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4
이번 국민투표 때 사용될 포스터와 투표용지의 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 인쇄되게 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습니다.
친일행위는 반민족행위입니다.
역사적 심판을 단행해야 우리의 미래가 밝습니다.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국가로 개조될 것입니다.
일본과의 전쟁 직후인지라 국민들은 정부의 뜻을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다.
아무튼 정순목 권한대행은 국제사회를 상대로 일본과 국교단절 및 전쟁을 선포했고, 여러 사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결정했다.
국내외 언론사들은 이를 톱뉴스로 송고하느라 여념이 없다. 발 빠른 방송사들은 국제법 전문가와 군사전문가 등을 초빙하여 진도 및 규슈 점령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일본은 현재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고, 오키나와 등에 주둔해 있던 미군은 서둘러 철수를 시작한 상태라 한일 간의 전쟁에 끼어들 염려가 적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다.
법률 전문가들도 초빙되어 강제로 배상금을 받아내는 것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국제법상 문제의 소지가 많다는 의견이 대두되었지만 정순목 권한대행은 콧방귀만 끼었을 뿐이다.
그리곤 아주 짧게 코멘트했다.
“누구든 잘못을 했으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그걸 신경 써서 배려해 줄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아주 냉정한 발언이었지만 국민 대다수는 몹시 통쾌하다는 반응이다. 정순목 권한대행을 차기 대통령으로 추대하자는 의견도 상당히 많이 대두되었다.
언론이나 학계에서 우려 섞인 언급을 쏟아냈지만 이에 동조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오히려 우려를 표한 인사들에게 친일파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급기야 네티즌들에 의한 신상털기가 시작되었다.
집요한 조사가 시작되자 금방 3대 조상은 물론이고, 처가 쪽 족보까지 죄다 적나라하게 까발려졌다.
이번 사태에 우려를 표한 인사 중 친일파의 후손이 하나 끼어 있었는데 집 주소와 직장은 물론이고,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와 반, 그리고 번호와 성명까지 모든 게 공개되었다.
그러자 직장에선 은밀히 권고사직을 요구했고, 그가 사는 아파트 출입구엔 ‘친일파의 후손과 한 동네에서 못 사니 즉각 이사 가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자녀들은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었다.
학교 게시판에 ‘친일파의 자식과 함께 공부할 수 없다’는 급우들의 성명서가 붙어 있는 때문이다.
어쨌거나 정순목 권한대행의 발표에 직접적으로 딴지를 거는 국가는 없었다.
권위 있는 해양 및 지질학자들은 일본이 조만간 바다 속으로 빠져들 것이라 전망했다. 영토가 없는 국가는 없으니 일본이라는 나라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
갖은 애를 써도 어차피 사라질 국가이니 한국이 당한 것에 대한 보복성 멘트일 뿐 실제로 규슈를 도모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 * *
타탕, 타타타탕! 두르르! 두르르르르―!
콰앙! 콰콰콰쾅―!
“아악! 케엑! 크헉! 윽! 으아악!”
요란한 총성과 귀청을 찢을 듯한 포성이 난무하자 인간의 찢겨진 신체의 일부가 바닥에 널브러진다.
이곳은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에 위치한 디모나의 외곽이다. 원자로를 포함한 핵 관련 시설들이 있다.
방금 전 공격을 받은 자들은 이스라엘 육군 소속으로 핵무기 발사 기지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 기지는 느닷없는 운석에 의해 90% 정도가 파괴되었다. 발사 장치는 모조리 뭉개졌고, 기지는 폐허가 되었다.
이곳을 지키던 병사들은 사령부의 명령이 없어 떠나지 않고 있다가 아랍 연합군의 공격을 당하는 중이다.
두르르륵! 두르르르르르―! 콰앙! 콰콰콰쾅―!
“케엑! 아악! 크흐흑! 아악! 켁! 끄윽! 커헉!”
총성과 포성에 이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자들의 머리와 가슴 등에선 선혈이 흘러나온다.
이때 누군가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개만도 못한 유태인놈들을 모두 죽여라! 위대하신 알라께서 우리를 수호하신다.”
“와아아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사살하라!”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와아아아!”
두르르르! 두르르르르르―!
장갑차와 전차를 따르며 무자비한 총격을 가하는 이들이 입은 군복은 조금씩 형태와 색깔이 다르다.
이스라엘에 집중적으로 운석이 쏟아진 직후 긴급히 형성된 아랍 연합군들이기 때문이다.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 레바논 등지에서 급파된 이들은 눈에 뜨이는 모든 이스라엘군을 사살하고 있다.
작전이 시작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 하나의 포로도 없다. 이번 군사행동의 작전명은 ‘ماجستير في الغضب’이다.
아랍어로 ‘분노의 대가’라는 뜻이다.
범이슬람권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등에 무차별적으로 사용한 백린탄을 잊지 않았고, 18개월짜리 아이마저 죽이는 잔학함 또한 망각하지 않았다.
아무런 힘도 없는 어린아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조준사했던 이스라엘은 용서받지 못할 국가이다.
하여 ‘알라께서 친히 내리신 천벌’을 마무리하려 이번 성전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알라가 친히 내린 천벌은 이스라엘에만 운석이 떨어진 사건을 지칭한다.
어쨌거나 아랍 연합군은 그간 당한 것 이상으로 되돌려 주는 중이다. 그 결과 얼마 남지 않은 이스라엘군과 경찰 등은 지리멸렬하는 중이다.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 이스라엘은 정규군 18만 명과 예비역 45만 명이 있었다.
아울러 100기의 핵무기도 보유했다.
이 밖에 3개의 기갑사단, 4개의 기계화 보병여단, 3개의 포병대대가 있었고, 약 4,000대의 탱크가 있었다.
바다엔 3척의 잠수함, 55척의 초계함 및 연안전투함이 있었고, 공군엔 전투기 500대, 아파치 헬기 100대가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장비, 훈련, 사기, 실전 경험 등에서 최강의 실력을 갖췄고, 정보기관 모사드는 아랍 여러 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처에서 첩보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이스라엘에 수없이 많은 운석이 떨어진 직후 전 세계 과학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구 인력에 끌려 자유낙하한 운석의 99.9%가 군사시설, 산업시설, 거주구역에만 떨어진 때문이다.
운석 1,000개 중 하나만이 사람이 없는 곳에 떨어졌다.
누군가 지구의 자전속도까지 정밀히 조준하여 떨어뜨린 것 같은 결과이다.
과학자들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크게 놀랐다. 그래도 결과는 있다. 하여 과학적 규명을 하려 애를 썼지만 아무것도 증명된 바 없다.
범이슬람권에선 ‘위대하신 알라’께서 간악한 유태인들을 지구에서 지우기 위해 천벌을 내렸다는 평가를 내렸다.
아무튼 우주에서 쏟아져 내린 무지막지한 운석들 덕분에 핵무기 발사기지는 100% 사용 불가능한 상태이고, 전투기의 95%는 파괴되었다.
전차의 90%가 고철이 되었으며, 병사의 60% 이상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나머지 40% 병사 중 15%는 중상을 입어 경각지경에 처해 있으며, 10%는 부상이 심해 운신에 어려움을 겪는 상태이다.
거의 모든 병원까지 작살나서 아무런 치료도 못 하고 죽을 순간만 기다리며 신음하고 있다.
어쨌거나 5%는 경상이고, 나머지 5%만이 멀쩡하다.
이 와중에 들이닥친 아랍 연합군은 추호의 자비도 베풀지 않고 운신 가능한 사내들을 지우고 있다.
이스라엘 병사와 경찰, 공무원 등은 눈에 뜨이는 족족 모두 사살되고 있다. 운 좋게도 운석 러쉬에서 파괴되지 않았던 군사시설과 관공서 등은 모조리 폭파되는 중이다.
“알라의 뜻이다! 단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라!”
“와아아아! 간악한 유태인들을 섬멸하라.”
타탕, 타타타탕! 콰앙―! 타타타탕! 두르르르―!
“케엑! 크윽! 아악! 컥! 으아악!”
사기충천한 아랍 연합군의 공격에 이스라엘군은 변변한 저항도 하지 못한다.
총탄은 거의 모두 소모되었고, 식량과 물은 없다.
통신, 수도, 전기가 끊겼고,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아 지원요청을 못 한다. 그래 봤자 사령부 역시 완파되어 아무런 보급도 해줄 수 없는 상태이다.
반미국, 범이슬람 시각의 채널 알 자지라 방송에서 파견한 종군기자는 신나서 전황을 보도하고 있다.
“방금 보신 것처럼 이스라엘 놈들이 쪽도 못 쓰고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위대하신 알라의 뜻에 따라 우리 아랍 연합군은 현재 이스라엘 족속들의 씨를 말리는 성전(聖戰)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알 자지라 방송 화면엔 잠시 전 총격에 당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이스라엘군의 모습이 비춰진다.
아직 죽지 않았다. 허벅지에 한 방 맞아 당황한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때 누군가 이 사내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민다. 그리곤 서슴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타앙! 퍼억―!
머리에 총탄이 박히면서 뒤통수의 일부가 날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곧이어 시뻘건 선혈이 흘러나온다.
이를 보고 있는 이들은 세 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분노하는 이들은 유태인이고, 환호를 터뜨리며 즐거워하는 이들은 범이슬람 사람들이다. 이도저도 아닌 이들은 그저 잠시 이맛살만 찌푸릴 뿐이다.
“성전에 참여한 용사들의 무운을 빌어주십시오. 아랍 대연합군은 세상에서 이스라엘의 씨가 마를 때까지 공격 또 공격할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알 자지라의 종군기자는 상당히 고무되어 있는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빠르게 지껄인다.
* * *
같은 시각, 미국 워싱턴에선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도와야 한다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시위대의 길 건너에선 욕심 사나운 유태인들을 위해 미군의 피를 흘릴 이유가 없다면서 참전 반대 시위를 벌인다.
양쪽 진영은 첨예하게 대립한 채 고함을 질러 상대를 위협한다. 하지만 무력 충돌은 없다. 출동한 경찰들이 두 진영 사이를 완전하게 갈라놓고 있는 때문이다.
말없이 CNN을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보던 미국 국방장관 제임스 포레스탈의 입이 열린다.
“대통령님!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힐러리 로댐 클린턴은 ‘이스라엘 파병 명령서’에 사인해 달라는 국방장관의 얼굴을 힐끔 바라본다.
“현재 유태교 VS 이슬람교인 상황입니다. 우리가 개입하면 자칫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수 있음을 몰라요?”
힐러리는 ‘유태교 VS 이슬람교’인 상황이 ‘범기독교 VS 범이슬람교’로 상황이 바뀌면 100%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임을 언급한 것이다.
“압니다. 그래도 도와야 합니다. 월가 (월가[Wall Street] :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이스트 리버에 이르는 지역의 일부로 주식거래소를 비롯하여 어음교환소, 연방준비은행, 기타 유력한 시중은행들이 집중 되어 있어 뉴욕 주식시장이나 미국 금융자본의 대명사로 일컫는다.)를 누가 장악하고 있는지 잊으셨습니까?”
제임스 포레스탈은 목에 핏대까지 세웠지만 힐러리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나는… 우리 미국의 개입이 마땅치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너무 많이 나갔어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우리 우방입니다.”
“늘 문제만 일으키는 우방이지요.”
“그건… 인정합니다. 그래도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뒤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음을 보여야 합니다.”
제임스 포레스탈의 눈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다. 소신이 담겨 있는 발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힐러리는 냉랭하다.
“우리가 왜 그래야 하지요?”
“안 그럼 재선 못 하실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힐러리 로댐 클린턴은 잠시 국방장관의 얼굴을 쏘아본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건가요?”
제임스 포레스탈 국방장관을 바라보는 힐러리의 시선엔 싸늘함이 가득하다. 심히 불쾌함을 느낀 때문이다.
“아, 아닙니다. 협박이라니요? 제가 어찌…….”
제임스는 당황한 듯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눈빛엔 그런 기운이 조금도 배어 있지 않다.