설? 흐음, 그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도 아마 안전치 못할 것이네.”
“저희 대피시설들은 거의 대부분 지하 10m 이하에 위치해 있습니다.”
라트보라 남작은 이 정도면 어떤 공격이라도 안심할 수 있지 않느냐는 표정이다.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는 곳엔 반경 300m, 깊이 60m짜리 구덩이가 파이네.”
“네에?”
라트보라 남작의 눈에서 흰자위가 확연히 늘어난다. 대경실색했다는 뜻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은 이어진다.
“운 좋게 직접 타격받은 곳이 아니더라도 그 안에서 최소 2개월은 살 수 있어야 하네.”
“그, 그 안에 바깥으로 나오면요?”
“백이면 백 다 시름시름 앓다 죽을 것이네.”
“세, 세상에 그런 마법도 있습니까?”
물리적 마법 공격의 유효기간이 2개월이나 되는 건 들어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있네. 그러니 안에서 어쩌려고 하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멀리 떨어지는 것이 좋지.”
“으음! 알겠습니다.”
라트보라 남작은 굳은 표정이다.
조만간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현수의 말이 결코 농담으로 들리지 않은 때문이다.
“참! 하나 더 있네.”
“뭐, 뭡니까?”
라트보라 남작은 이번엔 무슨 말을 들을까 두렵다는 표정이다. 현수는 역시 그러거나 말거나이다.
“반 로렌카 전선 모두에게 연락하여 그날 수도 외곽을 포위하도록 하게.”
“수도 외각 전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러려면 엄청난 인원이…….”
황제가 머무는 황궁은 가로 20㎞, 세로 35㎞ 규모이다.
면적이 700㎢이니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605.25㎢)보다도 훨씬 넓다.
이런 황궁의 외벽으로부터 각각 20㎞씩 떨어진 거대한 사각형의 둘레 길이를 계산해 보면 물경 270㎞나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