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능의 팔찌-1253화 (1,252/1,307)

# 1253

대통령 권한대행도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행사하므로 국가수반이다. 그런 사람 입에서 다른 나라의 영토를 배상금 명목으로 받겠다고 하니 다들 입을 쩍 벌린다.

“규슈가 대한민국의 영토에 편입되면 당연히 명칭은 바뀌게 될 것이며,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일본인은 추방될 것입니다.”

과격해도 너무 과격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기자들을 향해 권한대행은 싱긋 웃음 짓는다.

“그럼에도 일본이 우리에게 행한 것에 대한 대가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본주까지 우리 영토에 편입시키고 싶지만 일본의 인구 밀도를 감안하여 그건 흔쾌히 양보하는 바입니다.”

“저어, 권한대행님! 말씀 중에 죄송한데 일본이 그걸 받아들이겠습니까?”

에드몽 가뱅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다.

“만일 우리의 배상 요구를 거절할 경우 대한민국은 일본과 항복 없는 전면전을 벌일 것입니다.”

“네에?”

“그렇게 될 경우 단 하나의 포로도 잡지 않고 일본이라는 나라를 세계지도에서 지우겠습니다.”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 정순목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매우 여린 심성의 소유자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깊은 호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배석해 있는 기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에 동의하지 않는 표정이다.

참고로, 일본 육해공군의 병력수는 약 30만 명이며, 예비군은 약 6만여 명이다. 방금 전 권한대행의 발언은 이들 36만 명을 싸그리 죽여서 없애겠다는 뜻이다.

아돌프 히틀러조차 이러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때 상당히 많은 연합군 포로를 잡은 것이 그에 대한 반증이다.

“정말이십니까?”

“이곳 한반도의 역사를 살펴보면 일본은 늘 우리를 노략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일본이라는 나라를 없애면 우리의 후손들이 조금 편하게 살지 않을까요?”

“……!”

방금 전에 한 말이 농담이었다고 뒤집을 수 없는 너무도 확고한 발언에 다들 입을 벌리고 있다.

“저어, 질문 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손을 들자 정 권한대행이 눈빛으로 말하라는 사인을 주었다.

“감사합니다. 고려일보 국승현 기자입니다. 규슈를 점령하려면 대규모 상륙군을 파견해야 합니다. 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질문을 받은 권한대행을 고개를 끄덕인다.

“진도 정벌이 끝날 때까지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부족한 배상금 납부가 있다면 규슈 점령 작전은 취소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베가 그런 행위를 할지 궁금하군요.”

상대국 총리의 이름을 잡놈 부르듯 불렀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권한대행의 발언은 이어진다.

“솔직히 말씀드려 아베 신조가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를 청해도 저는 믿지 않을 겁니다. 저는 그놈을 전혀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의 총리를 아예 ‘놈’이라 칭했지만 아무도 토 달지 않는다. 정순목 권한대행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때문이다.

이때 누군가 묻는다.

“그렇다면 바로 전쟁인 겁니까?”

권한대행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생각입니다. 늘 이웃 나라의 영토를 노리던 해적 같은 놈들이니 제거가 정답 아니겠습니까?”

“제거라면……?”

누군가 추가 질문을 하려는데 권한대행이 먼저 입을 연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전쟁이 시작되면 결단코 일본군 전원을 말살시킬 겁니다. 포로는 없습니다.”

일본군은 싹 다 죽이겠다는 뜻에 모두들 입을 딱 벌린다.

아무리 해전을 겪었다고 해도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권한대행으로서 너무 과한 언사가 아닌가 싶다.

하여 이걸 지적하려는데 권한대행이 또 빨랐다.

“아울러 일본이 영구히 군대를 갖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종전의 자위대조차 갖지 못하게 될 겁니다.”

기자들은 권한대행의 단호한 표정을 기사에 언급하고 있다. 이때 누군가 손을 들고 묻는다.

“산케이 신문 가토 가쓰히로입니다. 권한대행님께…….”

산케이 신문 한국지사장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권한대행이 언론인들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에게 명령을 내린 때문이다.

“나는 주적(主敵)인 일본인과 대화하지 않습니다. 경호원은 저자를 비롯한 일본인 전원을 이 자리에서 즉각 끌고 나가 국외로 추방하십시오.”

“네! 권한대행님!”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양쪽 팔을 끼운 채 끌어내려 하자 가토 가쓰히로 등이 발버둥 친다.

“권한대행님! 이건 심각한 언론 탄압입니다.”

“모르는 말씀! 이건 결코 언론 탄압이 아닙니다. 나는 적과 대화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한 처사입니다.”

“그건 아니죠. 우리 독립군이 일본 순사들에 의해 당한 것을 생각하면 이런 추방은 아주 점잖은 겁니다.”

이는 외신 기자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기자들은 멍한 표정으로 권한대행의 표정을 읽고 있다.

다소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성품으로 알려진 당신이 이처럼 단호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었느냐는 뜻이다.

그러는 사이에 가토 가쓰히로 등 일본인들은 전원 경호원에 의해 춘추관 밖으로 끌려 나갔다. 아마도 곧장 공항이나 항만으로 끌려가 국외로 쫓겨날 것이다.

권한대행은 춘추관 문이 닫히며 가쓰히로 등 일본인들의 고함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남은 기자들을 쓱 둘러본다.

“잠시 소란스러웠습니다. 그럼 일본에 관련된 질문은 이만 받고 계속해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추가로 발표할 것이 또 있습니까? 그게 뭡니까?”

어느 기자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친 듯 얼른 입을 다문다.

“현재 대한민국이 국가로 사용하고 있는 애국가는 윤치호 작사, 안익태 작곡인 곡입니다.”

외신기자들을 제외한 모든 기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학창 시절에 배웠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윤치호는 왜정시대 때 중추원 고문을 역임한 1급 친일파이며, 그의 아비와 4촌들, 그리고 당조카 등 3대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기자들 중에는 나가서 확인해 볼 사항이라 생각하는지 부지런히 메모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순목 권한대행의 발언은 이어지고 있다.

“참고로, 윤치호의 아비인 윤웅렬은 일제로부터 남작위를 받았으며, 은사공채도 받았던 자입니다. 아주 악질 친일파라는 증거입니다.”

권한대행은 잠시 말을 끊어 다시 한 번 모두의 시선을 모은다. 그리곤 연단 앞의 물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작곡가 안익태는 ‘에키타이 안’이라는 일본 이름으로 활동한 친일부역자입니다.”

기자들이 눈을 크게 뜬다.

에키타이 안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 게 대부분인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권한대행의 발언은 이어진다.

“이런 개만도 못한 놈들이 작사하고 작곡한 것을 어찌 국가로 쓰겠습니까?”

권한대행의 음성은 높아졌고, 카랑카랑해졌다. 저도 모르게 성대에 힘을 실은 결과일 것이다.

“이에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 단절을 확실히 하기 위해 현재의 국가를 폐기처분할 것입니다.”

“그럼 대한민국은 국가가 없는 나라가 되는 겁니까?”

르몽드지 기자 등은 받아쓰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표정이다. 권한대행은 대답할 준비가 된 듯 즉시 입을 연다.

“오늘 이후 기존의 국가는 폐기처분합니다. 아울러 모든 교과서는 물론이고 정부 공식 문서에 친일파들이 작사하고, 작곡한 애국가가 올라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누군가 우려 섞인 표정으로 묻는다.

“새로운 국가는 국민들로부터 공모받을 생각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응하실 수 있습니다.”

“정말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신청 가능한 겁니까?”

질문을 한 기자의 표정을 보니 방금 한 말이 확고하냐는 뜻에서 물은 것이 아니다. 뭔가 감춰진 속내가 있음을 눈치챈 권한대행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신청자의 친가는 물론이고 외가의 6촌 이내 친척 중 친일행위를 한 자가 있다면 아무리 뛰어난 작품을 보내와도 선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권한대행님 말씀 중에 죄송한데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3항을 보면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것은 이미 폐기된 연좌제(連坐制) (연좌제(Implicative system) : 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 대 책임을 지게 하고 처벌하는 제도.)가 아닙니까?”

힐끔 바라보니 법조계열 신문사 기자인 듯하다. 권한대행은 잠깐 그에게 시선을 주곤 입을 열었다.

“연좌제가 맞습니다. 그리고 현행 헌법으론 방금 말씀하신대로 연좌제를 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민들로부터 새로운 국가를 공모하기 전에 국민투표를 통하여 여러 사안을 여쭤보려 합니다.”

권한대행은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참석해 있는 기자들에게 시선을 준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가장 먼저 국민들의 의사를 물을 것은 국회의원 정원수 조정에 관한 겁니다. 두 번째는…….”

권한대행이 말을 이으려는데 기자들이 일제히 손을 든다. 정원을 얼마로 할 것인지 물으려는 것일 것이다.

권한대행을 손을 들어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손짓을 하곤 말을 이었다.

“두 번째는 정당 설립 불허에 관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친일파에 국한된 연좌제 신설 법안이고, 네 번째는…….”

권한대행의 발언은 계속 이어졌고, 기자들은 열심히 받아쓰기를 하고 있다.

계속해서 권한대행의 발언이 이어졌는데 거의 모두 핵폭탄급이라 기자들은 정신이 없어졌다.

일본과의 국교 단절과 경중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사안이 줄줄이 언급된 때문이다.

그것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국회의원 정원은 50명으로 줄인다.

2. 여하한 경우라도 정당 설립은 법률로 금한다.

3. 친일파에 국한시켜 연좌제를 적용하는데 친일 행위로 얻은 재산과 그로 인해 불어난 재산 모두를 몰수한다.

4. 친일파의 직계 및 방계 후손 전원에 대한 사회적 지위를 박탈하며 향후 300년간 공직에 몸담을 수 없도록 한다.

다만, 진심으로 사죄하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한 자는 예외로 한다. 이의 인정 여부는 별도의 심사기구에서 국민들의 뜻을 감안하여 결정한다.

발표된 것들 거의 모두 현수가 제공한 ‘대한민국 국가개조를 위한 권고문’이라는 것의 내용이다. 읽어보고 지극히 합당하다 생각하여 권한대행이 받아들인 것이다.

아무튼 정당 설립을 불허하고,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는 것은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관심 가질 일이다.

그런데 친일파 문제는 조금 심각하다.

사람만 보고 결혼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배우자가 친일파 쪽 사람이라면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때문이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몹시 곤혹스러울 것이다.

이에 대해 친일파의 직계 또는 방계가 아닌 배우자에 대한 연좌제는 풀어준다. 하지만 친일파의 피가 섞인 자식들은 전원 연좌제로 묶이게 된다.

이들은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거둬도 향후 300년간은 공무원, 경찰관, 판사, 검사, 변호사, 정치인, 교사, 부사관급 이상 군인, 각종 공기업 직원 등으로 임용될 수 없다.

2장 재선을 포기하겠어요

자식이 이런 꼴을 당하는 게 싫으면 결혼 전에 상대가 친일파와 관련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면 된다.

정부 홈페이지에 친일파 본인 및 직계와 방계 명단을 게시될 것이다. 생년월일, 주소, 사진 등이 게재된다.

초상권, 사생활보호 및 인권보호는 친일파에겐 적용되지 않는 법안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무튼 갓 태어난 아이부터 100살 노인까지 모두 올려놓을 것이니 이를 보고 친일파와 결혼하지 않으면 된다.

친일파의 대가 끊기게 유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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