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0
이것에 대한 원칙은 확고하다.
4서클 이상인 흑마법사는 결코 포로는 잡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족족 목을 베어 확실하게 죽음을 확인 후 화장한다.
로렌카 제국군 중 기사들은 전원 사형이고, 병사들 가운데에서도 잔학 행위를 자행한 자들은 전원 참수형이다.
인육을 섭취한 자들 역시 죽음을 면치 못한다.
제국에 충성하던 관리들은 직급에 따라 고위급은 전원 사형이고, 낮은 직급은 병사에 준한 처벌을 받는다.
아울러 관리로서 취한 부당 이득 전부를 몰수하는데 부당한 착취를 자행한 자는 참수형에 처해지며, 그의 직계가족은 모두 노예가 된다.
처벌받은 자들의 사체는 전부 화장하고, 타고 남은 재는 모두 수거한 뒤 먼 바다에 뿌린다. 마인트 대륙에 흔적조차 남길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흑마법서는 입문서라 할지라도 모조리 불에 태우고, 제국이 아르센 대륙을 도모하기 위해 준비해 놓은 좀비와 구울, 그리고 스켈레톤 등도 모조리 불태우기로 하였다.
아울러 흑마법사들의 연구실은 모조리 비워지고 폐쇄된다.
일련의 조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 임시정부가 나치에 협력 내지는 찬양을 했던 자국민들을 징치한 것 이상이 될 것이다.
그때는 가족을 노예화하지는 않은 때문이다.
현수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철저히 발본색원하고 이를 마인트 대륙의 사서(史書)에 기록하라는 명령을 했다.
죽은 자들의 성명을 분명히 명기할 것이며, 어떤 죄를 지어 어떻게 처벌받았는지 또한 명확히 하라 하였다.
역사를 잊거나, 모르면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 있음을 충고한 것이다.
반 로렌카 전선 사이에 이런 연락이 오가는 동안 맥마흔에선 제국의 위기라 판단한 황태자의 명에 따라 마법사와 기사들에 대한 소집령이 선포되었다.
대륙의 4서클 이상 마법사 전원과 소드 익스퍼트 이상인 기사들을 모조리 불러 모은 것이다.
현수와의 대결이 있을 경우 결코 빠져나갈 수 없게 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화살받이로 쓰려는 의도도 있다.
이로써 현수가 퍼뜨렸던 유언비어는 사실이 되었다.
황궁에선 칙령을 반포하기 위해 모든 포탈을 총동원하여 수없이 많은 방문((榜文) : 어떤 일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사람들이 다니는 길거리나 많이 모이는 곳에 써 붙이는 글.)을 대륙 각지로 발송했다.
수도에 도착한 4서클 이상인 마법사와 기사들은 맥마흔은 물론이고 성벽 바깥쪽까지 무리지어 배치될 예정이다.
핫산 브리프가 나타났다가 도주하더라도 즉각 신호를 주고받아 추적하기 위함이다.
집결하는 인원이 워낙 많기에 황궁에선 수도의 주민들에게 소개령을 내렸다.
꼭 필요한 관리, 기사, 마법사, 요리사, 시녀 등을 제외한 모든 이에게 당분간 수도를 떠나 있으라는 명령이다.
이들이 비운 자리엔 각지에서 올라온 마법사 등이 머물게 된다. 마법사와 기사들이 머물 곳이 부족하자 수도의 주민들을 강제로 내쫓은 것이다.
어쨌든 바라던 대로 일이 진행되었으니 현수로선 임도 보고 뽕도 따는 일이다.
“쩝, 여기에도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거야?”
테라카를 떠난 현수는 나직이 투덜거렸다.
핫산 브리프가 다시 등장했다는 소문이 번지자 반 로렌카 전선에서 분열이 발생되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현수에 의해 로렌카 제국이 무너질 경우 기름진 옥토를 더 많이 차지하려는 이기심이 발동된 것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결과부터 나누자고 달려든다는 헤럴드의 말에 현수는 나직이 혀를 찼다.
“쯧쯧! 하여간 인간들이란…….”
인간의 욕심은 우주보다도 크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다.
“반 로렌카 전선끼리 다툴 경우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로렌카의 잔당들에 의해 다시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마탑주님께서 이 땅에 이실리프 왕국, 아니, 제국을 건국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라 사료되옵니다.”
“끄응……!”
현수는 나직한 침음을 내고 한참을 침묵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 생각을 해봤는데 내키지 않아서이다.
아르센 대륙 바세른 산맥 아래에 자리 잡은 이실리프 자치령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하나의 국가로서 대접받고 있다.
이웃한 테리안 왕국에서는 매년 예물을 보내 상호간의 우의를 다지고 싶다면서 적지 않은 식량을 보냈다.
현수에게 아직 보고되지 않은 사항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는 미판테 왕국 또한 예물을 보냈다는 것이다.
금은보화가 가득한 마차가 세 대나 당도해 있다. 지구의 화폐로 환산하면 약 5,000억 원 규모이다. 국가 간의 우호를 위한 예물이라 칭하기엔 실로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그런데 현수의 아내 중 로잘린과 케이트, 그리고 다프네는 미판테 왕국 출신이다. 그렇기에 국왕이 부모를 대신하여 일종의 지참금을 보내준 것이다.
아르센 대륙에서 가장 힘이 센 카이엔 제국과 라이셔 제국, 그리고 크로완 제국 역시 엄청난 예물을 발송했다.
산속에서는 구하기 힘든 생필품들이 가득 든 짐마차만 각각 100여 대이다. 운송책임자는 제국의 공작들인데 그들의 품에는 황제의 친서가 담겨 있다.
좋은 말로 표현하자면 선물 줄 테니 친하게 지내자는 뜻이다. 그리고 자국 마법사와 기사들을 유학 보낼 테니 잘 가르쳐 달라는 뜻도 담겨 있다.
대륙의 남쪽 이실리프 군도 역시 왕국으로 대접받고 있다.
북서쪽의 아드리안 왕국과 쿠르스 왕국, 북동쪽의 제라스 왕국과 라이카 왕국에선 사신을 보내 화친을 제의했다.
물론 상당히 많은 예물을 가지고 왔다.
남서쪽에 위치한 엘라이 왕국과 남동쪽의 브리만 왕국 또한 이실리프 왕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원한다면서 공작급 사신들을 파견했다.
이들이 가져온 것은 아르센 대륙에선 찾아보기 힘든 비행 몬스터의 가죽과 아쿠아마린이나 진주 같은 귀금속이다.
이렇듯 이미 두 개의 왕국이 운영되고 있다.
이것들을 제대로 개발하여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도 벅찬 일이다. 수시로 지구를 오가야 하는 때문이다.
지구에도 이실리프 왕국이 다섯 개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 합친 것보다도 훨씬 큰 땅 덩어리에 또 다른 왕국을 세우라고 한다.
참고로, 마인트 대륙은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과 남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합쳐놓은 정도의 크기이다.
파티마가 있는 자유영지 헤르마에서 수도 맥마흔까지 직선거리가 3,000㎞이니 얼마나 큰 땅인지 충분히 짐작될 것이다. 왕국이라 하기엔 너무 광활하다. 하여 제국이라 칭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어쨌거나 로렌카 제국을 징치한 후 발생될 수 있는 유혈사태를 막으려면 현수가 황제가 되어야 한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강력한 무력을 지닌 황제가 중앙집권체제를 굳히면 서로 땅덩어리를 뺏으려는 욕심을 못 부리기 때문이다.
반 로렌카 전선 소속과 일반 백성들은 지난 300여 년간 로렌카 제국으로부터 모진 핍박과 설움을 받으며 살아왔다.
흑마법사들에게 있어 일반 백성들은 가렴주구의 대상일 뿐이고, 욕정을 배설하는 존재였다. 게다가 젊은 여인이나 아이들은 식재료이기도 했다.
이런 불쌍한 삶을 살았는데 그냥 놔두면 땅덩이 때문에 상잔할 것이고, 박멸되지 않은 로렌카 제국의 잔당에 의해 다시금 지배당하는 일이 빚어질 수 있다.
문제는 그 잔당이 흑마법사라는 것이다.
세상 모든 백마법사의 수장인 현수 입장에선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 할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원치는 않았지만 마인트 대륙에 이실리프 제국을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기에 헤럴드를 신하로 받아들인 것이다.
“할 수 없지.”
현수는 이실리프 제국을 건설하기로 마음을 확정했다.
“그나저나 여길 다스리려면 신경 많이 써야겠군.”
언어와 풍습이 다른 민족들이 화합하도록 하려면 채찍과 당근이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오래 사는 게 어쩌면 다행인지도 몰라.”
현수의 수명은 1,467년 정도 남아 있다.
황제가 되어 1,000년 이상 일관성 있는 개혁과 개발을 추진하면 조만간 지구와 비슷한 사회 형태가 갖춰질 수 있을 것이다.
지구는 45억 년 전 빅뱅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최초의 인류는 300만∼150만 년 전에 출현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이다.
세월이 흘러 현재는 A.D((Anno Domini) : 라틴어로‘그리스도의 해’라는 뜻. 기원후라는 의미로, 그리스도 기원후 …년이라고 할 때 사용한다.) 2018년이다.
한동안 인류의 발전 속도는 매우 느렸다.
수메르족이 사용하던 통나무 바퀴는 그 형태 그대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되었다. 그러다 1882년에 윌리엄 던롭이라는 사람에 의해 타이어로 발전되었다. 그리고 최근 100년간의 발전은 인류의 역사 전체의 발전보다 더 빨랐다.
현대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현수가 황제가 되면 적어도 100년 이내에 현대에 가까운 사회구조를 갖게 될 것이다.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을 그대로 계승한 대한제국은 1910년 8월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양반과 상놈의 신분은 확실하게 구분되었다. 그로부터 108년이 흐른 현재 대한민국에서 양반은 특정 계층을 칭하는 어휘가 아니다.
현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적당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곧장 아르센 대륙으로 장거리 텔레포트를 시도했다.
바세른 산맥의 드래곤 로드를 예방한 후엔 곧바로 라수스 협곡으로 향했다.
* * *
“휴우∼! 조금 쉬어가는 느낌이군.”
북한으로 차원이동한 현수는 시원한 물로 샤워부터 했다. 지난 며칠 간 정신없이 바빴던 때문이다.
젖은 머리칼을 말리며 나오는데 노크 소리가 들린다.
똑, 똑, 똑―!
“누구……?”
문이 열리자 설화가 들어선다.
“어라? 안에 계셨어요? 방에 안 계신 줄 알았어요.”
“그랬어? 조금 피곤했나 보네.”
“보고할 게 있어서 문을 여러 번 두드렸는데 반응이 없어서 어디 산책이라도 가신 줄 알았어요. 여기요.”
설화가 내민 파일을 연 현수는 눈을 크게 뜬다.
오늘 아침,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 정순목은 예고 없던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현수가 보고 있는 것은 인터넷에 올려진 속보를 그대로 프린트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통령 권한대행 정순목입니다.
오늘은 2018년 8월 15일, 광복 73주년인 날입니다.
73년 전의 오늘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신음하던 우리 민족에게 기쁨이 찾아온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오늘은 그러하지 않습니다.
한일전 이후 계엄사령부는 면밀한 조사를 통해 국가 반역 행위자들에 대한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한마음당 사무총장 박인재 의원과 원내 대표 홍신표 의원을 비롯한 현역 국회의원 49명이 친일 행위자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들 이외에도 전직 국회의원 중 398명 또한 재직 중 반역 행위를 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들은 현재 전원 체포된 상태이며, 계엄사령부가 모종의 장소로 압송하여 엄중히 사실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유사시 일본을 위해 요인 암살 및 납치, 그리고 유인과 포섭 등을 담당하기로 한 행동대원 4,113명에 관한 체포 작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치인, 언론인, 법관, 경찰, 군인, 기업인, 학자, 문예인 등 사회 전 분야에 퍼져 있습니다.
국회는 국가의 안녕과 존속, 그리고 국민의 안전과 권익을 수호하는 헌법기관입니다.
그런데 이렇듯 친일파에 의해 장악된 국회를 어찌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하여 국가가 비상사태에 놓인 지금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국회해산’을 선언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