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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의 팔찌-1247화 (1,246/1,307)

# 1247

그리곤 잠시 현수의 품에 얼굴을 기댔다.

“아아, 사랑해요! 고마워요.”

“……!”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현수는 분명히 들었다. 하나 짐짓 못 들은 척했다.

현수는 수신호로 자신을 따르라 하였다. 여인들은 고개를 끄덕이곤 조심스런 걸음으로 인도하는 대로 따랐다.

현수는 수로 근처에 이르자 아공간을 열었다.

“아공간 오픈! 출고!”

철컥―!

“어서 안으로!”

“네!”

수신호에 따라 여인들은 문이 열린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불법 조업을 하던 지나 어부들을 담아서 날랐던 바로 그 컨테이너이다.

이곳에 오기 전 문을 열고 확인해 보니 냄새가 심해서 탈취제를 뿌려둔 상태이다. 그래도 권장하고 싶지 않은 냄새가 나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다.

철컥―!

“입고!”

현수가 컨테이너를 아공간에 넣은 순간 임무 교대 중이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린다.

극도로 효율적인 마법이라 마법이 구현되어도 마나 유동이 적음에도 이를 느낀 것이다.

“이브야! 안에 공작부인들 확인해.”

“네!”

“나머진 전부 나를 따르라!”

9서클 마스터의 명에 따라 8서클 마법사는 재빨리 공작부인들이 기거하는 방문을 두드렸다.

당연히 아무런 반응이 없자 힘주어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공작부……! 헉, 아무도 없다. 조장님! 싸미라 공작부인이 없습니다.”

말을 하며 다른 문을 연다. 혹시 다른 방에 모여 있나 싶은 것이다. 아만다가 쓰던 방문이 열렸고, 곧이어 도로시와 스타르라이트가 쓰던 방문까지 활짝 열렸다.

“비상! 비상! 모두 도주했습니다.”

후다닥 후원을 향해 달리는 마법사들의 등에선 식은땀이 솟는다. 공작부인들이 사라지면 그 책임을 물어 참수형에 처할 것이 뻔한 때문이다.

같은 시각, 현수는 수로에 몸을 담았다. 그리곤 빠른 속도로 헤엄쳤다. 하지만 이내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근위대원들의 수색이 시작된 때문이다.

땡, 땡, 땡, 땡, 땡, 땡……!

요란한 타종음이 밤하늘로 번져 가고 여기저기서 후다닥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공작부인들이 사라졌다. 샅샅이 뒤져라!”

“네!”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듯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며 공작가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끄응! 이럴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너무 빨리 알아차렸네.’

무성한 수초 아래에 은신한 현수는 조용히 기다렸다. 숨대롱만 내놓고 가급적 천천히 숨을 잘게 쪼개서 내쉬었다.

10분을 지나 20분에 이르렀음에도 현수는 몸을 뺄 수 없었다. 하필이면 근위대원들을 지휘하는 9서클 마법사 둘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제기랄! 하필이면…….’

현수는 아공간에 담긴 컨테이너를 떠올렸다. 산소 공급 장치가 달려 있어 하루나 이틀쯤은 괜찮을 것이다.

문제는 안에서 문을 열었을 경우이다. 절대 문에 손대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설마 패닉 상태가 되진 않겠지.’

초조한 마음으로 시간 흐르기를 기다렸으나 밤새워 수색할 모양이다. 지휘자가 자리를 뜨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고 지시만 해대고 있다.

‘할 수 없지.’

현수는 조용히 이동을 시작했다. 이때 누군가 횃불을 들고 왔다.

“어라! 저건 뭐지?”

물속에 시커먼 무언가가 움직이는 듯하자 가까이 다가와 횃불로 비춰본다. 그러는 사이에 현수는 무성한 수초 아래로 은신했다.

“뭐야? 물고기 떼가 움직인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뒤로 물러선다. 그러다가도 뭔가 이상하다는 듯 뒤를 돌아본다.

“잘못 본 건가? 뭐였지?”

사내가 물러서자 현수는 재빨리 다른 장소로 헤엄쳤다.

수색하는 사람이 많은지 수시로 횃불이 다가와 수면 아래 뭐가 있나를 확인했기에 여러 번 수초 속에 몸을 숨겨야 했다. 다행인 건 지금이 밤이고, 그믐이라는 것이다.

밖은 환하고 수면 아래는 상대적으로 어두우니 잠수복을 걸친 현수를 빤히 보면서도 아무것도 못 알아채곤 했다.

‘최상의 선택이었군.’

현수가 이처럼 애를 쓰는 이유는 라트보라 남작이 파놓은 지하 터널이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걸 파느라 애를 썼을 것이고, 발각될 경우 라트보라 남작이 또다시 거처를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한다.

나중에 또 쓸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비밀 통로가 하나쯤 있어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이다.

“뭐해? 샅샅이 뒤져! 야! 넌, 그 속에 사람이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해? 말해봐. 누가 없어진 건지 몰라?”

자그마한 상자를 들춰보던 사내는 얼른 부동자세를 취하곤 대답한다.

“아, 아닙니다. 공작부인이라는 계집이 넷이나 사라졌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알았으면 빨리 움직여! 그리고 너! 넌 뭐하는 놈이야?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찾아지나? 어서 움직여!”

“네! 아, 알겠습니다.”

누군가 고함치자 부산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현수는 천천히 헤엄쳐 마구간 가까이까지 갔다. 그 순간 누군가 소리쳤다.

“아! 여기, 수상한 발자국이 있습니다.”

“뭐? 어디? 어디?”

수면 아래에 은신한 채 밖을 내다보니 삽시간에 대여섯이나 모여든다. 흐르는 물결 때문에 일렁여 보이기는 하지만 다들 횃불을 들고 있어 바깥이 훤하다.

“여기 이거요! 이건 우리 발자국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쪽은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는 곳입니다.”

마구간 앞문으론 수시로 드나들지만 뒤쪽으론 올 일이 없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흐음! 그렇군. 그런데 이 발자국은 조금 이상하군. 한 번도 보지 못한 거야.”

“그렇군! 나도 처음 보네. 확실히 수상해.”

“그러게! 대체 어떤 신발이기에 이런 발자국이 찍히지?”

이들이 집중하고 있는 발자국은 다소 무른 진흙에 찍힌 것들이라 선명하다. 하나는 대한민국 육군이 신는 군화 자국이다. 당연히 마인트 대륙 사람들의 눈엔 이상할 것이다.

또 하나의 발자국은 오리발을 신었을 때 찍힌 것이다.

굵은 나무에 기댄 채 이곳에서 군화를 오리발로 갈아 신었는데 습지라 땅이 무르다는 걸 미처 유념치 못한 결과 이런 흔적이 남은 것이다.

“근데 이건 좀 이상합니다.”

“그치? 사람 발자국은 아닌 것 같아.”

놈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군화 자국이야 그렇다 쳐도 오리발을 신고 디딘 것은 이상하다.

“이거 혹시 우리가 모르는 몬스터 발자국이 아닐까요?”

“몬스터라고?”

“네! 제가 몬스터 발자국 대부분을 아는데 이런 건 처음 봅니다. 한 번도 본적이 없어요.”

오리발 자국을 살펴본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흐음, 발자국이 이 정도 깊이라면 무게가 얼마 안 나간다는 건데. 다들 이 근처를 샅샅이 수색해.”

“네, 알겠습니다.”

사내들은 다시 흩어졌다.

하지만 현수는 이동할 수 없었다. 물가에 쪼그려 앉은 채 오리발 자국을 살피는 놈이 적어도 7서클 이상인 마법사인 때문이다. 이 정도면 아주 작은 움직임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하다.

“근처에 같은 자국은 없습니다, 조장님!”

조장이라면 7서클이 아니라 9서클이라는 뜻이다. 현수는 숨죽인 채 바깥의 동정을 살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수로에 물이 흐르는 소리가 자신의 호흡 소리를 감춰준다는 것이다.

오리발 자국은 불과 3개뿐이다.

조장이라는 자는 예리한 시선으로 발자국을 살피더니 힐끔 물속을 바라본다. 현수와 시선이 마주쳤지만 보지 못한 듯 이내 고개를 갸웃거린다.

“뭐지? 수중 몬스터 중에 발자국이 이만하려면 덩치가 커야 하는데 이 얕은 물에 살 리는 없고…….”

“조장님! 수중 몬스터가 아니라 비행 몬스터가 아닐까요? 발자국이 너무 없잖아요.”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고개를 끄덕이던 조장이 다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근데 안에 있던 계집들의 발자국은 왜 안 보이지?”

“아! 맞습니다. 그러고 보니 계집들의 발자국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봐! 다들 발자국을 유심히 확인해.”

“네! 알겠습니다.”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이 다시 흩어진다.

한편, 무성한 수초 속에 숨죽인 채 은신해 있던 현수는 자책의 눈빛이다.

‘제기랄! 방심했나 보군.’

현수는 놈이 이동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수색이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인원만 더 늘어나고 있다. 대기조까지 모조리 동원된 것이다.

감시 대상인 공작부인들이 모두 사라졌다면 책임 추궁을 당할 것이기에 모두들 놀라서 튀어온 것이다.

“조장! 왜 이곳에만 계십니까?”

“아무래도 이게 이상해서. 이런 발자국은 처음이야.”

“그래요? 뭔데요?”

새롭게 나타난 자들 또한 군화 자국과 오리발 자국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공간에 있다 패닉 상태가 되면 안 되는데.’

싸미라 등은 컨테이너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숨만 쉴 수 있을 뿐 빛 한 점 없는 완전한 암흑인 곳이다. 넷 중 하나라도 폐소공포증 혹은 암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쯤 벌벌 떨거나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곧바로 다른 여인들 또한 공포를 느끼게 될 것이다. 아주 잠시라면 모르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다.

‘가라! 어서, 다른 데도 많은데 하필이면 왜……?’

놈들이 이곳을 떠나면 즉시 지하 터널을 통해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데 작전을 변경해야 할 듯싶다.

점점 더 많은 놈이 꼬이고 있는 때문이다.

“아침조! 조장님께 보고드립니다. 계집들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창가에만 발자국이 있을 뿐 흔적이 없습니다.”

“대낮조도 보고드립니다. 계집들의 흔적이 없어 행방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저택 전체를 와이드 센스 마법으로 훑었지만 우리 말고는 없습니다.”

와이드 센스 마법을 쓰면 건물 뒤나 숲 속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은신해 있어도 찾을 수 있다.

다만 땅속이나 현수처럼 흐르는 물속에 있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매질이 흙이나 바위인 경우엔 마나가 굴절되거나 산란하고, 수면의 경우는 난반사를 일으키는 때문이다.

현수가 아직도 발각되지 않은 이유는 숨대롱의 끝만 수면위로 살짝 나와 있어서이다.

“야간조도 보고드립니다. 더 이상 발자국 등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계집들은 마법을 익히지 않았다. 이곳을 빠져나갔다면 당연히 흔적이 있을 거야.”

조장이라는 자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침조! 너희는 저택 뒤를 다시 뒤진다. 대낮조! 너희는 저택 내부로 들어가 혹시 있을지 모를 비밀 통로를 찾는다.”

“네!”

“야간조는 지금부터 근처의 수목 위를 살핀다.”

오리발 자국이 비행 몬스터의 흔적일 수 있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조장들은 이곳에 있을 것이니 지금 즉시 움직이도록!”

“존명!”

야간조마저 사방으로 흩어지자 잠시 어두워진다. 횃불을 들고 있던 자들 전부가 이동한 때문이다.

12장 다시 나타난 핫산 브리프

“라이트!”

“매스 라이트!”

라이트 마법이 구현되자 금방 대낮처럼 환해진다. 현수는 얼른 수초 아래 어두운 곳으로 몸을 숨겼다.

‘빌어먹을! 왜 딴 데 안 가고 여기서 서성이는 거야?’

마음속으로 투덜거린 현수는 바깥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9서클 마법사 셋이 있으니 당연하다.

“이건 말일세, 아무리 봐도 이상하네.”

“그래! 내가 봐도 그래. 이건 사람 발자국 같은데 이상하고, 이건 정말 한 번도 못 본 흔적이야.”

“그렇지?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조심스레 본을 떠보세. 학계에 발표해야 하니까. 안 그런가?”

“그렇지, 내가 본 뜰 준비를 하겠네. 아공간 오픈!”

아공간을 열어 무언가를 꺼내는 모습은 본 현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끄응! 하필이면 왜……?’

마법사의 탐구심이 원망스러웠다. 슬쩍 짜증이 난 현수는 조장들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본을 다 뜰 때까지 꼼짝없이 숨죽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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