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5
“크크크! 이걸 다 먹으려면…….”
싸미라와 아만다, 그리고 스타르라이트와 도로시를 위한 네 개의 접시엔 각각 40㎝ 정도 되는 페시돈찜이 두 마리씩 놓여 있다.
한센은 생선찜에 독이 들어 있는지 여부와 있을지 모를 쪽지가 있는지 여부에 대한 확인을 이미 마쳤다. 그렇기에 부하들에게 실실 농담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서 이거 다 먹으려면 다른 건 못 먹겠지? 안 그래?”
“그럼요, 여자 혼자 먹기엔 좀 많죠.”
“크크! 그럼 오늘 저녁은 다른 거 다 빼고 이것만 안으로 들이라고 해.”
한센의 지시를 받은 근위대원들도 킥킥거린다.
“킥킥킥! 이 맛없는 걸로 배가 터지도록 먹으면…….”
“크크! 그러게. 이거 다 먹으면 토 나올걸.”
조장과 오랜 시간 함께하다 보니 고위 마법사인 8서클이나 7서클 마법사들도 다 똑같이 경박해진 것이다.
“시녀들 불러서 안으로 들여보내! 오늘 저녁은 다른 것 없이 이것만 들이도록!”
“네, 조장님.”
한센의 지시를 받은 근위대원은 시녀를 불러 페시돈찜을 안으로 들이도록 했다.
시녀들 또한 킥킥거리긴 마찬가지이다. 페시돈은 가시가 많고, 맛없다는 걸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뭘까요?”
꽃처럼 아름다운 여인 넷이 모여 있다. 편한 복장으로 있어도 될 곳이지만 늘 공작부인으로서의 체통을 지켜야 한다는 강요에 의해 곱게 성장한 차림이다.
누가 보면 이제 곧 시작될 무도회에 가기 위해 치장한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표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안색도 다소 창백한 편이다. 겉보기엔 호사스러워도 내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때문이다.
핫산 브리프 공작가의 주인은 영주선발대회를 통해 당당히 공작위를 얻은 현수이다.
황태자의 총애가 한 몸에 부어질 것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도 의심치 못했고, 금방 권력의 실세가 될 것이라 생각되던 인물이다.
그런데 공작위를 제수받던 날 엄청난 짓을 저질렀다. 그 과정에서 수십 명의 9서클 마법사가 목숨을 잃었다.
제국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공작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차기 황후가 될 것이 분명했던 황태자의 정비와 차비를 배출시킨 공작가의 주인들도 그날 목숨을 잃었다.
아무튼 핫산 브리프 공작가는 현재 주인 유고 상황이다.
그의 전권을 대신할 공작부인 넷이 있기는 하지만 시녀들조차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는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했다.
공작가엔 상당히 많은 시녀가 배치되어 있지만 씻고 싶을 때 마음대로 씻을 수 없다. 시녀들이 제멋대로인 때문이다.
먹고 싶을 것도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고로 공작부인 은 주방에 드나들어선 안 된다는 시녀들 때문이다. 그렇기에 주는 음식만 먹을 수 있을 뿐이다.
어떤 날엔 노린내 심한 고기를 스테이크로 내와 구역질나게 했고, 또 어느 때엔 100% 쓴맛 나는 푸성귀로 만들어진 것만 식탁에 올려놓기도 했다.
의복도 제 마음대로 고를 수 없어 시녀들이 그날그날 입히는 대로 입어야 한다.
시녀들은 공작부인들을 골탕 먹이려 불편한 옷만 골라온다. 그래서 어떤 날엔 코르셋((Corset) : 체형을 날씬하게 만들기 위한 옷으로 가슴에서 엉덩이 위까지를 꼭 조이기 위해 옆 주름살을 안 내는 대신 고래 뼈나 철사를 넣어 만든 것.) 때문에 하루 종일 잔뜩 조이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또 다른 날엔 치마 속에 크리놀린((Crinoline) : 스커트를 부풀리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철사나 고래 뼈를 바구니처럼 세공한 것.)을 입혀 하루 종일 화장실 가기 불편하게 만들었다.
여름엔 두꺼운 드레스를 입혀 푹푹 찌는 느낌을 받았고, 겨울엔 얇은 걸 입혀 덜덜 추위에 떨며 지냈다.
외부에서 보기엔 많은 시녀가 수발을 들어주니 공작부인으로서의 예우를 받는 모습이지만 실상은 너무도 불쌍하게 살아온 것이다.
공작가 소속이 아니라 황실 근위대 소속 시녀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작부인의 명보다는 감시 목적으로 경계 근무 중인 황실 근위대원들의 명을 우선시한다.
어쨌거나 싸미라 등은 부군인 핫산 브리프 공작의 만행 때문에 본인들이 수없는 능욕을 당한 뒤 식재료로 저며져 식탁에 오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이렇게나마 모진 삶이라도 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냈다.
“끄응, 오늘은 페시돈찜이네. 이거 엄청 퍽퍽하고 질겨서 개도 안 먹는 건데.”
싸미라가 투덜거리자 아만다의 눈이 커진다.
“페시돈이요?”
“그래, 아만다. 이게 마인트 대륙에서 가장 맛없는 생선이야. 맛이 너무 없어서 적당히 썩힌 뒤 비료로 써.”
“그래도 맛있어 보여요.”
오랜만에 생선을 본 스타르라이트는 입맛을 다시며 포크를 집어 들었다. 냄새가 그럴듯한 때문이다.
쿡―!
“으잉? 뭔 생선이 이런대요?”
스타르라이트는 포크로 찔렀는데 끝이 파고들지 않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탱탱한 고무를 찌른 듯한 느낌일 것이다.
곁에 있던 아만다도 포크로 찔러보았지만 결과는 같다.
“이거 원래 이렇게 뻑뻑해요? 왜 그러죠?”
“조금 전에 내가 그랬잖아. 페시돈은 엄청 질긴데도 퍽퍽해, 너무 맛이 없어서 거의 안 먹는 거야.”
싸미라의 말에 아만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근데 왜 이걸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나게 요리해서 준 거죠? 쩝, 맛있는 줄 알았는데.”
“냄새만 그래. 아마 지금껏 먹었던 음식 중에 제일 맛없는 걸 오늘 먹게 되는 걸 거야. 그러니 기대하지 마.”
“알았어요. 맛있어 보이긴 하는데.”
도로시는 들고 있던 포크로 페시돈을 쿡쿡 찔러본다. 그럴 때마다 찐득한 국물이 출렁거린다. 이 국물은 너무 진해서 액체는 액체인데 거의 겔((Gel) : 콜로이드 용액(졸, sol)이 일정한 농도 이상으로 진해져서 튼튼한 그물조직이 형성되어 굳어진 것.) 수준이다.
같은 순간, 싸미라도 입맛은 없는 듯 페시돈을 이리저리 건드려만 볼 뿐이다.
이때 스타르라이트가 페시돈을 뒤집는다. 혹시라도 짙은 갈색 국물 속에 잠겨 있던 부위는 먹을 만할까 싶어서이다.
국물이 흘러내리자 스타르라이트는 다시 포크를 꽂았다. 그런데 조금 전과 전혀 다르지 않다.
“쳇! 이러면 조금 나을 줄 알았는데.”
“근데 이거 진짜 먹을 수는 있는 거예요? 오늘 저녁 식사는 이게 다인가 본데 이거라도 안 먹으면 이따 배 엄청 고프잖아요. 안 그래요?”
“그래! 이게 다일 거야. 아! 스타르라이트, 잠깐만!”
스타르라이트의 투덜거림에 대꾸를 하던 싸미라가 갑작스레 정색하자 모두가 움직임을 멈춘다.
“모두 잠깐만 멈춰!”
싸미라는 도로시 등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모든 생선을 뒤집었다. 두 개의 포크로 아만다의 것을 뒤집고는 양념장이 묻는 말든 손으로 뒤집는다.
“왜요?”
“잠깐만! 잠깐만 조용히 하고 기다려 줄래?”
싸미라는 생선에 시선을 고정시키곤 이내 그것들을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싸미라 언니! 식탁에 양념 다 묻어요.”
“잠깐만 스타르라이트! 지금 식탁에 뭐가 묻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 그러니 다들 잠깐만 가만히 있어!”
다를 대체 왜 이러나 싶은 시선으로 싸미라를 바라본다. 도로시는 공주이고, 아만다는 후작가의 영애이다.
스타르라이트는 농노의 딸이지만 불과 몇 대 전의 조상들은 망해 버린 나라의 왕족이다.
어쨌거나 셋은 왕족과 귀족, 그리고 농노의 신분이지만 한 가지 공통적으로 배운 게 있다.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싸미라가 먹는 걸로 장난치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뭐라 말참견을 하려다 만다.
싸미라가 핫산 브리프 공작의 정실부인이고, 가장 나이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싸미라는 여덟 마리 생선의 위치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골똘히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렇게 대략 5분쯤 지났다. 식탁은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양념으로 더럽혀진 상태이다. 하나 싸미라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듯 생선만 바라보고 있다.
“싸미라 언니! 대체 왜 그래요?”
아만다의 물음에도 싸미라는 대꾸하지 않는다. 그리곤 다시 생선의 배열을 바꾼다.
“언니! 대체 왜 그러시는지 우리도 알면 안 돼요?”
“그래요, 언니! 대체 뭐하는 건지 모르지만 우리가 도울 수도 있잖아요. 안 그래요?”
도로시와 스타르라이트의 말이 끝나자 싸미라가 아우들을 바라본다. 3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이 어려움을 겪어 이제는 친동기간처럼 스스럼없는 사이이다.
왕족, 귀족, 농노 이런 신분은 잊은 지 오래이다.
싸미라와 도로시, 아만다, 그리고 스타르라이트는 핫산 브르프 공작의 아내라는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평생을 투기 없이 한 사내만 바라보면서 사이좋게 지내자고 수없이 맹세했던 사이이다.
아만다와 도로시, 그리고 스타르라이트 역시 영특한 두뇌의 소유자라는 것을 새삼 떠올린 싸미라는 말없이 필기구를 챙겼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곳이 이곳이다. 게다가 벽마다 귀가 있다.
넷이 무슨 말을 하든 제국 특수첩보대의 귀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기에 필담을 준비한 것이다.
아만다와 도로시 등은 대체 왜 이러나 싶은 표정이지만 말없이 싸미라에게 시선을 준다.
싸미라는 들고 있던 펜으로 글을 썼다.
생선 아가미를 들춰 보면 비늘이 몇 개씩 빠져 있어.
여기까지 글을 쓰자 다들 페시돈의 아가미를 들춰본다.
짙은 갈색 생선 페시돈은 비슷한 색깔의 양념장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그렇기에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비늘이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내기 힘들다.
“어라! 정말…….”
도로시가 말을 이르려 할 때 싸미라가 째려본다.
“잠깐 진정해!”
“아……!”
싸미라가 사방의 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도로시는 얼른 제 손으로 제 입을 막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사방에 눈과 귀가 있음을 새삼 인식한 것이다.
이러는 동안 아만다와 스타르라이트는 나머지 생선의 아가미를 일일이 들춰본다. 다 같이 비늘이 몇 개씩 빠져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싸미라는 다시 펜을 들어 다음과 같이 썼다.
내 생각엔 이것들이 어떤 글귀를 뜻하는 거 같아!
글귀를 본 아만다 등은 생선 여덟 마리를 이리저리 배열해 본다. 싸미라는 한발 물러나서 아우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잠깐! 모두 동작 그만!”
싸미라의 나직한 고함에 모두들 행동을 멈췄다.
싸미라는 아우들이 배열해 놓은 생선들 가운데 둘의 자리를 맞바꿨다.
그리곤 다시 한 발짝 물러났다.
생선을 두 마리씩 세로로 배열해 놓으니 몇 개의 글자가 나타난다.
마인트 대륙어는 한자처럼 글자마다 뜻이 있다.
《 》는 ‘자정’을 뜻한다. 《 》는 ‘탈출’을 의미하는 글자이며, 《 》는 ‘집합’을, 《 》는 ‘남편’을 뜻한다.
이것들을 조합해 보면 자정에 탈출할 것이니 모여 있으라는 뜻이고, 남편이 구하러 온다는 것 같다.
다들 영특한 두뇌를 지녔기에 단숨에 뜻을 파악한 듯 얼굴이 붉게 상기된다.
지긋지긋한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도 가슴 가득 희열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이때 싸미라는 칼을 꺼내 아가미 뒤쪽의 남은 비늘들을 마저 벗겨내며 중얼거린다.
“에이, 찜을 하면 비늘은 다 벗겨서 해야지. 이게 뭐야?”
기다렸다는 듯 스타르라이트도 비늘을 벗겨낸다.
“그러게요. 누가 요리한 건지 몰라도 이건 요리사로서 자세가 안 되어 있는 거예요, 그쵸?”
“그래! 자칫했으면 비늘까지 먹을 뻔했어.”
“근데 싸미라 언니! 이 생선 정말 맛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