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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243화 (1,242/1,307)

# 1243

참고로, 남북한 병사들이 대치하고 있는 155마일짜리 휴전선의 길이를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248㎞이다.

이런 휴전선보다도 긴 포위망을 구축하려면 어마어마한 숫자의 병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단순 계산을 해보면 1m에 한 명이라면 27만 명이 필요하고, 2m당 하나라면 13만 5,000명이 필요하다.

라트보라 남작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현수의 말이 이어진다.

“그날 운 좋게 공격을 피하는 놈이 있을 수 있네. 최소가 4서클 이상인 마법사겠지.”

“그, 그렇지요.”

“그놈들을 모조리 추살할 수 있는 병력이 되어야 하네.”

“그, 그건 불가능합니다. 반 로렌카 전선의 모든 병력이 와도 어쩌면 막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반 로렌카 전선에도 마법사들은 있다. 그런데 이들 중 가장 화후가 높은 자가 고작 5서클이다.

이보다 서클 수가 높은 흑마법사를 상대하려면 상당히 많은 마법사와 기사 전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런데 반 로렌카 전선은 그럴 만한 능력이 없다. 제국군의 눈초리를 피한 채 숨어서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라트보라 남작은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죄송합니다. 저흰 그렇게 강하지 못합니다.”

“그건 걱정 말게. 지원군이 있을 것이니.”

“아! 지원군이요?”

라트보라 남작의 표정이 급격하게 밝아진다.

“어, 얼마나 오는지요? 그리고 얼마나 강한지요? 마법사는 많습니까? 기사들은요?”

“흐음, 마법사는 50명쯤 될 것이고, 기사들도 그 정도는 될 것이네.”

라트보라 남작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진다.

로렌카 제국을 붕괴시키려면 최소 100만 명쯤 되는 지원군이 와야 한다. 그런데 그것의 10,000분의 1이라는 숫자를 들은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수의 말은 이어진다.

“그들을 중심으로 포위망을 구축하면 도주하는 자들은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을 것이네.”

“만일 도주한 자가 9서클 대마법사라면요?”

아르센 대륙과 달리 이곳엔 그만한 화후를 가진 이가 상당하기에 물은 말이고, 그런 자를 막을 수 있는 지원군인가를 물어본 말이다.

현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잡아낼 것이네. 그러니 그들을 중심으로 포위망 구축하는 걸 잊지 말게.”

“저어, 죄송하지만 지원군은 대체 누구입니까? 마탑주님 휘하 마법사들인가요? 아님, 마탑주님이 국왕으로 계신 나라의 기사들인가요?”

“후후! 그건 나중에, 나중에 보면 알 것이네.”

“네에, 알겠습니다.”

라트보라 남작은 궁금한 게 많았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앉았다. 자신이 묻는다 해서 현수가 친절하게 대답해 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 다시 입을 연다.

“그나저나 공작가에 계신 분들은 빠져나오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공작가의 누구?”

“공작부인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라트보라는 왜 금방 알아듣지 못하느냐는 표정이다.

“혹시… 싸미라와 아만다 등을 이야기하는 건가?”

“네! 그분들께선 제국의 공작부인으로서의 예우를 받고 계시지만 운신이 편하신 것은 아닙니다.”

라브토라 남작의 말에는 상당한 존대가 담겨 있다. 핫산 브리프의 아내들인 때문이다.

어쨌거나 제국에선 막대한 인적 손실을 끼친 핫산 브리프와 연이 닿아 있는 유일한 존재들이니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하지는 않았다.

경호를 위해 붙여놓은 황실 근위대원들은 사실 엄중한 감시자의 역할이다.

싸미라 등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이고, 그녀들끼리 나눈 대화 내용 전부가 제국 특수첩보대에 보고된다.

심지어 월경하는 것까지 다 파악되고 있다. 혹시라도 핫산 브리프가 몰래 돌아와 임신을 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제국에선 여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지만 외출은 없다.

혹시라도 핫산 브리프나 그를 추종하는 세력에 의한 구출작전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며 죄수처럼 일 년 내내 저택 안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로렌카 제국의 법령에 따라 일 년에 두 번은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다.

모든 귀족가의 의무인 황제 알현 때문이다. 현재는 노쇠해진 황제 대신 황태자가 귀족들을 접견하고 있다.

이는 일종의 점고이다.

제국의 귀족 명부에 실린 자와 그 직계자손들은 연 2회 황제를 방문하여 충성 맹세를 갱신해야 한다.

이 자리엔 오로지 황제의 명에만 따르는 원로원 노괴들이 배석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더 높은 화후를 위해 리치가 되어 있다.

이는 일종의 무력시위이다. 누구든 반역의 마음을 품으면 그 즉시 멸문지화를 가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9서클 마스터에 이른 마법사라 할지라도 감히 반역의 마음을 품지 못한다. 감당하기 힘든 존재가 너무 많은 까닭이다.

핫산 브리프 공작도 귀족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다.

그렇기에 싸미라 등 브리프 공작가의 여인들은 1년에 두 번 황태자를 알현하러 나왔다.

그때마다 싸미라 및 아만다와 스타르라이트, 그리고 도로시를 바라보는 황태자의 눈빛이 요요했다.

싸미라는 인도의 배우 아이쉬와라 라이와 같은 미녀이다. 참고로, 이 여인은 1994년 미스월드 선발 대회에서 1위였다.

아만다 프러페 반 도델은 헝가리의 여신 바바라 팔빈 같은 미녀이고, 스타르라이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모델 캔디스 스와네포엘과 흡사하다.

마지막으로 도로시 칼라 폰 발렌틴은 뉴질랜드 출신 모델 스텔라 맥스웰 같은 절세미녀이다.

황태자가 차비(次妃)를 요리해 먹은 후 정비(正妃)는 공포에 떨었다. 자신 또한 끈 떨어진 연이기 때문이다.

차비와 정비 모두 공작가의 공녀 출신이다.

그런데 배경이었던 공작들 모두 핫산 브리프 공작과의 대결에서 목숨을 잃었다. 선두에서 충성을 몸소 실천하다 불귀의 객이 된 것이다.

든든한 배경이던 공작가가 하루아침에 초상집으로 변하자 정비는 자신도 어느 날 갑자기 식재료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극도로 조신한 여인으로 변모하였고, 황태자의 말에 무조건 순응하는 양으로 변했다.

권력을 탐하는 다른 공작가에서 가문의 여인을 새로운 황태자비로 밀어 넣으려는 술수를 부리는 때문이다.

그렇기에 황태자가 싸미라 등을 품겠다고 해도 말 한마디 못 하는 상황이다.

황태자 또한 이런 걸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맥마흔의 요정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싸미라 등을 볼 때마다 안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직접 핫산 브리프와 맺어준 여인이다. 체면을 차려야 하기에 싸미라 등을 볼 때마다 불끈 치솟는 욕정 때문에 괴롭지만 감내해 내고 있다.

‘4년……! 놈이 사라진 날로부터 4년이 지나면 그땐……!’

로렌카 제국에선 사람이 죽으면 4년간 죽은 이를 기리는 풍습이 있다. 그렇기에 4년이 기준이었다.

만일 3년이었다면 지금쯤 싸미라 등은 황태자의 침실로 끌려들어가 온갖 꼴을 다 당했을 것이다.

황태자는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사디스트(Sadist)이며 사이코패스(Psychopath)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황태자는 변태성욕자이다.

그래서 그의 침실에선 끝없는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곤 한다. 채찍을 휘두르고, 집게로 꼬집으며, 날카로운 꼬챙이로 쿡쿡 찌르기도 한다. 양초의 뜨거운 촛농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날 세운 대거로 피부를 얇게 저미기도 한다.

정비와 차비는 실제 공작가의 공녀 출신임에도 이런 고통을 감내해 냈다. 가문의 권력 때문이다.

어쨌거나 얼마 후면 4년이 된다. 그렇기에 황태자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중이다.

그날이 되면 제국이 핫산 브리프 공작에게 내렸던 모든 것을 거둘 예정이다.

작위는 물론이고 영지와 저택, 그리고 싸미라와 공작위를 얻을 때 상품으로 주어졌던 여인들 전부이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 황실에 귀속된다. 정확히는 곧 황위를 물려받게 되는 황태자의 것이 된다.

황태자는 곧 있을 건국기념일을 기준으로 삼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현수가 나타난 것이다.

“운신이 편하지 않다니? 공작부인으로 예우한다면서.”

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라트보라 남작은 잘 생각해 보라는 표정으로 입을 연다.

“공작부인들은 마탑주님과 유일한 연관자입니다.”

“흐음, 알겠네.”

고개를 끄덕인 현수는 문득 싸미라를 떠올려 보았다.

보기 드문 미녀임에도 조신하고 순종적이며, 예의 바르고 겸손했다. 기분이 좋을 땐 누구보다도 화사한 웃음을 지었고, 우울하거나 슬픈 일이 상기될 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귀족가의 여식이고, 수많은 사내의 탐욕 어린 시선을 받았음에도 때 타지 않은 착한 여인이다.

아만다와 스타르라이트, 그리고 도로시와는 속 깊은 대화를 나눈 바 없다.

아만다와 도로시는 로렌카 제국이 파견한 외출자에 의해 납치되었던 여인이고, 스타르라이트는 자원해서 왔지만 실상을 알곤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사람을 죽여, 특히 젊은 여인들을 죽인 뒤 그 시신을 찌고, 굽고, 삶고, 튀겨내는 등 온갖 조리법으로 요리해 먹는 것을 보곤 사흘 밤낮을 토하면서 울었었다.

마인트 대륙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달은 날 이후 늘 불안해했다. 언제 자신도 식재료가 되어 식탁에 오르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운 좋게 영주 선발대회의 상품으로 뽑혔다.

그리고 맥마흔을 떠들썩하게 했던 핫산 브리프 공작의 선택을 받았을 때 그때 처음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들을 요리해 먹을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던 것이다.

어쨌거나 현수는 세 여인과 별다른 대화를 나눈 바 없다. 그럼에도 얼굴이나 몸매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기억력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워낙 빼어난 미모와 몸매를 가져 인상적이었던 때문이다.

그런 여인들이 꼼짝없이 갇혀 있다고 한다.

“흐으음!”

현수는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날을 위해 준비할 것이 많아 곧 여기를 떠나야 한다.

그 전에 구할 것인지 여부를 가늠해 본 것이다.

‘내가 싸미라 등을 먼저 구하는 것과 나중에 구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금 구하면 제국이 바짝 경계할 것이고, 나중에 구하려다 실패하면 생각했던 공격을 못 할 수도 있다. 두 경우 모두 또다시 포위망에 갇히게 되는 불상사를 겪을 수도 있다.

“흐음!”

현수가 고심하는 표정을 짓자 라트보라 남작은 슬쩍 물러앉는다. 상념에 방해되기 싫어서이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남작! 통로는 안전한가?”

“저와 시녀인 줄리만 아는 통로입니다.”

라트보라 남작의 시녀 줄리는 벙어리이고, 글을 모른다. 이는 외부에서 알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럼 가보세.”

“조금 쉬셨다가 밤에 가시길 권해 드립니다. 낮에는 공작가의 경비가 워낙 삼엄한 데다 순찰도 자주 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흐음, 그렇단 말이지. 그런데 제국 특수첩보대와 황실 근위대는 어떤 차이가 있나?”

“근위대 쪽이 더 높은 서클입니다. 그리고 근무 성격상 경계 쪽에 훨씬 더 특화되어 있지요.”

“흐음! 그렇겠지.”

현수는 다시금 턱을 쓰다듬었다.

“혹시 공작가에 파견된 자들의 화후가 어떤지 아나?”

“제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그곳에 머무는 근위대원의 숫자는 18명입니다. 9서클 마스터가 세 명, 8서클은 여섯 명, 나머진 7서클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

9서클 마스터가 셋이라면 은밀히 다가가 여인들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 정도라면 마나 유동에 매우 민감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수는 자신이 9서클일 때를 떠올려 보았다. 집중하면 주변의 모든 움직임을 눈 감고도 알아낼 수 있었다.

바퀴벌레처럼 작은 곤충들도 잡으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이는 퍼펙트 트랜스페어런시 같은 투명 은신 마법을 싸도 상대는 알아차린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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