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246화 (1,245/1,307)

# 1246

여인들은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며 아가미 뒤쪽의 비늘을 모두 제거했다.

완전무결한 증거인멸 작업이었다.

11장 공작부인 구출 작전

잠시 후, 넷은 페시돈찜을 먹기 시작했다. 퍽퍽하고 질기기만 함에도 다들 맛이 있다면서 엄지손가락을 추켜든다. 그러면서 이걸 누가 맛이 없다고 했느냐며 한마디씩 한다.

이때 벽에 귀를 대고 안의 동정을 살피던 근위대원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헐! 저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그 맛없는 페시돈을 먹으면서 맛이 있다고?”

“그러게! 개도 안 먹는데 그게 맛있다고? 입맛이 영 아니구만. 그렇지 않은가?”

“그러게. 저것들이 이제 슬슬 미쳐 가나 보네. 흐흐흐!”

“다들 속살은 야들야들할 텐데 미쳤다는 판정이 내려지면 우리에게 하사하시겠지?”

“크흐흐! 그때가 되면…….”

3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천하절색 넷을 가둬놓고 군침만 흘렸다. 황태자의 시선이 미치는 곳이기에 건드렸다간 패가망신 정도가 아니라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기에 감히 넘보려는 마음조차 품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조금 희망이 생긴 것 같기에 흑마법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물론 그 웃음엔 음탕한 탐욕이 짙게 어려 있다.

이때 싸미라가 소리친다.

“근데 비린내가 좀 나네. 아만다, 도로시! 창문 좀 활짝 열어줄래?”

“네, 언니!”

창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근위대원들은 그러려니 했다. 페시돈의 비린내는 생각만으로도 구역질이 올라오는 때문이다.

비슷한 시각, 라트보라 남작은 여전히 도면에 시선을 주고 있는 현수에게 다가섰다.

“마탑주님! 이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가? 알겠네, 가지.”

“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라트보라 남작의 안내를 받은 현수는 땅굴을 통해 핫산 브리프 공작가까지 조심스레 이동했다.

습기 때문에 축축해서 발을 뗄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나 상당히 긴장을 해야 했다. 근위대원들은 그런 작은 소리도 신경 쓰면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논 노이즈 마법을 쓰면 간단한 일이지만 마나 유동을 느끼게 될까 싶어 애써 참았다. 들키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싸미라 등에게 애꿎은 해가 끼칠까 싶어 극도로 조심하는 것이다. 한참을 걸어 마구간 아래에 당도하자 라트보라 남작이 한 발짝 물러선다.

“마탑주님! 저는 이곳에서 대기할까요?”

“아니네. 가 있으면 내가 찾아가지.”

라트보라 남작은 교토삼굴이라는 말도 모르면서 참으로 치밀하게 통로를 개척해 놓았다.

A라는 통로로 왔지만 거꾸로 짚어 가면 B나 C, 혹은 D나 E 통로가 되게 기관을 설치해 둔 것이다.

상당히 정교하고 교묘하기에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지 않으면 수백 번을 오가도 알 수 없도록 해놓았다.

“그럼 가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그러게, 수고 부탁하네.”

라트보라 남작은 현수에게 고개 숙여 예를 갖추곤 조심스레 물러난다.

이제 자신의 집 지하로부터 맥마흔의 성벽 아래를 지나 외부로 통하는 또 다른 터널을 열어두러 간 것이다.

라트보라 남작은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본인의 별명이 ‘셔블링 모울’이라 이야기했다.

마인트어로 셔블링 모울(Shoveling mole)은 ‘삽질하는 두더지’를 뜻한다. 땅굴 파는 데 어마어마한 특기가 있음을 반증하는 별명이다.

통로로 내려온 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폭 1m 50㎝, 높이 195㎝, 길이 2,000m짜리 땅굴을 파는 데 불과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중간중간에 쉴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붕괴를 대비한 버팀목 및 장비들을 보관하는 창고로 있으며, 정교한 기관까지 설치되어 있다.

벙어리 줄리가 보조했다 하지만 실상 거의 모든 일을 혼자서 조성했다. 그럼에도 이런 통로를 만들었으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진 않았지만 수도를 빠져나가는 통로 또한 이것과 비슷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현수는 잠시 바깥 동정에 귀 기울였다. 말들이 서성이며 투레질하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 말여물 주는 소리가 섞여 있다.

아직은 나갈 때가 아니다. 하여 한참을 기다렸더니 마구간을 담당한 자가 문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도 잠시 조용히 기다렸다.

‘흐음! 이제 괜찮겠군.’

현수는 빗장을 풀고 마구간 바닥을 힘주어 밀어 올렸다.

삐거덕―!

우수수수―!

잘라만 놓고 한 번도 들어 올리지 않아서 그런지 들자마자 건초들이 쏟아져 내려온다.

히힝! 히히히힝―!

놀란 말이 앞다리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옆으로 피한다. 현수는 오른손 검지를 입술 위에 대며 나직한 소리를 냈다.

“쉬이―! 괜찮아, 괜찮아! 그래, 그래! 얌전히.”

현수의 등장에도 크게 놀라진 않은 듯 이내 고분고분해진다. 현수에게 풍기는 독특한 기운 때문이다.

현수에 의해 싱싱함을 되찾은 세계수는 소리 없이 ‘숲의 가호’를 내린 바 있다.

숲 근처에만 있어도 숲이 가진 고유한 기운이 스며들어 건강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 결과 현수에게선 은은한 숲의 향기가 뿜어진다. 그렇기에 현수의 곁에 있으면 늘 상쾌하고, 맑으며, 싱그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뿐만이 아니다. 4대 정령을 모두 마스터한 현수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최상의 가호를 부여한 바 있다.

물의 정령왕 엘레이아는 물속에서도 호흡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했고,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는 용암을 뒤집어써도 데지 않게 했다.

땅의 정령왕 노이아는 땅속에 파묻혀도 그 안에서 이동할 수 있는 권능을 부여했으며, 바람의 정령왕 세리프아는 마음만 먹으면 하늘을 날 수 있게 하였다.

아리아니는 알지만 현수는 모르는 일이다.

이런 연유로 어떤 동물이든 현수를 보고 놀라거나, 성을 내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굶주린 사자 떼라 할지라도 현수 앞에선 순한 양이나 다름없이 다소곳해진다.

아무튼 고분고분해진 말의 갈기를 부드럽게 쓸어내린 현수는 바깥의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바람 소리와 벌레 소리만 있을 뿐이다.

삐거덕―!

“아공간 오픈!”

현수는 재봉틀 기름을 꺼내 경첩에 먹였다. 되돌아갈 때 소음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살그머니 마구간으로 나온 현수는 뒷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마침 그믐이라 달빛은 없지만 하늘에 총총한 별들 덕분에 사물을 식별하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물론 바디체인지를 여러 번 겪으면서 안력이 대폭 상승한 현수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지 평범한 인간들에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일 뿐이다.

수로에 근처에 당도한 현수는 잠수 장비를 갖췄다.

잠수복을 걸친 이유는 혹시 있을지 모를 수중생물 때문이다. 물뱀이나 라니야가 달려드는 것을 막는다.

오리발로 갈아 신고, 물안경도 썼다. 그리곤 숨대롱을 입에 물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맑아 시야가 매우 좋다. 다행한 일이다. 수로 양쪽에 무성한 수초가 있어 몸을 감추기도 좋았다.

예상대로 물고기들도 있고, 물뱀도 있다. 다행인 건 귀찮게 할 라니야가 없다는 것이다.

‘흐음! 여기쯤이겠군.’

수면 아래에서 일렁이는 수면 밖 상황을 잠시 살펴보았다. 라트보라 남작의 말대로 임무 교대를 위해 마법사들이 모여드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들 모두가 저쪽으로 갈 때까지 수초 사이에 은신한 채 기다렸다. 그러면서 저택을 살폈다.

창문이 열려 있고,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곳이 보인다.

‘페시돈을 봤다면 저기겠군.’

현수는 싸미라가 상당히 영특하고 집중력이 좋다는 것을 안다. 특히 눈썰미가 좋아 대강 봐도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는 능력이 좋다.

마인트 대륙엔 방충망이라는 것이 없다. 하여 저처럼 문을 열어두면 온갖 벌레가 꼬여든다.

불빛 때문이다. 그렇기에 밤엔 창문을 모두 닫는다. 그럼에도 열어둔 것은 보낸 신호를 알아들었음을 뜻한다.

‘역시!’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싸미라의 영특함이 마음에 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의 대화가 생각난다.

“싸미라는 세상에서 가장 큰 게 무엇이라 생각해?”

이 질문을 했을 때 현수는 집이나 산 같은 것을 이야기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싸미라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건 사람의 욕심이죠.”

“그래? 그럼 하나 더 물을게. 이 집에 불이 났는데 딱 하나만 들고 나갈 수 있어. 그럼 싸미라는 무얼 가져갈 거야?”

실내엔 싸미라의 장신구나 의복 등이 있었다.

“지금 이 방에서만 가져갈 수 있는 거예요?”

“그래! 이 방 안에 있는 것 중 하나야!”

“그럼, 전 핫산 브리프 님과 나갈 거예요. 제겐 너무 중요한 분이니까요.”

“……!”

이 말을 들었을 때 현수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싸미라의 진심이 느껴진 때문이다.

황태자가 엮어줘서 만난 사이일 뿐이다. 대결을 앞두고 잠자리 및 수련 장소가 마땅치 않아 잠시 머물고 있다.

싸미라를 아내로 맞이할 마음은 손톱 끝만큼도 없으니 매사 퉁명스럽게 대했다. 그런데 싸미라는 온 정성을 다 바쳐 자신에게 헌신하려 한다.

아름답기 이를 데 없으며, 현숙하고, 우아하며, 조신하고, 영특하고, 남을 배려하고, 품위까지 있다.

지구로 치면 100점 만점에 120점짜리 여인이다. 어찌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그래도 물어볼 건 물어봐야 했다.

“날? 날 데려다 뭐에 쓰려고?”

“제 하나뿐인 부군이시잖아요. 평생토록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살 거예요. 그러니 저를 조금만 더 어여삐 여겨주셔요.”

“으음……!”

당시의 현수는 낮은 침음만 냈을 뿐이다. 그때 싸미라는 곧바로 다른 화제를 꺼냈다. 부군이 자신 때문에 마음 쓰는 것조차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창문은 열려 있다. 현수는 온 신경을 기울여 전방을 탐지해 냈다. 마법사들끼리 정해진 순서에 따른 임무 교대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똑, 똑, 똑―!

“……!”

살그머니 다가가 조심스레 노크를 하자 기다렸다는 듯 싸미라의 얼굴이 나타난다.

“쉬잇―!”

검지를 입술에 대곤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고개를 끄덕인다.

현수는 싸미라와 아만다, 도로시, 그리고 스타르라이트가 있음을 확인하곤 조용히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가장 먼저 도로시가 나왔다. 창턱이 높은데다 긴 치마를 입고 있어 나오는 것이 불편했다.

그렇다 하여 의자 같은 것을 놓을 수는 없다. 걸상 끄는 소리가 바깥의 근위대원들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수는 도로시의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나오는 걸 도왔다.

바깥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현수의 품에 안기게 된 도로시는 얼굴이 빨개졌다.

아주 잠깐이지만 가슴과 가슴이 맞닿을 땐 뭉클했고, 서로의 숨결을 느껴야만 했던 때문이다.

도로시가 저도 모르게 가빠진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스타르라이트 역시 똑같은 경험을 한다.

“하아∼!”

땅을 딛자마자 아주 작은 소리를 낸 스타르라이트는 붉게 상기된 도로시를 보고 자신의 두 뺨을 손으로 감싼다.

본인도 똑같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다음 순간, 아만다가 현수의 품에 안겼다. 그런데 현수가 생각했던 몸무게보다 적어서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들어 올리자 가볍게 올려진다. 당연히 가슴이 맞닿았다.

다음 순간 땅으로 내려지던 아만다는 자신의 입술과 현수의 입술이 슬쩍 스침을 느꼈다.

“흑……!”

저도 모르게 거칠어지려는 숨을 얼른 손으로 막았다.

지금은 근위대원 몰래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만다의 두 볼 또한 새빨갛게 변했다.

그러는 사이에 싸미라 역시 현수의 품에 안기고 있다.

당연히 숨결이 부딪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땅에 내려놓으려는데 싸미라는 와락 힘주어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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